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26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그리고 3번의 우승. 한국프로야구에서 2000년대 후반은 SK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틀림없다. 물론, 두산과 KIA 등과의 명승부가 있었기에, 그 빛이 더 발하는 것이지만. SK가 해태와 현대 등과 함께 역대 최강팀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박경완, 김광현 등 좋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노력하며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대다수 야구인은 전력분석을 SK 야구의 강점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야구전문블로그 ‘야구라’에서는 김정준 SK 코치를 만났다. 김 코치는 일반인이라면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SK 감독의 아들이라는 것에 주목하지만, 야구계에서는 한국프로야구에 전력분석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개척자로서 평가받고 있다.

진행 - 송민구, 배지헌, 손윤
정리 - 손윤

▶ 야구를 시작하게 된 거는 역시 아버님 영향이 컸을 것 같은데요.

야구를 시작한 거는 환경을 무시 못할 거 같아요. 공보다 손이 작았을 때부터 가지고 놀았으니까요. 제 생활의 일부였던 거죠. 야구가. 사실 어머니는 안 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2번을 중간에 그만뒀죠. 아버진 특별한 말씀이 없었어요. 그냥 멀리서 지켜보셨죠. 근데.

▶ 그런데?

초·중·고교를 다 아버지 제자들한테 배웠어요. 초등학교 땐 박상렬 감독님, 중학교 땐 김태수 감독님, 고교 때는 정병규 감독님. 다들 77년 우승할 때 멤버였죠. (웃으면서) 그러니까 저는 착한 아이로 살 수밖에 없었죠.

▶ 고등학교 3학년이던 87년에 준우승만 2번 했는데요.

그렇죠. 준우승만 했고, 다음 해에 후배들이 우승했지요. 대통령배에선 천안북일고한테 지고, 화랑기에서 경남상고한테 졌죠. 대통령배 예선에서 배재고와의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 제가 2루타를 치며 이겼던 게 기억나고요. 천안북일고 지연규 공이 아주 좋았어요. 몸쪽을 그렇게 잘 던졌으니까요. 칠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게 일반적이라서 연세대에 갔어요.

▶ 그땐 가정 사정 등이 아니면 다들 대학에 가는 게 당연했죠.

연세대 역사상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안 마신 건 저밖에 없을 거예요. 지금은 조금 마시지만, 그땐 입도 되지 않았거든요.

▶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거는 아버님 영향도 분명히 있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92년 LG에 입단했지만, 1년 만에 유니폼을 벗고 프런트로 변신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야구를 일찍 그만둔 거는 입스 때문이었어요. 공을 못 던져요. 내야수가. 정신적인 노이로제에 걸렸던 거죠. 몸도 많이 안 좋았지만, 던지는 거 자체가 안 되니까요. 사실 그땐 아프다는 것도 몰랐어요. 워낙 입스에 따른 정신적인 충격이 컸으니까요.

▶ 입스도 어떤 상황을 공포로 느끼는 것인데, 그렇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실수가 나왔을 때 계속된 주변의 비난 등으로 고질화하는 경향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학교 3학년 때예요. 제가 2루수 수비위치에서 홈플레이트까지 30m 정도 되잖아요. 한 명씩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걸로 수비 훈련이 끝나거든요. 근데 그걸 잘못하니까 팀 분위기가 나빠지고 집합도 걸렸고요. 그때부터 자신감을 잃기 시작하다가, 결정적으로 인천전문대랑 경기 중에 주자 3루에서 홈으로 송구한 게 옆으로 빠졌어요. 게다가, 포수를 보던 강진규 선배가 그걸 잡으려다가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도 있었죠. 그때부터 공을 던지려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예요. 




▶ 일전에 김광수 두산 코치도 한 선수의 잘못으로 선수들을 집합시켜서 지적하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다들 그렇게 하고 있지만, 예전엔 안 그랬잖아요. 삼성 조동찬도 얼마 전까지 있었고, KIA엔 김선빈이 뜬공에 압박감을 느끼는 걸 보면 팀을 떠나 짠하죠. 정말 입스를 극복하려면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야 해요. 그런 걸 보면 정근우가 대단하죠.

