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02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SK는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아깝게 KIA 패하며 분루를 삼켰다. 김광현, 박경완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부상에서 이탈한 가운데 시즌 막판 19연승과 함께 감동의 야구를 그라운드라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 연출했다. 그날의 좌절을 교훈으로 삼아 SK는 더 강해지면서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4연승을 거두며 정상에 우뚝 섰다. 한국시리즈 3연패에 실패했지만, 바로 1년 만에 왕좌에 복귀했기에 그 의미는 남달랐을 터이다.

김정준 SK 코치는 “울 줄 알았어요. 우승하고 펑펑 울 줄 알았는데, 눈물은 안 나오데요. 근데 먼 훗날 그 장면을 비디오로 다시 본다면 울 것 같아요. 그때는 눈물이 펑펑 나오겠죠”라며 우승의 순간을 떠올렸다. SK가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3번이나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야구전문블로그 ‘야구라’에서는 2010년 한국시리즈를 되돌아보는 김 코치의 말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진행 - 송민구, 배지헌, 손윤
정리 - 손윤 

▶ 작년 한국시리즈는 SK가 역대 6번째로 4연승을 거두었어요. 상대적으로 싱겁게 끝난 느낌인데요.

우린 걱정을 많이 했어요. 결과는 4연승으로 나왔지만, 그 준비나 과정은 어려웠죠. 게다가, 단기전이라서 다음도 없고요.

▶ 사실 지난 시즌 중에 만났을 땐 두산을 좀 경계한다고 느꼈거든요.

삼성도 어려운 상대인 건 분명해요. 단지 두산은 항상 껄끄러운 팀이죠. 게다가, 삼세판이라는 말도 무서웠고요.

▶ 두산의 어떤 점을 껄끄럽게 생각한 건가요?

전체적으로 작년의 두산은 초반과 마지막이 전혀 달랐어요. 우리가 무서워했던 거는 초반의 두산, 김현수, 이성열, 김동주, 최준석 등이 막 홈런을 치고 임재철, 고영민 등이 날아다니는 등 어디서 무엇을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죠. 두산 타선을 막을 투수가 없어요. 우리 팀에. 에이스인 김광현도 난타를 당했는걸요. 그리고.

▶ 그리고?

진짜 두산이 무서웠던 거는 김현수가 못 치고 있다는 점이에요. 만약 김현수가 잘 치고 있었다면, 심적으로 편했을 거거든요. 원래 못 치는 선수가 아닌데, 안 맞고 있으니까 우리 투수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거기에, 김경문 감독님이 김현수를 주연으로 해서 영화 한 편을 찍었잖아요.

▶ 플레이오프 4차전 7회 말 2사 만루에서 대타로 나와서 안타를 친 것 말이죠.

네, 사실 그 장면에서 김현수가 대타로 나와서 안타를 치는 게 머릿속에 싹 지나가더라고요. 그게 실제가 되고, 그런 분위기를 보며 한국시리즈에서 김현수를 만나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히메네스도 아주 좋았고, 이현승도 시즌과는 달리 몸 상태가 올라와 있었고, 왈론드는 우리 타자들이 쳐봐야 아는 거고요. 근데 그런 거는 있었어요.

▶ 어떤 것요?

우리 스스로 마인드컨트롤하기 위해 머릿속에 그린 것이지만, 조금 전에도 말한 것처럼 두산이 시즌 초반과는 다른 팀이라는 점요. 근데 그거는 김경문 감독님이 선택한 거잖아요.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렇게 할지, 아니면 시즌 초반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지만요. 만약 시즌 후반부터 준플레이오프 때까지의 두산이라면 2007, 2008년과 큰 차이가 없기에 한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은 들었죠. 저나 박경완이나 두산에 대해서는 압박감을 느꼈어요. 아, 물론 삼성도 부담스러운 면이 분명히 있었고요.

▶ 그럼, KIA는 어떤가요? 작년 KIA를 상대로 14승 5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는데, 재작년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것을 의식한 결과로도 보이거든요.

