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03  배지헌 칼럼

프로야구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인가, 아니면 한국인 ‘역차별’인가.

프로야구 일본인 코치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7년 SK 우승을 계기로 시작된 일본인 코치진의 인기는 이제 ‘유행’을 넘어 ‘대세’로 자리 잡을 태세다. 올해도 시즌이 끝난 뒤 LG 다카하시 코치가 2군 투수코치로 재계약했고, 삼성에서 다년간 트레이닝 코치로 활약한 하나마쓰도 한화로 팀을 옮겼다. 일본인 코치 기용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SK와 삼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일본인 코치 증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제노포비아는 대개 불황의 시기에 생겨난다고 했던가. 가뜩이나 국내 야구인들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판에 일본인 코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니 보는 눈이 고울 리 없다. 게다가 올해는 2개 팀의 사령탑이 바뀌면서 ‘신규 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던 터라 국내 야구인들의 박탈감은 더 크다.




최근 한 언론에서 보도한 기사는 이런 현장의 정서를 잘 반영한다. 여기서는 주로 SK와 삼성을 겨냥해서 일본인 코치의 무분별한 영입이 가져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코치진을 ‘왜색야구’로 덧칠했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SK 1군의 공용어는 일본어’라거나 ‘소외감’과 ‘역차별’ 이야기까지 거론된다. 어느 감독의 말을 빌려 “SK 야구가 사랑받지 못하는 건 일본색이 강하기 때문”이라 꼬집고 있다.

하지만 SK 입장에서 보면 이런 비난은 억울한 차원을 넘어 황당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삼성과 세트로 엮어 ‘무분별한 영입’이라 비난한 것은 SK에게는 큰 ‘실례’에 가깝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일본인이라서가 아니라 능력을 보고 영입한 SK

잘 알려진 것처럼 SK는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과 함께 일본인 코치진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야구계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비난의 목소리는 자라목처럼 쑥 들어갔다. 올 겨울에도 SK는 1군 타격코치로 세키가와 고이치를, 배터리 코치에는 세리자와 유지를 새로 영입했다. SK가 현재 보유한 일본인 코치 수는 총 4명.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다.

단지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개개인의 면면과 실적도 화려하다. 일본 통산 141승에 빛나는 대선수 출신의 가토 투수코치는 지난 2002년부터 국내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전임 쇼타 타격코치 역시 센트럴리그 2년 연속 타격왕 출신으로 SK 젊은 타자들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이치로-후쿠도메를 지도한 경력의 후쿠하라 전임 수비 코치도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인물.

또 SK 일본인 코치진의 특징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검증된 인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임 세키가와 타격 코치는 2008년부터 2년간 라쿠텐 코치로 재직하며 공격력을 강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는다. 세리자와 배터리 코치도 포수 육성에 있어서는 정평이 나 있는 전문가다.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된 아카호리 역시 다년간 일본 오릭스에서 투수를 육성한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 가토나 전임 쇼다-후쿠하라 등의 지도 경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 코치진은 김성근 감독의 개인적 친분으로 기용된 ‘친구야’ 식의 인사가 아니다. 철저하게 실력과 경력을 기준으로 채용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들이다. SK 내부에서 일본인 코치 기용을 놓고 별다른 잡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다. 능력이 확실하고 결과물 또한 확실한 지도자들이기에, 선수들도 거부감 없이 착실히 따르고 국내 코치들도 선뜻 협력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소외감’이나 ‘역차별’ 같은 단어는 적어도 SK 일본인 코치진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지도자로서도 일본인 코치들의 장점은 분명하다. SK 채병용 투수는 가토 투수코치에 대해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참을성 있게 지켜보고, 스스로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 “안 되는 것은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해서 훈련하도록 하는” 것도 가토 코치의 특징 중 하나란다. 선수들과의 대화보다는 감독과 구단 윗선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는 일부 국내 인사들과 달리, 일본인 코치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선수들과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두드러진다.




SK 전임 타격코치인 쇼다는 일본으로 복귀하며 “3년 동안 가르칠 걸 1년 만에 다 가르쳤다.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다”고 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는, 새로운 코치가 와서 더 나은 기술을 전수하는 게 낫다는 게 쇼다 코치의 생각이다. ‘내가 아무개를 키웠다’며 평생을 울궈 먹는 일부 지도자나 과거의 명성만 믿고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는 몇몇 이들과는 전혀 다른, 겸손한 자세다. 이런 코치진이 있었기에 SK의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투타의 눈부신 발전이 가능했을 게다.

일본인 기용으로 국내 야구인들 일자리를 뺏는다는 지적도 사실 SK와는 무관하다. 이런 지적은 ‘선덕여왕’ 보면서 총격전 안 나온다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SK는 일본인 코치를 많이 기용하면서도, 그만큼 한국인 코치 자리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도 은퇴한 전준호를 주루 코치로, 정경배를 타격 코치로 새로 채용했다. SK의 1·2군 코치진은 22명으로 8개 구단 중 최다 인원이다. 실제로는 국내 야구인들의 고용 활성화를 위해 가장 노력하고 있는 구단인 셈이다.