▶ 정근우도 입단했을 때 입스로 고생한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도 (정근우는) 팔이 잘 안 펴져요. 그러니까 송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요. 2차 1순위로 뽑았는데, 플로리다 전지훈련에서 3루를 시켰는데, 10개 던지면 1개만 1루수 글러브에 들어갔죠. 나머지 9개는 악송구였어요. 시즌에서도 9회 말 2 아웃에 근우한테만 땅볼 가지 말라고 했는데, 또 가더라고요. 당연히 악송구 나왔고 2군에 내려가서는 그해엔 못 올라왔죠. 근데 그걸 고쳤더라고요. 2군에서.

▶ 피나는 훈련으로 입스를 극복한 거군요. 그런 거 보면, 야구선수가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워요.

맞아요. 저도 직함은 코치지만, 선수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아요. 경기할 때 공 하나하나 잡고 던지는 자체가 부담감이죠. 거기에 주자 뛰는 거에 베이스 커버하고 이렇게 하는 게 쉬운 거는 아니잖아요. 물론 프로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런 걸 보면 한국야구가 많이 성장한 게 느껴져요.

▶ 오랫동안 입었던 유니폼을 벗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더 뛰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으음, 그땐 입스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때마침 당시 LG에서 선수 출신을 프런트로 키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거든요. 신언호 코치님 등이 저를 성실하다고 봤는지 기록원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그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래서 시작했죠. 특별히 고민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입스가 너무 심했거든요. 지금도 갖고 있을 정도요.

# 전력분석의 창세기 ‘아소보 시리즈’

▶ 선수 때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되지만, 프런트는 자기가 아닌 다른 이를 챙겨주는 직업입니다.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직접 하는 것과는 달랐죠. 게다가, 저보다 야구 잘하는 이들이 대다수잖아요. 그런 이들에게 제가 이렇게 해라고 하는 건 위치상 안 맞죠. 처음엔 자료가 있으면 그걸 뿌려주는 단순한 작업이었어요. 저보다 한대화 감독님이나 김동수 선배가 아는 게 더 많았고요. 그리고 그땐 전력분석을 그렇게 중요시하지는 않았어요. 백인천 감독님이나 김용달 코치님 등은 나름대로 그분들만의 툴(도구)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 그러다가?

제가 눈을 뜨기 시작한 거는 당시만 해도 전력분석이나 이론 등에서 일본과 우리는 비교할 바가 못 됐거든요. 근데 시간적 여유가 있고, 또 제가 일본어를 할 줄 아니까 그런 새로운 거를 얘기해 줄 수 있었죠. 그게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선수들 반응이 좋았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 지금과 비교하면 초창기 전력분석의 세계도 아주 초보적이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들어갔을 땐 노아웃, 원아웃, 투아웃에 성적 이런 식으로 나왔어요. 근데 같은 노아웃이라도 주자 1루도 있고, 주자 1, 2루도 있잖아요. 야구는 변수가 많은 스포츠니까요. 그래서 시스템을 만드는 파트랑 만날 싸웠어요. 왜 이건 안 되느냐고요. 그러면 거기에선 C언어라서 안 된다고 그랬죠. 그땐 전투적이었어요. (호방하게 웃으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불만분자로 착각할 정도로요.

▶ 그런 상황에서 아소보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최종준 당시 단장님이 일본에 연수를 가서 전력분석 등을 배워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때 만난 게 아소보였죠. 세세한 기록의 데이터화는 물론 동작 분석까지 가능할 정도로 획기적인 시스템이었어요. 3억이나 하는 고가의 프로그램을 사주더라고요. LG에서.

▶ 아무리 팀에 도움이 되는 거라고 해도 거액을 투자하는 건 쉽지가 않은데, LG가 그렇게 투자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그때 운이 좋았던 게 LG그룹 자체에서 계열사별로 경영스킬 대회가 있었어요. 거기에 야구단은 과학적인 경영, 창의적인 경영을 내세웠죠. 그래서 큰 반발 없이 아소보를 들여오게 됐어요.

▶ 아소보가 위력을 발휘했는지 몰라도, LG는 그해 준우승했고 그다음 해엔 현대와의 역사적인 ‘아소보 시리즈’가 펼쳐졌어요.

97년에 우리가 준우승한 영향인지 98년엔 현대에서도 들여왔더라고요. 일본에선 ‘아소보 시리즈’라고 불렀죠. 그땐 실질적으로는 정민태와 박경완을 못 넘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정민태가 6차전에서 몸쪽 공 3개로 유지현을 삼진 처리할 때 ‘졌구나!’라고 느꼈죠. 박경완한테 진 거죠. 또 정민태도 시즌 중에는 안 던진 포크볼도 구사하고요. 근데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고, 그걸 운영하는 인력이 있다고 해도 더 중요한 게 있어요.

