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9

김성근은 89년 태평양의 돌풍을 “엄청난 훈련을 한 결과”라면서 “지금 생각해도 선수들이 훈련을 너무 잘 소화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SK에서 시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무리훈련부터 상대주자를 한 베이스 더 주지않기 위한 수비훈련에 치중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여태구. 외야수로서 어깨가 약했다. 팬들은 그의 독특한 이름을 놓고 관중석에서 “여태 그러구 있냐”. 혹은 이름을 거꾸로 부르며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장난섞인 농담을 던지지도 했던 선수. 그러나 피나는 송구훈련을 하다보니 2루까지 몇 번씩 바운드된 뒤에나 도착하던 송구가 나중에는 원바운드로 정확히 들어갔다. 선수 1명당 매일 1000개씩의 펑고를 받았다. 내야수 유동효는 매일 3~4 박스의 펑고를 받은 끝에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당시 태평양 유격수였던 정진호 현 LG 수석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성근은 “태평양을 보고 수비는 훈련을 하면 할수록 는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훈련만 해놓으면 팀이 이렇게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90년 더욱 강한 팀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됐던 태평양은 그러나 58승59패3무로 5위로 내려앉으며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호사다마였다. 89년 돌풍의 후유증으로 최창호 정명원 김동기 등은 전지훈련에도 합류하지 못할 정도로 지리한 연봉싸움을 벌였고. 설상가상으로 에이스로 떠오른 박정현마저 허리부상으로 전지훈련에서 중도하차해 ‘마운드의 트로이카’가 고스란히 붕괴됐다. 또한 약했던 공격력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김성근은 플래툰시스템으로 힘을 짜내며 팀을 끌고나갔다. 시즌 중반까지 4강진출을 사정권에 두고 있었지만 7월 중순 4위자리를 뺏고 뺏기던 해태와의 광주 4연전(7월 27~30일)에서 1무3패를 당하면서 해태와 3.5게임차로 벌어져 사실상 가을잔치 가능성이 희미해졌다. 태평양은 5위가 확정된 뒤에도 끈질긴 승부를 벌이며 상위팀 순위를 좌우하는 강력한 고춧가루 부대의 역할을 해냈다. 무참히 무너지던 과거와는 달리 ‘돌고래 심줄’처럼 끈끈한 팀으로 거듭난 데 만족해야했다.

김성근은 ‘임호균 각서파동’을 겪으며 결국 시즌 종료 후 2년간 맡았던 태평양에서 재계약에 실패하며 지휘봉을 놓아야만 했다. 90년에 앞서 임효균을 방출하려는 구단에 맞서 ‘임효균이 5승을 거두지 못하면 옷을 벗겠다’고 각서를 썼는데 구단에서는 임호균이 시즌 1승도 거두지 못하자 이를 구실로 그를 잘랐다. 그는 프로에서 2번째 해고의 아픔을 맛봤다.

그러자 삼성에서 러브콜이 왔다. 앞서 소개했듯이 84년에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감독 데뷔를 삼성에서 할 뻔한 상황도 있었는데 7년 후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이었다. 삼성이라면 한번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 것만 빼면 선수구성이나 구단지원에서 최고의 구단. 누구나 한번쯤 감독을 맡아보고 싶은 팀이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92664.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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