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전 태평양 투수, “혹사는 선수 탓”
최창호는 1989년부터 1990년까지 태평양에서 김성근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2001년 LG에서도 인연은 이어져 2002년까지 김감독과 함께한 그는 현재 은퇴 뒤 운동기구 사업을 하고 있다.(사진 김수홍)
- 김성근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
태평양에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다. 난 프로입단 뒤 바로 방위병으로 근무했는데 전역 5개월을 남겨 놓고 사령탑으로 오셨다. 첫 인상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 직전 시즌 꼴찌였던 태평양이 1989년 3위로 올라섰는데.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취임 직후 선수들을 데리고 마무리 훈련을 떠났다. 나는 방위병 근무로 마무리 훈련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훈련은 계속됐다. 나를 위해 박상열 코치와 불펜 포수를 인천에 남겨뒀다. 제물포고에서 3개월 동안 과외 교육을 받았다. 투구 밸런스부터 변화구 구사까지 많은 걸 배웠다. 주말이 되면 마무리 훈련장인 춘천으로 가 상태를 점검 받았다. 사실 강원도로 간 건 근무지 이탈이었다(웃음). 1989년 1월 소집 해제된 뒤 바로 1군 선수들과 훈련했다. 과외 덕에 몸이 가벼웠다.
- 김감독의 선수관리에 특징이 있다면.
성장할 때까지 꾸준히 기다린다. 프로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지만 여러 기회를 통해 선수가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구단의 사정으로 볼 때 가능성만 믿고 선수를 키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김감독은 과감하게 이를 실천했다.
- 투수 출신 감독이라 특별히 도움된 점이 있다면.
투수에게 마운드는 언제 내려갈지 모르는 외로운 공간이다.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상당수다. 정신적 압박이 심하다. 김감독은 이런 마음을 잘 이해했다. 말수는 적으셨지만 보이지 않는 배려가 상당했다.
- 훈련량이 많은 걸로 유명한데.
선배들이 많이 괴로워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똑같이 훈련하다 보니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감독이 엄격해서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어느덧 선참이 된 LG에서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움과 걱정이 엇갈렸다. 어린 시절 훈련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연습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바로 뻗어 버리기 일쑤였다. LG의 모든 선수들이 그랬다. 45일 가까이 진행된 훈련을 모두 소화한 건 나와 박만채뿐이었다.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과 궁합이 더 잘 맞으시는 것 같다.
- 선수들에게 간섭이 심했나.
아니다. 원정경기를 하러 갈 때 선수단 버스에 타지 않고 밥도 혼자 먹는다. 선수들끼리 편하게 지내라는 의미다. 훈련할 때는 집중하란 말씀만 하신다.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뭔지 아시는 분이다. 프로 시절 감독을 9명 만났다. 그 가운데 경기상황에 관계없이 일관된 표정을 보인 분은 김감독뿐이다.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LG 시절 선발 등판해 1회에 볼만 14개를 던진 적이 있다. 제구가 안됐다. 불펜에서 투수 2명이 몸을 푸는데 감독님은 여전히 무표정이셨다. 정신을 차리고 3타자를 내리 삼진으로 잡았다. 감독의 무표정한 얼굴과 마주치면 나도 모를 집중력이 생겼다.
- 김감독에게 혹사 논란이 있었는데.
혹사는 선수 개인의 관리 소홀 문제다. 기초체력이 튼튼하면 다칠 위험이 없다. 태평양 시절 피칭과 롱 토스를 포함해 전력투구로만 매일 공 700개를 던졌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1992년 부상을 당한 건 혹사가 아닌 몸 관리를 잘못해서였다. 밖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선발 등판하면 평균 140개를 던졌다. 무리다 싶으면 이야기를 했다. 내 몸을 잘 알면 혹사당할 일은 없다.
- 태평양 시절 정신력 강화를 위해 극기훈련도 했다.
오대산에서 4일 동안 얼음물에 24번 들락날락했다. 팬티 차림으로 등산도 했다. 가장 힘든 건 10시간 이상 이어진 행군이었다. 정신적으로 강해질 수밖에 없다. 불성실하면 무조건 2군행이었다. 워낙 엄격하셔서 모두 이를 악물고 해냈다.
- 따로 방에 불려가 훈련 받은 적이 있나.
연습이 끝나고 방에서 쉬고 있을 때 가끔 방으로 부르셨다. 글러브를 끼고 신발을 신은 채 가 투구폼을 잡으면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교정해 주셨다. 공짜로 과외를 받는 기분이었다.