▶ ?

지도자와 선수가 받아들여 줘야 해요. 그땐 김용달 코치님이 아주 적극적이었어요.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분과 함께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가 하는 일을 많이 이해해줬죠. 이병규 등을 대상으로 동작분석, 좋을 때와 나쁠 때를 비교하면서 토의하는 그런 문화가 있었어요. LG에. 다른 데는 없었어요. 또, 선수의 쿠세(선수의 독특한 버릇)에 대해서도 연구하는 등 당시 LG 야구가 세밀하고 선진적이었죠. 그런 거는 있는 것 같아요. 




▶ 어떤 거요?

일전에 2002년 한국시리즈를 다시 봤거든요. 참 모자랐다는 걸 느꼈죠. 서울에서 5차전 이기고 대구로 가는데, (김성근) 감독님이 저랑 (노)석기랑 불러서 맥주 한 잔을 주면서 “너희가 참 큰일을 해냈다”고 얘기하셨어요. 그 당시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감독님이랑 구단이랑. 아마도 감독님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비디오를 다시 보며 생각한 게 ‘지금의 나라면 우리가 우승할 수 있도록 일조를 할 수 있었을까?’라고요.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고 봐요. 놓친 게 되게 많더라고요.

▶ 그 당시에 어떤 점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년까지 제가 한국시리즈만 9번을 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기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삼성은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주 컸거든요. 우리는 아픈 선수도 많았지만, 그런 부담감은 없었죠. 실력 차이는 분명했지만요. 홈런 숫자만 봐도요. 이승엽, 마해영, 김한수, 양준혁 등 홈런 타자가 즐비했죠. 그런 숫자만 봐도 무섭긴 하죠. 날씨도 엄청 추웠고요.

▶ 2002년 준우승을 했지만, LG는 김성근 감독님을 비롯해 다수의 프런트를 잘랐어요. 당신도 그중의 한 명이었고요. 이후 LG는 가을 야구와의 인연이 끊어졌고요.

그때 감독님이 안 잘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반반으로 봐요. 감독님도 사람이니까 충전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지바 롯데에서의 2년간 경험을 통해 많이 바뀌신 게 느껴져요.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는데, 계속 흐를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을 얻으신 거죠. 연습은 많이 시켜요. 예전이나 지금이나요. 그거 있잖아요. 야구는 누가 하는 걸까요?

▶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선 선수가 하는 걸로 보지만, 한국은 감독 야구가 대세죠.

그렇죠. 저는 둘 다 옳다고 생각해요. 어느 게 틀린 거는 아니죠. 분명히. 근데 선수가 야구를 하는 건 맞지만, 좋은 선수들이 모였다고 해도 우승하는 건 아니잖아요. 왜냐하면, 야구는 1시즌을 하니까요. 별의별 일이 다 있잖아요. 야구팀만이 아니라 세상 사는 게 다 똑같죠. 이치로처럼 자기조절을 할 줄 아는 선수만 있다면 상관이 없는데, 그게 아니니까요. 그런 걸 잡아주며 팀 전력을 유지하는 게 감독의 역할인 거죠. 선발 오더 등을 통해 선수들을 움직이게 하는 걸 보면서 야구는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2003년에 SK로 갔을 땐 어땠나요?

SK에 딱 왔을 때 전력분석실이 (쥐뼘을 뼘으면서) 요만했어요. 아, 팀에서 전력분석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지 알려면 방 크기를 보면 돼요. 책상도 없고, 각종 설비도 그랬죠. 그때도 한 3억 원을 썼어요. 기자재 사들이는데요. 그것 때문에, 전지훈련지에서 2번인가 호출됐거든요. “왜 사야 하느냐?!”라고 해서 필요하다고 해서 결국은 샀죠. 그리고 방도 3개를 합쳐서 커졌고요. 결국, SK는 완전히 백지에서 새 출발 한 거죠. 저랑 노석기랑요. 거기에 박경완이 온 것도 큰 힘이 됐고요.

▶ 그해 4위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서 삼성과 KIA에 5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어요. 한국시리즈에선 현대한테 3승 4패로 아깝게 무릎을 꿇었지만요.

