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2002년 11월 10일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린 대구구장. 삼성의 우승이 확정되고 더그아웃에 홀로 앉아 있는 LG 김성근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악수를 청한 박철영 코치는 깜짝 놀랐다. 찬바람이 부는 11월이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의 손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눈물도 보였다. 잠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나서 김성근 감독은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짧게 대답했다. 5년이 흐른 2007년. 김성근 감독의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김성근을 두고 나이 말고는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SK 선수단은 김성근 감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SK 정경배, 박경완, 김경기 코치, 김정준 전력분석 과장.(사진 김수홍, 선원익)
정경배> 지난해 12월 미야자키 훈련장을 잊을 수 없다. 지옥 아니면 군대였다. 숙소, 바닷가, 야구장 말고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수퍼마켓 하나 없어 야구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루는 뛰고 있는 젊은 선수들 뒤에서 선참급들과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는데 뒤통수가 따가워 뒤를 돌아보니 감독님이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날 우린 죽었다. 아스팔트길을 전력으로 뛰어간 뒤 운동장을 30바퀴나 돌았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 특징은 무한 반복이다. 조용한 카리스마가 강점이다. 연습 때나 경기 때나 말이 없다. 대신 “몸으로 연습하면서 느끼라”고 강조한다. 몸이 되면 다음은 정신이다. 수많은 정신교육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남자는 다른 사람이 간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이다.
박경완> 외부에서는 어떻게 말할지 몰라도 나는 김감독이 다른 감독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방법론의 차이다. 선수 교체를 자주 하는 것은 일종의 자극제다. 쌍방울 시절에도 비슷했다. 훈련할 때는 완벽을 추구한다. 너희들이 이렇게 훈련을 많이 하는데 이기지 못하면 아쉽지 않느냐며 승부근성을 일깨운다.
민경삼 운영본부장> 선수들이 김감독을 만나면 열심히 한다. 야구에 대한 열정 때문인 것 같다. 김감독 밑에서 일하면 힘들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요구사항이 없다. 감독과 프런트가 충돌한 일이 올해 한 번도 없었다. 스포테인먼트는 성적이 받쳐 주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었다. 6월 중순 자체 설문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1,022명 가운데 과반수를 넘는 인원이 “성적이 좋아야 야구장에 온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겨야 관중이 온다.
김정준 전력분석 과장>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념이다. 집에서도 야구만을 생각한다. 한 손에는 야구 메모, 다른 한 손에는 야구서적, 그리고 눈은 경기를 찍은 비디오를 향한다. 24시간이 짧을 것이다. 보통 새벽 1시에 주무시고 오전 7시에 일어나신다. 예전에는 하루에 2,3시간만 주무시는 경우도 봤다. 아들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훈련을 등한시하다 걸리면 새벽 2,3시까지 연습했다. 술은 예전에 많이 드셨는데 이제는 맥주만 약간 마신다. 담배는 예전부터 피우지 않았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다.
김경기 코치> 1990년 신인시절 태평양에서 김성근 감독과 만났다. 선수교체 능력이 뛰어났다. 그때 갈비뼈에 금이 갔는데 경기에서 빠질 것 같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서다 보니 전 경기를 뛰었다. 태평양 때도 벤치 인원을 모두 가동해 경기 막판에 가면 남아 있는 인원이 없었다. 강훈련으로도 유명했다. ‘잠수함 사건’을 잊지 못한다. 일본 캠프에서 한 달 동안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며 타격연습을 했고 저녁에 달을 보며 숙소로 돌아왔다. 훈련기간이 끝나고 귀국하기 전 해안에 떠있는 잠수함을 봤다. 무척 신기해 이선웅 선배에게 흥분해서 “저 잠수함 좀 보라”고 소리쳤는데 선배는 “저 잠수함, 한 달 내내 떠 있었다”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SK 김상진 코치, 김광현, 박철영 코치, 나주환.(사진 김수홍, 선원익)
김상진 코치> 경기 분석 능력이 놀라울 정도다. 선수를 보는 눈도 뛰어나다. 보통 팀에는 한두 개의 구심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SK에서는 전원이 구심점이다. 서로서로 부족한 면을 메워준다. 김감독의 지도를 받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투수 윤길현을 보자. 지난해 윤길현은 이틀 연투가 힘든 투수였는데 올해는 3일을 계속 던져도 문제가 없다. 모두 훈련의 결과다.
김광현> 김감독의 말이 마술처럼 딱딱 들어맞는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더 그렇다. 볼 배합 사인을 벤치로부터 받는데 신기하게 예측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에 와서 김감독을 만나고 주자를 견제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나주환> 더그아웃에는 늘 경쟁의식과 긴장감이 흐른다. 타격기술면에서는 SK로 온 뒤 하체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어깨를 더 닫고 치는 법을 알게 됐다. 오른쪽으로 밀어치는 타격에도 눈을 뜨게 됐다.
박정권> 늘 주문하는 내용은 약육강식이다. “너희들은 벼랑 끝에 서있다”고 하면서 ‘뒤처지면 먹힌다’ 또는 ‘생존’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감독을 만나면서 하체를 쓰는 타격에 눈을 떴다.
