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김성근입니다.

나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11번째 잘렸다고 그러더라구요. 본인은 잘린 느낌은 없는데, 고맙게도 다른 사람들이 숫자를 세어줬어요. 요번에 일이 있어가지고, 항상 그만 둘 때는 아무 미련도 없이 후회도 없이 여태까지 걸어왔어요. 그것은 있는 동안에 자기가 하고 왔던 일에 모든 걸 전력투구 하고 와서 후회 없이 끝내고 왔지 않나 싶어요. 구단이라 던지 또는 다른 무엇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까 그런 마음은 하나도 없어요. 대신 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그것은 팀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 리더로서 어쩔 수 없이 선수를 보호하고 또 우리가 이겨야 된다는 팀으로서 사명감이 있었기에 그런 길을 택했다고 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세상살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서 살아남는 건지, 이 두 가지 아닌가 싶어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일하지 않냐 싶어요. 나는 그런 사람 보면 굉장히, 나 혼자 생각으로서는 굉장히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뜻대로 소위 말해서 신념을 가지고 자기 강한 의지대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뒀을 때 변명과 남한테 책임 전가를 시키던지 그런 후회 막심한 그런 생활을 보냈지 않냐 싶어요. 그러니까 난,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살았고, 일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소위 말해서 진실하고, 전력투구 하고,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 않냐 싶어요, 그런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그만 뒀더라도 별로 SK라고 하는 팀에 미련이 없다 하면 결례가 되는지 몰라도, 담담하게 있습니다. 단 하나, 그만 둬서 하나 문제는 목적의식이 없어졌어요. 매일 하루하루 보내는데, 아 오늘도 하루 갔구나, 오늘도 하루 갔구나 싶어요. 조금 그게 서글퍼요. 여태까지 앞에서 싸우다가 휴전선 넘어가버리니까 할 일이 없어가지고 오로지 성대에 와서 성대 야구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 이거 밖에 없어요.

내가 28살부터 40년 가까이 감독 생활 하고 왔는데, 뒤돌아보면 좋은 일했다, 할 때는 역시 어려울 때, 역경에 처했을 때 좋은 일 했지 않나 싶어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불완전할 때 또는 사람이 몰렸을 때,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반드시 자기 잠재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발휘할 수 있는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냐 싶어요. 그래서 좋은 일 해왔지 않냐 싶어요. 내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 일하는 동안에 옆에다가 신경 안 씁니다. 내 할 일, 내가 나가야 할 일, 이것을 제일 중요시해요. 그러니까, 나에 대해 아시는 분이 많지 않나 싶은데, 여론이라던지, 언론이라던지, 또는 구단이라던지 이런 데 신경 써본 적이 없어요. 떠들면 떠들어라 싶어요. 그게 소위 말해서 휘말리면 내가 없어져 버려요.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지는 거예요. 세상에 맞춘 사람치고 약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나는 불쌍하다고 봐요.

어제 몇 년 만에 이 수원 캠퍼스 걸어봤는데 한 50분, 많이 바꼈더라구요. 나무가 많이 컸어요. 근데 그 나무속에 키는 안 크는데 옆에 가지로 퍼져있는 나무도 있었고, 이 근처 보니까 큰 나무가 있더라구요. 우리나라 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 나무 볼 때, 밑에가 없어요, 가지가. 그대로 위로 쑥 자라있어요. 이거 아마 학교에서 이 나무 두 가지 심을 때 인생을 가르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하나는 세상 맞춰서 살고, 하나는 자기 뜻대로 살아라 하는 거예요. 그게 아마 학교 당국에서 뜻이 있게 심어놨지 않냐 싶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가실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이 있으면 남한테 소위 말해서 타협하면 안 되겠고, 남한테 기대도 안 되지 않나 싶어요. 오로지 나, 내 힘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이라고 봐요.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변명 많고, 사람 탓을 해버리고, 자기라고 하는 게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런 사람이 제일 싫어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요.

우리나라 말, 아니 우리나라 말도 아니지만은 야구계에서 특히 이야기하는 건데, 핀치는 찬스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역경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키워주는 거예요. 강해지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역경 속에서 살아가려고 할 때 뭐를 해서 살아가냐 하는 거예요. 뭐를 해서. 이것이 제일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5년 동안에, 5년 안됐지만, 4년 몇 개월 동안 SK에서 있으면서 SK 문학구장에서 인천 신도시까지 어려울 때는 반드시 걸었어요. 걸어갈 때 두 시간 걸어가야 하는데 그게 제일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소위 말해서 몰리고 있을 때였어요. 해결책을 못 찾아 가지고 어떡하나 할 때였어요. 거기 걸어가면서 결국 나오는 답이 김성근이 니가 제일 문제다, 너만 정신 차리면 된다. 이게 답이었어요.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는 이호준이 그 시키 왜 못 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아 어떡하지, 박정권이 이 시키 뭐하지 싶어요. 근데 가는 도중에 결국은 나밖에, 나의 답이 와요. 항상 나는 인지라고 하는 것은 남한테 향하지 말고 나한테 향하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무지 편해져요. 편해져요. 그 때 작년에도 시즌 초에 막힐 때가 있었어요. 그 때도 걸어 다니면서 사십 몇 년 동안에, 사십 몇 년 만에 머리를 빡빡 깎은 적이 있었어요. 역시 내가 해야 되겠다 싶어요. 내가 정신 차려야 되겠다 싶어서 머리를 깎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것을 계기로 해서 올라갔어요. 근데 이번에는 40게임 남아서 잘 해 보겠다 하니까 모가지가 잘렸어요. 아마 세상에서 하겠다고 머리 깎아가지고 잘린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나보고 세상에서 여러 가지 말 하는데 여러분들한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소위 말해서 물이라고 하는 것은 동그란 속에 들어가면 물이 동그랗게 돼요. 사각 속이면 사각이 돼버려요. 오각 속이면 오각이 돼요. 이것이 나의 야구입니다, 건방지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줘요. 그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해요. 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팀이에요. 동그란 팀이 있고, 사각 팀이 있고, 오각 팀이 있고, 육각 팀이 있어요. 육각 팀에 동그란 팀 만들어 놓으면 이길 수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야구 하나 밖에 못 봐요. 운영이라든지, 경영이라든지 이런 것을 못 봐요, 안 봐요.

