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4.04
-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요.
“이상훈이지(웃음). 개성이 있는 선수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내 쪽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니까. 개성있는 선수도 살리고 팀도 살려야 하니. 양준혁, 김재현, 이병규, 김기태, 박철순도 그랬고, 감독 입장에선 일종의 시련일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상대를 인정해주는 거야. 그러면 상대도 따라오지.”
- 만일 일본에서 감독 제의가 온다면 가실 건가요.
“재미있지 않을까? 난 다른 사람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1군 감독 하다 1995년에 해태 2군 감독으로 간 것도 그런 이유야. 나보다 어린 1군 감독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어. 지바 롯데에서도 코치 가운데 연봉 세 번째 대우를 받았어. 한국 지도자가 한국에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어. 연수가 아니라 정식 감독, 코치가 돼야지. 김인식이라는 좋은 지도자는 메이저리그나 일본으로 가야 해. 축구나 배구에는 해외에서 뛰는 지도자가 있잖아.”
-서울고 2학년 때 감독님께 투구폼을 배운 뒤 스피드가 시속 10km 늘었어요. 그런데 감독님 가신 뒤에 다시 돌아오더라구요.
“폼이란 게 아주 미묘한 거야. 선수에 맞는 폼을 찾으려면 밤에 책을 보며 연구해야 해. LG 감독 그만 둔 뒤에는 전국을 돌며 인스트럭터를 했지. 그런데 어떤 팀에 가면 내가 가르치고 있는데 지도자란 사람들이 담배를 피고 있어. 지도자도 보고 깨우쳐야지. 프로라면 아쉬움, 억울함, 창피함을 알아야 해. 그래야 ‘왜’라고 묻게 돼. 그런데 우리 선수들에겐 아직 이게 부족해.”
- 예전 일인데 2002년 LG가 준우승까지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신뢰지. 감독과 선수 사이 믿음이 시즌이 흘러갈수록 깊어졌지. 2002년 LG때부터 내가 선수들의 심리를 살피기 시작했어. 내가 하는 야구에서 선수가 하는 야구가 된 거지. 뒤에서 한 발 물러나는 법을 배웠어. 그러니 선수들이 앞에서 잘 하더군. 지금 SK에선 그때보다 더 물러나 있어.”
- 감동도 여러 차례 있었죠.
“아쉬운 건 프런트와는 신뢰가 적었다는 거야. 내 책임이지.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 3월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으니까. 마음을 비웠어. 그러니 야구가 더 잘 보이더군. 한국시리즈 때 김응용 감독이 불쌍하게 보였어. 난 마음 비웠는데 저 양반은 이기려고 고민하는 게 보였으니까. 마음을 비우면 수가 보이지만 이기려고 덤비면 막막해져. ‘야구의 신’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거야.”
- 2002년 LG에 복귀했을 때 언론에서 ‘과연 김성근과 이상훈이 맞겠냐’고들 했어요. 실제 그렇진 않은데 저보고 자유분방하다더군요. 감독님은 어떠셨나요.
“내가 아는 이상훈은 효자야. 효자는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야. 고등학교 때도 봤지. 착했어. 난 착한 사람이 아니지만. 열심히 하겠다는데 딱 하나, 머리만 기르게 해 달라고 했지? 좋다, 대신 다른 선수들도 머리 기르게 하겠다고 했어. 이상훈을 특별 대우하지 않으면서도 인정하는 방법을 찾은 거지.”
- 오래도록 감독하셨으면 좋겠어요.
“꿈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 감독하는 거지. 글쎄, 이뤄질 수 있을까. 야구 감독 자리는 마약과도 같아. 갈수록 어려워지지만 쾌락도 커져. 선수가 변하고 팀이 변하는 걸 보는 게. 오래 하려면 몸 뿐 아니라 머리가 건강해야 해.”
- 기자들이 김응용 사장이 가장 부러워하는 분이 김성근 감독이라더군요.
“김 사장은 너무 빨리 은퇴했어. 그 사람이 그만 둬서 내가 한국 야구를 더 걱정하게 됐지. 김응용이라는 사람은 장미고, 나는 들꽃이야. 두 사람이 같이 있었으면 밸런스가 맞으니 더 좋았겠지. 우리나라는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을 너무 빨리 현직에서 그만두게 해.”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090404n0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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