한국시리즈는 체력이 안 되더라고요. 또, 현대에 정민태가 워낙 좋았죠. 그리고 그해엔 한국시리즈 일정이 변칙적이었잖아요. 3차전까지 하고 하루 쉬면서 흐름이 끊어졌어요. 그게 컸어요. 정상적이라면 2차전을 하고 하루 쉬는데요. 4차전에서 (김)기태 형이 쐐기를 박아야 할 때 못한 것도 아쉬웠고요. 어쨌든 베테랑 선수들이 많았던 게 단기전에서 힘을 발휘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SK로 온 첫해에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기에 저희도 자리를 잡았고 움직이기도 편해졌죠. LG 때도 그랬지만요.

# 좋은 팀과 나쁜 팀의 차이

▶ 전력분석원이 취급하는 데이터가 엄청날 건데, 그걸 해석하기도 쉽지 않을 걸로 생각해요.

데이터 해석보다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거예요. 이건 제 성격이 그래서일 수도 있지만요. 아무리 중요한 데이터라도 지금 쓸 수 없다면 필요가 없다고 봐요. 야구도 전력분석도 엄청 빠르게 움직여요. 재작년까지는 더그아웃에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경기에 들어가면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쪽지로 왔다갔다한다고 해도 느리잖아요. 느리다는 거는 늦은 거고요. 이미 상황이 다 끝난 뒤인 거죠.

▶ 밖에서 볼 때랑 더그아웃 안에서 하는 건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더그아웃에 들어가 보니까 상대도 빠르고, 빠르지 않다고 해도 우리 쪽에서 2, 3수 앞을 내다보고 하지 않으면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수비만 해도 미리 준비시키지 않으면 경기 스피드를 못 따라가는 거죠. 그리고 밖에서 볼 때는 몇 타수 몇 안타, 어느 코스를 잘 치고 이런 걸 중요시하지만, 물론 참고는 하더라도 그거에 매달려서는 늦어요. 경기를 못 따라가는 자료는 불필요한 거죠. 저도 처음엔 못 쫓아가겠더라고요. 결국에는 책임 문제인 거 같아요.

▶ 책.임.요?

2008년 두산이랑 한국시리즈 할 때 무사 1루 김재현 타석에서 유격수 쪽을 거의 비워놓는 극단적인 시프트가 2번이나 나왔어요. 평소라면 우전 안타가 될 타구가 고영민한테 잡혀서 아웃이 됐죠. 재작년 KIA와 할 땐 정근우가 나오면 3루-유격수 간을 완전히 봉쇄했고요.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두산을 예를 들면, 김경문 감독님이 김광수 코치님한테 수비나 주루 등에 관해서는 전권을 줬기 때문인 거죠. 우리도 시프트를 한다고 해도 김태균 코치랑 상의해서 확률이 높은 쪽으로 움직이지만, 두산은 아주 극단적이에요. 그만큼 책임을 갖고 한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선 확실히 두산이 우위에 있다고 봐요.

▶ 결국, 결과에 따른 책임소재가 애매하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지금의 애매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요.

작년부터 더그아웃에 들어가며 직함이 전력분석 코치, 정확하게는 코디네이션 코치가 됐지만, 아직은 위치가 애매해요. (손빗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지금이야 팀 내에서 필요로 하니까 활용되고 있지만요.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잖아요. 현장 지도자들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그날로 짐을 싸야죠. 애매하죠. 보통 코치면 타격, 투수, 수비, 주루, 배터리 등 그 영역이 명확한데, 제가 하는 건 포괄적이잖아요. 어떤 의미에선 전 분야에 한 발을 다 걸치고 있는 문어발 코치라고 볼 수도 있고요.

▶ 영역이 겹친다는 건 잘못하면 자기 영역을 침범하거나 간섭한다고 오해를 받기도 쉽죠.

그렇죠. 실제로 2007년인데요. 그땐 일본인 코치들 통역도 겸하고 있었거든요. 한번은 경기감독관이 저를 불러서 “타격코치가 옆에 있을 땐 배팅 지도를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원래 일본인 코치는 큰 그림만 그려주고 지켜보는 편이라 선수한테 도움이 된다면 크게 개의치 않거든요. 그런 말을 들으니까 더 조심스럽죠. 수비 위치 설정할 때도 그렇고 견제나 피치아웃을 지시할 때도 그렇고요. 누가 그걸 결정하느냐는 아주 민감한 문제예요. 게다가, 감독님까지 있으니까 굉장히 복잡하죠. 저와 같은 전력분석의 영역 설정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 작년에는 포스트 시즌에서 만나지 않았지만, 올해도 SK의 최대 강적은 두산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예상이에요. 말씀하기 조심스러운 면도 있을 걸로 보지만, 두산 야구를 어떻게 보나요?

