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09

76년 충암고에서 감독을 맡아달라고 했다. 기업은행 코치 시절 가끔씩 인스트럭터로 나섰는데 그 인연을 맺은 것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안정적인 은행직장을 그만둬야했기 때문이다. 마산상고 감독을 맡았을 때는 기업은행 감사였던 이창현씨의 부탁이 있었고. 기업은행 마산지점으로 발령을 내주는 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충암고로 가기 위해서는 기업은행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처와 1남2녀를 둔 가장으로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충암고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했다. 5년 계약에 600만원의 계약금과 월급 30만원. 당시 기업은행 총무과 대리였던 그는 월급 15만원을 받고 있었다. 은행에서 15년간 일한 그가 퇴직금을 500만원 받던 시절이다. 충암은 여기에다 30평짜리 집을 제공하고 자녀들 학비까지 전액 책임지겠다고 했다. 고교야구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으니 고교감독에게 그런 엄청난 몸값을 제시했던 것이다.

선수가 부족했다. 아내에게 10만원만 달라고 했다. 선수스카우트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야했다. 일단 군산상고로 가서 친구인 최남수를 만났다. 거기서 선수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구 대건고가 야구부 해체를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여기서 포수 조범현 등 18명의 선수를 모두 충암고로 데리고 올라왔다. 처음에는 부모들이 반대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선수를 싹쓸이한 것이다.

마산상고 시절 혹독한 훈련에 선수가 쓰러지면 양동이의 물을 부어 일으켜세웠던 ‘독종’ 김성근은 충암고에 부임해서도 마찬가지로 선수들을 훈련 속으로 몰아넣었다. 학교버스가 있었지만 학교측에 버스는 필요없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6시에 선수들을 깨워 웨이트트레이닝 기구를 손수레에 싣고 서울의 충암고에서 경기도 고양시 원당에 위치한 농협구장까지 구보로 갔다. 북한산성을 오르내리게 만들기도 했다. 산성 밑자락에서 자신은 훈련 후 선수들이 먹을 찌개를 직접 끓이면서 선수들은 줄기차게 산을 오르내리게 했다.

현재 KIA 사령탑을 맡고 있는 조범현은 “감독님 밑에서 정말 곡소리가 날 정도로 훈련했다. 한번은 원당에서 서울로 뛰어서 오는데 자전거를 타고 선수들을 독려하던 감독님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잠시 걸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모퉁이에 숨어서 누가 게으른지 지켜보고 있었다.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77년 봉황대기를 며칠 앞두고 김성근은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3개가 부러지고 입술을 24바늘이나 꿰맸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5315.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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