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의 첫 인상은 짜증나는 지도자였다. 1995년 롯데에 입단해 쌍방울과 경기를 치르며 그를 처음 만났다. 상대 팀 감독이지만 필자는 너무 하다고 생각했다. 5, 6점차 이상 뒤진 경기의 9회 주자가 없는 2아웃 상황에서도 타석에 나서면 어김없이 투수를 교체했다. 상대 팀 타자로서 결코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지고 있는 것도 속상한데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투수를 교체하는 뻔뻔함에 매번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김 감독은 오늘 경기를 승리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음날 경기까지 계산하고 경기를 운영했다. 그는 상대 팀 간판타자에게 마지막 타석까지 타격감을 끌어올릴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음날 던지거나 경기감각이 무뎌진 투수들에게 컨디션을 유지할 기회를 제공했다. 옹졸하다고 여겼던 교체는 치밀하게 준비된 하나의 레퍼토리에 가까웠다.
필자는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뒤 김 감독을 다시 만났다. 상대 팀 감독이었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2002년 하위권을 맴돌던 LG를 기적적으로 회생시켰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현대와 KIA를 차례로 물리치고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최고의 무대에서 만난 김 감독은 별명인 ‘야신(야구의 신)’다웠다. 다양한 작전과 선수기용으로 승부를 6차전까지 끌고 갔다. 우승컵의 향방은 6-9로 끌려가던 9회 가려졌다. 이승엽의 동점 쓰리런과 필자의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에게 돌아갔다.
구단의 한국시리즈 악연을 끊은 필자는 감격에 겨워 펄쩍펄쩍 뛰었다. 하지만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김 감독에게는 쓰라린 아픔이 됐다. 팀에 준우승을 안겼음에도 불구 이내 LG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았다. 김 감독은 그 뒤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필자의 결정적인 홈런 한 방으로 인해 그가 훗날 SK에서 더욱 강해진 지도력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 감독이 2007년 SK의 지휘봉을 쥐기 전까지 필자는 가끔씩 찾아뵈며 안부 인사를 드렸다. 그가 건네는 말에는 야구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 깊게 새겨있었다. 현역시절 이상으로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야구감독의 처지까지도. 자리는 누가 앉더라도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시방석이다. 무난하게 선수단을 이끌어도 선수, 프런트 모두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기회를 제공받은 선수에게 감독은 최고의 은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반대로 버림을 받는 선수들은 경기장 뒤에서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다반사다.
올 시즌 도중 SK로부터 경질된 김 감독의 퇴장에 대해 야구계는 말이 많았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여서 더 그러했던 것 같다. 필자가 지금껏 경험한 그는 선수생활을 일본에서 해 국내 야구인들과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번 경질로 ‘야구인은 존중 받아야 된다’라는 생각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필자는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자존심을 택하는 감독이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몇 번을 고민해도 다르지 않았다. 김 감독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SK 구단과 마찰이 빚어낸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판가름 날 것이다. 누가 실수를 했는지도 머지않아 드러나게 돼있다. 필자는 야구계에 입문해 김 감독 이상으로 열정적인 지도자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단 한 명의 선수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휴일인 월요일까지 반납하며 2군 경기를 관전했고 선수관리에 자주 밤잠을 포기했다.
빼어난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은 그렇지 않다.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지도자를 모시기란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반지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야구 하나에 죽고 사는 달인을 놓쳐버린 야구계. 언젠가 야구인들은 지금의 엇갈림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929n02902?mid=s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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