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감독 부임 후 숱한 인터뷰를 했던 김성근 감독. 이번에는 선수들이 질문자로 나섰다. 김 감독의 훈련법, 생활, 우승 가능성 등등 평소 선수들이 마음에 담아뒀던 궁금증들이 인터뷰에 담겨 있다.(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제가요? 김성근 감독님에게 질문을요? 에이, 잘못 질문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요.”
한화 이글스의 일본 고치 캠프를 방문했을 때 김성근 감독 인터뷰를 조금 색다르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가 아닌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받아 김 감독과 인터뷰하려 했지만, 그 기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김성근 감독에게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 좀 해주세요’라며 다가서는 기자에게 대부분의 선수들이 난색을 표하며 손사래를 쳤기 때문.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가 ‘찍히면’ 손해라고 말하는 선수도 있었고, 감독님에게 ‘감히’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며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기자를 쳐다본 선수도 있었다. 김 감독도 처음에는 ‘무슨 그런 인터뷰를 하느냐’며 정중히 거절했지만 기자의 설명을 듣고 ‘그럼 일단 질문을 가져와 보라’고 입장 변화를 이뤘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인터뷰였다. 김 감독이 여전히 어렵고 무섭다는 나이 어린 선수들보다는 베테랑 선수부터 공략했고, 제일 먼저 배영수가 ‘감독님은 잠을 언제 주무시나요?’라고 가볍게 던진 질문을 임경완이 이어 받고, 김태균이 다시 던지면서 엉켜 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듯 했다.
#1. 박상열 코치, 27년 전에 들은 그 ‘한 마디’
질문의 시작은 김성근 감독과 40여년의 인연을 맺고 있는 박상열 투수 코치였다. 박상열 코치는 1971년 동대문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1972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기업은행에 스카우트됐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프로야구가 창단되는 시점에도 이어졌다. OB베어스 원년 멤버로 들어간 박 코치는 OB에서 투수코치를 맡은 김 감독과 재회한 것. 박 코치는 1989년 은퇴를 결심하는데, 이때 김 감독의 ‘한 마디’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은퇴 무렵 당시 OB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이 선수 생활을 지속하라고 강하게 권유했지만, 박 코치는 김 감독의 그 ‘한 마디’에 은퇴 결심을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박 코치는 1990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김 감독과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선수와 감독이 아닌 코치와 감독의 관계였다. 그러나 태평양이 김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음으로써 김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옮겼고, 박 코치는 1년 더 태평양에 남게 된다. 1995년 쌍방울 레이더스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긴 박 코치는 1996년 쌍방울 감독으로 부임한 김 감독과 해후한다. 하지만 이 만남도 오래가진 못했다. 1999년 태평양은 올스타전이 끝난 날 성적 부진에 따른 분위기 쇄신이라는 이유로 김 감독을 해임했고, 박 코치도 팀을 떠나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2007년 김 감독이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기 전까지 박 코치와 김 감독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다가 2007년 오랜만에 김성근 사단에 합류했고, 2012년 고양 원더스, 2015년 한화 이글스에서 40여 년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과 40여 년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박상열 투수코치. 김 감독이 프로팀 감독을 맡을 때마다 박 코치는 매번 코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사진=이영미)
박 코치의 질문이다.
감독님, 벌써 27년 전 일이네요. 제가 OB베어스에서 뛰고 있을 때, 감독님이 태평양 감독으로 옮겨가시면서 제게 하신 말씀 기억하시나요? 그때 감독님께서 ‘상열아, 넌 야구 공부 좀 해야 되겠다. 야구 공부해서 다시 보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로선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 말씀의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론, 감독님께서 제게 은퇴를 권유하신 것 같았고, 코치 생활하려면 야구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광환 감독의 만류에도 은퇴를 했던 거였죠. 그때 제가 감독님의 의중을 잘 헤아린 건가요?
“박 코치가 내 마음을 훤히 꿰뚫었네. 맞지. 그때 박 코치가 선수로서의 자질보다는 코치의 자질이 보였고, 나랑 함께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음 하는 바람에 공부하라고 얘기했던 거야. 야구 속에 뭐가 있는지를 직접 느껴 보라고. 돌이켜보면 박 코치와의 인연이 진짜 깊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참 오래 보고 살았지. 내가 보는 박 코치는 동대문상고 졸업할 때부터 코치를 시작한 이후로 변함없이 한결 같았어. 삐뚤어지는 걸 싫어하고 사람에 대한 예의, 매너가 최고인 사람이야. 기복 없이 한결 같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거든. 내가 아닌 다른 감독이라고 해도 박 코치하고는 손을 잡았을 거라고 봐. 감독이 필요로 하는 코치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니까. 흔히 언론에서는 ‘김성근 사단’ 운운하는데, 그건 사단이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자질을 갖춘 코치들을 모으다보니 지금의 구성이 이뤄진 거야. 그리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인연을 놓지 않으려는 신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고. 나랑 함께 일하는 코치들은 선수들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해. 박 코치 뿐만 아니라 다른 코치들도 고생 많이 하고 있지. 모두 감독 잘못 만난 탓이야(웃음).”
