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22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일본. 1998년 7월 18일 한 야구경기에서 ‘0-122’라는 믿기지 않는 점수가 나왔다. 언뜻 농구 점수로 보이지만 실은 고시엔 고교야구대회 아오모리현 예선전에서 나온 스코어였다. 일본야구 사상 최고 점수 차를 기록한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후카우라 고교와 히가시오쿠키주쿠 고교였다.

당시 히가시오쿠키주쿠고는 고시엔대회 4회 출전 경력의 지역 내 강팀이었다. 이에 반해 후카우라고는 팀원이 불과 10명밖에 되지 않는 미니팀이었다. 게다가 10명 가운데 6명은 처음 야구를 접하는 초보선수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4명이 야구에 능숙했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캐치볼을 할 줄 아는 정도였다.

이날 생중계를 담당한 아오모리현 지역방송국의 한 해설가가 후카우라고 내야수들의 펑고를 지켜보고 “오늘 경기는 무조건 50, 60점 차 이상”이라고 공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히가시오쿠키주쿠고의 감독도 상대팀의 펑고를 보고 고민에 잠겼다. 마음만 먹으면 100점도 낼 것 같았다. 그러다 ‘최약체 후카우라고와의 경기에 힘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란 의문이 들었다. 사실 후보 선수만으로도 충분히 콜드게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히가시오쿠키주쿠고는 결국 최정예 멤버를 투입하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히가시오쿠키주쿠고는 1회부터 후카우라고를 밀어붙였다. 1회에만 39점을 올린 데 이어 2회부터 7회까지 꾸준히 두 자리 수 득점에 성공했다. 7회 콜드 게임이 선언될 때까지 히가시오쿠키주쿠고가 올린 점수는 무려 122점. 

이날 히가시오쿠키주쿠고 타자들은 149번이나 타석에 등장해 86안타(이 가운데 2루타 31, 3루타 21, 홈런 7개), 사사구 36개, 도루 78개를 기록하는 만화 같은 공격력을 선보였다. 특히나 이 팀의 4번 타자는 사이클링 히트를 2번이나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반면 후카우라고 타자들은 25번 타석에 들어서 1개의 안타도 때리지 못한 채 삼진 16개를 당하며 노히트의 희생양이 됐다. 7회 콜드게임이 선언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3시간 47분이었다. 122점이라는 스코어를 고려할 때 예상외로 일찍 경기가 끝난 셈이었다.

다음날 일본 언론에서 앞다퉈 '0-122' 경기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한낱 지방 고시엔 고교대회 예선전이 일본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경기는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맞물려 ‘무모함과 최선’, ‘약자에 대한 예의와 강자의 횡포’라는 주제로 풍성한 담론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후카우라고에 대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싸웠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애초에 참가하지 말았어야 하는 팀”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히가시오쿠키주쿠고에 대해선 “승리에 눈이 멀었다.”, “고교생답지 않았다”는 비난과 “자만하지 않고 끝까지 전력을 기울였다”는 격려가 동시에 쏟아졌다.

이 경기가 논란만 빚은 건 아니었다. 경기 뒤 후카우라고는 학교 전체가 변했다. 교칙 위반자와 정학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학생수 격감으로 폐교 직전이었던 학교도 극적으로 회생했다.

고시엔대회 예선전 방식도 바뀌었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지방대회마다 제각각이던 콜드게임 기준을 2000년부터 5회 이후 10점 차 이상, 7회 이후 7점 차 이상으로 통일했다. 

아오모리현 지역예선에선 그간 5회 콜드 게임이 없어 후카우라고는 122점을 내주고도 7회까지 경기를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 경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가와현 도덕 교과서에 실리며 아이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는 교훈을 선사했다.

훗날 밝혀진 이야기지만 당시 후카우라고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가 원하면 언제든 몰수게임이 선언될 수 있다”며 포기의사를 물었단다. 선수들도 몇 번이고 기권하고 싶던 차였다. 그러나 경기는 계속됐다. 경기 진행을 재촉하는 심판과 관중의 열띤 성원으로 도저히 포기할 엄두를 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히가시오쿠키주쿠고도 마찬가지였다. 점수 차가 너무 큰 바람에 자칫 상대에게 ‘잔인하다’는 인상을 줄까 고민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큰 점수 차가 난다고 경기를 흐지부지 마무리하면 그것이야말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감독의 뜻에 따라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 했다.

후카우라고는 다음 해 고시엔 고교대회 아오모리현 예선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참가했다. 결과는 이번에도 ‘0-54’ 대패였다. 다음 해도 참가했지만 역시 승부는 ‘4-19’로 콜드게임 패였다. 

그러던 것이 2001년에는 1점 차 박빙의 대결을 벌이다 ‘11-12’ 로 아쉽게 패했다. 결국, 후카우라고는 2004년 아오모리현 예선전에서 만난 마쓰카제고를 ‘13-6’ 7회 콜드게임으로 이기며 창단 19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해 후카우라고는 교육청으로부터 ‘2007년부터 기주쿠리고의 분교로 개편될 예정’임을 통고받는다. 결국, 지난해부터 ‘기주쿠리고 후카우라 분교’로 교명이 변경됐다. 신입 야구선수도 2005년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그러나 후카우라고가 일본인들에게 던진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메시지는 1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수많은 일본의 야구소년들이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0-122’ 경기가 열렸던 아오모리현 구장에 찾아가 ‘최선’과 ‘근성’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때론 정정당당한 패배가 얄팍한 수로 이끈 승리보다 팬에게 더 큰 감동을 선사한다. 같은 의미로 적당히 이기고 적당히 점수를 내는 건 야구에선 미덕이 아니라 무례일 수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야구에 대한 무례'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까지고 길을 헤맬지 모른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야구에서 가장 재미난 경기는 마지막 이닝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뛰는 경기가 아니겠느냐고. 따지고 보면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멋진 삶은 생의 마지막까지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야구와 삶을 보고 싶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부평역에서 동막 방향으로 7정거장만 가면 된다. 

P.S 저는 야구를 통해 나와 상대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으면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것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겠지요. 독자님들께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꼭 해주셨으면 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dhp1225?Redirect=Log&logNo=120111655605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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