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03
1999년 시즌 중반 김성근은 쌍방울에서 해고됐다. 숱하게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도해임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1년 간 삼성 2군 감독을 지낸 뒤 2001년 LG 2군 감독을 맡았다.
2001시즌 초반 LG호가 삐걱거리면서 이광은 감독이 5월에 해임됐다. 김성근은 난파선이 된 LG 사령탑을 맡게 된다. 2001년 98경기를 지휘하며 승률 0.538(49승42패7무)의 호성적을 올렸지만 시즌 초반 밑바닥까지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2년. 정규시즌 4위(66승61패6무)로 가을잔치에 참가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와 KIA를 연파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김응룡이 이끈 삼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6차전에서 9-6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말 이승엽(3점홈런)과 마해영(끝내기 1점홈런)에게 통한의 홈런을 맞고 주저앉았지만 한국시리즈 사상 손꼽힐 만한 명승부를 펼쳤다. 김성근은 기업은행 감독 시절 한일은행 감독을 맡은 김응룡에게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숱하게 패했고, 프로에서도 결과적으로 가을잔치에서 김응룡을 3번 만나 한번도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시리즈 종료 후 오랫동안 승부의 정글에서 맞부딪쳐온 김응룡은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며 김성근을 치켜세웠다. 김성근의 신출귀몰한 용병술과 전략에 김응룡도 혀를 내둘렀다. 김성근은 "내가 야구의 신이면, 야구의 신을 이긴 응룡이는 뭐야? 승자의 여유로 한 말이지"라며 웃었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곧바로 목을 내놓아야했다. 당시 LG 어윤태 사장은 "김성근 야구는 LG 야구가 아니다"며 해고의 칼날을 들이댄 것이었다. 김성근은 2005년부터 2년간 지바 롯데에서 보비 밸런타인 감독 밑에서 코치생활을 했다. 이전까지 수많은 감독들을 지켜보면서 '승부'를 읽어냈지만 밸런타인에게서는 또다른 면을 관찰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승부세계에서 즐기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2007년 SK 감독을 맡았다. 프로에서 1군만 6개팀, 해태 2군까지 포함하면 7개팀 감독에 올랐다. 이것 역시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아마추어까지 포함하면 11차례 감독 자리에서 잘리고 12번째로 만나 팀이 SK다. 올시즌 김성근의 야구는 과거의 '김성근 야구'가 아니었다. '기다림과 절제, 승부를 즐기는 야구'로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동시에 제패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처럼 사상 최초로 2연패 후 뒤집기 우승까지 엮어냈다. 프로 1군 감독 16년 만에 정상에서 포효했다. 그에게 따라붙던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 줄은 알아도 우승을 만들지는 못하는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비로소 떨어졌고, 잡초 같은 야구인생에 마침내 꽃을 피웠다.
"잡초? 그래. 난 잡초야. 잘려도 잘려도 살아나고, 밟혀도 밟혀도 뿌리가 뽑히지 않았으니까. 우승을 했지만 잡초가 어디 가겠어? 그러나 난 야구병신이야. 야구라는 병에 걸린 사람 말이야.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까. 세상에 야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난 뭘하며 살아갔을까? 야구는 평생 공부해도 몰라. 야구에 정답은 없고 끝도 없어. 야구공부 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을 뿐이지."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94146.htm?ArticleV=old
'긁어오기 > 잡초승부사 김성근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9. 쌍방울 돌풍, 엇갈린 평가 (0) | 2011.05.23 |
---|---|
28.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0) | 2011.05.23 |
27. 태평양에서 하차하다 (0) | 2011.05.23 |
26. 태평양 기적과 김성근 매직 (0) | 2011.05.23 |
25. 오대산으로 들어간 까닭은 (0) | 2011.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