- 김감독이 한국프로야구에 끼친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성공만큼이나 실패도 많이 겪으셨다. 더 큰 성공을 위한 시행착오였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서 한국야구가 발전한다고 본다. 야구는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내용으로 평가해야 옳다. 남들은 뭐라고 할 지 모르지만 내게 김감독은 한국야구계의 큰 별이다
심성보 전 쌍방울 외야수, “혹독한 훈련 덕”
1995년부터 5년간 쌍방울에서 김성근 감독과 인연을 맺은 심성보는 2001년 LG에서 재회해 2년을 함께했다. 지병인 당뇨로 2003년 삼성에서 은퇴한 그는 현재 휘닉스 야구단 감독으로 일한다.(사진 김재현)
-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쌍방울에 감독으로 오면서부터다. 처음엔 누군지 잘 몰랐다. 선배들에게 운동을 많이 시키는 감독이란 이야기만 들었다. 섬뜩했다. 체력훈련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떻게 꾀병을 부릴까 고민했다(웃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90% 이상이 불안에 떨었다. 입단식에서 인사 드리는데 한국말이 서투르셔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한숨만 나왔다.
- 훈련은 어땠나.
혹독했다.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야구만 했다. 고교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왜 했던 걸 또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선수들 모두 훈련이 끝나면 녹초가 돼 눕기 바빴다.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딴짓 할 여유를 안 주셨다. 술을 먹거나 몰래 나돌아 다니기가 불가능했다.
- 선수들 사이에서 김감독과 친하다고 소문 났는데.
농담 섞인 대화를 많이 해 그런 것 같다. 쌍방울 시절 주장인 (김)기태 형 외에 감독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선배가 거의 없었다. 선배들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런데 LG시절엔 어린 선수들이 말을 잘 건넸다. 내심 놀라웠다. 사실 감독 말씀을 알아듣기란 쉽지 않다. 한국말이 서투르셔서 처음엔 10마디 가운데 1마디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네’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가면 ‘내가 뭐라고 했지?’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우물쭈물거리면 돌아오는 건 꿀밤이었다.
- 타격훈련은 어땠나.
쉴 새 없이 시키셨다. 가끔 무리해서 볼이 두 개로 보일 정도였다.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훈련이 언제 끝날까를 생각했다(웃음). 경기내용이 좋지 않으면 경기가 끝나고 관중이 나간 뒤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힘든 내색을 해도 감독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나중에 요령이 생겨 눈치껏 쉬었다. 그러다 걸리면 ‘집으로 가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40일 정도 집에서 쉬면 저절로 감독님 앞에 가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면 ‘똑바로 하라’고 말씀하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 주신다. 김감독은 포기하지 않는 선수는 절대 놓는 법이 없다.
- 엄하게 선수들을 다스렸나.
잘못이 있을 때만 그랬다. LG와의 원정경기 때 방에서 (성)영재 형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 맥주를 한 캔만 먹었는데 영재 형이 한 개만 더 먹자고 해 후배 (배)국진이를 불러 3만 원을 쥐어주고 몇 개만 사오라고 했다. 그런데 국진이가 맥주 30캔을 사 들고 오다 감독에게 걸렸다. 당시 맥주 한 캔이 천 원이었는데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뺨을 20대 정도 맞았는데 워낙 손이 크시다 보니 정말 아팠다. 억울하기도 했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귀가 안 들렸다. 다음날 경기가 더블헤더여서 더 화가 나셨던 것 같다. 그때 외엔 엄하셨던 적은 없었다.
-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면.
선수들을 모아 놓고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매번 말씀하셨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강훈련을 시켰다. 홈송구가 엉망이면 몇 시간 동안 홈송구만 했다.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 김감독이 쌍방울을 맡은 뒤 성적이 크게 올랐는데.
첫해 2위를 했다. 그동안 했던 혹독한 훈련이 모두 잊혀졌다. 개인적으로 김감독께 감사드린다. 팀에 기태 형처럼 좋은 타자가 있는데도 날 4번 타자로 쓰셨다. 득점 상황에서 타율이 좋아 그랬다고 하셨다. 난 다른 팀에 가면 4번 타자는 꿈도 못 꿀 선수였다. 김감독님은 내게 야구에 대한 희망을 주셨다.
- 김감독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면.
프로생활을 하며 6명의 감독을 만났다. 그 가운데 가장 정이 많은 분이다. 선수들을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한다. 김감독님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색깔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에 대해 편견 없이 자신의 주관대로 팀을 이끄는 자세는 존중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 김감독은 당신에게 어떤 인물인가.
제2의 아버지다. 프로무대에서 내게 많은 기회를 주셨고 당뇨병으로 선수생활의 기로에 서있을 때도 힘이 돼 주셨다. 사실 부끄럽다. 성공해 감독님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감독님을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고마움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안양·천안=이종길 기자
[출처] SPORTS2.0 제62호(발행일 2007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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