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2

충암고에서 선수들의 사고가 잇따랐다. 야구부 창단 후 첫우승을 차지한 봉황대기 이전에 선수들끼리 난투극이 벌어지면서 한 선수는 머리가 터져 병원에 입원했고.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또다른 선수도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김성근은 학교측에 이를 보고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보고를 했다면 선수는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보고하지 않은 것이 탄로가 난다면 자신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선수의 앞날을 생각해 이를 숨겼다.

다행히 학교측에서는 사고의 내용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봉황대기 우승 3개월 후 다른 이유로 감독 김성근을 곡해하게 된다. 몇몇 선수가 한양대로 진학하기로 돼 있었는데 한양대 야구부측 인사 한명이 스카우트 비용을 가로챘다. 그러나 스카우트 비용이 공중에서 사라진 사실이 탄로나자 한양대 인사는 “김성근에게 건넸다”고 둘러댔다.

충암고 고위층에서는 김성근을 불러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당신은 파면이야”라고 통보했다. 충암고 야구부가 생긴 지 9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만들었는데 이건 무슨 일인가. 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카우트 비용의 배달사고 주인공은 김성근이 아니라 한양대 인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성근은 계속 충암고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는 “난 당시 무슨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어. 충암고에서 날 내보내려고 할 때 대충 그런 일이 생겨서 학교에서 오해를 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리고는 그냥 넘어갔어. OB 감독을 하던 시절에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지. 일이 생긴지 8년인가 9년인가 이후에서야 일의 전말을 알게 됐어”라며 웃었다.

김성근은 그때도 그랬지만 프로에서도 자신에 대한 오해가 생기면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오해에는 항상 누군가의 음해가 개입돼 있었다. 그러면서 오해가 부풀려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야하는 일도 곧잘 발생했다. 그가 자신을 해명하거나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성격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구차한 변명보다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가지 않겠다는 강한 성격 때문이었다. 적당히 타협하거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을 썼더라면 인생이 훨씬 부드럽고 윤택해 질 수 있었지만 그런 수월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그 성격 때문에 그는 언제나 고독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김성근은 79년 신일고 감독을 맡게 된다. 충암고 감독을 그만 두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자 충암은 신일 감독에서 막 물러난 한동화를 사령탑으로 영입하는 맞불작전을 택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이는 ‘기인’ 김동엽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6074.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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