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성근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근간 SK 김성근(70) 감독은 정글에 홀로 남은 상황에서 눈앞을 가리는 수풀들을 베며 앞으로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도전하는 소속팀은 3위로 전반기를 마쳤고, 김재현과 박경완이 빠진 팀 전력은 어느 해보다 약해 있었다. 무엇보다 에이스 김광현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로 팀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여기다 김 감독 자신의 재계약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방법으로 위기를 대했다.
세상에 대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대신 따가운 수풀에 얼굴이 베이고, 눈이 찔려도 묵묵히 수풀을 베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스포츠춘추>는 김 감독을 전반기 막판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후반기 시작을 하루 앞둔 7월 25일 전화통화로 김 감독의 생각을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판과 오해에도 침묵과 ‘감독 책임’이란 말로 일관했던 김 감독은 <스포츠춘추>와의 인터뷰에서도 변명보단 애제자 김광현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다짐만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김 감독이 속내를 털어놓은 가장 큰 이유인지 몰랐다.
최근 에이스 김광현의 과거 병력이 공개되며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일부에선 ‘왜 일찍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여기저기로 축하 인사를 돌았어요. 그러다 김광현이가 몸이 좋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그 순간 우리도 무척 당황했다고. 일부에선 그 사실을 발표하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그때 내가 그랬어요. “당신들 정신이 있느냐”고 말이지.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그리고서 김광현이가 무척 좋아졌어요. 그러면 된 거였어요. (한숨을 내쉬며) 하지만, 기사가 나왔고, 구단에서도 시인했어요. 그땐 속으로 참…‘이를 어떻게 하나’싶었어요. 우리 프로야구를 짊어지고 갈 젊은 선수가, 이제 어떻게 되나 싶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지난해 뇌경색 진단을 받았던 김광현은 한국에서 몸을 만드는 대신 일찌감치 오키나와로 떠났다. 오키나와는 주변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몸을 만들기 적당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김광현은 그간 느슨했던 몸을 만들고, 투구훈련을 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애썼다. 그리고 결과는 좋았다. “팀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해도 아무 이상이 없을 만큼 몸이 정상”이란 진단을 받았다. 당시 오키나와에서 김광현의 투구훈련을 지켜봤던 모 관계자가 “김광현의 투구가 베스트에 가깝게 돌아왔다”고 전하며 “(김광현이) 고구마를 하도 좋아해 별명을 ‘고구마’로 붙였다”고 농담까지 한 건 김광현의 몸 상태가 그만큼 완쾌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김광현을 오키나와에 보내고, 그를 특별 지도하도록 한 이가 바로 김 감독이었다.
김광현 문제로 감독님도 여러 고민을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갖가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그라운드에선 선수들의 부모예요. 내가 밖에서 욕먹는 건 괜찮아요. 아니 세상 부모가 자식 때문에 욕먹는다면 그건 행복한 거예요. 자식이 욕먹는데, 부모가 욕 안 먹으려고 하면 그게 부모 자격이 없는 거예요. 내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욕은 가슴으로 받고, 칭찬은 뒤에서 받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세상 사람들한테 오해받는 거 똑바로 잡고 싶은 마음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네.
제일 중요한 건 ‘김광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요. 만약 김광현이 다시 1군에 등판해서 던졌는데 못 던졌다고 생각해봐요. 그 아이에겐 엄청난 충격이 될 거예요. 난 정말 그게 걱정이에요.
많은 야구인과 팬도 감독님처럼 그 부분을 걱정합니다.
사람이 핀치에 몰리면 이것저것을 생각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때 옆에서 부채질하면 안 돼요. 인터넷 댓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해요. 그 고통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행해졌어요. 그 부분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지금 김광현 상태가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정말 아무렇지가 않아요. 그런데 9개월이 지난 이야기가 왜 지금 나왔느냐(한숨을 내쉬며) 참 아쉬운 부분이에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SK 선수단이 직접 훈련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만, 감독님이 김광현을 특별 대우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 중에도 다른 투수들과 똑같이 대우했던 것으로 압니다.
(잠시 침묵하다가) 올해 김광현이를 일부러 엄하게 다졌다고. 왜 다졌느냐? 혹시 그쪽, 아팠던 것에 정신이 몰릴까 봐, 다 괜찮아졌는데도 마음이 흐트러질까 봐. 그래서 일부러 더 몰았다고. 그렇게 아이를 몰 때 부모 마음은 어떤 줄 알아요? 속에서 억장이 무너진다고. 억장이….
