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1

대구 대건고 선수 18명과 부산고 신경식도 영입한 충암고는 77년 황금사자기 8강에서 신일고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신일고는 박종훈(두산 2군감독). 양승호(고려대 감독). 김정수(전 MBC, 작고) 등이 포진해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에이스 기세봉이 9회 1사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벌이며 1-0으로 앞섰으나 통한의 3점홈런을 맞고 역전패했다. 당시 포수 조범현이 서울운동장(현 동대문구장) 그라운드에 그대로 주저앉아 대구 사투리로 “우리 우짜노. 대학 우찌 가노”라면서 통곡을 한 장면은 김 감독의 머리 속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국대회 4강에 올라야만 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서울만 해도 김용수 김상훈이 버티고 있는 동대문상고(현 청원고). 오영일 박철영이 주축인 배명고 등의 전력이 좋았던 시절. 충암선수들로서는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는 4강진출을 눈앞에서 놓치고는 그렇게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김성근은 그 선수들을 반드시 대학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봉황대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큰 사고를 당했다. 선수 곁에 붙어서 스윙을 가르치다 한 선수가 휘두른 배트에 입부위를 그대로 맞고 말았다. 피가 흐르는 입술을 움켜쥐었는데 혀의 감촉이 이상했다. 앞니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3개씩이나.

선수들이 피를 흘리는 감독을 보고 오히려 더 당황했다. 그는 고통스럽게 입을 틀어쥐고 불분명한 발음으로 “땅에 떨어진 이나 찾아봐라”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선수들이 부러진 이 3조각을 모두 찾아왔다. 그는 그 와중에 “이가 3개 다 썩었네. 벌레가 먹어서 하나도 쓸게 없네”라고 농담을 하며 이를 다시 던져버렸다.

“정말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입술까지 다 터졌으니까. 그러나 내 잘못이지. 선수가 배트를 휘두르는데 그 옆에 있었으니. 그 선수나 다른 선수가 당황하는 걸 보니 내가 화를 내면 안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농담을 했더니 하얗게 변했던 선수들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는거야.”

김성근은 선수들에게 훈련에 집중하라고 말한 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입술을 24바늘이나 꿰맸다. 그 사고로 인해 그의 위쪽 앞니 3개는 모두 의치다.

충암고는 제7회 봉황대기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더니 마침내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광주진흥고를 5-0으로 격파하고 충암고 야구부 창설 9년 만에 첫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하는 감격을 누렸다. 프로에서는 올해 처음 우승했지만 김성근 개인적으로 77년 봉황기가 첫 우승이었다.

그러나 우승 후 3개월 만에 충암고측에서 김성근에게 “당신은 파면이야”라고 통보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5835.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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