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7

88년 9월 태평양 감독을 맡은 김성근은 코칭스태프 개편은 물론 선수단을 대폭적으로 정비했다. 신용균 수석코치. 최주억 배터리 코치를 비롯해 88년을 끝으로 은퇴한 박상열과 현역에서 물러나 있던 이종도 김대진 이근식 등 OB 멤버들을 코칭스태프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김성근 사단’이 탄생했고. 김성근이 가는 팀은 항상 ‘김성근 사단’의 집단이동이 발생했다.

속칭 ‘사단’이라고 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이에 대한 시각도 엇갈린다. 구단에서는 프랜차이즈 스타 등 공들여 키워온 코치를 내쳐야하기 때문에 구단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어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감독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고. 감독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코치가 옆에서 보좌하는 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성적을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장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태평양에부터 시작된 ‘김성근 사단’은 계보에 의한 지도부 구성의 효시가 됐다는 점에서 한국프로야구사에 하나의 사건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 이충우 정영기. 빙그레의 천창호 김한근 이광길을 새롭게 영입했다.

고교 감독 시절에도 강훈련으로 유명했던 김성근은 꼴찌팀 태평양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패배의식부터 떨치게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마무리훈련부터 입에 단 내가 나는 훈련이 이어졌다

89년 1월 오대산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극기훈련을 위해서다. 선수들은 마치 특수부대원처럼 눈밭에서 포복자세로 기어가기도 하고. 웃통을 벗고 기수련을 하기도 했다. 알몸으로 얼음물에 들어가고. 맨발 구보도 이어졌다. 야구선수가 아니라 차라리 수도승에 가까웠다. 구단의 금전지원은 없었다. 그래서 버너를 가지고 직접 밥을 해먹었다. 행군도 이어졌다. 새벽 6시에 출발해 그 다음날 새벽까지 걸었다.

김성근은 “행군 때 사과가 얼어서 못 먹고 땅콩만 먹으면서 걸었지. 김동기가 아파서 차를 타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안타겠다고 했어. 나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모두 한마음이 됐던 것 같아”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그 훈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사실 야구선수에게는 말이 안되는 훈련이었지. 자칫 행군 때 눈밭에서 발이라도 헛디뎠다면 어떻게 됐겠어.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하지 못할 훈련이야”라며 웃는다.

그는 왜 야구사에 길이 남을 그런 훈련을 시도했을까. “당시 선수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너무 뿌리깊었어. 또한 트레이드도 많고 팀도 어수선했지. 그 이전부터 인천팀에는 여기저기서 온 선수들로 구성되다보니 파벌이 심했어. 그래서 극한상황으로 내몰아 하나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야. 말 그대로 팀이라는 개념이지”라고 설명했다.

극기훈련의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태평양은 ‘돌고래 심줄’처럼 끈질긴 팀으로 거듭나면서 인천팀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킨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91787.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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