일본인 코치 ‘연수원’이 된 삼성

삼성은 SK와 함께 일본인 코치 영입에 가장 열심인 팀이다. ‘일본통’인 선동열 감독이 있기 때문에, 감독과 코치들 간의 의사소통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이미 하나마쓰나 나가시마 등을 코치로 기용해 많은 재미를 봤다. 올 겨울에는 새로 오치아이 에이지와 타네다 히토시를 각각 1군 투수·타격 코치로 영입했다. 일본에서 정상급 불펜 투수로 활약했던 오치아이와 ‘게다리 타법’으로 유명한 타네다가 삼성의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는 게 구단의 기대다.

문제는 삼성의 새 일본 코치들이 선수로서의 명성에 비해 코치로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오치아이 투수코치는 2007년 삼성에서 3개월간 연수한 것을 제외하면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전무하다. 타네다 코치 역시 2007년부터 방송 해설자로만 활동했을 뿐, 리틀야구팀조차 지도해본 적이 없다. 과연 국내 코치들을 제쳐두고 공들여 영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사들인지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코치로서 검증된 일본인 지도자들을 영입한 SK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새 코치들이 선동열 감독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기용되었다는 점도 문제다. 오치아이는 잘 알려진 대로 주니치 시절 선동열 앞에서 셋업맨을 담당했던 불펜투수 출신. 이번 영입도 선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타네다 역시 선 감독의 일본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뒤 구단에 요청해서 영입한 케이스. 친분보다는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한 SK와 달리, 삼성의 일본인 코치 기용은 ‘선친소(선 감독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에 가깝게 보인다.

일본인 코치 기용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분명하다. 효과적인 코칭을 위해서는 선수들과의 의사소통, 한국야구에 대한 이해 등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삼성의 새 코치들은 언어나 한국야구 적응에 앞서 당장 지도자로서의 경험부터 쌓아야 할 처지다. 한국 구단이 왜 일본 은퇴 스타의 코치 연수를 시켜줘야 하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그것도 1군에서 최고 요직인 투수코치와 타격코치 자리가 ‘어학연수생’들에게 돌아간다는 건 더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본인 코치 기용이 한대화-조계현을 떠나보낸 선동열 감독의 ‘자기 사람 심기’가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해태 시절 동료였던 두 코치가 떠나면서, 집권 2기를 맞은 선 감독은 마땅히 오른팔에 해당되는 코치진이 없는 상태. 때문에 친분이 두터운 오치아이와 타네다 등 자신의 의중을 충실히 따를 만한 일본인 코치를 기용해서 새로운 친정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이들 신임 코치진이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도 있다. 다년간 코치 경험이 있다고 해서 꼭 선수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것도 아니고, 코치 경험이 없어도 기술 전수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오치아이-타네다 영입에 대한 비난 역시 얻어맞은 두더지처럼 쑥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게다.

문제는 삼성의 새 코치 인선이 일종의 ‘외국인 우대’ 내지는 ‘내국인 역차별’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간 코치 연수를 받고 돌아온 프랜차이즈 출신이나 선수들과의 관계가 두터운 팀 내 기존 코치진을 제치고, 코치 경험이 전혀 없는 ‘감독 친구’들이 1군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를 꿰차는 건 어느 모로 봐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능력이 있어서 기용하는 게 아니라 일본인이라서 기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과연 선수들이 이들 코치진을 잘 따를지, 다른 국내 코치진이 이들의 기용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노포비아도, 내국인 역차별도 문제

일본인 코치 영입에 대해 일각에서 나오는 묻지마 비난은 분명 문제다. 야구의 국제화 시대에 자연스러운 현상을 지나치게 국수주의 관점에서, 밥그릇 싸움으로 편협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일본인 코치가 SK에서 뛴 뒤 다시 일본프로야구로 돌아가는 선순환이 계속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SK 손길승 명예회장의 말처럼, 일본인 코치 영입이 한국야구의 우수성을 전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면 이는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이번 삼성의 경우처럼 납득하기 힘든 일본인 코치 인선이 이뤄지는 경우다. 능력보다는 친분이, 실적보다는 일본인 코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바탕이 되어 영입하는 것이야말로 모 언론이 지적한 ‘무분별’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보여준 것에 비해 우대받는 이런 인선은 제노포비아 경향을 더욱 부추기고 국내 야구인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위험한 실험’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되는 건 삼성인데, 야구계의 불만은 삼성보다는 어째 SK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두에 언급한 기사에서도 ‘왜색야구’라는 표현은 주로 SK를 겨냥해서 쓰였다. 이게 재일동포 출신 감독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야구계의 따돌리기를 반영한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091203n04360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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