#2. 배영수, 스케줄이 아침 6시30분에 나오는 이유는?
오키나와에서의 재활 캠프를 마치고 고치에 합류한 배영수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루 스케줄이 전날 나오는 게 아니라 당일 새벽 6시 30분에 공지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됐던 것. 구단관계자에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 놓으니까 돌아온 대답이 “감독님이 그때 스케줄을 주신다”라는 내용이었단다. 그래서 배영수는 이 질문을 전했다.
감독님, 도대체 잠은 언제 주무시나요?
“이 질문을 한 애가 누구야? 뭐? 배영수? 허허. 요즘 고치에 찾아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저녁 식사를 늦게 까지 할 때가 있어. 약주 한두 잔 하기도 하고. 그래도 새벽 2시까진 책상 앞에 앉아서 일어나질 못해. 각종 보고서와 홍백전 결과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새벽이야. 전지훈련이 시작되고 시간이 갈수록 고민만 늘어나서 머리 아파 죽겠어(웃음). 잠은 4시간이나 5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 내 수면 시간은 선수들 하기 나름이야. 고민이 없으면 일찍 잠자리에 들 테고, 고민이 많으면 또 못 자는 거고. (배영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밖에서는 배영수를 작년까지가 한계라고 봤지. 그런 시선을 자신이 어떻게 돌파해 가느냐가 문제야. 누구나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아.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걸 실천에 옮기느냐, 옮기지 못하느냐에 따라 진짜 선수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나와. 배영수는 그걸 잊지 말아야 해.”
혹독한 전지훈련을 소화하면서 선수들이 어떤 변화를 이뤘는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안영명. 그는 '눈빛'에 대한 질문을 내놓았다.(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3. 한화 마운드의 희망, 안영명의 질문은?
45세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뜻으로 김성근 감독에게 넘겨준 38번을 놓고 45번을 등번호로 달고 있는 안영명. 2014시즌 48경기 출전해 97⅔이닝을 던지며 7승6패 4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4.52을 기록한 그는 한화 필승조 ‘안정진 트리오(안영명-박정진-윤규진)’의 일원이다. ‘안영명이 마운드에 오르면 이긴다’는 희망의 아이콘인 그가 김성근 감독에게 전하는 질문은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감독님! 처음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신 후 선수들을 만났을 때와 지금 전지훈련을 소화하는 선수들의 눈빛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음, 처음 선수들의 눈을 봤을 때, 뭐랄까 좀 허술해 보였어. 모든 면에서 약해 보였고. 선수들 사이에 잠재된 열등의식이 몸과 마음까지 약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었지. 반면에 지금은 선수들 눈에서 ‘희망’이 보여. 몸은 힘든데, 정신은 점점 건강해지는 느낌이랄까. 육체는 정신이 지배하는 것인데, 훈련을 통해 선수들 스스로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4. 임경완, 김성근 감독의 식사법이 궁금했다!
2014 시즌을 마치고 SK로부터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됐던 임경완.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을 그만 둘 뻔 한 위기에서 임경완은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김 감독이 직접 임경완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 야구를 그만 둘 나이가 아니다. 함께 해보자”는 제안에 임경완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생인 그는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한화에 입단했고, 동갑내기 조인성과 함께 캠프에서 ‘40세 청춘’을 불사르고 있다. 한화 입단 전까지 김성근 감독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임경완은 캠프 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꺼내들었다.
감독님은 왜 혼자 식사를 하시나요?
“나? 감독 생활하면서 쭉 그래왔는데? 지금까지 코치와 일대일 식사는 안 해 봤어. 만약 먹어야 한다면 여러 명이 단체로 먹었지. 코치들이 20여 명 정도 되는데 특정 코치와 식사를 하면 오해를 받을 수가 있어. 불공평한 것이고. 그래서 아예 코치들이랑 식사를 안 해. 코치들이 나랑 식사하면 더 불편해 할 거야. 내 스케줄에 맞추려면 마냥 기다려야 하고, 식사하면서도 편하지 않을 것이고. (식사를 잘 안 챙겨 드시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나도 사람이니까 배고프지. 배고파서 밥 생각이 날 때도 있지. 그런데 일하다보면 배고픈 걸 까먹어. 코치들까지 굶게 할 수는 없잖아(웃음).”
