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성근 감독은 지난 17일 SK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머리를 깎았다. 2012시즌 SK 유니폼을 입을 일은 없지만 2011시즌은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아있었다. 3위로 떨어져 있었지만 아직 해볼만 했다. 선발 로테이션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타격 컨디션도 조금씩 올라오는 중이었다. 김 감독이 머리를 깎을 때는 그만큼의 비장한 각오가 있으리라는 것을, 많은 야구팬들이라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의 각오는 실현되지 못했다. SK는 바로 다음 날 김 감독의 해고를 결정했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만수 감독 대행체제로 바뀌었다. 김 감독은 곧장 일본으로 떠났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 팀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라면, 김재현이 2009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내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했을 때도 잘랐어야 했다. SK의 논리대로라면, 1년만 뛰고 그만 뛰겠다는 선수라면, 그것도 그냥 선수가 아니라 주장이라면, 팀 분위기를 충분히 해치고도 남는다.

김재현의 은퇴 선언이 비장했던 이유는, 자신의 마지막 선수 생활을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다는 의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후배들도 동료들도 김재현의 꿈을 위해 힘을 모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는 데도 충분했다. 마찬가지로, 김 감독이, 자신의 프로야구 감독 생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던, SK의 마지막 시즌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 마지막을 다시 한번 우승으로 장식하겠다는 동기 부여도 충분히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김 감독과 함께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그 중 3번을 우승했던 선수들은 그 마지막 시즌을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가능성이, ‘이제 지금 감독과는 끝이네. 대충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가능성 보다는 높아 보인다. (물론 SK 프런트는 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랬다면, 김재현도 일찌감치 쫓아내는 게 맞다)

한국 프로야구의 감독 지위는 메이저리그의 그것보다 훨씬 열악해 보인다. 구단과의 갈등은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힘 겨루기에서 구단이 한 걸음 앞서면서 감독의 자리는 더욱 불안한 자리가 됐다.

그 결정적인 신호탄은 역시 삼성 선동열 감독의 ‘용퇴’다. 삼성은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은, 프로야구 최고 스타 출신의 감독을 용퇴시킴으로써 감독과 구단 사이의 갈등을 구단의 완승으로 만들어버렸다. 계약기간 따위는 무시됐다.

지난 2월에 쓴 칼럼(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216n04211?mid=s1001&isq=4790)에서 지적했듯, 선동열 감독의 용퇴는 나머지 구단에도 ‘나비효과’처럼 번졌다. 다른 구단들도 감독에 대한 구단의 우위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가져갔다. 프런트는 현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감독들은 야구 뿐만 아니라 프런트의 적극적인 간섭에도 대응해야 했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힘을 합해야 하는 임무가 또 주어졌다.

당시 글을 잠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강한 감독이라 평가받는 SK 김성근 감독의 위상도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4년간 3번의 우승을 거뒀지만 삼성발 후폭풍을 피해가기 어렵다. SK는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현장의 움직임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대만의 판웨이룬 영입에 있어서 SK는 무척이나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카도쿠라 겐이 삼성으로 갔을 때 삼성과 계약한 가네무라를 다시 테스트한 부분도 석연찮다. SK 현장에서는 “2012시즌이야 말로 진짜 가장 큰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SK 김성근 감독의 계약기간은 올시즌까지다.

결과적으로 구단의 감독에 대한 우위는 현실로 드러났다. 김성근 감독이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독의 지위를 강조했지만 구단은 ‘해고’라는 형태로 감독의 자격을 박탈했다. 앞으로 SK의 감독이 되려면 구단의 말에 복종하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구단의 강화는 감독의 약화를 가져온다. 물론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는 팀이 반드시 좋은 팀은 아니다. 구단과 현장이 힘을 합해 운영되는 팀이야 말로 정말 강팀이다. 그러나 구단의 일방적 강화는 자칫 감독이라는 자리에 대한 ‘긍지 약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선수들의 연봉이 최고 10억원을 바라보는 데다 뜨거워진 야구 열기로 선수들에 대한 인기, 주목도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감독의 역할이 구단으로부터 축소된다면, 감독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감독이 선수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승리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감독이 구단과 선수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면 더더욱 한심한 상황이 된다.

