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야신은 시즌 도중 폭탄선언을 했을까.
올 시즌 재계약 문제가 언급된 뒤 SK 김성근 감독은 구단 측과 내내 껄끄러웠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올 지는 몰랐다.
SK 측은 "재계약은 한다"고 밝혔고, "단, 시즌이 끝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이 그동안 "구단이 재계약에 대한 의지가 있는 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지만, "올 시즌 끝나고 그만두겠다"는 말은 갑작스럽다.
그러나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구단의 소극적인 재계약 태도때문이다. 구단 측은 "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을 하겠다. 단, 구단이 요구할 건 요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물론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 밝힌 것은 없다. 하지만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조건들은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5명의 일본인 코치와 전지훈련 일수다. SK는 1, 2군을 합쳐 5명의 일본인 코치들이 있다. 모두 '김성근 사단'의 핵심코치들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SK의 유망주들을 키운 핵심인력들이기도 하다. SK는 그동안 전지훈련에 대해 많은 투자를 했다. 시즌이 끝나자 마자 일본 오키나와에 재활캠프를 꾸렸고, 부상자들의 재활을 전담했다. 또 1, 2군 선수들을 통합해 일본 고지와 오키나와를 돌며 4개월 여의 전지훈련을 했다.
김 감독은 최근 재계약의 조건을 두고 "아마 팀에서 외국인 코치에 대한 제한을 두려는 것 같다. 그리고 긴 전지훈련 일수도 제동을 걸 수 있다"며 우려했다. '만약 그런 조건이 걸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우리 SK가 그동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두 가지가 핵심이다. 나의 야구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씁쓸해 했다.
김 감독은 자신이 정한 원칙에 대해서는 과도하리만큼 철저하다. 열악한 국내야구의 현실에서 타협할 지점도 있지만, 항상 그 타협을 거부해왔다. 너무나 굳건한 원칙과 그에 따른 협상력의 부재는 그의 감독생활에서 '양날의 칼'이었다.
맡는 팀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밑거름이 됐지만, 구단과의 마찰로 감독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2년 전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타협할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묻자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조금씩 타협하다보면 내 자신이 무너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구단의 '요구할 건 요구할 생각'이라는 말은 당연히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1969년 마산상고 시절부터 지금까지 42년의 지도자 생활을 지탱해왔던 원칙에 대해 양보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쓸만한 선수를 데려오려면 수십억이 드는 게 현실이다. 선수를 키우기 위해 비용을 더 들여 코치를 쓰고, 전지훈련을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 타구단에 비해 많은 SK의 일본인 코치들과 전지훈련 비용에 대한 정당성을 항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SK 구단의 협상태도는 너무나 의문스럽다. 김 감독의 이런 특성을 구단 측이 몰랐을 리 없다. 재계약에 대한 SK 측의 입장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당연히 재계약에는 협상이 필요하고, 세부적인 조건은 그 속에서 확립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김 감독이라면, 재계약 조건에 대한 운을 띄우면서 차일피일 미룬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만약 진짜 김 감독과 재계약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김 감독의 특성까지도 고려해 재계약 협상전략을 짜는 게 맞다. 김 감독이 "정말 구단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게 맞나"라고 실망감을 표출한 이유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김 감독은 이런 상황에 대해 지친 것 같다. 4년 동안 SK를 최강군단으로 변모시킨 데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인간적인 서운함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폭탄선언 전날인 16일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결정을 내렸다.
류동혁 기자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36093&date=20110817&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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