글쎄요. 그런 거는 없었어요. 한 시즌으로 본다면 KIA한테 거둔 1승이나 다른 팀에 거둔 1승이나 똑같은 1승이죠. 또 야구라는 게 이기려고 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굳이 말한다면, 시즌 첫 3연전 정도는 특별했을 수도 있겠죠. 아, 물론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만났다면 달랐겠지만요.

▶ 그건 그렇고, 재작년과는 달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는데요. 그 기다림의 시간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저만 해도 LG 시절부터 한국시리즈를 9번이나 했거든요. 재작년에도 준비를 못 한 거는 아닌데, 중간에 사건이 있어서 제가 붕 뜬 거 빼고는 그렇게 힘든 거는 없었어요. 이제는 2위 팀으로 올라갈 때와 1위 팀으로 기다릴 때와의 준비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저나 우리 팀이나 매뉴얼처럼 갖추고 있죠.

▶ 한국시리즈 직행이냐, 아니면 플레이오프 등을 거쳐 가느냐는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차이가 크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팀이 유리한 것은 분명해요. 근데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고 컨디션 조절하고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래서 무조건 유리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죠. 그거 있잖아요.

▶ ?

감독님이 한국시리즈에서 시즌 1위 팀한테 더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요. 그거는 시즌 1위를 한 것보다 한국시리즈 7경기가 더 크게 평가받는 현실을 지적한 거예요. 한 시즌 동안 힘들게 노력해서 공든 탑을 만들었는데, 7경기에서 결과가 나쁘면 한방에 훅 가는 거죠. 사실 프로야구에서 시즌이 중요한데, 구단만 해도 목표가 시즌 1위가 아니라 한국시리즈 우승인 것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시즌 1위가 더 평가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씀인 거죠.

▶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가 7차전까지 가면서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아뇨. 상대가 투수를 더 많이 쓰고, 선수들도 지쳐서 올라온다는 점은 있지만, 우리 선수도 잘 안 풀리면 그냥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그게 무서운 거죠. 그래서 1차전을 잘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흐름이라는 걸 무시 못해요. 상대가 체력적으로 지쳤다고 해도 우리도 그 흐름에 빠질 수 있거든요. 늪에 빠지면 끌어당기는 것처럼요. 선수들 분위기를 다잡고 그러는 게 힘들었어요.

▶ 재작년에 아쉽게 진 것도 있어서 더 많은 준비를 했을 것 같은데요.

준비야 항상 온 힘을 다하죠. 근데 그런 거는 있어요. 작년에는 분업화가 많이 됐어요. 예를 들어서, 타격만 해도 김강민은 제가 맡고, 왼손 타자는 전준호 코치, 나머지 선수는 세키가와 코치 이런 식으로요. 수비도 배터리도 그렇고요. 그런 면에서 지난 4년 동안 가장 많은 이가 힘을 합쳐서 준비했다고 할 수 있죠. 


지난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위기에서 구원 등판한 김광현이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한 뒤 포수 박경완과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투수교체와 대타기용이 한국시리즈를 좌우하다

▶ 조금 전에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1차전에서의 포인트는 김광현을 정우람으로 투수 교체한 거로 봅니다만.

그렇죠. 사실 우리 투수들이 정말 안 좋았거든요. 몸 상태가. 근데 1차전에서 김광현이 잘해주다가 그렇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몰랐잖아요.

▶ 김광현이 갑자기 무너진 이유는 뭔가요?

힘이 들어간 것 같아요. 그 이닝에. 갑자기 박경완이 공이 안 온다고 그러고, 사실 광현이가 올해 그런 게 좀 있었죠. 잘 던지다가 갑자기 볼, 볼, 볼 하면서 볼넷 허용한 적이요.

