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정동진에 갔다. 청량리역에서 밤 기차를 타고 6시간가량 가면 새벽 5시가 되지 않아서 그곳에 도착한다. 이전에 갔을 때는 수평선을 점령한 구름 때문에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달빛이 자욱이 깔린 백사장 위를 걷고 또 걸었던 즐거움이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는 해돋이를 볼 수 있을 거야.’ 믿음을 갖고 밤새 기차를 타고 갔다. 그런데 ‘아뿔싸!’ 들뜬 마음에 너무 일찍 도착한 것. 일출까지는 2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바닷가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몸도 녹이고 마음도 녹일 작정으로 어느 횟집에 들어갔다. 가게 안은 이미 얼굴이 벌겋게 익은 이들로 왁자지껄했다. 회를 먹는데 자연스럽게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렸다. 50대 중반의 고교 동창생들로 직업은 각양각색. 그들 중 한 이가 “내 경력을 살려서 일할 곳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2000년에 우리 사회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갔고 평균수명 100세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IMF 등을 거치며 나이는 곧 해고와 정비례했다.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정년)이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생직장은 호랑이가 캐치볼을 하던 시절의 얘기가 됐다. 한창 일할 나이에 회사에서 내몰린 것도 서러운데 그 경험을 살려 재취업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유행했지만 미니홈피에 적는 글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야구계도 마찬가지다. 체력적인 한계도 있어서 평균적으로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는 기간은 7, 8년밖에 안 된다. 올 시즌 최고령 선수는 KIA 이종범으로 만 41세(1970년생)이며 평균연령(이하 1월 31일 등록선수 기준)은 만 26.6세다. 지난해(27.5세)보다 1살가량 젊어졌다. 물론, 일반 회사원이 평생 벌 돈을 한 해에 받는 선수도 있지만 그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올해 평균연봉은 8천704만 원. 이것만으로도 일반인에게는 부러운 금액이지만 대다수는 평균연봉도 한 번 받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 은퇴 후에도 코치 등 지도자가 되어서 야구계에 남는 것도 아주 제한적이다. 프로야구계에 발을 담근 후 계속해서 유니폼을 입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잇달아서 통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프로야구계에서 김성근 전 SK 감독은 아주 이례적인 존재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 OB(현 두산) 코치로 출발해서 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를 거쳐 지난 18일까지 SK의 지휘봉을 잡았다.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세월 속에 프로야구에서 몇 자리 되지 않는 감독 생활을 이어왔다. 게다가, 2006년 말 SK 감독을 맡았을 때의 나이는 만 65세. 이전까지 역대 최고령 감독은 김응룡 삼성 고문(만 63세)이었다. 김 전 감독이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팀을 4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으며 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5년간 372승 226패 13무를 기록했고 6할2푼2리라는 믿기지 않는 승률을 남겼다.

60대를 넘기면 감독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프로야구계의 통념을 뒤엎은 것이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은 벤자민 버튼이 아니라 김 전 감독이라고 해도 틀림없다. 고령의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그의 선전은 야구계만이 아니라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일전에 만난 한 원로기자는 “김성근 감독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한창 일할 2000년대 중반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릴 곳이 점점 줄어들면서 의욕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희망을 본 것은 과거 취재 대상으로 4년 만에 현장에 복귀한 김 전 감독. “프로야구 최고령 감독으로서 풍부한 경험과 빼어난 실력을 무기로 삼아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이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김 감독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한 중·장년층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스포츠가 주는 매력 중 하나가 보는 이에게 힘을 준다는 사실을 김 전 감독이 증명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일하던 직장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찍히며 더는 일할 곳이 없는 현실을 맞이한 중·장년층에게 김 전 감독은 ‘현재를 전복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단순히 나이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경험과 실력으로 권위를 얻었다. 고령자는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쓸데없이 고집만 세다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중·장년층의 경험에서 우러난 현명함과 의욕을 김 전 감독은 실제로 구현한 것이다.