내가 태평양 갔을 때, 오대산에 간 적이 있어요. 진짜 그것은 지금 다시 가라고 하면 내가 못 갈 거 같아요. 그건 아주 치열했어요. 그 때 왜 오대산 갔냐 하면, 다른 데서 선수들이 많이 모였어요. 자 이 팀을 어떻게 하냐 하면, 팀의 구심점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이 팀은 뭘 하느냐, 왜 있느냐를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대산 갔는데. 각자 내라고 했어요. 각자 버너라든지, 반찬이라든지, 쌀이라든지, 5인조를 만들어 가지고, 한 팀을 만들어 가지고 한 방에 몰아가지고 자기네들이 하게 했어요. 그러니까 하나 하나 팀이 되어 갔어요. 그 다음에 얼음 속에도 들어가게 하고, 눈 위에 하체만 입고 전라로 굴린 적도 있었고, 또 맨발로 걸어 다니게 하고 그랬어요. 근데 클라이막스는 밤에 여섯 시에 오대산 올라갔는데, 사과하고 땅콩하고 호두하고 몇 개 갖고 갔는데, 사과는 얼어서 못 먹었어요. 나는 안 가봤으니까 몰라요. 선수들이 그러더라구요. 그 때 제일 기억나는 선수가 김동기라고 하는 선수가 있었어요. 얘가 제일 게을러요. 게을렀는데 아침에 가보니까 무사히 살아왔어요. 그래서 걔한테 내가 올라가서 내 차 타고 숙소까지 가라 하니까 억울해서 못 걸어가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다시 한 4Km 걸었어요. 그래서 아 이 팀은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밤에 야행했을 때, 짐승 소리도 나고, 눈도 허리 높이까지 높았고, 이건 뭐, 뭐랄까 죽음의 행진이었어요. 사람이 안 죽어서 다행이에요.

그런 연습을 고등학교 감독할 때도 많이 해왔어요. 그러니까 생과 사에요. 수락산이라든지, 서울에 있어요. 충암의 감독할 때, 그런 데 올라갔어요. 그러면 암벽으로 가야해요. 요새 암벽 많이 하는데, 그 때 야구 선수가 암벽 아는 법이 없어요. 그냥 잡고, 다리 내주고, 밑에 사람한테 다리 내주고 올라가요. 나도 선수 다리 잡고 올라가야 하고, 나도 다리 내줘야 하고. 그리고 등에다가는 가마라든지, 쌀이라든지, 반찬 업고 가요. 정상에서 그 땐 밥 먹을 수가 있는 시절이었거든, 거기서 밥 먹었어요. 그러니까 충암도 그 때는 전국에서 모여든 팀이었어요. 태평양하고 비슷했어요. 결국 충암도 그 해 우승 한 번 했고, 태평양 역시 그 해 62승 해가지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갔고, 소위 말해서 돌풍을 일으켰어요.

그 때 재밌던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법으로서 그 때 해태, 삼성한테 무지 약했어요. 내가 가기 전에. 이걸 어떡하냐 싶어요. 이런 부분을 잘 풀어줘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요. 그러면 그 당시 최창호, 정명원, 그리고 박정현이라고 투수 있었어요. 세 명 다 1승도 못했어요. 근데 얘들은 못하는 대신 겁이 없어요, 겁이 없어요. 이것을 노렸어요. 그래서 그 해 약했던, 전 해에 약했던 해태, 삼성을 집중적으로 노렸어요. 그래서 그 전 해가 3승인가, 4승도 못했던 팀인데 삼성한테 10승 9패를 했어요. 그리고 플레이오프 올라가가지고 삼성한테 이겼어요.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 1패로. 그 때 세 명이, 1승도 안 했던 피쳐(투수)들이, 세 명 가지고 40승 했어요. 62승 중에 40승은 어마어마한 숫자였어요. 단 하나 얘네들을 만들기까지가 그것도 비상식적인 문제였어요. 투수가 캐쳐(포수)한테 던지는데 캐쳐가 미트 대는데 안 오면 개수를 안 셌어요. 여기가도 하나가 아니에요. 여기만 500개에요. 700개, 1000개가 쉽게 갔어요. 그것까지는 괜찮아요. 여기서 안 하면 팼어요. 그 시절에 나도 힘이 있어가지고, 내가 패도 내가 얻어맞을 것 같지 않아서 팼어요. 요새는 패면 내가 얻어 맞을까봐.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집중력이 생겼어요.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이 이리 바뀌는 구나 싶어요. 이렇게 바뀌는 구나 싶어요. 정명원이라고 하는 선수는 원광대학교 나왔는데, 원광대학교에서 패전처리도 못했어요. 선발 해본 적이 없는 투수에요. 그런데 걔가 12승 했어요. 결국 걔는 나중에 현대 올라가가지고 현대에서 코리안시리즈에서 노히트노런인가 대기록까지 세웠어요. 그 과정이 없었으면 걔는 성장하지 않았지 않나 싶어요. 사람이 뭐를 하려고 할 때 극한 상황에서 반드시 넘어가야지, 넘는다 하는 것은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거니까, 자기가 극복을 한 거니까, 거기서 새로운 자기를 발견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그게 그 다음에 자신이 생겨가지고 그게 밑바탕이 된 게 그 후의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됐지 않나 싶어요.

쌍방울 갔을 때는 선발 피쳐가 박성기라고 하는 투수가 있었는데, 그 투수가 선발에서 승률이 3할2푼 밖에 안돼요. 열 번 나가면 일곱 번 져요. 이건 투수가 아니에요. 내가 나가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 어떻게 싸워야 하냐 싶어요. 어떻게 싸워야 하냐 싶어요. 그래서 생긴 게 벌떼 작전인가 벌떼 투수? 뭐 이런 거예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건 작년에 대만 가니까 대만 사람도 알더라구요. 벌떼가 뭐냐고. 나도 모르겠다, 했어요. 그래서 그 때 중간을 5회까지는 일곱 명 넣든 여섯 명 넣든 어쨌든 5회까지는 가자 싶었어요. 그 다음에 6,7,8,9를 어떻게 승부하느냐 이쪽으로 돌렸어요. 그래서 김현욱이라고 하는 투수가 중간에서 20승 했어요. 20승 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야구하는 사람들이나 기자들이 몰라가지고 김현욱이한테 MVP를 안줬어요. 야구 되게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어마어마한 실력이었는데.

