09.08.13
8월12일 문학경기장에서 만난 김성근 SK 감독은 팬들을 향해 환히 웃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웃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야구는 그에게 신의 반열을 허락했으나, 세상은 그에게 입을 다물 것을 요구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네이버 스포츠Q에서는 ‘김성근 SK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시리즈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김 감독과 SK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시즌 전 주력선수들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했다 ‘WBC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다 베테랑 선수들도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예년처럼 팀을 이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주전 포수인 박경완과 에이스 김광현이 생각지도 못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SK는 그야말로 만신창이 상태입니다.
과연 이 전력으로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룰 수 있을까도 의문인데요. 김 감독으로부터 현재 팀이 어떤 상황이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SK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솔직한 대답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김 감독께 드리는 질문은 누리꾼 여러분이 스포츠Q와 네이버 <미투데이>에 올려주신 질문들을 그대로 반영한 것임을 밝힙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웃음).
-연일 강행군이시라, 건강이 염려됩니다. 아무쪼록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아이디 lk***님께서 첫 번째 질문을 하셨습니다. ‘올 시즌 SK의 가장 큰 문제는 마운드의 부진, 그 가운데 불펜과 외국인 선수의 부진이 가장 크지 않나 싶습니다.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음, 불펜진은 솔직히 이야기하면 시즌 초부터 기대 이하였어요. 그 바람에 우리 팀 투수진 운영에 지장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물론 그러면서도 잘 버텼어요.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도가 예상보다 떨어지면서 다시 팀 성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시즌 중반엔 그간 힘 있게 던졌던 고효준과 전병두의 페이스가 처졌어요. 아무래도 자기 실력이 다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송은범도 10승 이상은 했어도 뭐랄까. 시즌이 흐를수록 공격적인 투구에서 지키는 투구로 넘어갔다고나 할까요. 그 때문에 몇 경기 놓친 게 SK로서는 뼈아팠다고 봐요.
-아이디 ko***님께서는 “SK 불펜이 부진한 이유가 지난해 무리한 투구로 말미암은 피로 때문이 아닌가?”하고 보십니다. 야구계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도 SK 불펜의 과부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과부하보다는, 김원형과 정우람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어요. 오키나와에서 연습경기를 하는 도중에 정대현, 이승호가 제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차출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어요. 정대현의 공백을 메우려고 두 선수(김원형과 정우람)가 마무리를 해야 했어요. 아, 그런데 3경기에서 연달아 얻어맞지 뭐에요. 거기서 두 선수가 자신감을 잃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때 나도 속으로 ‘선수들이 충격을 받았겠구나’ 싶었어요. 얻어맞아도 보통 얻어맞은 게 아니라 끝내기 홈런이라든가 역전타 이런 걸 3경기 연속으로 맞았으니까.
김원형은 시범경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싶었어요. 하지만, 시즌 시작하고 한방 얻어맞더니 그다음부터 많이 위축이 된 것 같아요. 조웅천, 가득염에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조웅천은 아예 쓰질 못했어요. 이영욱, 이한진도 그렇고.
지난해 많이 던져서 올 시즌 페이스가 떨어졌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어요. 구위 자체는 지금도 좋으니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WBC에 이승호, 정대현이 차출되면서 다른 투수들도 덩달아 컨디션 조절에 다 실패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난해 SK 불펜을 이끌었던 이승호와 정우람의 올 시즌 하락폭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시즌 초는 이승호가 나빴어요. 하지만, 후반에 우리가 도망갈 수 있었던 건 이승호가 롱롤리프로서 제 역할을 다해준 덕분이에요. 하지만, 올 시즌엔 초반부터 실패하고 이후에도 계속 실패했어요. 이승호가 나간 경기에서 반만 이겼더라도 우리 성적은 한참 위에 있을 거예요.
