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3

그가 신일고로 가게 된 것은 장난처럼 내뱉은 한마디가 확대된 것이 발단이었다. 중간에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이 작업을 했던 것이었다.

79년 서울 무교동의 대한체육회 건물 지하 다방에서 김동엽 한을룡 등과 만났다. 한동화 감독이 신일고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김성근은 “내가 거기 가면 안될까?”라고 무심코 농담을 했다. 별 뜻이 없었다. 실제로 충암과 5년 계약이 돼 있어서 자신이 신일 감독을 맡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당시 한양대 감독을 맡고 있던 김동엽은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했던 모양이다. 며칠 후 김동엽이 집앞까지 찾아와 특유의 황해도 사투리로 “성근이. 나와 보라우”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 자리에는 신일고 이사장과 교장까지 함께 와 있었다.

아뿔싸. 김성근은 “난 그때 장난이었다”고 말했지만 김동엽은 “너 신일 간다고 했지. 그래서 내가 다 얘기해놨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러나 농담이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한말이었으니 김동엽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충암고가 발칵 뒤집혔다. 충암선수들이 이 사실을 알고 모두 찾아와 울었다. 김성근은 사실 자신을 파면하려했던 충암고에 대해서는 큰 미련이 없었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선수들이 모두 찾아와 울면서 붙잡았을 때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일고를 찾아가서 “도저히 안되겠다”고 말했지만 신일고에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구애를 했다.

충암고측은 김성근에게 “5년 계약을 했는데 3년도 안됐다. 그때 준 600만원을 다 뱉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기업은행 직장을 그만두고 충암고 감독을 맡았던 것은 600만원의 거액계약 때문이었는데…. 스스로 5년 계약을 채우지 못했으니 결국 그 돈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충암고는 곧바로 신일에서 잘린 한동화를 감독으로 영입하며 맞불작전을 썼다. ‘이에는 이’라는 대응이었다. 당시 고교야구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으니 언론들도 김성근과 한동화의 맞교환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팬들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신일과 충암은 감정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한동안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김동엽은 39년생으로 김성근보다 3살 위다. 걸쭉한 입담과 기행으로 유명했지만 절친하게 지낸 사이다. 황해도 사리원 태생으로 1?4후퇴 때 남으로 넘어와 정착했다. 항상 “나는 38선을 넘어온 38따라지야”라며 등번호도 ‘38’번을 달았을 정도다. 묘하게 올해 김성근도 SK 감독을 맡아 38번을 달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 김동엽이 MBC. 김성근이 OB 감독을 맡았는데 서울 라이벌팀 사령탑으로 입씨름을 자주 펼치기도 했다. 이는 프로야구 흥행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올해 SK 김성근과 한화 김인식 감독의 설전이 화제가 됐지만 프로에서는 김동엽-김성근의 입씨름이 설전의 원조격이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6865.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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