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슈를 생산해내는 김성근 감독.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과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사진=한화 이글스)
지난 주말 목동야구장에서 펼쳐진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개막 2연전은 KBO리그의 최고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보는 듯 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1,2차전 모두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많은 야구팬들은 한화의 달라진 경기력에 집중했다. 겨우내 ‘지옥훈련’이라고 불릴 만큼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낸 그들이 정작 시즌 들어가서 어떠한 경기력을 선보일지 궁금했던 터라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2게임이었지만, 한화 선수들이 보인 경기 내용은 분명 1년 전과는 차이가 있었다.
# ‘백전노장’ 감독도 실수를 했다
3월 31일, 봄비가 내리는 대전야구장을 찾았다. 점심 무렵 김성근 감독과 감독실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비가 내려도 야구장에서는 선수들의 타격 훈련이 한창이었다. 김 감독은 비를 맞으며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가 방금 감독실로 돌아온 터였다. 개막전이 비로 취소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개막 2연전을 치른 소감을 묻자, 김 감독은 “이제 겨우 두 게임 치렀는데, 소감이랄 게 뭐가 있겠느냐”면서 “그래도 넥센을 만나 좋은 경기를 펼쳤다. 개막전다웠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2차전까지 패했더라면 우리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을 것이다. 2차전 승리를 위해 경기하는 과정에서 많이 뛰게 했다. 분위기를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가능성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도 이런 야구를 할 수 있겠구나 싶은 가능성을. 그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화는 팀 도루가 70개로 9개 구단 중 8위였다. ‘뛰는 야구’ ‘기동력 야구’는 한화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개막 2연전을 통해 드러난 한화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뛰는 야구’이다. 1차전에선 김회성, 강경학, 송주호, 나이저 모건이, 2차전에선 김경언, 이용규가 베이스를 훔치며 넥센의 수비를 흔들었다. 심지어 발이 느린 김태균까지 적극적인 베이스 러닝에 가담했다. 2차전 2회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으로 출루한 김태균은 김회성 타석에서 히트앤런 작전으로 2루까지 뛰었다가 파울로 귀루했지만, 김태균도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개막전을 연장 12회까지 끌고 가서 결국 서건창의 결승 홈런으로 패했을 때 김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잘했다. 나의 실수로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며 자신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4-1로 경기를 끝냈어야 했다. 선수들의 성향이나 특징을 더 파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 보니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느렸다. 경기를 하다보면 감독이 선수를 믿거나 믿으면 안 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특히 투수 교체 타이밍에서는 현재 마운드에 올라와 있는 투수를 믿느냐, 아니면 다음에 올라올 투수를 믿고 지금의 투수를 내리느냐의 판단이 중요하다. 1차전에서는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믿는 바람에 교체 타이밍이 느렸다. 2차전은 지금의 투수가 아닌 다음에 올라올 투수를 믿고 교체 타이밍을 빨리 가져갔다. 아무래도 시즌 초반이라 투수들의 제구력 난조가 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김 감독은 2차전을 앞두고 라인업을 짜면서 4번 김태균, 5번 김회성을 제외한 전 타순을 재배치했다. 1차전을 이용규(9)-권용관(6)-김경언(DH)-김태균(3)-김회성(5)-모건(8)-정범모(2)-송주호(7)-강경학(4)으로, 2차전은 김경언(D)-이용규(9)-모건(8)-김태균(3)-김회성(5)-정범모(2)-고동진(7)-강경학(4)-권용관(6)의 순으로 조정한 것.
“오더 변경하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1차전의 패인을 타석에서 찾는다면 추가점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용상으로는 우리가 7,8점을 더 실점할 수도 있었다. 결정타가 나오지 않는 속에서 야구를 하다 보니 상당히 답답했다. 그래서 2차전 라인업을 변경하면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김경언을 선두타자로 내세운 게 적중했다.”