▶ 에이스의 갑작스러운 난조로 분위기가 안 좋아졌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때 정우람으로 투수 교체한 거는 김성근 감독님이기에 가능했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 더그아웃이 왁자지껄했는데, 한순간에 확 가라앉았죠. 거기에 우람이로 바꿀 줄은 몰랐어요. 그 카드가 다시 흐름을 우리한테 가져온 거죠. 그걸 보면서 ‘이래서 김성근 감독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에도 최일언 투수코치랑 투수들 몸 상태가 안 올라와서 걱정이라고 하면서도 “감독님이 있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지!”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 하긴 대다수 야구인이 매년 전력 누출밖에 없는 SK를 항상 우승후보 0순위로 거론하는 가장 큰 이유가 김성근 감독님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작년에 아깝게 진 게 약이 됐다고 봐요. 선수들 집중력이 남달랐어요. 7, 8년을 같이 생활했으니까 팀 미팅 등에서 눈빛만 봐도 어떤 분위기라는 게 보이거든요. 그 당시에 정근우, 박정권, 김재현 등이 예사롭지 않았죠. 2년 연속 한국시리즈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다가 한번 지면서 많은 걸 느낀 거죠. 계속 이기면서 강해지는 면도 있지만, 패배 속에 어떤 교훈을 얻느냐도 되게 중요하다고 봐요.

▶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상대가 이겨서 환호하는 걸 꼴 보기 싫어할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가슴에 새기고 더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봐요. 그건 그렇고, 삼성 선수들은 무기력하게 보였는데요.

으음,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거니까요. 7차전을 밤 11시까지 하고, 다음날 2시에 미디어데이하고 나서 그다음날에 경기한다는 게 쉽지는 않죠. 경기 감각은 분명히 우리보다 낫지만, 결정적으로 우리가 한 달 동안 어떻게 무엇을 준비했는지 모르잖아요. 삼성도 나름대로 준비를 했겠지만요.

▶ 2위로 올라왔을 때의 장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도 2등을 해봐서 알지만, 선수들은 그런 거는 있는 것 같아요. 힘들지만, 오늘 이기든 말든 한번 해보자는 정신요. 이게 무서운 게 한번 불이 붙으면 쭉 가는 거예요. 한국시리즈라는 그 큰 경기에서 부담감 없이 한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더 좋은 거죠. 단지, 문제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걸 넘어서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에 따라 분위기를 탈 수도 있고,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있어요. 그래서 어느 팀이나 첫 단추가 중요한 거죠. 




▶ 그런 의미에서 1차전 삼성 오승환을 무너뜨린 것은 시리즈 전체를 좌우했다고 해도 틀림없는데요.

우리도 오승환이 나올 줄은 알고 있었어요. 구자운은 의외였지만요. 어쨌든 오승환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첫째는 오승환은 오승환이라는 거죠. 우리가 오승환한테는 좀 콤플렉스가 있어요. 오승환을 제대로 공략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둘째는 그런 오승환이라도 부상에서 회복하고 나서 첫 경기가 한국시리즈라면 부담이 클 거라는 거죠. 그 둘째가 현실이 된 거예요.

▶ 그 장면에서 김강민을 빼고 박재홍을 대타로 기용한 것도 뜻밖이었어요.

사실은 내부에선 박재홍과 임훈 둘 중 누구를 로스터에 올릴지 고민은 좀 있었거든요. 근데 감독님이 재홍이를 선택하셨어요. 베테랑답게 차분하게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게 눈에 든 것 같아요. 스스로 자전거도 타고 러닝도 하고, 게다가 그걸 생각하면서 하더라고요. 그 차분함이 그 타석에서도 나타난 거죠.

▶ 그렇다고 해도 작년 만루에서 박재홍의 타율은 2할이지만, 김강민은 5할이었거든요. 결국, 만루에서 강한 타자를 약한 타자로 교체한 것인데, 이건 김광현을 정우람으로 교체한 것 이상으로 의외였어요.

