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란, 한 마디로 순간에 모든 걸 투자하는 야구가 아닐까 싶다.야구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한 경기, 한 타석, 투구 한 개. 그것을 위해서 수천 번, 수만 번 반복 연습한다. 어느 한순간에 그 연습이 결과로 나온다. 밖에서 보면 결과가 한순간에 끝나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을 흘려야 한다.
연습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 속에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그 절실함으로 수천 번 수만 번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기댈 곳이 없었다. 그 당시 아마추어야구는 직장 야구였다. 반면, 프로야구는 직장이 없다. 나는 프로야구가 없던 그때부터 이미 프로선수였다. 돌아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야구를 했으니까. 그런 절박함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아 이길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 프로의식이다. 여기에 프로야구 선수로 성공하려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30년 가깝게 감독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매 순간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앞날을 계산하지 않고, 하루하루 그 순간에 모든 것을 투자한 것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주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 사이에 당연히 위기도 많았다. 하지만 그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야구는 아무 데서나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지켜보는 눈이 있다. 28살 때 야구 감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나의 일에 열중해온 것이, 사람들에게 ‘김성근 야구’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으로 생각한다.
야구 감독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구단주가 기회를 줘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기회만 노리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은 일할 때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해 왔다. 비판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다시 쓰게끔 한 것은 자신의 일에 항상 전력투구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어느 정도 결과, 즉 성적을 냈다는 것도 있고.
또한, 그 자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자꾸 변해야 한다. 10년 전의 나와 15년 전, 20년 전의 나는 많이 다르다. 야구계 흐름에 맞춰 변화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밖에 없다. 내가 변해야 한다. 그렇지만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리더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다. 나는 구단과 마찰을 빚더라도 내 할 일은 해왔다.
희생번트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과정은 하나다. 야구 규칙에 번트를 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타석에 타율 1할에 불과한 타자가 들어섰다고 가정해보자. 주자가 1루에 있으면 착실하게 2루로 보내야 할 상황이다. 물론, 히트앤드런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나에 대한 비난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번트가 많다는 것보다 왜 번트를 해야 했는지를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대호가 번트를 댄 적 있다. 비난이 있었는가. 한마디의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번트는 주자를 안전하게 한 베이스 더 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공격야구를 한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강공만을 고집했다가 팀 성적이 안 나온 감독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난이 두려워 번트를 대지 않으면 팀은 진다.
내가 있던 시절 SK 야구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범했다. 그게 믿음의 야구다. 팀 성적은 선수 연봉과 정비례한다. 팀 성적이 안 나오면 선수들의 생활은 누가 책임지는가. 그것은 감독이 비난을 받더라도 책임져야 한다. 선수의 기용도 마찬가지다.
일식집에는 회칼이 있다. 일본에서 그 칼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다섯 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손잡이를 만드는 사람, 몸체를 만드는 사람, 칼을 가는 사람 등 다섯 명이 있어야 칼 한 자루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분업화다.
SK 시절 조동화를 대수비 요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냥 대수비 요원이 아니다. ‘승리를 굳히기 위한’ 대수비 요원이었다. 조동화가 그 역할을 맡음으로써 자신은 물론이고 팀도 생동감을 띄었다. 그가 없으면 SK 야구가 안 되었다.
야구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선수로 뛸 때는 투수가 9이닝을 완투하는 것은 예사였다. 누구도 대견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새는 완투하면 난리 아닌가. 과거의 일이지만, 나는 한해에 9연속 완투를 해서 9연승을 한 적도 있었다. 40경기 이상 나와서 25승을 하는 것은 사라졌다. 지금 그렇게 하면 혹사라며 그 감독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불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선발 투수가 전부 다 던졌으니까. 지금은 아웃카운트 3개가 정말 어려운 시대다. 어느 투수든, 어느 타자든, 어느 수비든, 모든 조직에서 분업화가 되어 있으니까,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조동화, 정우람, 이승호가 그런 좋은 예이다. 정대현을 마운드에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대현을 올렸을 때의 타자, 그 한 포인트를 어떻게 잡고 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그 순간에 어떻게 쓰느냐는 순전히 감독의 몫이다. 그걸 못 쓰는 사람은 무조건 바꿔버린다. 그래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안에 어떤 것들이 걸려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수의 능력은 5인데 10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 선수의 능력인 5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10을 기대하는 순간 그 승부도 지고 팀도 진다. 선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그래서 모두에서 매 순간 모든 것을 투자하는 야구가 김성근 야구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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