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8

89년 태평양의 돌풍은 시즌 내내 화제였다. 빙그레에서 이적해 온 이광길이 0.270으로 팀내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타격 20위권 타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팀타율 0.249에 그쳤다. 그러나 사상 처음 도입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인천연고팀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김성근은 선수층이 얇은 팀 특성을 파악해 특정팀에 강한 투수 로테이션을 계획하는가 하면 상대에 따라 선발타순을 다르게 짜는 데이터 야구를 들고 나와 이길 경기와 버릴 경기를 구분하는 독특한 경기운영을 선보였다. 결국 그의 치밀한 전략과 계산에 의해 태평양의 돌풍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특히 무명투수였던 2년생 박정현을 19승 투수로 키워내고. 최창호(10승) 정명원(11승) 등 새얼굴의 트로이카를 발굴해 급상승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선수 자원이 풍부한 OB가 아닌 허허벌판의 태평양에서 이룬 업적이기에 김성근의 지도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투수 3인방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훈련량과 맞춤형 지도가 덧붙여진 결과였다. 우완 정명원과 좌완 최창호는 구위는 좋았지만 컨트롤 부족이 문제였다. 포수의 미트가 고정된 상태에서 공을 던지게 했다. 공이 미트를 벗어나면 벌칙이 주어졌다. 잠수함 박정현은 스트라이드를 하는 앞다리. 즉 왼발의 스텝에 포인트를 뒀다. 여기에다 박상열 2군 투수코치가 붙어 매일 목욕탕에서 물밑으로 팔을 2000번씩 휘두르는 훈련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완 정통파. 좌완. 잠수함의 완벽한 삼각편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태평양은 시즌 62승54패4무(승률 0.533)를 기록하며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에 익숙했던 인천팬들도 신이 났다. 88년 16만8000명에서 무려 250%가 증가한 41만9000명이 인천 도원구장을 찾았을 정도였다. 김성근이 새로 SK 감독으로 부임한 올해 경기당 1만명이 넘는 65만6426명이 인천 문학구장에 들어차 전년도(33만1143명)에 비해 98.2%나 관중수가 증가했다. 어쨌든 김성근은 89년과 2007년 인천연고팀과 인천팬들에게 성적과 흥행을 책임진 절대적 지도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89년 태평양의 돌풍은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하지 않았다. 삼성과의 인천 1차전에서 연장 14회 김동기의 끝내기 홈런과 박정현의 초인적인 14이닝 완봉승에 힘입어 3-0 승리를 거머쥐며 기선을 제압했다. 대구 2차전에서 최창호가 김용국에게 4회 역전 만루홈런을 허용해 3-4 역전패를 당했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펼쳐진 3차전에서 연장 10회말 곽권희의 끝내기 중전 적시타로 2-1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플레이오프까지 올랐다.

김성근 개인으로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이끄는 김응룡에게 3연패로 물러난 것이 아쉬웠겠지만 누구도 그 패배로 인해 김성근과 태평양이 이룬 89년의 기적을 평가절하할 수 없었다. ‘공포의 외인구단’ 태평양의 기적이 ‘김성근 매직’ 앞에 찬란한 빛을 발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92233.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