박철영 코치> 김감독을 처음 본 것은 청소년대표선수였던 1978년이다. 그때 김감독은 충암고 감독이자 청소년대표팀 코칭스태프였다. 말할 때 일본식 어투가 있었지만 절도감이 있었다. 그 시절부터 오더를 짜는 데 완벽을 기했다. 2002년 LG에서 다시 만났다. 김감독은 야구를 풀어가는 방법이 많다. 선수들의 약점을 철저한 연습으로 보완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 때는 내가 봐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상황인데 속으로 삭혔다. 매우 냉정하게 자신을 통제한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한번은 신윤호가 김감독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감독님, 저 컨디션 안 좋아요”라고 어리광을 부리자 김감독은 “이 녀석아 공이나 잘 던져라. 그리고 여기를 주물러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다른 팀 더그아웃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선수단에 보너스가 나오면 밥집 아주머니부터 선수단 버스 운전기사까지 팀과 관계된 모든 분의 명단을 확인해 나눠줬다. 지휘와 통솔 두 가지가 모두가 되는 지도자다. 난 지금도 김감독을 ‘대장’이라고 부른다.
이광길 코치> 한때 김감독 양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김감독의 인간 됨됨이에 감명을 받아 제자들이 환갑잔치까지 열어드린 것 아닌가. 김감독 밑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잘 안 풀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김감독 옆에 있으면 야구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허튼 행동을 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늘 야구생각이다. 아마 1,000시간 대화하면 999시간은 야구 이야기일 것이다. 나머지 한 시간은 “우리 밥 먹으러 어디 갈까” 정도 일 것이다. 앞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늘 뒤에서 지켜보고 소식을 물어본다. 그래서 제자들이 좋아하고 나중에 감동을 받는다.
정명원 현대 코치> 1994년 태평양 때부터 주전 10명을 고정적으로 쓰면 후반기에 가 밀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실제로는 될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더그아웃에 흘렀다. 선수들에게 독기를 품게 한다. ‘내가 이런 성적을 내려고 겨울에 그렇게 심하게 훈련했나’라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힘으로 변한다. 100%의 경기력을 위해 훈련 때 130%를 운동한다.
김강민> 타격훈련만 8시간을 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타격연습 시간은 개인적으로 해도 30~40분, 특타를 해도 15분이다. 기본훈련이 끝나면 감독에게 지명된 타자는 ‘특특타’ 훈련까지 받아야 한다. 지명 받지 못한 선수들은 다시 옆에서 체력훈련을 계속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SK 이광길 코치, 정명원 현대 코치, SK 김강민, 안교훈 기록원, 윤길현, 이영욱.(사진 김수홍, 선원익)
박철호 홍보팀장> 인자하다. 표현을 잘 안 하지만 애정이 있다. 같이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김성근 감독 울타리를 벗어나면 알게 된다.
조규제 현대 코치> 쌍방울에서 1996,97년 2년 동안 김감독과 함께 야구를 했다. 까다롭고 빡빡한 분이라고 이야기 들었는데 실제로 겪어 보니 참 정이 많은 분이었다. 김감독의 요구사항을 실천하려면 야구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투수 로테이션 같은 것도 그때 많이 배웠다. 상황별로 요소요소마다 점검한다. 팀 미팅을 많이 했다. ‘야구를 왜 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의 3가지를 강조했다. 훈련강도가 세 아침에 운동을 시작해 밤이 되면 유니폼은 온통 흙으로 범벅이 됐다. 투수들은 행복했다. 땅에 넘어질 일이 없었으니까.
이영욱> 나이에 비해 야구를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예전엔 몰랐다. 김감독의 정신교육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도전 정신도 갖게 됐다.
윤길현> 지난해 연투 능력이 부족했는데 올해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위기의식이 없었다.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투수의 장단점을 훤히 꿰뚫고 있다. 예전에는 던질 때 팔 스윙이 퍼졌는데 올해부터 짧게 끌고 나와 최대한 앞에서 던지라는 지시를 받고 그렇게 던지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해 약했던 이대호에 대한 대응력도 좋아졌다. 잦은 투수 교체에 나도 의아해 한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여기서 더 던지면 팀이 위험해 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안교훈 기록원> 많은 승리를 거두며 전반기를 1위로 마쳤다. 김감독은 모든 걸 성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이기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본다.
최홍성 홍보팀 매니저> 가장 놀랐던 것은 짧은 시간에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까지도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오랜 세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4,5개 포지션을 비롯해 팀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본다. SK는 미래가 더 밝을 것 같다. 팀 체질 개선을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자는 김감독뿐이다.
이재원>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자신감이다. 선수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늘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훈련은 힘들다. 그러나 정이 많고 카리스마가 있어 선수단을 장악한다. 김감독은 선수들을 조용히 관찰한다. 류현진(한화)에 대한 감이 좋았는데 어떻게 그걸 보셨는지. 류현진에게 강한 면 때문에 개막전에 나가 홈런을 쳤다.
익명 1> 한 번도 김감독과 함께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감독실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이동할 때도 늘 혼자다. 배려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냉정한 모습이 지나칠 때가 있다.
익명 2> 경기 중반 상대 팀이 포기했는데 우리 팀은 끝까지 평소처럼 한다. 다른 팀에서 SK를 지겨워 할 수도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마지막 타석까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음날 경기에서 빠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잘하는데 갑자기 빠지면 서운한 감정이 든다. 팀이 이기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천=심현석 기자
[출처] SPORTS2.0 제 62호(발행일 2007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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