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쌓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특히나 신뢰라는 것은 얻으려고 하면 안 오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나는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얘기해야 무슨 소용이 있나.

 

소위 말해서 열정이라고 할까. ‘나를 위해서, 참 헌신적으로 해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주는구나!’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선수에게 줄 수 있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 준다.

 

이런 얘기들도 우스울 수 있는 것은 열정이나 마음은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오는 것이라서 보여주고 싶다고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 ‘믿음의 야구’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서로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얼마나 알 수 있을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신뢰다, 소통이다, 이런 말을 참 많이 한다. 요즘 새롭게 감독이 되는 후배들이 겪는 시행착오가 지나치게 폼을 잡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말은 나쁘게 본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감독이다’는 하나의 틀을 설정하고, 거기에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까 잘 안 되는 것이다.

 

언론매체에는 자신이 설정한 틀을 보여주고, 선수들한테는 평소의 자신으로 대한다면, 어느 팀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진심, 진실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할 때, 그 열정을 남들이 자연스럽게 알아줄 때 가치가 생긴다. 그래야 믿음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정대현이나 김재현, 이병규 등은 믿음을 남자끼리 가슴으로 느낀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통한다. 얼굴을 자주 맞대고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신뢰라는 것 자체는 지도자가 자신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얻을 수 있다. 상대를 헌신적으로 대해야 한다. 조건 없이. 또 상대를 기다려주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 “덕분에 야구를 오래 했습니다. 참 그때 즐거웠습니다”고 말하는 선수들이 많다.

 

다들 팀에 있을 땐 어마어마하게 시달렸다. 혹사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지금 SK 선수들 가운데 나한테 혹사당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매 순간 전력투구를 하니까 선수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이 사람이,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그런 의식들이 믿음이다. 대신에 내가, 내 가족이 희생당한다. 항상 팀과 선수가 우선이니까. 하지만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소통? 그런 것을 나는 잘 모른다. 난 평상시 선수랑 말을 잘 안 한다. 소통이라는 건 서로 뜻이, 의견이 통한다는 것인데, 필요할 때 한두 마디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코칭스태프와도 그다지 얘기 안 한다.

 

단, 내가 나설 때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원칙이 있다. 필요할 때 내가 나서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일일이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가끔 아침 일찍 회의할 때가 있다. 그것도 일 년에 한 두세 번 정도 있을까 말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보고 있으면 된다. 회의 많이 하는 팀과 회사 가운데 잘 되는 팀이나 회사를 본 적이 없다.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매번 모여서 회의만 하나. 리더가 불안하니까 자꾸 모이고, 얘기하는 거다.

 

야구장에 나가면 파울 라인이 있다. 감독이 그 선을 자주 넘으면, 그 팀은 위기의 연속이다. 벤치가 가만히 있어야 조직이 살아있게 된다. 그 선을 자주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똥개는 사람 뒤에서 소리를 지른다. 강한 개는 가만히 있다가 확 문다. 한꺼번에 끝내버린다. 그 정도 의사소통이면 되는 것인데 계속 얘기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선수에게 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 잘못했다”고 코치가 얘기하고, 감독이 또 얘기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 “너 주의해!” 이러면 끝이다. 항상 선수 편에서 일해야 한다. 자신이 득을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과거에 어느 구단에 가나 선수 때문에 싸우다가 잘린 경우가 많았다. 태평양, 삼성, SK도 선수들 치료비가 많다든지 합숙하는데 돈 많이 든다고 트집을 잡았다. 대한민국에서 선수들 몸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 SK가 최고였다. 아프다고 하면 일본에 가고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줬다. 김광현은 병원 여섯 군데를 보내서 검사했다.

 

이한진이라는 선수가 있다. 희귀병인 혈행장애가 왔다. 연봉이 채 3천만 원도 안 됐다. 그래서 내가 “돈은 내가 줄 테니까 병원에 보내라”고 했다. 병원 한군데에 갔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세 군데나 보냈다. 선수와 관련한 문제는 욕을 먹더라도 감독이 해줘야 한다.

 

감독은 경기에서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승리를 얻어올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선수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다. 항상 전력투구하면 저절로 선수의 마음을 얻게 된다.

 

SK 선수들이 이런 말을 했다. “위기가 오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감독님이 있다.” 언론매체 앞이라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남자들끼리의 믿음을 말한 것이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신뢰는 열정 속에서 피어난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64&aid=0000003482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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