쌍방울 때는 그 때 70승 해가지고 2위까지 했어요. 그 때 제일 아쉬웠던 것은 시즌 초에 2위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사장이, 뭐 내 성격이 워낙 이래갖고 지저분한 거는 내가 못 보니까 사장한테 많이 항의한 적이 있었어요. 내가 있으면 괴로워요, 구단이. 나를 자를까 말까 했어요. 그래서 해태하고 갖은 게임 3개를 일부러 졌어요. 아주 지나간 일이에요. 아, 이거 그만둬야겠구나 싶어요. 꼴지팀이 2위 올라가서 1위하고 몇 게임 차 안 나는데, 일부러라고 하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술만 먹고 있었어요, 3일 동안. 그러니까 감독이 술만 먹고 앉아서 이길 수가 있어요? 나중에 그 3게임이 해태하고 차가 돼버렸어요. 1.5 차이로 져버렸어요. 아니면 우승했어요. 그건 아쉬움이 남는 쌍방울 시절 일인데. 단 하나, 쌍방울에서 제일 크게 성장했다고 봐요, 감독으로서. 하도 없으니까 어떻게 이어 가냐 싶어요. 그러니까 없는 살림 속에서 사람이 강해지는 거예요. 있는 살림에서 약해져요, 여유가 생겨요. 그러니까 나는 없으니까, 어떻게 이어가느냐, 이어가는 타이밍, 투수 교체 타이밍, 상대 타자가 벤치에서 볼 때 뭐를 노리고 있는 건지, 이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까지는 안 들어왔어요. 아, 이 타자가 여기서 이거 치는 구나, 역시 이렇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야구를 보는 눈이라고 할까, 많이 성장하는 그 시절이었지 않냐 싶어요. 그 때 박경완이 벤치 들어 올 때마다 나한테 무릎 까였어요. 이 시키 그렇게 하고 있어, 볼 배합 때문에 많이 야단맞았어요. 지금 하면 TV에 잡혀서 안돼요.

LG에 가서는, LG는 팀이 없었다고 봐요. 개인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하냐 싶었어요. 그 때 제일 머리 큰 아이들이, 실제 머리도 커요, 양준혁이는. 양준혁 있고, 이병규 있고, 김재현. 이걸 어떡 하냐 싶어요. 양준혁이는 내가 감독, 헤드 코치로 2군에서 1군에 올라온 그 날 밤에 미팅에서 대판 욕먹었고, 나한테. 그리고 이병규는 SK하고 시합할 때 수비 때문에 되게 욕먹었고, 김재현이 역시 그렇고. 그런데 세 명 다 진짜 착한 아이들이에요. 위에 사람들이 못 잡아줘서 그렇지. 그 세 명 그렇게 야구 좋아하는 아이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것은, 여기서 하나 흘러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람은 그 사람을 인정하면 돼요. 자기 밑에 순하게 집어넣으려고 하면 파이에요. 이것을 잘못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며칠 전에, 어젠가 TV 뉴스 보니까 이병규하고 김동주하고 싸우는 게 나오던데 ** **인가 한참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SK는 심하게 이야기하면 인사하는 법도 몰랐어요. 그래서 그것부터 가르치고 싶었고. 그 다음에 2003년에 SK가 현대한테 져서 준우승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내가 플로리다 캠프에 인스트럭터로 불려간 적이 있어요. 그 때 가가지고 나는 구단 사이드에서 야간에 이런 식으로 강의를 해달라는 자리가 있었어요. 나는 또 하라 그러면 할 말 다 해버리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 때 부장 있었고, 감독 있었어요. 두 사람이 도중에 나가버렸어요. 되게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에요. 너희들이 이 캠프 뭐 하러 왔냐고 했어요. 코리안시리즈 왜 졌냐 했어요. 번트를 못했어요. 번트 연습 뭐 하냐 싶어요. 코리안시리즈에서 진, 그것에 대한 반성이 없어요. 2위 했다 하는 속에 만족하고 있더라구요. 그 후에 SK는 떨어져나가 버렸어요. 그 때 그것을 왜 졌냐 속으로 찾아 나갔으면 SK는 계속 올라갔지 않나 싶어요. 아마 그러면 난 SK에 안 갔지 않냐 싶어요. 뭐 그런 게 SK가 문제가 있었던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SK는 베테랑하고 젊은 사람하고의 그 사이가 갭이 컸어요. 이 갭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실력 차이도 컸어요. 이것을 어떻게 줄이냐 싶어요. 젊은 아이들 무지 쳐져있었어요. 지금이야 코리안시리즈 두산하고 2008년도인가 조동화가 어마어마한 플레이를 해줬는데, 8회에. 조동화 그 때 2006년 제주 캠프 할 때는 소위 말해서 야구장에서 산보하고 다녔어요, 외야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어요. 조동화, 박재상. 매일 3.1절이에요. 만세, 만세만 하고. 김강민이 센터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어깨 좋아서 됐어요, 어깨 좋아서. 나머진 없어요. 걔도 만세. 이리 가다가 저리 가다가 헤맸어요. 그 외야 세 명이 주축이 돼버렸으니까. 그 연습이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거예요. 사람이 육성한다, 키운다 하는 것은 끝이 없다고 봐요.