이승호는 컨트롤 난조가 부진의 이유에요. 제가 볼 땐 자기 공을 못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3경기 나가 던지면 한 경기 정도 괜찮은 수준이에요. (지난해는 확신이 있었는데 올 시즌엔) 마운드에 올려봐야 알 수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요. WBC 영향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정우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잘 관리하지 못했어요. 자기 개발도 잘 안 됐어요. 원래 구종이 많지 않은 투수예요. 하지만, 요즘 야구는 다양한 구종과 정확한 컨트롤이에요. 이 두 가지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부상의 악령들, SK를 휘감다
-6월 24일 광주 KIA전에서 주전 포수 박경완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한 것이야말로 SK에게는 치명타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 ty****님께서 “박경완의 이탈이 팀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다고 보십니까”하고 질의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박경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큰 차이가 있어요. 박경완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투수들 자체가 안정감을 잃은 것 같아요. 투수들은 좋든 싫든 박경완에게 의존해 왔으니까. 6월 하순에는 정상호마저 아팠어요. 그래 포수 윤상균처럼 상상도 못한 멤버들로 경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 게 투수들에게 혼란을 준 것이 사실이에요. 팀 밸런스가 거기서 무너졌고. 채병용 자체도 더 나빠졌어요.
음, 더는 투수들을 돌리기가 어려운 상태. 어떻게든 돌려보려고 하는데…지난해엔 역전승이 많았는데 올 시즌엔 역전패가 많아요. 투수진을 운영하는 내가 잘못한 면도 있지만 가용할 수 있는 투수들의 수를 볼 때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이디 miraclet***님께서는 “프로 9년 차에 주전포수를 맡은 정상호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하고 질의하셨습니다.
(짧게 숨을 토해내고서)음, 지난주(8월7~9일) 군산에서 KIA에게 역전패를 당했지만, 그런 경기는 잡아야 했어요. 그런데 올 시즌은 이상하게도 그런 경기마다 판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그게 올 시즌 우리의 운이 아닌가 봐요. 군산 KIA 2연전을 잡았으면 아직 1위부터 3위까지는 혼전이었을 거예요. 그 경기들을 우리가 놓치면서 KIA가 확실히 편안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판정은 정말 중요했다고 봐요.
-아이디 rooney9***님께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는데요. “2007~2008년에 비해 올 시즌 중심타자들인 김재현, 박재홍, 이호준, 최정 등의 타점능력이 떨어졌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높은 팀타율에도 기회 때 한 방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다소 나아졌지만 6월 말부터 7월까지는 지적한 데로 적시타가 터지지 않아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어요. 올 시즌은 전체적인 팀 밸런스가 잘 맞질 않아요. 이호준, 김재현, 박재홍 같은 선수들은 부상과 여러 가지 이유로 시즌 초 확실한 포지션도 없었어요. 외야와 내야에는 주전선수들을 보충할 만한 백업 선수들이 눈에 띄지 않았고. 당연히 선수들의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좋았던 컨디션이 6월 중순을 기점으로 내려간 게 아닌가 싶어요. (잠시 생각하다가) 그게 타점 생산능력에도 영향을 끼쳤을 거고.
투수들이 우릴 상대할 때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투구 내용을 바꿔요. 거기에 대한 (SK 타자들의) 대처능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4, 5월에 박재상이 2번 타자였는데 우리 팀에서 타점이 제일 많았으니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었어요. 중심타자 이호준이 아팠고 김재현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댈 곳이 없었다는 게 올 시즌 SK 타선의 현실이 아니었겠나 싶어요.
-확실히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보다 타선의 중량감은 떨어진 듯합니다.
지난해 오더 짤 때는 ‘아, 이 선수들에게서 승부를 건다.’ 이런 기분이 있었는데 요즘 오더 짤 때 보면 기존 멤버 외에 바꿀 선수가 없어요. 우스운 소리로 “오더 짜는 재미가 없어요.” (웃음) 아기자기한 오더를 만들어야 하는데, 올 시즌엔 특색 없는 SK 야구를 하지 않나 싶어요. 상대방의 경계도 심해졌고.
-아이디 gd****님께서는 ‘FA(자유계약선수) 이진영이 LG로 이적으로 한 게 SK 전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십니다.