두산은 작년만 해도 전반기와 후반기가 전혀 다른 팀이었잖아요. 전반기 땐 홈런을 펑펑 치고, 후반기에는 특유의 발야구가 발휘됐고요. 변화가 많아요. 전력분석 하는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죠. 솔직히. 이런 것도 있어요. 흔히들 SK는 감독이 움직이고 두산은 선수가 움직인다고 하잖아요. 분명히 그런 차이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재작년에 두산이 경기에서 스스로 뭔가를 찾는 게 보였어요. 반면, 우리는 찾아주고서는 (선수들이) 하라는 쪽이었죠. 근데 작년에는 반대였어요. 전반적으로요. 두산이 시키는 쪽이고 우리도 시키기는 하는데 경기 안에서 스스로 찾으라는 게 많았어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거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선수들이 다할 수는 없지만, 자기 거는 자기가 챙길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전체적으로 챙기는 게 제 역할이 되는 거죠. 자기 스스로 하는 야구가 조금씩 공격에서는 보여요. 반면, 두산은 어떤 틀 안에 들어가고 있어요. 근데 그게 나쁜 게 아니더라고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 어떤 일요?

어떤 경기에서 2사 후에 정근우가 나왔는데, 김광수 코치가 1루수인 최준석한테 기습번트에 조심하라고 지적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근우가 기습번트를 댄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긴장감을 주는 거예요.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더라도 경기에 집중하라는 의미에서요. 매 순간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 넣고 조심하며 생각하도록 하는 거죠. 그게 좋은 팀과 나쁜 팀의 차이인 거 같아요.

▶ 좋은 팀과 나쁜 팀의 차이라….

야구는 상대가 잘하는 건 막을 수 없다고 봐요. 단지, 상대를 어렵게 만들어 놓으려고 하는 거죠. 몸쪽 승부를 펼치는 게 상대 타자가 안타를 못 치게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렇게 했는데도 안타 맞고 홈런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안타, 홈런 안 맞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단지 상대의 생각대로 해주지 말라는 거죠. 그러면 분명히 경기에서 기회가 와요. 그 기회를 잡으면 이기는 거죠. 그런 점에서 쉬운 팀이 있고, 두산 등과 같이 어려운 팀이 있어요. 팀 전력과 관계없이요.

▶ 버릴 거는 버려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군요. 물론, 더 잘하기 위해서 안 되는 걸 되게끔 해야 하지만, 안 되는 걸 죽으라고 붙잡고 있는 것도 시즌 중에는 어렵다는 거겠죠.

LG에 있을 때인데 한 감독님이 상대 투수의 150km/h 속구는 포기하고 변화구에 초점을 맞추자고 하더라고요. 그땐 왜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지 이해를 못 했어요. 근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요. 어려운 걸 하기보다는 쉬운 걸 확실하게 하는 게 낫다는 거죠.

# 박경완과 볼 배합

▶ 그건 그렇고 SK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포수인 박경완이 있기 때문에 수비 위치 등도 포수 중심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요.

제일 좋은 건 배터리하고 수비적인 약속을 하고 들어가는 게 분명해요. 실제로 우리는 (박)경완이가 배터리 쪽은 거의 200% 다 가져가요. 근데 거기에 맞춰야 하니까 더 복잡하죠. 경완이가 다음에 어떻게 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움직여야 하니까요.

▶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3번의 우승, 해태왕조와 현대왕조 등을 잇는 SK왕조라고 해도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SK야구가 강세를 보이며 볼 배합이란 말을 흔하게 듣고 말하게 됐어요.

볼 배합을 하는 저로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투수의 제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니까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는 이유가 속구 제구력이 안 되니까 타이밍을 이용해야 하는 거죠. 사실 타자가 가장 부담감을 가진 구종이 속구이며, 투수가 제일 편하게 던지는 것도 속구인 건 분명해요. 근데 타자의 수준이 올라가고, 제구력도 좀 떨어지면 변화구에 중점을 두면서 볼 배합이 생긴 거죠.

▶ 그 볼 배합에서도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 위주이지만, 동양에서는 포수 위주라는 차이가 있는데요.