#5. 정근우, “SK 때에 비해 훈련량 늘어난 거 맞죠?”
김성근 감독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정근우는 평소 김 감독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만큼, 김 감독에 대한 질문도 ‘아들’다웠다.
감독님, 요즘 주름살이 부쩍 늘어난 것 같은데,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선수들이 제게 자꾸 물어봐요. SK 때에 비해 훈련량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제가 느끼기에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맞는 거죠?
“근우 질문이 예리하네(웃음). 요즘 저녁에는 밥을 안 먹으려고 해. 배 나오고 살 찔 것 같아서. 밥이 안 들어가니까 체중은 그대로인데, 얼굴 살이 빠지나봐. 내가 봐도 주름살이 늘었거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에서 이곳에 올 때 로션이랑 선크림을 못 챙겨왔어.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인데, 맨 얼굴로 그냥 돌아다니니까 주름이 더 생기더라고.
SK 시절에 비해 훈련량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2007년의 정근우와 2015년의 정근우의 차이라고 봐. 2007년에는 야구에서 인정받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해도 힘들거나 지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야.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몇 년 동안 이런 훈련을 안 하다가 오랜만에 하려니까 이전보다 훈련량이 더 많다고 ‘착각’하는 거지. 사람들은 우리 캠프를 ‘지옥 캠프’라고 부르는데, 그건 훈련 시간만 봐서 그렇지, 훈련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아. 선수들 몸만 따라준다면 더 끌어 올리고 싶어. 부상자가 나올까봐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거라고.”
한화에서 새로운 불꽃을 태우고 있는 오윤. 그는 73세의 노감독이 선수들과 똑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걸 보면서 김 감독의 건강을 염려했다.(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6. 오윤, 김성근 감독의 건강을 걱정하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넥센에서 한화로 팀을 옮긴 오윤은 한화가 고향팀이다. 충남 합덕초-온양중을 졸업하고 천안북일고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임경완처럼 선수 생활의 은퇴 직전에 받은 김성근 감독의 전화 한 통은 오윤의 야구인생을 새롭게 바꿔가고 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오윤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감독님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시나요? 가끔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뵐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의 건강이 걱정되곤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펑고를 쳐주려면 매일 두 시간 이상은 운동을 해야 해. 틈틈이 근력 운동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할 때도 있어. 제일 위험한 일이 고민하면서 주저앉아 있는 거야. 저녁 먹으러 훈련장에서 숙소로 갈 때 일부러 걸으면서 마음을 풀 때가 있거든. 건강을 위해서. (골프를 치진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골프는 나도 하지. 그런데 야구만큼 재미가 없어. 골프하다가 스트레스만 더 받아(웃음). 걷는 게 최고다.”
#7. 포수 정범모, “감독님의 카리스마에 기가 눌려요”
2006년 전체 18순위로 한화에 입단했던 포수 정범모.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이 장점이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 2009년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지난 시즌 도루저지율은 0.333, 타격은 0.253, 6홈런 23타점으로 데뷔 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정범모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김성근 감독이 어렵다고 고백했다. 그의 카리스마에 기가 눌려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힘들다고 말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놓았다.
감독님, 제가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요?
“스피드지. 수비도, 공을 던지는 것도, 또 치고 달리는 것도 스피드가 중요하지. 범모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어. 송구 동작에 대해 지적 받았는데, 노력은 하고 있지만,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 시즌 개막하면 144경기를 치를 포수가 조인성 한 명으론 부족하지. 정범모, 박노민, 지성준의 싸움인데, 내가 보기엔 지성준이 눈에 띄게 늘었거든. 정범모는 좀 더 긴장할 필요가 있어. 내가 지적한 문제점을 제대로 보완하는 걸 보고 싶어.”
한화 주장 김태균은 궁금하다. 지금 선수들의 훈련이 잘 되고 있는 지, 선수들이 잘 따라가고 있는 지를 알고 싶어 했다.(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8. 주장 김태균, “‘감독님, 지금 우리 선수들이 잘하고 있나요?