이진영이가 (팀에서) 나가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영향을 준 게 많아요. (이진영이 다중 수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올 시즌엔 그렇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진영이 가진 여러 가지 요소가 많아요. 이진영이란 선수 한 명이 나가면서 SK가 노출됐으니까. SK 전력이 완전 해부 되는 상황이 됐어요. ‘올 시즌 SK 적시타가 없다’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봐요. 우리만의 노하우가 바깥에 다 나가 버렸어요.
-아이디 wate***님과 tee***님께서는 “SK 선수층이 워낙 두터워서 위기를 잘 극복하시리라 믿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비장한 목소리로) 선수층 두텁다? 아니에요. 5월부터 위기를 대비해 2군 타자와 투수들을 육성했어요. 그런데 경기에 내보내니까 아직 역부족이고 그만한 물건이 없어요. 요즘 다음 스프링캠프 때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잠시 침묵하다가) 밖에서 보는 SK 멤버는 굉장히 탄탄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박경완의 이후 포수가 있었나. 정근우 다음으로 2루수가 있느냐 생각하면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원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팀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아이디 justdo***님께서는 “외국인 투수들이 예상보다 부진한 게 SK 전력에 악영향을 준 게 아닌가”하고 지적하셨습니다. 야구계 일각에선 SK와 두산 등 강팀들은 사실상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웬만한 자국선수들의 비중보다 높지 않다고들 하는데요.
음, 캐니 레이번은 어느 정도 존재가치가 있었어요. 레이번이 승수는 쌓지 못했어도 5회까지는 버텼어요. 올 시즌 외국인 투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까 불펜을 더 쓸 수밖에 없어요. 거기서 오는 영향이 커요. 버리는 경기와 이기는 경기를 확실히 나누면 좋겠는데 난 성격이 그렇지 못해요. 정대현 외 마무리가, 지난해엔 (정대현이) 조웅천하고 더블 스토퍼도 하고 했는데. 올 시즌은 조웅천이 시즌 초반부터 없는 통에 그게 또 힘들었어요.
-아이디 wntjde***님께서 질의하십니다. “김광현은 언제쯤 회복돼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요?” 듣기로는 포스트 시즌에 잘하면 볼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김광현이 다친 부위가 손목이니까. 난 쉽게 회복할 거로 생각하지 않아요. (김광현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인데…. (뭔가 생각한 듯) 솔직히 이야기할게요. SK는 현재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것 자체도 위험하지 않나 싶어요. 군산 KIA전같이 꼭 잡아야 할 경기를 그렇게 놓쳐버리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군산 SK 전이라….
그런 경기가 올 시즌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8월9일 같은 경기는 치명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판정 하나로 정규시즌 전체가 움직이지 않았나 싶어요.
심판 판정도 경기의 한 부분이에요. 인정해요.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건 8월9일 9회 말 스트라이크 볼 판정 하나로 1년 농사가 끝났고 정규 시즌의 판도가 크게 움직였다는 거예요.
어제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이 “KIA는 이제 못 잡겠다”고 했다던데 만약 우리가 9일 경기를 잡았으면 바뀌었을 거예요. (스트라이크를 볼로) 고의로 판정했다고 보지 않지만, 나는 이틀 동안 그것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요. 야구를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같은 느낌이었어요.
-선수들의 충격도 컸으리라 봅니다.
선수들이야 말할 여지가 없고…. 요새는 팬들의 눈이 높아졌어요. 팬들에게도 큰 충격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요.
-비단 올 시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SK는 야구 외적인 문제로 야구 내적인 고통을 받는 대표적인 팀입니다. 특히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SK 투수들의 몸쪽 공 구사비율이 현저히 낮아졌는데요. 몸에 맞는 공이 ‘빈볼 시비’에 몰리며 SK 투수들 스스로 몸쪽 공 구사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놀라운 건 SK 투수들이 과거부터 몸쪽 공 구사가 많지 않은, 주전 포수 박경완이 국내프로야구 포수 가운데 가장 바깥쪽을 선호하는 포수였음에도 SK가 ‘무지막지하게 몸쪽 공을 즐겨 던지는 팀’으로 악평이 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디 hgg***님도 똑같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음, WBC 첫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김광현이가 나와 얻어맞은 건 일본 전력분석원들이 김광현의 뭐랄까. 몸쪽 공을 잘 던지지 않는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차피 대표팀 배터리가 SK 배터리였으니까. 김광현을 비롯해 우리 팀 투수들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몸쪽 공을 던지지 않아요. 외부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뿐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투수들이 요새 나쁜 것은 타자 몸쪽에 공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게 우리의 패인이라고 봐요. 아무래도 여론이 시끄럽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매스컴이 힘인데. 매스컴이 어느 한 쪽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게 김성근을 향한 저주 때문인지 아니면 SK 야구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야구를 볼 때나 평가할 때는 그렇게 편견을 갖고 보면 야구가 재미가 없어져요.