실제 요즘 감독들은 승부와 선수에 대한 배려 등을 모조리 고민해야 한다. 특히 연봉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더욱 고민스럽다. 선수의 드러나지 않은 ‘옵션’을 가능한 채워주도록 하기 위해 배려해야 하고, FA를 앞둔 선수의 기용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옵션은 구단이 결정하지만 이를 채워주는 것은 선수 기용의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의 역할이다. 구단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혹은 구단이 감독 보다 높은 곳에 있을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선수는 감독에 대한 불신이 더 쉽게 쌓일 수 있다.

(특히, LG가 하고 있는 신 연봉제도는 그런 위험성을 더 크게 가질 수 있다. 이기는 경기에서의 활약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불펜에 있어서 승리조와 패전조의 차이는 연봉 차이와 직결된다. 선수들로 하여금 분발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선수 기용의 불만을 더욱 쉽게 유발하는 촉매제가 될 위험성도 있다)

당분간 감독에 대한 구단의 우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은 감독을 교체했지만 삼성은 오히려 더 나은 성적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롯데 또한 많은 팬들의 바람과 달리 제리 로이스터 감독 대신 양승호 감독을 영입했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여름 이후 폭발적인 타력을 앞세워, 지난 시즌 보다 더 나은 순위를 기대하게끔 하고 있다. 구단의 감독 교체가 ‘성공적’이라는 신호 또한 SK로 하여금 김 감독을 ‘해고’할 수 있게 한 ‘믿음’의 근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구단의 ‘지배’ 강화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성적에 더욱 예민해지는 구단 운영은 자칫 선수 혹사 및 자연스런 리빌딩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승리를 위해 ‘돈’을 투입하다보면, 현금 트레이드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고, 그러다보면 리그 전체의 전력 균형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올시즌이 끝난 뒤 감독들의 이동이 예고됐다. 신생구단과 함께 계약기간이 끝나는 곳, 대행체제로 이뤄지는 곳 등 여러 곳에서 새 감독 찾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구단의 우위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감독들은 더욱 더 극심한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야구 감독을 하기 위해서는 ‘수퍼맨’이 돼야 할지도 모른다.

PS.

지난해까지 애틀랜타 감독이었던 바비 콕스 감독은 ‘야구밖에 모르는 남자’였다. 콕스 감독의 아내 팸 콕스에 따르면 “함께 사는 동안 가족 소풍 한 번 제대로 가지 않은 남편”이다. 어쩌다 한 번, 가족과 함께 찾은 동물원에서도 콕스 감독은 줄창 우리 안의 고릴라만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물었다. “왜 고릴라만 보고 있냐”고.

콕스 감독은 말했다. “여보, 저 녀석 팔뚝 좀 봐. 어떻게 저 녀석과 계약해서 우리 팀에서 뛰게 할 수 없을까”. 이쯤 되면 야구에 미친 남자다.

이제 ‘전’ 이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 SK 김성근 감독도 ‘야구에 미친 남자’였다. 화장실에서도 야구책이 놓여 있었다. 김 감독은 첫 우승을 했던 2007년 시즌 도중 “화장실에서 롯데 손민한의 공략법을 찾았다”고 했다. 볼일을 보던 중 불현듯 떠올랐다고 했다. 하루 종일 오직 야구만 생각했던 남자였다.

바비 콕스 감독은 애틀랜타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는 동안 원정을 갈 때마다 그곳의 구단과 팬들로부터 마지막 시즌을 기리는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김 감독에게는 SK 팬들과 이별할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팬들에게 3번이나 우승의 기쁨을 안겨줬던 감독이었지만 결국 ‘해고’로 끝이 났다. 팬들도 영원히 김 감독과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팬들이 억울하고 화가 가는 것은 이별의 시간마저 주지 않은 구단의 처사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SK는 9월로 미뤄진 김재현의 은퇴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떠나 보내는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면, 맞아들이는 일도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SK 덕아웃을 지나 선수단 라커로 통하는 길에는 역대 SK 선수단 주장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중 SK에 남아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SK는 그들을 그런 식으로 떠나 보내는 데 익숙한 팀인 모양이다.

이용균 기자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825n03987?mid=s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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