정근우 키도 조그맣고, 그 애 처음 볼 때 이 넘아가 뭐가 대표 선수인가 싶었어요. 캐치볼하면, 캐치볼도 제대로 못해요. 지금도 못해요. 어디에 던질지 몰라요. 대표적인 것은 2008년도에 코리안시리즈 할 때 1사, 무사 만루인가, 해서 1사 만루 됐을 때, 세컨드 볼 잡아, 잡아가지고 퍼스트로 던졌어요. 퍼스트에 이진영이. 문제 아이가 둘이 있었어요. 그런데 원바운드로 던졌어요. 아차 싶었어요. 그런데 기적적으로 이진영이가 잡았어요. 내가 그때 아마 처음으로 벤치 뛰어나와서 웃었을 거예요. 아마 그 때는 이진영이한테 고마운 게 아니라 들어가 준 볼한테 고마웠어요. 그 시절에 이진영이 박재홍이 외야 수비로서는 약한 쪽으로 봤어요. 무슨 국민 외야수냐고 걔가. 인천 외야수도 안 되는 아이인데. 그 때는 그 세 명이 자라오는 바람에 나이 먹은 사람들이 몰렸어요. 몰리니까, 여기서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나이 먹은 사람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한계를 할 수 있어요, 언제나 클리어해요. 그런데 젊은 사람은 여기까지 라고 하는 한계선이 없어요. 갈지도 모르고, 오버할 지도 몰라요. 단 하나 흐름을 타면 어마어마한 일을 해요. 단 하나 길지는 않아요. 그게 SK의 2007년이에요. 초반에 어린 아이들이 무진 달렸어요. 박재상이라든지, 정근우라든지. 그런데 후반 지칠 때 왔을 때, 박재홍이, 김재현이, 박경완이 나왔어요. 그게 SK야구의 시작이었고, 지금까지 와있지 않냐 싶어요.

내가 여러분들한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아무리 봐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자기가 확신만 갖고 있으면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만한 뜻을 갖고 있어야 돼요. 사람이 옆이 하면 흔들릴 때가 많아요. 그러면 자기가 없어져 버려요. 그런 생활, 그런 사는 길은 젊은 사람들이 안 걸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내 야구 인생에서 감독으로서 많이 바뀐 것은 지바 롯데가 아닌가 싶어요. 나는 한국에서는 2002년까지 감독할 때는 오로지 이겨야 되겠다는 그 쪽에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기는 속에 뭐가 있냐 하는 것은 몰랐다고. 이기는 속에 인생이 있어요. 가르침이 있어요. 세상에 어필하는 것이 있어요. 이것을 느끼겠더라고. 그리고 야구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넓다고 봐요. 아시아가 아니에요. 한국이 아니에요. 일본이 아니에요. 세계가 있어요. WBC에서 1승 했다, 일본 우승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얼마 전에 자이언츠 대표가 오셔가지고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WBC에서 이겨봐야 뭐가 남았냐 했어요. 그것 갖고 일본은 세계 1위라고,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베스트 갖고 나와 봐라 세계가. 일본이 뒤떨어질 거예요. 쿠바 있고, 소위 말해서 미국, 푸에르토리코 이쪽 리그 못 이겨요, 죽을 때까지 못 이겨요. 그것을 어떻게 정복하느냐 하는 문제에요. 한국 속에서 이겨봐야 뭐하냐 싶어요. 나는 아시아 제패한다 하는 이야기가, 항상 이야기 했는데, 그것을 step으로 해갖고, 세계로 나가고 싶었어요. 그 꿈이었어요. 그걸 일본 가서 배웠어요. 느꼈어요. 우물 속의 개구리, 대한민국에서 우승해봤자 우리 속에서나 와-와- 하지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 소위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 말 잘하지만은 냄비 속에서나 떠들다가 마는 거예요. 그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뭘 해야 되나 싶었어요.

야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생하고 똑같이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길 길이 없어요. 자기가 극복함으로써 사람한테 감동도 주고 인생의 감명도 바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나는 SK야구 할 때, 절대 포기는 없었고, 하면 반드시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런 메세지를 세상에 던지고 싶었어요. 절대 어떤 역경 속에 들어가더라도 굴복하지 말라고, 사람이 하겠다, 하는 뜻만 있으면 절대 살 수 있다고.

내가 2009년 봄 캠프 갔는데,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난 원래 혼자 식사하니까. 보는데 옆 자리에 중년 부인하고 할머니 앉아 계셨다고. 그런데 중년 부인이 모자를 썼어요. 근데 둘이 아침부터 여행자 같으면 그렇지 않을 텐데 즐거운 표정이 아니에요. 왜 그런가 싶어서 보고 있었는데, 두 분 다 굉장히 뭐라고 그럴까, 굉장히 의기소침해가지고 힘이 없어요. 그런데 그 중년 부인이 나한테 말을 걸어 왔어요. SK 사람이냐고, 그렇다고. 어제 우리 아이가 SK사람한테 가서 볼 하나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그것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되서, 여기서 사는 사람이냐 하다 보니까 중년 부인이 뭐냐 하면, 그 날 방사선 치료를 하고 왔다고, 암 환자였어요. 그래서 나는 감독으로서, (내가) 감독이라 하는 것은 모르고, 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해가지고 알게 되고, 나도 그런 같은 병을 앓았다. 그리고 나는 병을 갖고 있을 때, 갖고 있지는 않지만, 떼어내 버리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야구장에 돌아가야겠다. 이 일심밖에 없었다, 했어요. 그 분이 학교 선생이었는데, 교단 돌아가겠다는 마음 가지시라고 했어요. 그래서 숙소 떠날 때, 우리 캠프지 떠날 때, 새벽에 4시인가 내가 일어났을 거예요. 그 사람한테 장문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주 내용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다고, 된다고, 그것을 적어드렸어요, 편지로 보냈어요. 근데 가을에 가니까 그 분이 교단에 섰어요. 그러니까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절실하게 되면 반드시 그런 결과가 오지 않냐 싶어요. 그 분이 교단 서가지고 나한테 다시 선물을 주셨는데, 그 때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이 없었어요. 지금도 편지도 왔다 갔다 해요.

