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09
정철우(이하 정) : SK가 주말에 시즌 첫 연패를 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여유있는 1위다. 상대팀들이었던 한화와 KIA가 전력이 약해진 시기이긴 했지만, 지금 SK도 만만찮게 어렵다. 한화전은 안경현 위원이 직접 중계도 했었는데...
안경현(이하 안) : SK가 위기인 건 분명하다. 헌데 중계하면서 지켜보는데 위기라는 걸 잘 못 느끼겠더라. 그때 외야 주전으로 나온 임훈 조동화 안치용 등은 백업에 가까운 선수들 아닌가. 하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주전 선수들 다 나와서 경기하는 것 처럼 보였다. 솔직히 뭐 가지고 이기는지 잘 모르겠더라. 아... ‘SK가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전 외야수 박재상과 김강민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SK. 하지만 이들의 공백을 임훈, 조동화, 안치용이 충분히 메워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 타선이 약해진 건 사실 아닌가. 특히 하위타선의 이름값은 8개팀 중 하위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 : 하지만 득점력이 크게 떨어진 것은 아니지 않나. 원래 SK가 딱 그 정도 점수만 뽑는다.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만 점수내고, 그러다 달아나고.
정 : 지금 SK 전력은 ‘최악’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선발 투수들까지 줄줄이 무너지니 더 힘겨운 듯 보인다. 사실 SK가 힘겨운 시즌이 될 거란 생각은 모두가 하지 않았나. 빠져나간 전력은 많은데 보강된 전력은 없었으니 말이다.
안 :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는 정말 힘들 줄 알았다. 기본적으로 4강 싸움 정도라고 봤다. 혹 좀 더 상위권에 가더라도 힘겹게 경쟁할 거라 예상했다. 두산서 뛰다 SK 가보니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강한 팀이라는 걸 알게됐다. 하지만 올해는 분명 약해져 있다. 지금까지 성적은 분명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만큼 준비가 잘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 : 준비라... 대부분의 준비는 빠진 전력을 보충하는데서 시작한다. 야수가 부족하면 야수를 구해오고, 투수가 부족하면 투수를 뽑아야 한다. 하지만 SK는 아무 것도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안 : 대신 안에서 선수를 만들지 않았나. 작년 시즌이 끝나고 김성근 감독이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손만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팀이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그에 맞는 선수를 키워냈다. 불펜 투수를 보강한 것이 포인트다. 큰 이승호나 고효준, 김태훈 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물론 기존 불펜투수들도 고생했지만 그 세명의 힘이 적지않게 작용했다. 아마 김 감독은 공격력이 지금 정도 수준 밖에 안될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계산에 들어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이 정도 공격력으로 이기려면 투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선발을 갑자기 키워내긴 어려우니 롱 릴리프할 수 있는 투수들에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가 이승호 고효준 김태훈 등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정 : SK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는 지적인 것 같다. 대게 야수가 부족하면 야수 구하려고 할 텐데 말이다.
안 : 그렇다. 다른 팀들은 일단 구멍 생기면 그 구멍 메우는데만 신경쓴다. 그래서 일단 여기 저기서 모아온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 : 한국 프로야구 처럼 트레이드 등 전력 이동이 보수적인 리그에선 부족한 부분을 선수 영입을 통해 메꾼다는 것이 결코 쉬운 얘기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보강을 한다고는 하면서도 결국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팀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대책없이 무너지는 팀 들도 나오고...
안 : 그렇다. 반면 SK는 그 준비 과정이 좋은 팀이다. 감독이 자신의 팀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준비한다. “야수가 빠졌으니 구해달라”가 아니라 ‘지금 전력으로 이기려면 어떤 부분의 누구를 성장시켜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그래야 전력 보강이 실패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전력보강이 이뤄지면 더 좋고...
정 : 하지만 ‘언제까지’라는 단서를 붙일 땐 여전히 불안요소가 있는 것 아닌가. SK는 대타와 대주자, 대수비 등을 총 동원해서 이겨나가는 팀이었다. 야수 가동 전력의 폭이 줄어들었다는 건 SK 다운 야구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 : 그러니까 투수와 수비다. SK는 야수 공백을 투수와 수비로 막아내야 한다는 판단아래 철저하게 준비했다. 지금 SK가 잘 나가는 이유다.