한화 이글스의 주장 김태균은 질문을 만드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자와 여러 가지 질문을 두고 고민하고 상의했다. 주장을 맡긴 이유, 3루수행의 가능성, 펑고에 담긴 의미 등등이 오갔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보낸 질문은 ‘감독님, 지금 우리 선수들이 잘하고 있나요?’였다.
김성근 감독의 답변이다.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자세가 바뀌었어. 작년에 부정적인 의식 속에서 정신이 다쳤다면, 지금은 정신은 건강한 반면 부상자가 나오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단단해졌지. 그 차이가 아주 크지 않을까 싶어. 내가 김태균을 주장으로 한 이유를 알지 모르겠네. 태균이는 스스로 변해야 해. 태균이의 성장이, 성적이 팀 성장과 성적에 중요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태균이는 올해 무조건 잘해야만 해. 지금까지 김태균은 10개를 갖고 있는 것 중에서 5개, 6개 밖에 보이지 않았어. 올해는 10개 가까이 내보여야 한다고. 내가 태균이에게 내준 숙제를 기억하고 있겠지. 홈런 30개에 타점 120개, 타율을 3할3푼을 올리라고. 선수 자신도 그에 대한 의식이 분명히 있을 거야. 얼마 전 담에 걸려 며칠 훈련을 쉬었는데, 그 쉬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을 거야. 주장이란 자리가 들어오는 것 없이 부담만 많다는 걸 잘 알아.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닌 김태균이라면 잘해 낼 거라고 믿네.”
#9. 니시모토 다카시 코치, “김 감독의 야구 열정에 놀랐다”
이번에 김성근 감독과 첫 인연을 맺은 니시모토 다카시 코치는 일본 야구의 전설과 같은 인물이다. 1956년생인 니시모토 코치는 선수 시절, 요미우리, 주니치, 오릭스에서 총 18시즌을 뛰며 통산 504경기 165승128패17세이브 평균자책점 3.20, 탈삼진 1239개를 기록했다. 2003년 한신 타이거즈 투수코치, 2010년~2012년 지바 롯데 마린스 투수코치, 2013년 오릭스 투수코치 겸 배터리코치, 2014년 오릭스 2군 육성총괄을 역임했다. 2010년 지바 롯데 김태균, 2013년 오릭스 이대호 등 한국인 선수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김태균과는 2010년 지바 롯데의 재팬시리즈 우승이란 소중한 추억을 공유한다.
니시모토 코치는 김성근 감독에게 “야구 외엔 다른 생각을 안 하시는 분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야구 외에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지”라고 질문했다. 김 감독은 니시모토 코치를 높게 평가했다.
“니시모토는 일본 야구의 톱스타였다. 그의 명성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꼭 같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서 한화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질문에 답을 한다면 ‘야구 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고 싶은 게 없다’이다. 야구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서 다른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래도 니시모토처럼 훌륭한 코치를 모신 건 내게 큰 힘이 된다. 톱 레벨의 투수였고, 코치로서 성공한 분인데 내색하지 않고 겸손과 예의를 보여주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인 사람이다.”
#10. 한화 외국인 3인방, “야구선수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이번에는 한화 이글스 외국인 선수 3인방의 질문이다. 기대를 한 것만큼 질문 내용이 자유롭다. 먼저 쉐인 유먼!
감독님이 야구선수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됐을까요?
“허허 어려운 질문이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 내 재주가 야구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았지. 그래도 뭔가를 ‘만든다’는 전제하에 영화 감독은 꽤 멋있는 직업 같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도 같은 맥락으로 매력있는 직업 같고. 정명훈 지휘자를 보면서 지휘자나 감독이나 비슷한 길을 걷는 게 아닐까 싶었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질문에서) 나? 글쎄, 영화본 적이 하도 오래돼서. 음, 그거 알지? 데미 무어 나오는 영화. 도자기 굽고 그러는…, (‘사랑과 영혼’이요? 라는 말에)맞아 ‘사랑과 영혼’. 그 영화에 나오는 데미 무어가 아주 예뻤지.”
일본 고치 1차 전지훈련에 참가했던 나이저 모건은 지금 서산에서 훈련 중이다. 지난 2일 김성근으로부터 서산행을 통보받고 귀국했기 때문. 질문은 고치에서 직접 받은 내용이다. 인사 잘하고 유쾌한 모건 답지 않고 질문은 상당히 진지했다.
감독님은 우승을 많이 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우승을 올린 비결이 무엇인가요?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선수들의 잠재 능력을 끄집어내 결집 시키는 힘이 있었지 않나 싶어. 그렇게 하려면 선수들 머릿속에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해. 그래야 프로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지금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쉬움’이 존재하게 될 거야.”