어쨌든 간에 나는 야구 속에, 이제는 현장에 서 있지는 않지만, 야구라고 하는 그렇게 매력이 있는 깊은 스포츠라고 봐요. 단순히 이기고 지고 이런 건 아니라고 봐요. 롯데 안 갔으면, 안가고 한국만 있었으면 아마 공부도 많이 안했지 않냐 싶어요. 그런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봐요. 야구라고 하는 게 연습이. 여러분도 공부를 해야 돼요. 공부나 연습이나 다 똑같은 건데. 내가 선수한테 이야기하는 것은 연습을 일로 생각해야 돼요. 연습을 노동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목적이 있고, 결과를 얻어야 돼요.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 보내면 돼요. 시간만 챙길라고. 학교 다니는 4년 동안 그렇게 다니면 굉장히 슬픈 일이 아닌가 싶어요.

96년에 내가 쌍방울 갔을 때,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요. 지금 현직에 있어요, 이 사람이.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실패하고 있어요. 이게 지도자의 거의 대부분이에요. 내가 쌍방울에 있을 때 오키나와 캠프에 갔는데, 거기서 그 때 처음으로 오키나와 캠프에 갔는데, LG가 그 때 오키나와 캠프에 제일 먼저 들어와 있었어요. 몇 년 째 들어와 있었어요. 그래서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근데 마침 그 날이 그 다음 날이 1군이 사이판인가 어디서 넘어오는 날이에요. 2군은 오키나와에서 하고 있었어요. 그 날 야구장을 빙빙 돌더라구요, 선수들이. 근데 어느 코치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냐하면, 아 다행입니다, 감독님.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한 명도 부상자 없이 1군에 넘기게 됐습니다. 요시, LG는 잡았다 싶었어요, 잡았다 싶었어요. 그 말 하나에. 왜? 이 사람들은 연습하는 뜻이 어디 있냐 싶었어요. 안전하게 준다 하는 것은 그만큼 소위 말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는 얘기에요. 나이 먹은 사람이 안전하게 편하게 살아요. 편하게 사니까 빨리 죽어요. 나이 먹어가지고 요새 세상은 많이 운동하고 많이 try, try, try 하는 거예요. 이 팀은 뭘 원하고, 연습이나 야구를 하나 싶어요. 내가 만약에 그 팀에 그 사람 그 코치 위치였으면, 선수를 어떻게 만들어 가지고, 1군에 원하는 쪽으로 어떻게 됐을까 싶어요. 1군 감독 왔을 때 뭐라 그러지 않겠냐 이 불안감에서 아차아차 하지 않나 싶어요. 이 사람은 부상자 없이 넘겼으니까 됐다, 이것은 태만이에요. 근무 태만이에요. 그게 LG였어요. SK 2군도 그런 점이 조금 있긴 있었지만은.

95년 내가 가기 전의 LG하고 쌍방울은 LG가 4승 1무 13패(?)였어요. 96년도에 13승 5패로 쌍방울이 이겼어요. 이겼어요. 압도적이었어요. 그 때 두산한테도 95년도에 3승 2무 13패(?)였는데, 거꾸로 가버렸어요. 11승 7패로 바꿔버렸어요. 서울팀을 다 잡아버렸어요. 근데 그 해 96년 끝나니까 LG 상부 높은 사람들이 나한테 전화 와서 어떻게 연습했냐고 물어보라고 했다더라구요. 그냥 치고 박고 했어요, 하고 말아버렸는데. 그 때 96년 LG야구는 노동이었지 않냐 싶어요. 그게 팀을 볼 때 좋은 교훈(?)이 됐지 않나 싶어요. 뭐 지나갔으니까 이런 말 할 수 있는 건데, 현재였으면 하지도 못하는 말이에요.

뭐든 일이라고 하는 게 자식을 키울 때 부모 생각대로, 부모 생각 하나가 자식을 망가뜨리고 자식을 키우고 그래요. 나는 지도자로서 제일 싫어하는 게 할아버지 스타일이에요. 오냐오냐 하는 게 제일 싫어요. 그리고 선수는 그 순간에 마치고 있는 거 같지만 그 선수는 죽어가 버려요. 미래가 없어요. 그 순간은 괜찮아요. 올해 우리, 우리라고 하면 내가 우리 속에 들어가 있지도 않지만은 SK와이번스 박진만이, 게을러요. 워낙 뒤링 뒤링(?)해요. 표정 그대로에요. 아주 뭐, 편해요. 집합 시간에도 자주 늦고, 뭐 그래요. 연습하면 힘들어 해요. 본인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데, 현대 시절부터 그 몸에 붙은 게 있어요. 걔를 망가뜨린 것은 그 시절의 현대, 삼성이에요. 그 때 지도자들이 아닌가 싶어요. 그걸 편하게 했지 않나 싶어요. 걔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더 큰 선수로 만들 수 있었지 않았나 싶은데,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올 해 봄에 아마 5월 달인가 그럴 거예요, 아마. 삼성하고 할 때, 하필이면 삼성이에요. 자기 앞에 간 거 두 개 다 에러해서 시합 역전패 당했어요. 나는 지금 이렇게 하면(오른 손으로 마이크를 들면) 아파요, 아픈데, 그 땐 아픈 게 없어요, 열이 받아서. 그래서 시합 끝나고 500개 쳤어요, 박진만이한테, 500개 쳤어요. 양 사이드로, 못 잡을 코스로만 줬어요, 500개. 뭐 반 죽으려고 하더라구요. 네 발로 기어가고, 별 난리를 다하던데. 결국 그것을 계기로 해서 박진만이는 살아났어요. 그 때 보호해줬으면 지금같이 박진만이 살아있지 않지 않나 싶어요. 거기서 마음도 바뀌고 몸도 바뀌었지 않나 싶어요. 그것은 확실하게 일을 한 거예요. 결과를 얻은 거예요.

정근우가 서울에서 시합하는데 번트 미스한 적이 있어요. 그 넘아는 좀 까불어요. 그러니까 번트를 딱 해버려요, 딱 해버려요. 자기가 살라고, 모양낼라고. 실패했어요. 그 날 인천까지 보내버렸어요, 그 날 밤에 바로. 코치 한 명 붙여가지고 문학구장에서 1000개를 시켰어요. 1000개를. 1000개를 하고 문학구장에서 다시 리베라호텔로 돌아온 게 두 시 반쯤에 돌아왔어요.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라구. 그래, 자라, 했어요. 그걸로 끝났어요. 그 다음 날 번트를 하는데, 무지하게 신중하게 하더라구요.