이것은 김 전 감독의 용병술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다른 팀에서 은퇴에 내몰린 노장 선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은퇴한 김재현, 전준호, 안경현, 가득염 등에 최동수, 김원형, 이호준, 박재홍, 박정환 등은 로스터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퇴물’이 아닌 팀의 리더로 활약했고, 활약하고 있다. 김 전 감독은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베테랑은 함부로 버리는 게 아니다. 야구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베테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김 전 감독은 무조건 노장을 우대하며 베테랑을 위한 팀으로 만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젊은 선수와의 공정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1군에 벤치에 앉는다. 동등한 기회를 통한 발탁. 이것이 중·장년층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도 김 전 감독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공정한 사회’가 시대의 화두로 얘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끼는 이는 길거리에서 소녀시대를 만나기만큼이나 어렵다. 실력보다는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김 전 감독은 선수들이나 코치들과 겸상을 하지 않고 이동할 때도 혼자서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감독의 권위를 내세운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코치들이나 선수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으면 팀 내에 ‘파벌’이 생기기 때문이다. 파벌은 팀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지만 실력이 아닌 사사로운 감정이 우선시되며 불화의 원인이 된다. 결국에는 모래알 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코치들이나 선수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선수단과 거리를 두지만 선수들의 훈련 태도나 고민 등 사소한 부분까지 여러 통로를 통해 듣고 해결책을 마련한다.

모든 선수를 공평하게 대하고 동등한 기회를 준 것. 젊은 세대가 김 전 감독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시한 점이다. “이기는 야구를 추구”한 김 전 감독이 과정을 중요시했다는 말에 발끈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야구는 결과로 말하는 세계다. 승리하지 못한 감독은 해임을 통보받고 성적을 남기지 못한 선수도 옷을 벗거나 연봉이 큰 폭으로 삭감된다.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김 전 감독만이 아니라 프로야구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모든 구단 감독은 우승을 노린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승리보다 패배를 추구하는 감독은 지구 상에 없다. 그런 이가 있다면 세상사를 초월한 성직자이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다.

때로는 운으로 이길 때가 있다. 거꾸로 운이 나빠서 질 때도 있다. 이런 운으로 이긴 것은 팀 성적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팀에는 의미가 없다. 승리를 통해 얻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전 감독은 승리라는 결과를 낳게 된 과정에 주목한다. 야구계에서 김성근이라는 이름 석 자는 혹독한 훈련과 동의어다. 김 전 감독의 팀에 트레이드되거나 신인 지명된 선수가 공통으로 내뱉은 첫 마디는 “죽었다!”이다.

사실 훈련 강도만 놓고 본다면 김 전 감독보다 더 높은 지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전직 코치는 모 감독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훈련량에서는 김성근 감독보다 더 많으면 많았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 차이가 났다. 모 감독은 코치인 나도 지겨울 정도로 훈련을 위한 훈련이었다. 반면, 김 감독은 항상 훈련하는 목적을 잘 설명해서 이해하게끔 했고 다양한 훈련방식을 도입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목적의식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밑바탕에 두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게끔 했다. 훈련이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를 향한 과정이 된 것이다. 또한, 이기는 야구를 통해 선수는 승리의 기쁨을 체험하고 한 번 더 그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는 승리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이것이 김 전 감독이 상대적으로 약한 팀 전력에도 4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무명의 선수를 조련해서 가치를 발굴하는 것에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젊은 세대는 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땀 흘리며 노력하기보다는 일확천금만 꿈꾼다. 구슬 같은 땀은 미련함의 상징일 뿐이다. 그러나 김 전 감독은 피땀 어린 노력 없이는 성공도 없다는 것을 야구를 통해 얘기했다. 그 메시지에 젊은 세대가 공명한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현역 최고령 선수인 이종범처럼 한 세대와 동고동락한 스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감독과 같이 세대를 넘어서 공감을 이끌어낸 이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한때 야구 흥행의 방해꾼으로 취급되던 SK는 흥행을 주도하는 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김 전 감독과 SK와의 불안한 동거는 지난 18일에 파국을 맞이했다. 그러나 정동진에 떠오른 태양처럼 다시 야구 현장에 복귀할 것이다. 그것이 프로야구가 아닌 아마야구라고 할지라도. 그의 인생 속에 야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야구 속에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822n17022?mid=s1000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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