개막 2연전을 한국시리즈처럼 치른 양팀 감독들.(사진=한화 이글스)
# 넥센 2연전 치르며 2년 전 롯데 개막전 떠올렸다
한화의 개막 2차전 첫 승은 김 감독이 2011년 8월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1323일 만에 거둔 승리였다. 매스컴에선 그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김 감독도 의미를 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의미가 있다. 1323일만의 승리보다는 1승이 귀했기 때문이다. 만약 2차전 마저 내줬으면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을 것이다. 경기를 치르며 2년 전 한화가 롯데를 개막 2연전에서 만나 모두 5-6으로 패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 개막전에선 9회초까지 5-4로 리드하다가 9회말 역전패를 당했는데 자꾸 그 경기들이 떠올랐고, 신경 쓰였다. 2차전까지 잡힌다면 선수들로선 2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 기억조차 싫었다. 그런데 나보다 선수들이 더 싫었나보다(웃음). 올시즌에는 이런 시합을 많이 치를 것 같다. 마음속에 뭔가를 갖고 있는 애들이 많아 맥없이 지는 경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한화의 시범경기 성적은 10개팀 중 최하위였다. 팀 타율 0.299, 팀 홈런 1개, 팀 득점 40, 팀 평균자책점 4.48, 팀 피안타 96, 팀 실점 55 등으로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달라진 한화의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로선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 또한 시범 경기 내내 숙제 풀이 보다는 더 많은 숙제를 껴안았다고 고백한다.
“시범경기 때는 부상자가 많다 보니 선수들 스스로 불안감이 내재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시범경기라 선수들이 100%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나 또한 지난 시즌 데이터를 토대로 선수를 기용하면서 그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보단 선수들의 몸 상태가 들쭉날쭉하다보니 데이터를 볼 엄두가 나지 않더라. 그래서 데이터를 치워 놓고, 선수들의 경기를 집중해서 봤다. 경기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 마음속에 무엇을 담아가고 있는지를 보려 했다.”
넥센과의 1차전을 치르는 동안 김 감독은 줄곧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러나 2차전은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다. 의자도 1차전에 앉았던 ‘회장님 의자’에서 2차전은 간편한 의자로 교체했다. 백전노장의 김 감독도 개막전을 치르며 긴장을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감독하면서 개막전 동안 이렇게 흥분하지 않은 건 처음이다.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경기를 봤다. 이유? 내가 늙었나? 하하. 대부분은 얼굴 벌게지고, 박수치면서 경기에 몰입하는데, 이번에는 좀 객관적으로 경기를 지켜본 것 같다. 선글라스는 끼다 안 끼다 했다. 선글라스를 끼면 경기가 잘 안 풀리는 것 같고, 벗으면 잘 되는 듯해서 오락가락했다(웃음). ‘회장님 의자’ 같은 고급스런 의자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 앉으면 몸이 뒤로 가서 자꾸 허리를 세우고 보게 되더라. SK 때도 그런 의자에는 앉지 않고 간편한 의자로 바꿔 앉았다.”
첫 승의 기쁨을 주고 받는 정범모와 윤규진.(사진=한화 이글스)
# 김 감독에 대한 두 가지 시선
김 감독은 10개팀 감독들 중 가장 극단적인 찬반양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지옥훈련’으로 대변되었던 스프링캠프 동안 김 감독의 훈련방법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인터넷 공간에서 설전을 벌였을 정도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만약 한화 선수들이 베스트 멤버들로만 구성됐더라면 연습 많이 안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와 휴식을 충분히 주면서 컨디션만 끌어올리는 훈련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화를 맡을 당시의 팀 전력은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한 팀이었다. 해마다 꼴찌를 도맡았던 팀이 1,2위 팀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훈련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야구계에선 올시즌 한화가 좋은 성적을 내면 큰일이라고 얘기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팀들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란다. 감독들마다 성향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관에도 차이가 있다. 팀 사정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짜고 진행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야구를 하는 건 재미없다. 나한테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훈련을 하며 마음 속에 무엇을 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건 몰라도 한화 선수들의 의식이 지난 시즌에 비해 변화가 있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데,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개막전 라인업이 발표되기 전 까지만 해도 모건이 선발 명단에 포함될 지의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한켠에선 ‘모건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범경기 동안 단 한 차례도 모건을 1군에 올리지 않았던 터라 김 감독의 의중이 궁금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개막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모건을 1군으로 올렸다. 모건은 개막 2연전에서 9타수 4안타로 활약했다. 첫 경기는 4안타로 펄펄 날았고 2차전에서는 무안타에 그쳤으나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뒤 쐐기득점을 올렸다.