* 박재홍은 2010시즌 만루에서 11타석 10타수 2안타 1볼넷이며 최근 4년간은 48타석 39타수 11안타 3볼넷을 기록했다. 김강민은 작년 만루에서 17타석 14타수 7안타 1볼넷이며 최근 4년간은 40타석 35타수 15안타 3볼넷이다. [기록 스탯티즈]

평상시의 박재홍이라면 쳤을 거예요. 투아웃의 만루면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선수라면 누구나 그런 욕망이 있잖아요. 하긴 김강민었다고 해도 무조건 쳤을 거예요. 강민이는 만루에서 안 친 적이 없죠. 감독님이 단순히 기록만이 아니라 현재 상황 등을 적확하게 판단하신 거죠. 어쨌든 박재홍이 볼넷을 얻어낸 게 분기점이 된 건 분명해요. 그리고 (김)재현이가 쐐기를 박았고요. 결국은.

▶ 결국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삼성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서 선수들 전체에 부정적인 사고가 쌓였다고 봐요. 그것이 3, 4차전에서도 나타났고요. 8, 9회에 위기가 있었잖아요. 삼성한테는 기회인데, 그걸 못 넘고 그대로 주저앉은 거죠.

#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

▶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렇지만, 시즌 때도 삼성 타자들은 기다리는 경향이 강했는데요.

팀마다 스타일이 있어요. 삼성 타자들이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는 건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시리즈 시작하기 전에 투수들한테 타자랑 붙어라, 피하지 말고 승부를 겨루라고 한 게 들어맞았다고 봐야겠죠.

▶ 3차전 9회 말 1사 후에 2안타와 2개의 폭투 등으로 동점 위기에 몰렸잖아요. 그때 작은 이승호가 진갑용, 조동찬을 루킹 삼진(꼼짝없이 지켜보다가 당하는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경기를 매조지 했지만, 경기 흐름은 삼성이 역전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어요.

진갑용이 안 친 거는 갑용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진 거로 봐요. 투스트라이크 쓰리볼이니까요. 그리고 조동찬은 아직 젊으니까요. 큰 경기에 그런 상황에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죠.

▶ 그런 의미에서 삼성은 양준혁의 부재가 뼈아팠다고 봅니다만.

양준혁의 유무가 되게 컸어요. 시즌 때도 그렇고 양준혁이 경기에 뛰든 안 뛰든 정신적인 기둥이었거든요. 젊은 선수들은 장·단점이 분명해요. 시키는 거는 정말 잘하려고 노력하고, 분위기를 한번 타면 정말 무섭죠.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지치지 않고요. 반면, 어떤 상황에서 응용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지죠. 이런 젊은 선수를 관리하며 버팀목이 되는 게 베테랑, 팀의 기둥이거든요.

▶ 사실 SK의 강점 중 하나가 풍부한 좌완 투수이지만, 삼성 좌타자한테는 강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최형우가 왼손 투수 볼을 잘 쳤어요. 채태인도 그렇고요. 삼성 왼손 타자들이 왼손 투수 볼을 잘 쳤죠. 광현이를 빼고요. 특히, 우람이는 시즌 때 삼성한테 되게 약했어요. 작은 이승호도, 고효준은 작년에 안 좋아서 시리즈 로스터에 못 올라갔고요. 어떤 의미에선 한국시리즈 때 올릴 투수가 없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 그리고?

(송)은범이도 삼성한테 약했고요. 특히, 채태인한테 워낙 약했거든요. 그것도 하나의 승부처였어요. 1차전에서도 아웃은 됐지만, 잘 맞은 타구였잖아요. 채태인이한테 송은범의 볼은 타이밍이 완전히 맞는 거죠.

▶ 송은범과 채태인은 천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3차전에선 삼진으로 돌려세웠거든요.

채태인 스윙이 송은범 공 궤적과 맞는 거니까 변화를 줘야 했어요. 미친 척을 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인코스만 잇달아 5, 6개를 던진다거나 하면서 송은범이 시즌 때와는 달라졌다고 채태인이 생각하게끔요. 이게 통한 거죠. 작은 이승호도 그렇고요. 