일이라고 하는 게, 일하고 노동이라 하는 차이는 어마어마한 결과가 오지 않나 싶어요. 나는 항상 일했지, 노동은 하지 않아요. 노동은 제일 싫어해요. 단 하나 노동이라고 생각할 때는 뭐냐 하면 그 일에 만족하고 있을 때, 만족이라고 하는 건 그 일에 뭐라고 할까, 자기 자신의 불안감이라든지, 부족함을 못 느끼고 있지 않냐 싶어요. 나는 인생에서 제일 싫어하는 소리, 만족하는 거. 나는 만족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내 표정을 보면 이겨도 무표정이에요. 그리 즐거운데 나는 표정이 안돼요. 불만투성이에요. 아, 더 할 수 있었는데 싶어, 더 완전하게, 완전하게 이길 수 있었는데 싶어요. 그런 토막이 무지 많아요. 대신 선수들이 mistake할 때는 표정도 안 내요. 그것 했다 표정 안 내요. 근데 야 이 시키야, 하는 것은 여기까지(목까지) 와 있어요. 말은 안 해요. 하면 팀은 개판이 되어버리니까.

선수로 하여금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게, 나는 모든 비난이라고 하는 건 내 가슴으로 받았고, 내 뒤에 선수를 숨길려고 했어요. 코치도. 그러니까 구단하고 마찰이 많았어요. 내가 살려고 그랬으면, 구단하고 손잡으면 쉬웠어요. 쉬웠어요. 대신 선수하고 코치가 죽어버려요. 내 뒤에 있던 아이들은 무지 편했지 않나 싶어요. 뒤에 있던 아이들은. 요새는 어떻게 야구하는지 나는 모르겠지만은, 그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내가 하는 야구라고 하는 것은 항상 벼랑 끝에 서고, 순간에 전력투구를 하고, 살 길을 찾는 그런 야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의 잠재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자기가 찾아내고, 또 그것을 성장시키고, 앞에 가야돼요. 그런 야구를 해요. 그러니까 자연히 연습량이 많아져요. 그리고 됐다 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시간 많으면 밤새하고 싶고, 24시간 하고 싶어요. 내가 하는 것보다 선수가 지쳐버려요. 야구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보다는 몸으로 알아야 해요. 알겠다, 하는 것보다 할 때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해야 해요. 그리고 이길 때까지 해야 되는 게 승부에요. 이길 때까지.

작심삼일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작심삼일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그 말을 자주 인용할 때 있는데, 삼일 하면, 삼일을 아깝게 생각하라, 또 가보라고, 또 가면 또 아깝게 생각하라, 끝끝내 쫓아가라고. 삼일 하고 바꾸고, 삼일 하고 바꾸고, 결국 너한테 뭐가 남냐 하는 거예요. 선수한테 이런 미팅할 때가 많아요. 결국 너한테 뭐가 남냐 싶어요. 그 과정 속에, 그 프로세스 속에 자기가 얻어올 게 있는데 프로세스 없으면 자기 꺼 하나도 없는 거 아니에요. 이 말은 옛날에 이승엽이한테 일본에서 되게 야단친 적이 있어요. 요번에 1월 3일날 내가 삼성병원에 허리 수술해서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 왔을 때, 한 시간 반 설교 받았을 때도 이 얘기했어요. 너는 아직까지 해명하냐, 했어요. 야단친 적이 있어요. 올해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했는데. 어쨌든 간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일을 할 때 해명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 안돼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부딪혀 봐야 해요. 부딪혀보고, 벽이 생기면 거기서 try해야 해요, 도전, 해결해야 해요. 또 하면 해결해야 해요. 그게 소위 말해서 프로세스에요. 강해지는 거예요. 인생에서 성공자는 시행착오가 많은 사람이에요.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시행착오는 붙어 다녀요. 두려움이 있어 가지고 시작을 안 한다, 그 바람에 이런 해명을 한다, 하면 되지는 않아요. 그건 일도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많아요. 이래서 그랬다, 저래서 그랬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그런 사람은 집에 가서 자라고 그러고 싶어요.

***를 볼 때, 스포츠 신문을 여러분들 보면, 감독 담화를 보면, 아, 이 감독이 파이구나, 이 팀이 망하구나 싶어요. 시즌 전에 하는 담화하고, 시즌 들어가고 중반, 후반쯤 가면 담화가 바뀌어요, 코멘트가. 아, 이 팀은 가기 시작했구나, 싶어요. 바꿔요. 처음에는 막 안고 있다가, 점점 더 선수 쪽에 돌리는, 책임 전가시키는 게 많아요. 그런 대화가 빵빵 나올 때가 있어요. 아, 이 팀은 갔구나 싶어요. 그리 생각할 때가 많아요.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래요. 미국은 내가 영어를 못 보니까, 모르니까 모르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SK야구 보고 내가 있을 때, 소위 말해서 공공의 적이었어요. 내가 공산당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그랬어요. 나는 처음에 공공의 적이 뭔가 싶었어요. 왜 공공의 적인가. 공공이 뭐지 싶어요. 나중에 보니까 아, 이 공자구나 싶어요. 여기서 여러분한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강하니까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길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까 강한 거예요. 이 진리를 몰라요, 사람들이. 이게 진리에요. 강자의 진리에요. 시합 지더라도, 지고 있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승부를 하고 있으면 상대가 give-up할 때가 와요. 절대 와요. 그 때 이쪽에서 힘을 쏟아 부으면 승기를 잡을 수 있어요.

