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30

정동진 감독이 이끈 삼성은 90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그해 MBC를 인수해 처음 프로야구에 뛰어든 LG에 4연패로 물났다. 김성근을 영입한 것은 당연히 우승팀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김성근은 9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4차전 혈투 끝에 롯데에 2승1무1패로 이겼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에 1승3패로 무너졌다. 92년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2연패를 당했다. 오로지 우승만 필요했던 삼성에서 해고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삼성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92년 구단이 허규옥을 자르려고 할 때 “팀에 자극을 주는 것은 좋은데 팀 창단멤버를 이런 식으로 내모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맞선 적은 있었다. 삼성은 김성근을 2년 만에 경질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지도력을 인정해 99년말 2군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다시 인연을 맺기도 했다.

김성근은 삼성 유니폼을 벗은 뒤 처음 야인의 길을 걸었다. 스포츠서울 객원기자로 현장을 돌고 있을 때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해태 이상국 단장이 “우리팀 인스트럭터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김성근은 “응룡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잖아. 응룡이만 OK하면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감독급이 등 뒤에 있는데 달가울 감독은 없다. 김응룡 역시 이 부분에서는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둘 사이는 선수시절부터 썩 좋지는 않았다. 국가대표팀을 빼면 한솥밥을 먹은 적도 없었다.

김응룡은 호적상으로 41년생이지만 실제로는 39년생. 김성근은 42년생이다. 그런데 김성근은 여전히 “응룡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김응룡도 받아들이지만 젊었을 때만 해도 김성근이 맞먹는 데 대해 심사가 틀어지기도 했다. 둘 사이가 친구처럼 된 것은 고교졸업 연도가 같아 동기로 보기 때문이다. 김성근이 가쓰라 고교 3학년 때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왔는데 당시 김응룡은 부산상고 3학년이었다.


아무튼 김응룡의 허락으로 김성근은 4개월 가량 해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다 95년까지 2군 감독까지 맡았다. 그러나 해태에서 단 둘이 밥을 먹은 것은 단 한번밖에 없었을 정도로 관계는 여전히 냉랭했다. 그렇다면 김성근은 김응룡이 있는 해태에는 왜 들어갔을까.

“해태가 왜 강한지 보고 싶었지. 좋은 경험이었고 좋은 공부를 했어. 해태에 얼마나 스타가 많아. 이순철 한마디에 선수들이 알아서 움직이더라고. 그렇게 팀을 만든 건 역시 김응룡이야. 멤버가 좋아도 단결이 안되면 안되거든. ‘이래서 해태가 세구나’ 느꼈어. 나중에 내가 다시 감독할 때 큰 도움이 됐어.”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93133.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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