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0.31

김성근 SK 감독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한 다음날 인천 도원구장을 찾아 2군 훈련을 지켜봤다. 인생 최대 승부에서 첫 판을 졌는데 2군 훈련이라니.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퇴의 그림자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 감독은 사령탑으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다음날인 지난 30일에도 도원구장을 찾았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올 시즌 이후 2군 훈련 스케줄까지 들어있다. 축제는 하루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김 감독은 "내 재주가 야구밖에 더 있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부터 그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나마 야구를 하는 것이 차별을 덜 받는 길이었다. 현재가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그의 신념은 장인으로 추앙받는 지금까지도 흔들림 없다.

이광길 SK 수비코치는 "감독님은 잠자리눈을 가졌다"고 말한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선수까지 보고 있다는 뜻이다. 덕아웃에서 농담하다가도 "김재현이 오늘 스윙이 좋네"라고 한다. 등 뒤에서 선수들이 우루루 지나가면서 인사하면 "20명이 지나가면서 인사 제대로 한 녀석은 셋밖에 없어"라고 웃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은 분명 독선이다. 효율적이지도 않다. 김 감독 스스로 투수·타격코치까지 하자 보직코치 역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일본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아들(김정준 SK 전력분석팀장)이 "왜 아버지 혼자 모든 것을 다하시려 하시냐.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한 뒤부터는 많이 바뀌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개막에 앞서 코치들을 불러놓고 "나 혼자 힘으로 4강에는 들 수 있다. 우리는 더 큰 목표가 있다. 하나보다는 여럿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심각한 감독 집중형 시스템이었던 김 감독의 지휘 스타일이 코치 분산형으로 변했다. 여전히 감독의 결정권이 8개 구단 중 가장 높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참모진에 상당 부분을 양보하고 기대했다.

엉덩이가 들썩거려도 참았다. 훈련을 모른 척 하고 개인운동을 하거나 취재진과 한가한 얘기를 했다. 잘 나가던 팀이 6월에 삐걱거렸다. 참다 못한 김 감독이 나섰다. 경기 전 반바지 차림으로 선수 하나하나를 붙들고 개인교습을 했다. 예전보다 더했다.

감독이 직접 나서자 할 일이 없었진 코치들은 바짝 긴장했다. 서로 모여 수다 떠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노는 듯 했지만 선수들을 꿰뚫고 있었던 김 감독이 만지는 선수마다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잘 나갈 때도 조심해야 한다. 너희들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한다'는 메시지였다.

팀이 정상궤도에 복귀하자 김 감독은 다시 후선으로 물러났다. 코치들도 다시 뛰었다. 감독이 현장을 장악하면 코치들은 더 긴장하고 노력한다. 참모 역할이 활성화된 덕에 지휘관은 한 단계 앞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김식 기자

출처 :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932075

Posted by 개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