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07

한국에 들어와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그야말로 짧고 굵게 선수생활을 마치고 69년부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처음 감독을 맡았던 팀은 69년 마산상고였다. 그러고보니 SK와 2년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이면 40년째가 된다. 어쩌면 ‘김성근’보다는 ‘김 감독’이 더 익숙한 이름일지 모르겠다.

그가 마산상고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당시 기업은행 감사였던 이창현씨 때문이었다. 이창현씨는 마산상고 출신. 야구부를 창단한 지는 꽤 됐지만 전국무대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한 약팀 중의 약팀. 자신의 모교를 김성근에게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김성근의 부모 고향이 경남 진양군(현재 진주시 편입)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창현씨는 김성근이 오효순씨와 약혼식을 할 때 아버지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김성근 부부는 그래서 그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마산상고 월급은 9000원에 불과했다. 선수들 목욕비만 계산해줘도 적자가 날 정도로 쥐꼬리만한 월급이었다. 그래서 이창현씨는 김성근을 마산지점으로 발령을 냈다. 기업은행 월급을 받으면서 마산상고를 지도해달라는 뜻이었다.

67년 오효순씨와 결혼한 뒤 68년 서울 갈현동에 처음 내집장만을 한 김성근은 마산으로 발령이 났으니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내는 처음 지방살이를 해야만 했다. 당시 큰딸 1명을 두고 있었다.

막상 마산으로 가보니 선수들 실력이 형편 없었다. 야구를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지 않았다. 야구를 하다 하늘에 비행기가 뜨면 선수들이 야구를 그만두고 비행기 구경을 하기 바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때부터 선수들을 지옥훈련으로 내몰았다. 선수들이 강훈련에 견디지 못해 쓰러지면 양동이의 물을 부어 일으켜세웠다. 선수들은 이런 김성근을 두고 “사람새끼가 아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선수들은 걸핏하면 도망가기 일쑤였고. 그는 선수들을 잡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김성근은 “사실 그때는 선수들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도 몰랐어.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선수들을 훈련으로 몰아넣었어.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심했어. 마산상고에서 가르쳤던 선수들 중 야구선수로 성공한 애는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 한국시리즈 우승하니까 마산상고 출신 두세명에게 축하전화가 오더라고”라며 웃었다.

72년 기업은행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기업은행 코치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연세대 감독 얘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재일동포 출신으로 절친한 선배였던 배수찬과 이상하게 일이 꼬이면서 서먹해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4482.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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