감독님, 저를 포함해서 유먼, 모건 등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요?(미치 탈보트)
“유먼과 탈보트는 로테이션을 제대로 해줘야 하고, 둘이 합작해서 30승 정도 올려주면 고마울 것 같아. 모건은 일단 수비를 보고 데려왔어. 기동력이 있는 친구니까 3할 이상 치고, 6,70개의 타점을 올려주면서 1번이나 2번타자를 맡았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 훈련하는 방식들이 익숙지 않을 거야.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하루 빨리 적응해서 그 속에서 페이스를 찾길 바라고 있어. 자기들 페이스에 우리 야구를 집어넣으려 한다면 분명 탈이 난다고. 내가 처음 세 사람을 만났을 때 한 얘기 기억나? 여기 선수들과 똑같이 대하겠다고. 모든 원칙과 규칙을 똑같이 적응한다고. 그 말을 명심했으면 좋겠어.”(그 원칙에 의해 몸이 덜 만들어진 모건은 조기 귀국을 해야만 했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법은 오래 전부터 찬반양론이 분분했다. 한화의 고치 캠프 스케줄에 대해 일부에선 '아마추어식'이라고 폄하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이렇게 해서 성적을 낼 수 있다면 가치 있는 과정'이라며 응원을 보낸다. 김 감독은 이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마이웨이'를 외친다. 한화 구단과 팬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사진=이영미)
#11. 익명을 요구한 선수들의 질문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만난 몇몇 선수는 자신의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익명이라는 자유로움 때문에 질문의 강도는 다소 센 편이었다. 그중 하나가 ‘감독님 일찍 출발하는 조가 7시인데, 한 시간만 늦춰주시면 안될까요?’였다.
“7시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몇 시에 나가느냐 보다 본인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에서 매일 몇 명씩을 선별해 ‘어얼리 조’에 포함시키는데, 한 시간 먼저 나가는 게 억울한 일은 아니잖아. 그냥 아무나 찍어서 내보내는 게 아니라고. 나는 분명 기회를 줄 거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 내년에 좋은 선수가 들어오면 그 자리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김 감독은 기자와 인터뷰를 한 다음날 ‘어얼리 조’의 출발 시간을 6시30분으로 앞당겼다. 선수들에게 심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익명의 선수. ‘감독님이 맡은 팀은 무조건 우승한다고 하는데, 한화의 올시즌 우승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계시나요?’
“흠, 우승 가능성이 보이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 조금씩 프로팀다운 모습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우승하려면 지금 이런 모습만으론 부족해.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게 되는 게 아니야. 어떤 선수는 열심히 한다고 말하면서 내용은 없이 힘만 빼는 선수도 있어. 오키나와에서 연습 경기 치르기 전까지 우리 선수들이 어떤 변화를 이룰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어. 그래서 고민이 많기도 하고. 사람들이 ‘김성근’이란 이름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잘 알아. 연일 ‘지옥훈련’이란 제목 하에 한화 캠프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서 반발 세력이 생기고 있는 것도 느끼고 있고. 김성근이 한화를 아마추어로 만들고 있다느니, 프로답지 못한 훈련 방식이라며 비난하는 소리도 들리지.
그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어. 한화란 팀이 나를 왜 데려왔는지를. 난 그에 대한 답을 줘야 해. 욕 먹는 게 두려워서, 비난 받는 게 싫어서 내가 지켜온 가치와 신념을 바꿔야 한다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감독들마다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야구한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난 나대로, 다른 감독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해가면 돼. 그리고 이겨야 하는 것이고. SK 때도 이런 얘길 했었지. 이기지 못하는데, 우승도 못하는 데, 재미있는 야구가 가능하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알아서 생각해줘. 질문 더 없지?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는 걸로 하지.”
김성근 감독은 자신에게 쏠리는 극과 극의 시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야신’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진정 그는 신이 아니기에, 결과로 모든 의문부호에 대해 답을 줘야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식했다. 그래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 시간 동안 훈련장 주변의 강을 거닐며 장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마무리 훈련부터 전지훈련까지 모든 걸 내던진 채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한화 선수들 못지않게 김성근 감독도 올시즌 정규 시즌의 마지막 결과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년 만에 돌아온 프로 무대의 평가가 ‘역시 김성근이다’가 될지, ‘김성근도 별 수 없었다’가 될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는 항상 고독해 보인다. 타협과 절충 없이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방식에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지도자이다.(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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