▶ 결국, 삼성 타자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4연승으로 나타난 거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타자들의 경향이 있었어요. 지금 삼성 타자 컨디션이라면 치기보다는 기다릴 확률이 더 높다고 봤죠. 한가운데 속구를 던졌을 때 홈런 칠 수 있는 선수는 누구누구니까 이 선수들만 좀 어렵게 승부를 겨루고 나머지는 정면승부를 하는 걸로요. 그리고 우리 투수진의 장점은 힘이 있지만, 경기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한 거고요. 아, 그런 게 있을 것 같아요.

▶ 뭐가요?

지난 한국시리즈도 그렇고 흔히들 우리 야구를 재미없다고 말하잖아요. 야구가 재미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어떤 점에서 그렇죠?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일본시리즈를 봤는데, 2차전이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그때 롯데 더그아웃 위에서 봤거든요. 1차전은 중앙에서 보면서 양 팀 포수인 사토자키와 타니시게의 움직임이 어떻다든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봤는데, 옆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냥 주니치 타자들이 되게 무기력하다는 생각만 드는 거죠. 결국은 모르면 재미없을 수 있다는 거죠.

▶ ?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와 달리 한국시리즈가 일방적이라서 보는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거죠. (고개를 끄떡이자) 근데 우리는 재미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야구가 됐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삼성을 잡기 위해서 쳐놨던 그물이나 노림수 등을 모르면 경기 내용이 너무 일방적이라고만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 동감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송은범이 채태인을 잡기 위한 수 싸움처럼 그런 과정을 모르면 SK야구가 재미없게 보일 수밖에 없죠.

삼성 타자들이 루킹 삼진을 많이 기록했는데, 그것도 거의 한가운데 속구에요. 그걸 우리 투수들이 던질 수 있게끔 한 여러 가지 작업들을 모르면, 제가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 타자를 보며 ‘왜 저렇게 못 칠까?!’라고 생각한 것처럼 똑같이 느낄 수도 있겠다는 거죠.

#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의 야구

▶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포수가 박경완이 아니라 정상호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경완이와 상호와의 차이는 다른 것 없어요. 얼마만큼 주느냐와 뺏느냐의 차이예요. 박경완한테는 거의 다 줘요.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주고, 나머지는 경완이한테 맞춰서 관리를 해주는 거죠. 정상호는 우리가 뺏는 부분이 많아요. 아, 물론 상호한테도 줘요. 주긴 주지만, 계속 확인하는 거죠. 즉, 박경완은 말을 안 해도 투수들이 따르지만, 정상호는 투수들이 따라가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해요. 그리고.

▶ 그리고?

박경완한테는 경기 전이나 중에 거의 얘기 안 해요. 징크스가 있어서요. 자기한테 이런저런 말을 하면 꼭 맞는대요. 예를 들어서, 감독님이 경완이를 불러서 커브를 좀 쓰라고 해서 그렇게 하면 꼭 탈탈 털려요. 경기 전에 선발로 나갈 투수가 오늘 포크볼이 좋은데 던지고 싶다고 하면 초반 난타당하고요. 그리고 박경완이라는 포수한테 주문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그런 거는 있어요.

▶ 어떤 거요?

이해는 시켜야 해요. 투수들한테요. 왜 박경완이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것요. 내가 봤던 관점이나 느꼈던 것을요. 예를 들면, 2차전에서 큰 이승호가 선발로 나왔잖아요.

▶ 선발로 나와서 1회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2회에 투아웃을 잡고 나서 갑자기 무너졌죠.

그 장면이에요. 2사 후에 조동찬한테 볼넷을 줬어요. 그리고 타석에는 진갑용이었고요. 견제, 견제하다가 피치아웃을 했어요. 벤치에서의 생각은 투아웃이니까 우리가 피치아웃을 한다는 걸 삼성 벤치에 인식시키고 싶었던 거죠. 시즌 때는 안 했거든요. 근데 큰 승호가 갑용한테 볼넷을 주며 강판당했어요. 승호 얼굴에 피치아웃 때문에 자기 흐름이 깨졌다는 생각이 살짝 보이더라고요.