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LG에 있는 조인성이에요. 내가 LG 감독할 때 조인성이가 포수에요. KIA한테 3점 지고 있었어요, 6회 초. 근데 나는 이길 계산을 하고 있었다고, 3점 지고 있었는데. 근데 마지막에 4점째가 문제였어요, 이 점수가. 2사 2루에, 승부하지 말라 했는데 승부해가지고 센터 앞에 HIT(안타) 맞아가지고, 4점째가 들어왔어요. 들어오자마자 조인성이를 벤치로 불렀어요. 뒤에 가가지고 복싱 좀 했어요. 조인성이는 야구를 가르치려고, 걔는 조금 남의 탓을 하는 성격이 있어요. 그래서 이유가 많아요. 그래서 2군을 한 세 번 보냈어요. 2군 세 번 보내니까 다음에 보낼 데가 없어요. 소년원 보낼 수도 없고. 그래서 올려가지고 시합 때 그렇게 해가지고, 킥복싱을 했는데. 그 다음 날 시합 졌어요. 보통 거기서 끝났는데, 그 다음 날 시합에서 졌어요. 살아났어요, 살아났어요. 팀을 위해서 해명이 없어졌어요. 모든 게 자기 탓을 하기 시작했어요. 요새는 또 조금 뭐,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시효가 지나간 것 같아요.

그리고 옛날에 뭐 이런 표현은 굉장히 나쁘지만은 확인사살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승부는 그래요. 얼마 전에 미국 야구 보니까 0대 7이 8대 7 됐더라구요. 0대 7로 뒤쳐져 있다가, 그게 야구에요. 세상 사람들이 이 무서움을 모른다고. 나는 했어요. 8회도 9회도 리드할 때 피쳐 바꿨어요. 피쳐 바꿀 이유가 지금 던지고 있는 피쳐를 아껴놔야 하고, 다음의 피쳐 갖고 써놔야겠고, 이걸 토탈로 봐야 해요. 일 년 토탈. 그러니까 여기서 쓰면 다음에가 없어요. 특히 SK같은 팀은 특히 그래요. 팀 사정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요. 바깥에 있는 사람이, 해설자가 누가 알아요. 아무 것도 몰라요, 그 사람들. 그러니까 내가 해요, 했어요.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욕해요. 내가 한 번 흔들린 적이 있어요. 5점 리드 해가지고, 7회인데 번트라고 할까, 안했어요. 그 시합 뒤집어졌어요, 졌어요. 얼마나 나 혼자 한이 맺혔는지 야, 너, 왜 너, 할 짓이 그렇게 없냐고, 니가 하는 대로 했으면 됐을 텐데 싶어요. 그 1패가 굉장히 큰 적이 있었어요. 그 1패가 왜 크냐 하면, 흐름을 뺏겨버려요, 흐름이. 만약에 그 다음에 예를 들어서 좋을 때 김광현 같으면 그 흐름이 끊어져요. 나쁠 때 김광현이 다음에 같으면 그 흐름이 이어가버려요. 팀이 고개를 숙여버려요. 이 흐름도 계산을 해놔야 해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 흐름이라든지 깊이 있게 생각 안하니까 모르죠. 이런 비난 속에 있었는데.

LG있을 때 2002년 코리안시리즈 제6차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 내가, 8회 초에 우리가 두 점 냈어요. 그 때 아마 김재현이가 대타로 나와 가지고 좌중간 hit 쳤어요. 그 때 김재현 뛰지 못할 때에요. 김재현이 마지막에 피날레를 어떻게 멋있게 해줄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딱 왔다 싶어요. 여기서 쓰자 싶었어요. 그 때 마침 쳤어요. 근데 2루타 코스였었는데 걔가 1루만 돌고 스톱했어요. 이병규가 난리가 났어요, 뛰어가면서. 세컨드 가라고. 결국 1,3루인가 뭐가 돼버렸는데, 그 때 1사 3루가 됐어요. 8회 초에 두 점 들어와서 4점 차이가 됐어요. 8회 4점 차이면 안전하다고 할 수 있어요. 피쳐만 좋으면. 근데 그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이상훈이 컨디션, 그리고 대구, 삼성 홈 그라운드, 그리고 judge(심판)을 봤어요. judge. 이 세 개를 계산했어요. 스퀴즈 사인 냈어요. 5점째 잡으러 들어가려고. 스퀴즈 사인이라고 하는 것은, 4점 차이에서 8회에 스퀴즈 사인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문제에요. 하려고 했어요. 근데 세상 사람한테 비난도 안 받으려고 다행으로 서드 코치(3루 코치)가 놓쳐버렸어요, 내 사인을. 안 해버렸어요. 삼진 먹어버렸어요. 그 이후에 점수 안 들어 왔어요. 거기서 뺏어버렸으면, 여기서 무슨 이야기 하려고 하냐 하면은, 좋은 투수는. 상대 벤치 김응룡 감독은 5점 리드 당했으면 거기서 승부를 버렸어요. 선수도 버렸어요. 그것을 노린 거예요 나는, 스퀴즈 속에. 4가지가 있었어요. 5점 되면 피쳐 다 바꿀 줄 알았어요. 그런데 4점이니까,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삼성 피쳐, 걔가 계속 던졌어요. 아니면 패전처리 피쳐 올라왔을 텐데. 그러면 거기서 패전 처리 했을 텐데. 결국 9회에 뒤집어졌어요. 얼마나 한스러운 8회 스퀴즈 사인 미스, 소위 말해서 코치가 안 봐서. 그러니까 승부라고 하는 것은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절대 손을 털어버리면 안돼요. 베스트로 가야 하는 거예요.