“모건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4안타를 친 첫 째 날과 둘째 날의 스윙 궤도가 바뀌었더라. 이렇게 계속 가면 앞으로 고전할 듯싶다. 지금은 그 친구의 타법이 아니다. 원래는 통통 쳐내는 스타일인데 2차전에서 스윙이 커졌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난 원래 외국인선수한테 끌려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리의 틀에 그들이 들어와서 적응해야 한다. 한국만큼 외국인선수들한테 잘해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선수들에게 진심을 갖고 대하면 일부 선수들은 그 진심을 이용하고 왜곡할 때가 있다. SK 시절에도 자주 본 장면들이다. 외국인선수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선수 중 한 명일뿐이다. 우리가 정해 놓은 틀에 적응하는 선수는 나름 성공한 셈이고, 그렇지 못하면 힘든 상황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보살팬'들의 오랜 염원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될까.(사진=한화 이글스)
# 김 감독, “조인성 5월 초 복귀한다”
넥센과의 개막 2차전 승리 후 감독 인터뷰 당시, 경기장을 찾은 한화 팬들은 “김성근”을 연호하며 김 감독의 인터뷰를 지켜봤다. 한화 홍보팀 관계자는 그 순간 살짝 전율이 느껴졌다고 한다. 한화 팬들이 어떤 마음으로 김 감독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에선 한화 선수들의 노력과 공이 너무 감독에게 치중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도 뒤따른다. 이에 대해 김 감독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나도 부담스럽고 달갑지 않다. 이런 관심들이. 내가 뭔데 이렇게 관심을 받을까 싶다. 차라리 져서 욕 먹는 게 마음 편하다. 경기에서 이기면 그 포커스는 선수한테 가야 한다.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리가 아니다. 이런 건 매스컴과 팬들이 도와줘야 한다.”
김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조인성이 늦어도 5월 초에는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일본에서 재활 훈련 중인 조인성의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현재 훈련하면서 달리기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정범모도 잘해주고 있지만, 조인성이 있어야 정범모도 더 잘한다. 부상 선수들이 복귀하고 베스트 멤버를 짤 정도의 라인업이 구성되면 야구할 맛 날 것 같다. 개막 앞두고 서너 명은 돌아오겠다 싶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4월을 잘 버티는 게 관건이다.”
다음은 기자의 질문이다.
“미디어데이 때 내년 시즌에는 끝에서 두 번 째가 아닌 앞에서 두 번 째로 들어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만큼 올시즌 자신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미디어데이에서 감독과 선수들 입장 순서가 전년도 성적 순으로 진행된다.)
“내가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야구에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보이는 힘(전력)으로 봤을 땐 우리가 삼성, 두산, LG한테 뒤진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으로 봤을 땐 그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힘은 선수들의 의지와 ‘한’이다. 이걸 잃지 않고 싸워가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김 감독은 고양 원더스 시절 원더스 선수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에 참여했다. 원더스의 시작과 끝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제목은 ‘파울볼’. 김 감독은 영화를 찍은 게 아니라 자신과 선수들의 일상이 연출 없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이 아닌 선수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걸 알게 되면 내가 강하게 움직이질 못한다. 그래서 애써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선수들의 가슴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들의 웃음과 눈물이 모두 기억 속에 자리한다. 원더스 선수들은 내가 아무리 심하게 훈련을 시켜도 단 한 명도 낙오자가 없었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선수들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인내는 참는 게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것을. 숱한 좌절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또 다른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야구 영화가 아닌 우리네 인생 이야기이다. 고양 원더스는 사라졌지만, 영화를 통해 기록으로 남게 됐다. 그래서 반가웠다.”
김 감독의 말대로 144경기 중 이제 겨우 2경기 치렀을 뿐이다. 그 2경기로 한화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화의 색깔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시즌 경기장을 찾는 한화 팬들은 응원할 맛이 날 것 같다.
김성근 감독은 진정한 박수는 자신이 아닌 선수들이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사진=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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