▶ 큰 승호한테 피치아웃을 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네, 그래서 큰 승호한테 벤치의 생각을 얘기해주면서 “너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되게 중요해요. 그래야 투수도 이해하고, 또 박경완도 움직이는데 편하거든요.

▶ 아무리 단단한 둑이라도 개미구멍에 무너지듯이 사소한 불만을 내버려두고 쌓아두면 균열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그렇죠. 투수 나름대로 불만이 있을 수 있거든요. 투수들도 성장하면서 연봉이 오르고 주변에 대한 기대치도 커지고, 또 그에 부응하고자 하는 압박감도 있으니까요. 근데 안 맞으면 상관없어요. 결과가 좋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맞았을 때 박경완한테는 말할 수도 없고 속병을 앓을 수밖에 없잖아요. 재작년에 정상호가 마스크를 쓰고 나서 처음에는 투수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어요. 사실 그건 정상호만의 책임은 아니거든요. 박경완 없이 야구 경기를 한 게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벤치에서 사인을 내는 이도 계속 바뀌고 투수한테 주기도 하는 등 과도기가 있었어요. 결국, 신뢰가 가장 중요한 거죠. 투수들의 믿음요. 




▶ 실제로 재작년에 모 투수는 정상호랑 처음 할 땐 10개 던지면 9개가 자기 생각과는 다른 사인이었는데, 시간 지나면서 10개 중에 7, 8개는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요. 투·포수가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거죠. 결국은요. 그게 제일 좋고 이상적인 형태라고 봐요. 그리고 투수는 공 하나하나에 자기 의사가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서, 같은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해도 버리는 것과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 무조건 맞춰 잡는 것 등을 생각하며 연습을 통해 투구를 완성해 나가야 하는 거죠. 그런 선수들이 있어요.

▶ 예를 들면요?

예전에 16승 할 때의 문동환이 그랬잖아요. 어떤 용도냐에 따라서 같은 구종이라도 그 궤도나 변화가 다르게 하는 패턴이 보였어요. 근데도 당했어요. 왜냐하면, 투수가 어떤 의사를 가지고 투구를 하니까 순간순간 상대의 대응에 따라 변화를 주니까요. 즉, 어떤 틀이 완성되면 응용할 수 있어요. 그런 생각 없이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한 번은 통해도 두 번은 안 당해요.

▶ 볼 배합을 할 때 상대의 약점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그게 또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근데 박경완은 워낙 경험이 많으니까 기본적인 것들 이상을 가지고 있어요. 상대 타자의 스윙 메커니즘이 이러니까 어떤 볼은 잘 치고 어떤 볼은 못 칠 거라든지 어떤 볼에 대한 반응이 좋거나 나쁘다든지 이런 건 슬쩍 보고도 알죠. 그런데 너무 상대 약점만 파고들다가는 우리가 당할 수 있어요. 사실 그거는 되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데, 기본이 있거든요.

▶ 기본이라… 어떤 거죠?

기본적으로 우리 투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죠. 지금 마운드에 선 투수의 제일 좋은 볼을 살리면서도 상대의 약점도 의식하고 상황도 조율해가는 게 가장 기본이라고 봐요. 상대 약점을 안다고 해서 거기로만 던져도 안 되잖아요.

▶ 그렇죠. 상대 역시 자기 약점을 알기에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며, 또 거기를 정확하게 던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어려운 거죠. 상대의 생각을 읽어야 해요. 예를 들어서 타자가 지금 커브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몸쪽 속구로 갔는데 빵 맞아요. 생각과 몸이 따로인 타자들도 있어요. 또 사람이니까 반응 속도가 있잖아요. 그것까지도 계산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사실은 볼 배합이란 게 함정이에요. 타자한테는요.

▶ 타자한테 볼 배합이 함정이라는 건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는 의미인가요?

맞아요. 타자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 자체가 타격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그래서 함정인 거죠. 타자가 생각하게끔 하기에 볼 배합이라는 거 자체가 함정이에요.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302n22869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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