야구는 선수들에겐 직장이에요. 대충 놀다가는 곳이 아니에요. 당연히 야구란 것은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군산에서 돌아와 이틀 동안 곰곰이 판정문제 먼저 생각했지만, 몸쪽으로 던지지 않아서 우리 투수들이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감독이 ‘몸쪽 던져라.’ 이야기하지 않아요. 선수들이 겁이 나서 못 던지지 않나 싶어요. 던지면 신문에 대서특필되니까. SK가 죽은 게 아니라 당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만, 패자 처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안 했을 뿐이지 실제로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어요.
김성근을 향한 저주 혹은 SK 야구에 대한 편견
-SK 야구를 둘러싼 편견 가운데 ‘재미없는 야구, 감동 없는 야구’란 질타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아이디 kjh******님께서 “한국시리즈에서 2번이나 우승한 만큼 이제는 재밌는 야구를 펼치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음, 야구라 하는 건 재밌고 재미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야구를) 보느냐에 따라 방향이 바뀐다고 봐요. 하나의 편견이라고 봐요. 2007년과 지난해 그리고 올 시즌 다 따져보잔 말이에요. 이런 이야기 하면 안 되지만 우리 팀에 그만한 스타가 있느냐 싶어요.
이대호(롯데)나 김태균(한화) 같은 선수들이 우리 팀 3, 4번에 있나 싶어요. 공격이 호쾌하지 않으니까 재미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 속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일부에선 SK 야구는 끝까지 버리지 않고 악착같이 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많아요. 소문만 듣고 ‘아, 그런가 보다’하는 건 아니지 싶어요.
-아이디 leeso***님께서는 “최정이 생각보다 2군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 부상이 심각해서인가요”하고 물으셨습니다.
부진보다 풀타임 3년째가 되고, 아프기도 아팠고. 다소 무리했었어요. 하지만, 조금 아파서 출전 못 하겠다? 그래서 2군에 내려 보냈어요. 선수라고 하면 경기를 나가면서 가치를 인정받는 거예요. ‘연봉 5억 원 받는 선수가 벤치에 앉아있다.’ ‘10억 원 받는 투수가 2, 3승이다’ 하는데,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 돈을 줬으면 그런 성적을 (거두고 안주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일을 해야 해요. 얼마나 악착같이 해서 성적을 올리느냐. 그런 사명감으로 살아야지. (단호한 음성으로) 그대로 자라게 두면 안 돼요. 야구는 뭔가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고. 사람은 시작과 끝이 모두 같아야 해요.
-아이디 jj***님께서 흥미로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정근우의 플레이가 ‘가장 SK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독님께서는 가장 SK다운 야구를 하는 선수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올 시즌 같으면 박재상이 아닌가 싶어요. 박재상이 아주 힘들게 잘하고 있어요. 정근우는 (야구를) 잘하는데 순간적으로 힘을 뺄 때가 있어요. 정근우를 야단치는 게 아니라 9일 군산 KIA전 8회에 자기 쪽으로 오는 타구를 잡아줬더라면 경기는 3대 1 SK 승으로 끝났을 거예요. 그랬다면 투수진도 계산대로 가동됐을 거예요. 물론 (정근우는) 좋은 선수예요. 다만, 그런 점이 아직 프로페셔널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아이디 bse***님께서는 “전병두, 고효준 두 투수의 제구력을 어떤 식으로 향상시키셨는지 궁금합니다.”하고 질의하셨습니다.