정 : 그렇다면 불펜 투수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SK 불펜 투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경기에 투입되고 많이 던지는 것은 사실이다. 헌데 SK 불펜은 매년 이렇게 많이 던졌다. 버텨낼 수 있는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안 : 관리에 있다. SK 불펜 투수들이 매일 던지는 것 같지만 분명한 원칙 아래에서 기용되고 있다. 쉴 땐 쉰다는 얘기다. 그 부분이 김성근 감독의 노하우다. 힘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정 기자 말처럼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매년 이렇게 던져왔다. 오히려 SK 투수들이 이런 환경에 적응이 돼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못 나가서 감이 떨어졌다거나 타순 바뀌면 적응 안된다거나 하는 것 없다. 개인적으로 불만을 얘기하긴 해도 경기 들어가면 다 적응해서 그냥 한다. 지난 시간 동안 그렇게 해서 이겼던 경험의 힘이다.
정 : 조로하는 투수들을 보면 무리를 했다거나 투구폼에 문제가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사생활 관리가 잘 안돼서인 경우를 많이 봤다. 함께 겪어 본 SK 불펜 투수들은 어떤가.
SK 불펜 투수들은 매일 매일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몸관리를 더 잘할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안 : 나도 그게 궁금해서 유심히 지켜봤었다. SK 불펜투수들이 다른 점이 하나 있더라. 내일 당연히 자기가 나간다고 생각한다. ‘이틀 던졌으니까...’ 뭐 이런 생각을 안하더라. 그러니 매일 조심하고 스스로 관리한다. 내일 무조건 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전날 밤에 흐트러지는 선수는 거의 없다. 늘 준비하니까 그렇게 던질 수 있는거다.
정 : 준비와 관리가 감독과 선수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SK는 부상 관리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이는 구단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안 : 대표적인 예가 마사지다. 경기 끝나면 무리한 선수들은 최소 1시간 이상 마사지를 받는다. 끝나고 숙소와서 마사지 받고 나면 1시 2시다. 그리고 자는거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지 늘 체크하고 대비한다. 그런 시스템이 잘 돼있다.
정 : 시즌 중 고비를 맞지 않는 팀은 없다. SK도 위기가 찾아올 수 있을텐데.
안 : 이젠 정말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주축 한,두명이 더 빠지면 그건 정말 위험하다. 백업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며 잘해주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박정권 정근우 최정 등 중심이 있기에 버티는 거다. 여기서 이들까지 다친다면 그땐 정말 힘들어진다. 또 부상으로 빠진 박재상 김강민, 그리고 박경완이 언제 돌아오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내 생각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3경기차 수준으로 1위를 지켜내고 있다면 이후엔 완전히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그때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지금 잘 버텨주고 있는 선수들도 언젠가 체력적인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SK가 SK 다운 공격력을 빨리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오른손 불펜이 하나쯤은 나와줘야 한다. SK 좌완들이 우타자들에게도 강하지만 우타자 상대할 때 피로도가 더 심한 것은 분명하다.
정 : SK가 이렇게 버텨낼 수 있는 건 역시 훈련의 힘인가. 훈련 많이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 : 모든 일은 눈으로 본 다음에 행동하면 늦는다. 행동한 다음에 보는거다. 생각하는 야구라는 말들 많이 하는데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SK다. 왜 거기서 커트 플레이를 하는지 2루타성 타구 잡으면 어디로 던져야 하는지 생각해서 하는게 아니다. 잡으면 일단 던진다. 하지만 그게 정확하게 필요한 곳으로 간다. 생각하고 하면 늦는다. 끊임없는 반복 훈련을 통해 그렇게 된거다. 몸이 먼저 반응할 만큼 땀 흘렸으니까 가능한거다. SK 경기 보면 이름도 잘 모르는 선수들이 나올 때가 많다. 잘하진 못해도 플레이가 어색하지는 않다. 그 자리에 갖다 놓으면 자기가 할 플레이를 한다. 긴장도 많이 될텐데.. 그런 느낌 주는 선수가 많지 않다. 몸이 먼저 반응하니까 그렇다.
SK의 힘은 역시 김성근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만으로도 선수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 결국 SK란 팀을 만든 감독의 힘을 말하는 것인가.
안 : SK가서 훈련해 보니까 김성근 감독이 지켜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피곤함의 차이가 정말 크더라. 10개만 쳐도 100개 친 것 처럼 힘들었다. 죽을 맛이었다.
정 : 무슨 의미인가
안 : 감독이 지켜보면 그만큼 집중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팀도 그럴거다. 하지만 그 강도가 다르다. 김성근 감독의 카리스마는 선수들이 집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그렇다. 일단 별 움직임이 없지 않나. 가끔 수첩에 뭔가 적기만 하고. 이런 말은 좀 하기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팀이 위기가 왔을 때 슬쩍 감독 쳐다보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흔들림 없이 앉아 있는 모습 보면 지고 있어도 괜히 이길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었다. 그냥 거기까지만 말하자.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509n12771?mid=s1001&isq=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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