한국야구, 일본야구, 미국야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야구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단지 미국과 일본에선 나름대로 가능한 게 우리는 아직 불가능한 것도 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에서는 투수가 맞아도 포수 책임이라고 안 하잖아요. 투수가 맞은 건 투수 책임이라는 거죠. 그렇기에 자기가 던지고 싶은 거 던지는 거고요. 자기가 제일 좋은 볼을 던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우리가 중요하잖아요. 우.리. 지면 내가 진 게 아니라 우리가 진 거로 생각하니까 거기서 제일 나은 방법을 찾는 거죠. 근데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가 하는 게 옳다고 봐요. 단지 그걸 하는 능력이 아직 안 되니까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안 해온 것도 있고요.

▶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투수 위주로 해야 한다는 거네요.

네, 궁극적으로는 투수가 하고 포수의 도움을 받아야죠. 그러니까 서로의 호흡이 중요한 거죠. 투수가 이렇게 던지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갈 수 있도록 불필요한 걸 버리게 해줘야죠. 재작년에 KIA랑 할 때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로페즈가 3회까지 자기가 다하더라고요. 근데 자기가 하나하나 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집중력에. 투수가 하는 경기는 딱 3회까지가 최대치인 거죠. 자기가 헷갈리면서 맞기 시작해요. 




▶ 그게 외국인선수를 비롯해 자아가 강한 투수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알고 있어요.

투수들은 맞을 때까지 놔두면 포수가 하자는 대로 해요. 가만히 있다가 안타 하나 맞기 시작하면 포수가 요구하는 대로 하는 거죠. 그러니까 투수가 한 경기 전부를 다하는 건 한계가 좀 있어요. 그리고 사.실.은.

▶ 사실은?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작업을 남이 해서는 안 돼요. 제가 하는 걸 (김)광현이가 해야 하고, 정근우가 해야 해요. 자기 스스로 갖는 게 제일 좋은 거죠. 지금은 그걸 못하니까 그런데요. 그래야 진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거죠. 내가 얘기해주는 건 내 것이지 김광현 게 아니잖아요. 광현이가 공을 던지지 제가 던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선수들한테 전달하는 게 되게 어려워요. 우리한테는 최고의 포수인 박경완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으니까 투수들은 따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경완 이후를 대비해야 하거든요.

▶ 재작년에 박경완이 부상당하며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정상호가 성장하며 그 공백을 아주 잘 메웠는데요.

그때도 많은 일이 있었죠. 처음에 정상호가 마스크를 쓰고 7연승을 했어요. 그러다가 연패에 들어가며 난리가 났죠. 어떻게 보면 정상호와 박경완은 완전히 정반대잖아요. 박경완이면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에 정상호는 몸쪽 속구인 거죠. 그리고 투수들한테도 “경완이가 없으니까 너희 스스로 생각하며 던져봐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경기가 만들어져 간 거죠. 결국, 정상호로 7연승은 박경완의 반대라서 이긴 거고, 7연패는 상대도 돌고 도니까 파악이 되며 진 거고, 마지막엔 정상호가 자리를 잡은 겁니다.

▶ 결국은 박경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투수들 나름대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거네요. 물론, 박경완 중심인 건 변하지 않지만요.

우리가 투수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박경완의 생각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라는 거예요. 그냥 단순하게 로봇처럼 경완이가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고 해서 슬라이더를 던지지 말고, 왜 박경완이 슬라이더 사인을 냈는지를 생각하라는 거죠. 그렇게 하면 사인은 경완가 냈다고 해도 슬라이더가 그리는 선은 자기 감각으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 제구력의 정의를 내린다면 뭐라고 생각하나요?

▶ 제구력은… 흔히들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각도로 던지는 것이죠.

맞아요. 그게 제구력이죠. 결국, 같은 곳이라도 경완이가 그리는 선이 있고 투수 자신이 그리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그걸 얼마나 따라가느냐의 싸움인 것 같아요. 박경완이 잘하고 있지만, 투수들이 더 성장해야 한다고 봐요. 한 타자를 잡더라도 어떻게 볼 배합을 가져가겠다는 자기만의 구상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 노력을 해야 해요. 그런 게 아직은 미흡하니까 경완이가 쉬지를 못해요. 책임감이 강한 것도 있지만요.

▶ 사실 혼자서 포수로 한 시즌을 다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렇지만, 마음이 안 놓이니까요. 그래도 이젠 정상호가 있으면 쉴 수도 있다는 말은 해요. (입꼬리를 올리며) 실제로는 얼마나 쉴지 모르겠지만요. 저랑 경완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팀 평균자책점이에요. 팀 평균자책점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을 많이 해요. 그 외에 다른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요.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226n03696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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