선발 투수들이 다 무너지면서 투수가 부족했어요. 고효준은 불펜으로 썼는데 괜찮았어요. 선발로도 괜찮겠다 싶었고. 그래 전병두도 한번 해보자 했어요. 두 선수 다 기회를 잘 잡은 게 아닌가 싶어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하루 200개씩 볼펜 투구를 하던 전병두가 생각납니다.
전병두는 지난해 가을부터 우리 팀에서 가장 공을 많이 던진 투수예요. 스스로 악착같이 했고. 고효준도 자기 나름대로 고집스럽게 연습했고. 두 선수가 스타일은 다르지만 잘해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어요.
-아이디 mart***님께서 질의하셨습니다. “지금 SK 전력상 정규시즌 1위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한 감독님의 시즌 예상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도 내가 ‘몇 위 한다’고 장담 못해요. 순위가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위로 올라갈 수도 있어요. 그만큼 SK란 팀은 그만큼 불안한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에요. 여기서 뭔가 변수가 또 나온다면 우리 팀은 그냥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요. 군산으로 SK 팬들 100명 이상 오신 걸 보고 ‘어떤 상황에서든 최상으로 마지막까지 가야한다’고 결심했어요. 결과가 2위가 되든 4위가 되든, 설령 어떻게 되더라도 그걸 교훈 삼아 과거의 일을 되돌아보고 내년 기약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디 8451*****님께서 “감독님만의 필승 카드가 무엇인지 공개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준비한 카드란 게 솔직히 없어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뜻이 얼마나 강 하느냐에 달렸다고 봐요. 군산 KIA전에서 선수들의 그런 뜻이 매우 강하게 보였는데… 경기 때 갖춘 실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 흐름을 어떻게 타느냐가 잔여경기의 포인트 같아요.
-아이디 yoou******님께서는 “감독님이 예상하는 4강은 어디 신지요”하고 물으셨습니다.
KIA, 두산이 유력하고. 롯데와 삼성, SK 세팀이 치열하게 3, 4위 다툼을 벌일 거라고 봐요. 힘이 있으면 우리도 1위를 노려요. 앞으로 두산과 3경기, KIA 3경기가 남았을 거예요. 거기서 다 이기면 우리도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지난 2년과 달리 우리에게 준비된 필승카드가 없으니까 그게 아쉬워요.
-많은 야구전문가가 올 시즌 SK의 부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SK의 부진이 아니라 선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SK의 부진? 그건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이 뭔가를 몰라요. 비판만 할 줄 알지. SK가 2년 연속 우승하면서 지난 시즌이 끝나고 몇 명의 선수가 팀을 떠났는지 보세요. 전력이 많이 약화했어요. 보세요. 기존 선수들의 노쇠화가 눈에 띄었어요.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잠시 멈췄어요. 최정 같은 선수들의 부진도 있었고요. 만약 좋은 투수가 나왔고 외국인 투수가 좋았으면 몰라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팀 전력이 강화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밖에서 말하듯이 “2년 연속 우승하느라 힘들어서 지금 이렇다.”가 아니란 거예요. 제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지난 시즌 끝나고 11명이 나갔어요. 한 팀에서 11명 나갔다 하면 대혁명이에요. 그렇지요? 전력보강을 했다고는 했지만, 손지환, 안병현 등 다른 팀에서 잘린 선수 4명을 영입한 게 다였어요. 그것으로라도 어떻게 만들려고 했단 말이에요. 정말 우린 보강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SK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단호하게) 너무 많아요. 4번 타자도 필요하고 에이스도 필요해요. 음, 김광현과 박경완 이야기 안 한다 했지만, 군산 KIA전은 김광현 있었으면 2경기 다 잡을 수 있었어요. (두 선수가) 없으니까 여파가 와요. 그건 우리가 감수하고 살아야 하니까. 사실 누가 없어서 졌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남자로서, 감독으로서 해선 안 될 말이에요. 감독으로서 경기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의 문제지. 그게 감독으로서 할 일이에요.
