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30

스포츠서울  이재국 기자  keystone@

SK 김성근 감독(65)이 마침내 우승의 한을 풀었다. 1984년 OB 사령탑에 오르면서 프로야구 감독생활을 시작한 뒤 23년 만에 정상에 섰다. 야인생활을 제외하고 올해로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16시즌째. 이전까지 8차례 포스트시즌에 나가 모두 실패한 뒤 9번째 포스트시즌에서 우승고지에 올랐다. 여덟번 쓰러지고 아홉번째 일어나는 '8전9기(八顚九起)' 신화를 썼다. 이제는 한국을 넘어 11월 코나미컵에서 아시아 정상을 위한 '김성근 매직'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서울은 잡초처럼 살아온 인간 김성근의 삶을 소개하고 명장 김성근의 야구철학을 조명하기 위해 '잡초 승부사 김성근을 말한다'를 연재한다.<편집자주>


9회초 두산의 마지막 공격. SK는 8회말 2점을 보태 5-1로 앞서 6차전 승리와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8회 1사후부터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투수 정대현이 연속안타를 맞으며 1점을 내줘 5-2로 쫓겼고, 2사 2, 3루의 위기에 몰렸다.

'7차전으로 가면 승부를 알 수 없다. 여기서 끝내야한다.’

OB 감독 시절 제자였던 두산 김경문 감독은 맞은편 덕아웃에서 연이어 대타 작전을 구사하며 승부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관속에 들어가던 죽은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벌떡 일어나듯 두산은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SK 김성근 감독은 붉은색 점퍼를 입은 채 덕아웃 의자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홈경기 때는 흰색 유니폼을 입지만 유난히 징크스를 많이 따지는 그는 잠실 3차전을 이기면서 입었던 붉은색 원정 유니폼 상의를 이날 홈경기까지 계속 입어 점퍼를 벗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머리 속에는 오만 가지의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장수는 병사들 앞에서 언제나 흔들림이 없어야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그렇게 태연해야만 했다.

마침내 정대현이 마지막 타자 이종욱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한국시리즈 전적 4승2패. 우승이다. 84년 처음 OB 감독을 맡은 뒤 지난 22년간 항상 따라다니던 '만년 2인자'의 꼬리표가 마침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수하의 코치들과 차례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누구나 이 순간만큼은 그가 닭똥같이 굵은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땅을 치며 울어도 좋고,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쳐도 누구 하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잡초처럼 살아온 그는 이미 오래 전에 눈물샘이 말라버렸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그를 대신해 울부짖는 코치들을 다독거렸다. 덕아웃을 나서는데 조웅천이 달려오더니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뺨에다 뽀뽀를 했다. 제자에게 자신의 볼을 맡긴 장수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조웅천의 손에 이끌려 마운드로 나가자 우승전사들이 헹가래를 쳐줬다. 얼마나 받고 싶었던 헹가래였던가. 항상 "우리집에는 내가 헹가래 받는 사진이 없어"라며 쓸쓸한 미소를 짓던 그였으니 말이다.

관중석에서는 다시 한번 '붉은 함성'이 메아리쳤다. 우승에 관한 것이라면 그만큼이나 한이 맺힌 인천팬들이었다.

그는 질펀한 샴페인 세례를 받은 뒤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덕아웃에 들어왔다. 공식 인터뷰 장소에 가야했다. 그동안 너무나도 익숙했던 패장 인터뷰가 아니라 승장으로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런데 가족 얘기가 나오자 그는 부인 얘기를 하다가 그제서야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한많은 그의 가족사를 모르고서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이다.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1699.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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