6월 23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원정경기에서 김광현이 8이닝 동안 147구를 던졌습니다. 당시 김광현의 투구를 둘러싸고 많은 말이 있었습니다.
아직 한번도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럼 왜 김광현이가 147구를 던졌느냐. 그 고비를 넘어가야 한다고 봤어요. 고비를 넘겨야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힘이 생긴다고. 타협하면 더 앞으로 갈 수 없어요. 김광현이를 큰 선수로 만들어야 했어요. 147구를 던지면서 포수를 계속 쳐다봤어요. 대투수가 되려면 책임을 누군가에게 물어선 안 돼요.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해요. 그걸 김광현이에게 깨우쳐 주고 싶었어요. 김광현이가 147구를 던졌을 때 난 편하게 서울에 올라왔는지 알아요? 아니라고. 속이 억수로 무너졌다고.
그간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모라고 하는 건 자식 이야기를 숨길 땐 숨겨야 해요. 부모까지 그 이야기를 하면 자식이 숨을 데가 없다고. 숨을 곳을 만들어줘야지. 나보고 욕하는 건 아무 상관 없어요. 김성근이 다 욕해도 좋아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식이 사느냐, 죽느냐’에요. 내가 살자고 자식을 죽일 순 없는 일이에요.
7월 26일 귀국예정이던 김광현이 8월 3일로 귀국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현재 김광현의 투구훈련은 어느 정도 진척됐습니까.
김광현이는 지금 아무 이상이 없어요. 몸도 무척 부드러워졌어요. 최일언 코치가 보고했는데 몸이 무지 부드러워졌대요. 기사 나오고 사실 이틀 동안 김광현이와 전화통화를 하지 못했어요. 걱정이 돼서…. 3일째 전화하니까 (김광현) 목소리가 무지 밝아요.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김광현이가 그래요. “감독님 걱정이 하나 있다”고 말이지.
걱정이요? 어떤….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감독님이 걱정입니다.” 그래. 속으로 ‘아, 살았다.’ 싶었어요. 김광현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김광현이는 큰 아이에요. 생각도 깊고, 시련도 잘 극복하는 큰 아이에요. 속으로 참 대견하더라고. 7월 26일 온다는 걸 내가 8월 3일로 일주일 연기시켰어요.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확실히 몸을 만들고 오라’고 했어요. 몸은 그전부터 아프지 않았으니까 어깨와 투구 밸런스만 잘 잡으면 되지 싶어요.
재계약은 시즌 종료 후 결정
2007년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김성근 감독(사진 왼쪽부터)과 김광현은 밝은 표정으로 사진 촬영에 응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광현은 이제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니 언제든 복귀하리라 봅니다. 후반기 SK의 반전을 기대하는 팬이 많습니다.
내가 성적이 나빠서 잘리는 건 신경 쓰지 않아요. 김광현이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중요할 뿐이에요. (잠시 침묵하다가) 구단이 재계약 이야기를 3번 연기시켰어요. ‘올 시즌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하더라고. 그건 상관없어요. 난 내 일만 묵묵히 하면 돼요.
내가 좀 언짢은 게 그거예요. 구단이 감독과의 재계약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감독 역시 재계약권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한국 프로야구에선 마치 구단이 감독을 간택하는 것처럼 돼 있어요. 아니에요. 감독이 구단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 감독을 하면서 욕심을 부린 적이 없어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나를 마치 그런 자리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처럼 보이게끔 하지 않았으면 해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서) 가끔 나 스스로 여기에 왜 왔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이 팀을 끌고 가야지 어떻게 하느냐’ 싶어요. (씁쓸하게 웃으며) 뭐 그만두면 해설하면 되지.
음.
중요한 건 개막전에도 그만두려고 했고. 올스타전 때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LG도 내가 그만둔 다음에 ‘김성근이 옳았구나’ 했다는 걸 이야기를 들었어요. 요즘 속이 무지 상한다고. 3, 4시간밖에 못 자요. (혼잣말을 하듯) 이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데…. 어쨌거나 나는 중요하지 않아요. SK가 살고, 김광현이를 살리는 데만 집중할 거예요. 감독 자리보다 그게 더 중요해요. 다른 사람은 아닌지 몰라도 김성근이한텐 그게 더 중요해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에요.
SK 측은 김 감독과의 재계약 진행 여부를 묻는 <스포츠춘추>의 질문에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을 매듭지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SK의 고위 관계자는 “전쟁 중인 장수에게 재계약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재계약엔 기간 및 대우 등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많은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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