아쉬울 때가 있을 땐 있어요. 우리로서는 포수도 필요해, 투수도 필요해, 다 필요해요. 하지만, 거꾸로 보자면 이때가 정상호가 성장할 좋은 시기라고 봐요. 내년, 내후년을 볼 때. 김연훈도 최정이 없을 때 3루에서 성장하고. 오히려 그런 쪽으로 생각할 때가 잦아요. 올 시즌만 있는 게 아니고 내년, 내후년이 있으니까. 새로운 SK라는 게 있으니까.
-역시 올 시즌 SK의 목표는 우승이겠지요?
음, 지금은…목표는 우승이에요. 단, 가능성이라고 따질 때 봄 개막 때보다는 우승 확률이 많이 낮아진 것 같아요. 그래도 할 때까지는 해보고. 승부는 어디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일 아니에요?
용기가 화살과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야구계
-여담입니다만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길 기대하는 팬이 많습니다.
올 시즌 우승한 팀 감독이 맡기로 돼 있잖아요. 음, 나하고 국가대표 감독직은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우리가 우승하면 의무니까 하긴 해야 하지만. 나한테 시급한 건 어제오늘 생각한 건데, ‘가을 캠프 어떻게 하고 어떤 식으로 SK를 다시 만들까?’ 하는 것들이에요. 요즘 그런 고민 속에 빠져 있어요. 전력이 저하된 건 저하된 거고. 내년 전력 보강할 복안도 없을 거고. 내년 정상 도전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민 속에 빠진 게 사실이에요.
-지금까지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관적인 이야기만 했네. 허허(웃음).
-개인적으로 꼭 대표팀 감독 한번 맡으셨으면 합니다. 저 지금까지….
박 기자. 순리대로 하면 돼요. 대표팀 감독보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야구가 뭔지 그걸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걸 너무 이해 못 해주니까 속이 탈 때도 있고 뒤집어 질 때도 있어요. 내가 하는 야구를 갖고 ‘그건 야구도 아니다’ 하든지 그런 뉘앙스로 말하는 걸 들을 때면 참 슬퍼져요. 나와 같이 야구했던 사람으로서 그 정도도 이해를 못 하나 싶을 때가 있어요. (한숨을 내쉬고) 너무 슬플 때가 잦아요. 올 시즌은 유난히 매스컴 관계자들에게 내가 싫은 소리도 했고. 야구를 똑바로 보시라고. 독자에게 전달을 바로 해달라고 부탁도 많이 했어요.
‘SK가 어떻다. 뭐가 어떻다.’ 좋아요. 하지만, 단순히 승패가 아니라 그 경기가 어째서 그렇게 움직였는지 뒤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봐요. 덮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덮어도 냄새가 나고 썩어가는 거예요. 잘못된 일에 대해 앞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가 싶어요. 나는 사회적으로 이건 정말 문제라고 봐요. 나도 뒤에 숨어서 주의를 주시하면서 야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야구 발전이 없어요.
-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올 시즌 감독님께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행정에 관해, 한국야구계의 잘못된 관행과 병폐에 대해 8개 구단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정치적인 감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뿐이었습니다. 야구계에선 흔히 ‘입바른 소리 하면 불이익을 당하게 십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은 ‘야구사랑’하는 밀도가 다른 게 아닌가 싶어요. 야구를 사랑하니까, 생각하니까 말한다 뿐이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안 된다’ 다 알아요. 나라고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 덮어가요. 그렇게 덮어간 게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였어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같은 것도 보세요. 그냥 덮어가요. 승자와 패자 갈렸다 뿐이지 내용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냥 덮어가요. 난 그게 싫다는 거예요. 힘에 센 사람이 이기고, 돈 많은 사람만 잘살고, 이제 그런 세상 아니잖아요. 스포츠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총대를 메시면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다기 보다, 나보고 가족들이 “그만하라” 그러지. 나는 지금껏 야구하면서 무지하게 당해 살아와서 피해의식이 있는 줄도 몰라요. 그제도 내가 결론 내린 게 하나 있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판정이라든가 행정이라든가…(눈물을 글썽이며) 그 속에서 지쳤어요. 나 스스로…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싸워봤자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숫자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내게 박수를 쳐주고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지 않나 싶어요. 있어도 너무 멀리 있지 않나 싶어요. 어깨동무해서 같이 나서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저께 기온이 삼십몇도 했어요. 얼마나 더웠는지 몰라요. 벤치에 혼자 앉아 한 시간 반 동안 그런 생각 했어요. ‘아, 지금 뭐 하고 있나’하고. 전날 군산에서 경기 지고 온 거예요. 이 정당성이란 거 어디서 찾나 싶어요. 내가 떠들어서 동의를 얻으려 해봤자 나만 비참한 거예요. 내가 시작하기 전에 시작해준 사람 있나? 아무도 없어요. 그 사람들 다 옆으로 봐요. ‘이 말해도 되냐’ 하면서.