거꾸로 작년에 삼성하고 시리즈 4차전에서 김광현이를 기용했어요. 김광현이는 일류 피쳐 아니에요. 꼴랑 스트라이크 하나만. 어디로 던질지 몰라요. 소리만 꽥꽥 내고, 볼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올라가니까 아니나 달라, 볼 볼 볼, 와-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거야. 어떡 하냐, 이 넘아 어떡 하냐 싶은 거야. 그런데 거기서 배짱 먹고 있던 것은, 여기서 만약에, 여러분들은 생각도 안 한 거야, 만약에 지면 6차 승부라고 봤다고. 6차에 승부라고, 그거 계산하고 있었다고. 그러면 6차에 누가 나올 수 있느냐, 상대 피쳐가 누구냐, 그것까지 계산했어요. 그러면 누가 피로도가 와서 결국 6차로 넘어오겠지, 이 계산까지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김광현이가 삼진잡고, 피날레 되어버렸지만은. 걔는 박경완이한테 인사할 게 아니라 나한테 인사해야 해요.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감독 그만뒀으니까 한가하니까, 우리 집에 고양이가 네 마리 있어요. 그런데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어요. 다 동네 고양이들 모여요. 그러면 사료를 딱 줘요, 갖다 놔줘요. 애들 먹고 가고, 우리 집에서 자고 다 해요. 그러니까 민박 시켜요. 여름하고 겨울에 두 개 되어있어요. 여름에는 여기, 겨울에는 여기, 민박 자리가 있어요. 딱 보는데 요새는 비둘기가 많이 와요, 사료 먹으려고. 나는 우리 방에서 한참 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거예요. 근데 겁이 나는 거예요. 비둘기가 왔다가 나무에서 있다가 왔다 갔다 먹으려고 하는데 고양이가 노리고 앉아 있어요. 그러면 나는 언제나 약자 편이니까 어떡 하냐 싶어요. 야, 야, 해도 고양이들이 도망가지 않아요, 비둘기도. 할 수 없이 바깥에 나갔어요. 우리 집에 정원에, 그 마당에 이만한 돌맹이들이 많아요. 돌맹이 갖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혹시 고양이가 덤비면 던지려고. 그런데 거기서 느낀 게 얘네들도 살려고 하는 절실함 속에서 살고 있구나 싶어요. 여유가 없는 거구나 싶어요. 그 막 위험을 무릅쓰고 와 있는 데 인간이라고 하는 건 위험 속에 들어 가냐 이거에요. 거의 안전 속에 가거든, 사람은. 이 조그만 얘네들도 이렇게 사는 데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사냐 싶어요. 그걸 볼 때 느낀 게 하나 있더라구요. 모든 게 절실하고 소위 말해서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싶어요.

시간이 말하다보니까 많이 됐는데, 여러분들한테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가늘고 길게 살겠다, 이것은 버릴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것은 안전한 거예요.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사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사는 사람은 상식적인 결과 밖에 얻을 수 없어요.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비상식적으로 살아야만이 남이 생각도 안하는 결과를 갖고 올 수 있어요.

아까 2006년도 SK 연습을 여러분들한테 얘기했지만 그것은 비상식이고, 비상식을 초월했어요. 내가 봐도 겁이 났어요, 시켜놓고. 겁이 났어요. 보통 자기네들끼리 홍백전 하면 이런 데 안 던져요. 던져요. 우와-뒤에서 보니까 으악-싶어요. 홈에 들어오면 홈에 팍 부딪혀요. 캐쳐가 날라가요, 다쳐요, 무릎이. 그렇게 했어요. 보통 같으면 슬슬 지나가죠. 했어요. 근데 그 때 캐쳐가 다쳤어요. 대신 캠프 끝날 때 걔는 데리고 있었어요. 왜, 그렇게 플레이한 아이를 보내버리면 다음부터 안 할 거 같아요. 슬라이딩 연습하고, 뭐하는 것도 하루에 100번씩, 200번도 쉽게 했어요. 헤드 슬라이딩, 다 했어요. 프로야구 선수한테 그걸 시켜요. 다치지 않을까 어마어마하게 고민할 정도였는데, 했어요. 내가 그 당시에 호텔이 방에 있으면 파도 소리가 들려요. 파도 소리하고 새 소리밖에 안 들려요. 아무 것도 안 들려요. 밤에 그 방에 들어가면 겁이 났다니까, 노이로제 걸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들어가면 조용한 거예요.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싶어요. 그런 비상식 속에서 얻은 결과가 여태까지 SK인데.

그래도 그 때는 가늘고 길게 생각했으면 선수들도 아주 가볍게 했을 거예요. 오래 야구 생활 하라고. 그런 사람은 이 프로야구에서 거의 다 일찍 사라졌어요. 몸은 가늘고 길게 돼버리지만, 정신마저 가버려요. 그러니까 굵고 짧게라고 하는 것은 정신무장이 돼있어요. 오히려 이게 길게 가요.

나도 사실 요새 감기 앓아가지고 꼼짝 못하고 있었는데 어제 여기 오니까 어지러워요. 밥도 안 들어가요. 휘청휘청 거리더라구요. 이 교내 40분, 50분 걸어봤어요. 야구 봤어요. 돌아왔어요. 그거 피해서 집에 드러누워 있었으면 오늘 못 나왔지 않나 싶어요. 내가 살아온 길이라고 하는 것은 굵게 짧게 이걸 목표로 하고 살아왔으니까, 그건 try에요, try. 여러분도 그렇게 살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사는 동안에 절대 변명이나 해명은 하지 말고, 남의 탓을 하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패자가 돼요. 승자는 모든 게 내 잘못, 인지를 나한테 돌려야 해요. 그래야 길이 생겨요. 그래야 생각해요. 개척자라고 하는 것은 길이 없는 데 길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있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남의 흉내 내는 사람이에요. 쓸모가 없는 사람이에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런 도전하는 용기라고 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시간됐으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일을 하든 간에 즐겁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즐겁지 않으면 즐겁게 만들면 돼요. 나는 야구장 오는 길이 제일 즐거워요. 여러분이 학교 가는 길이 제일 즐겁고, 예를 들어서 출근길이 즐거워야 해요. 이렇게 어떻게 몰아 가냐 하는 것은 사람이 생각이 바뀌면 돼요. 아까 이야기한대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인생도 바꿔버려요. 바뀌지 않는 사람은 인생이 바뀌지가 않아요. 단 하나 싫은 일이라도 그것에 열중하고 있으면 좋아지게 되고, 만약에 좋아지지 않더라도 거기서 얻은 프로세스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자기 일 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플러스를 갖고 와요.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젊은 사람은 정열,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는 겁니다. 난 70이지만, 아직 젊어요. 여러분이 그런 정열과 도전정신 가지고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자기 인생을 즐겁게, 멋있게 살았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은 감사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map3820/40140861946
http://blog.naver.com/map3820/40140862094
http://blog.naver.com/map3820/40140862262
http://blog.naver.com/map3820/40140862347

Posted by 개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