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16
잘 쓰면 명약, 잘못 쓰면 독. 포크볼은 정말 묘한 구종이다. 물론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포크볼처럼 까다롭게 다뤄야 하는 것도 없지 않을까.
투수들이 유리한 볼카운트서 포크볼만큼 좋은 것도 없다. 승부 효과는 만점. 쫓기는 타자들이 본능적으로 떨어지는 공이 들어올 것을 머릿속에 넣어놓고도 여지없이 헛스윙으로 연결되는 장면을 많이 본다. 반면 불리한 볼카운트서 조금이라도 높게 들어간다면 적당한 스피드에 장타 한 방으로 연결된다. 또 주자가 누에 있을 때는 배터리가 ‘아 이 타자는 포크볼에 반드시 배트가 나간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던지기 힘든 공이다. 이날 현대 배터리의 풀카운트 포크볼 선택은 결과적으로 경기 내내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1회초 한화의 공격 2사 1·3루서 이범호 타석. 현대 선발 전준호가 던진 포크볼이 스트라이크존 높게 들어왔다. 결국은 주자가 모두 들어오는 좌익선상 안타로 연결됐다. 풀카운트에 몰리기 전까지 전준호-김동수 배터리의 심리적인 상황을 읽어볼 수 있는 대목 하나를 먼저 살펴보자. 2-2에서 전준호는 승부구로 커브를 던졌으나 공이 외곽으로 하나 정도 빠지는 바람에 풀카운트까지 몰렸다.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한다. 또는 만약 낮게 포크볼을 던져서 타자의 배트가 움직이지 않아 볼넷을 내주더라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다음 타자 이도형을 상대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듯 싶다. 어쨌든 긴박할 때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드는 게 정석이니까.
그러나 낮게 던져야 한다는 전준호의 의도가 움직임을 통해 드러났다. 팔 스피드가 바로 직전과 달리 크게 느려지더니 오히려 포크볼은 높게 들어왔고 이범호의 배트에 공이 정통으로 맞았다. 초반부터 한화가 경기를 리드해갈 수 있었던 대목이다.
현대 투수들은 3차전 전체적으로 위기 때마다 변화구가 가운데로 높이 몰렸다. 이는 포수 김동수의 리드와도 관련 있는 듯하다. 펜스 거리 짧은 대전구장에 한화 타자들의 장타를 의식했고 따라서 외곽승부를 너무 지나치게 시도했다. 한 곳에 치우친 스트라이크존이 만들어질 경우 투수들은 자신의 과녁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히 힘들어진다.
원래 배터리가 타자를 하나 잡아낼 때, 그리고 경기 초반에서 중반으로 갈 때 스트라이크존을 잡아가는 과정은 가운데로 볼카운트를 잡아내고 바깥쪽으로 승부구를 가져가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오늘은 거꾸로 돼 있었다. 바깥쪽에서 시작한 뒤 가운데로 들어온 것이다. 단기전에서는 분명히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승부의 기본을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날 승부는 어쩌면 1회 선발 투수의 ‘무대 세팅’에서 크게 엇갈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출처 :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477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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