나는 몇 번 ‘이건 아니다’하고 소리쳐봤어요. 해봤는데 다 반응이 그래요. ‘아, 내가 참 바보구나 싶어’. 내가 그렇게 떠들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 사람들 자체가 날 우습게 보는 거예요. 창피한 이야기인데 이제야 깨닫게 시작해요. 이제 떠들지 말까 싶어요.
-감독님마저 침묵하면 모두가 입을 다물게 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야구계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 그게 참 싫더라고. 그렇게 한다고 김성근 자체가 덕 볼 건 없어요. 난 올 시즌으로 언제든 감독직에서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계약이야 2차적인 거니까. 사적으로 덕 보고 싶은 마음 하나도 없다고.
한 시간 반 벤치에 앉아있다가 아파트에서 야구장까지 폭염 속에 두 시간이나 걸었어요. 그때 걸으면서 생각한 게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이 참 힘들구나' 싶었어요. 살아가기가….
봄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경기 중에 나왔어요. 주위에서 치고 들어왔어요. 그래도 나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했어요. 돌아보면 그렇게 난 몇십 년 살아왔다고. 다 날 ‘나쁜 놈’이라고 해왔다고. 뚜껑 열어보면 그 사람들 말이 다 틀렸다고. LG 그만둘 때 사건도 그렇고. 아주 틀린 이야기였다고. 심판한테 뭘 항의했다, 뭘 했다. 사실을 알면 다 틀린 이야기였어요. 나중에 “감독님 말이 맞았습니다”하는 이야기를 늘 듣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그러셨어요.
스스로 말하면 투정이고. 주위에서 해줘야 하는데 안 한단 말이지. 내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면 군산 KIA 경기 전에 히어로즈한테 역전패를 당했어요. 감독생활 하고서 첫 참패였어요. 하도 화가 나 감독실을 다 부숴버렸어요. 얼마나 화가 나기에. 어디 가서 이야기할 수도 없는 일 때문에 졌어요. 하지만, 진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거는 지저분한 거예요. 해명밖에는 안 돼요. 난 그게 제일 싫다고.
그런데 군산까지 가서 또 졌어요. 그건 또 어디 가서 이야기해요. 어떻게 하나 싶어요. 어떻게 하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과 똑같은 것 같아요.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아, 어떻게 하나 싶어그렇다고 감독이 승부에서 등을 돌려야 하느냐.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내 심정을…. 나는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평생 살아왔지만, 이 나이에도 내가 이렇게 착하게 살아왔는데도 이렇게 당해야 하나 싶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심각하게 못 벗을까도 생각했어요. 솔직히 요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에요.
뭐라고 싸워봤자 화살만 돌아올 거고.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을 거고. 시즌 중에 옷 벗을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팬들 볼 때 도리는 아닌 것 같고. 야구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요. 어쨌든 잔여경기가 30경기 정도 남았으니까 끝내기는 끝내야 할지 싶어요.
(한숨을 내쉬며) 아…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내가 말해봤자 이제 메아리가 없어. 메아리가 돼 오지않아. 늙어 죽을 때까지 “김성근이 미친놈이다”하는 소리나 듣다 가는 거야. 어느 면에서 지친 것 같아.
-그래도 감독님 같은 야구계 어른이 계셔야 후배 야구인들이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눈물이 가득한 눈을 창문으로 돌리며) 쉽지가 않아. 살기가….
스포츠Q 김성근 SK 감독 대담 동영상
출처 : http://blog.naver.com/dhp1225?Redirect=Log&logNo=120088248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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