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23
SK 선수들의 특타를 지켜보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뒷모습 (사진=표명중 기자)
“특타, 타격감 찾는 데는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모 CF의 패러디가 아니다. ‘특별타격훈련’, 줄여서 특타에 대한 질문을 받는 선수들의 아리송한 대답이다. 흐트러진 타격감을 되찾는 데 도움은 되는 것 같은데, 그 효과의 정도를 똑 부러지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일각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말도 들린다. 그래서 <스포츠온>이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특타의 대명사로 통하는 SK의 훈련 현장을 찾았다. ‘감독 김성근, 주연 박재상, 나주환 외 3명, 러닝타임 2시간’의 특타 현장. 지금부터 8개 구단을 휩쓸고 지나간 특타 바이러스의 실체를 공개한다.
PM 03:00
사전 정보는 거의 없다. SK 관계자는 단지 “3시에 숙소에서 출발한답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나올지, 어떤 식으로 훈련을 할지도 알 수 없다. 무작정 훈련 장소인 서울 경기고등학교로 향했다. 3시 5분쯤이 되자 운동장 한쪽에 미니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곧이어 공, 배트 등 짐을 한가득 들어 나르는 코치들과 선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유니폼만 아니면 영락없는 사회인 야구단이다. 경기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박재상, 나주환, 윤상균, 임훈, 최윤석. 이날 김성근 감독의 선택(?)을 받은 특타조다. 그렇다면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리저리 물어보지만, 나주환의 말처럼 정확한 기준은 ‘아무도 몰랐다’. 다만, 이날 특타에 참여한 김경기 타격코치는 “못 치는 선수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최근 타격 밸런스가 좋지 않은 선수들이 보완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벌타’ 의혹에는 선을 긋는다.
그런데 훈련을 할 만한 환경이 아니다. 운동장은 이미 체육시간을 맞이한 학생들이 점령 중이다. 김경기 코치는 “다른 학교는 별도로 야구장이 있는데, 이 학교만 그렇지가 않다. 학생들 수업도 같이 진행한다. 타구의 위험성 때문에 수업 중에는 배팅볼 훈련을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선수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애꿎게 동원(?)되는 코치들은 힘들지 않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김경기 코치는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요, 뭘”이라고 말했다.
코치들이 던져주는 볼을 방망이로 치는, 토스배팅을 하고 있는 선수들
PM 03:15
배팅 훈련을 위한 세팅은 끝났다. 본격적인 훈련 돌입에 앞서 이홍범 트레이닝 코치의 구호에 맞춰 워밍업부터 한다.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그것도 땡볕 아래서 훈련을 하는 것이 짜증날 법도 하다. 그러나 선수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다. “SK의 특타는 일상이기 때문에 특타가 아니다”라는 말이 새삼스레 실감난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특타 구경은 일상이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보통의 학교와는 다르다. 하긴, 일상에 신비감은 없는 법이다.
3시 35분쯤이 되자 선수들이 스트레칭과 워밍업을 마치고 임시로 만들어 놓은 배팅 게이지로 이동한다. 이쯤 되니 의문이 생긴다. 항상 특타를 챙기기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사정이라도 생겼을까? 김경기 코치에게 물으니 “곧 오실 겁니다”라며 웃는다. 아니나 다를까. 선수들이 배트를 잡은 시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김성근 감독이 등장한다. 귀신이 따로 없었다. 간간히 나오던 웃음과 농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직 수업이 진행 중이다. 어쩔 수 없이 3개 조로 나뉘어 토스 배팅부터 시작한다. 선수들은 말없이 배트만 휘두른다. 정규훈련이 아니라고, 경기장 내 훈련이 아니기에 건성건성 임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토스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에 기자조차 숨이 막힌다. 잠시 물을 마시기 위해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말을 걸기도 미안할 정도의 치열한 공기. “특타 후 타격감이 좋아졌다”는 SK 타자들의 말은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훈련데 맞춰 도착한 김성근 감독이 특타 중인 박재상을 불러 긴 대화를 나누고 있다.
PM 03:40
정말 쉴 새 없이 친다. 보통 경기장에서의 토스 배팅은 10~20개 내외로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타는 다르다. 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SK의 특타는 보통 하루에 5~6명이 참여한다. 많은 선수들이 있는 경기장보다는 선수 개개인별로 더 많은 시간이 할당된다. 당연히 집중적인 훈련이 될 수밖에 없다. 토스 배팅이 시작된 지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선수들의 입에서는 악에 받친 기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한창 토스 배팅이 진행될 무렵, 배팅 게이지 바깥쪽에서 묵묵히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던 김성근 감독이 박재상을 호출한다. 장시간 면담이 이어진다. 전방을 응시하며 뭔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직접 타격폼을 잡기도 한다. 훈련 후 어떤 내용을 말했는지 묻자 김성근 감독은 “그냥 야구 이야기”라며 웃었다. 박재상도 “훈화 말씀이죠”라고 얼버무린다. 어떤 지적이었는지는 아무래도 경기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이홍범 코치는 “감독님이 오시면 아무래도 선수들의 집중력이 높아진다”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팀들도 감독이 직접 특타를 챙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SK처럼 매번 감독이 특타 현장에 나와 선수들을 지도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투수 출신인 김성근 감독의 타격 레슨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이홍범 코치는 “현역시절 타격도 굉장히 뛰어났던 분이셨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최윤석의 타격을 지켜보고 있는 김성근 감독
PM 03:50
땡땡땡은 아니지만 학교 종이 울린다. 학생들의 수업이 끝났다는 신호이자, 배팅볼 훈련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중간에 휴식은 없다. 군대에서도 50분 훈련하면 10분은 쉬는데, 특타에서는 다르다. 휴식은 사치일 뿐이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와중에서도 배트를 휘두른다. 준비한 음료수는 이미 미지근한 물로 바뀐 지 오래다. 선수들이 로봇이라도 열을 받아 잠시 콘센트를 빼야 할 지경이다. 그래도 나주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냥 좀 덥네요”라고.
배팅볼 훈련은 조심스럽다. 일단 운동장 자체가 정식 야구장과는 다르다. 때마침 하굣길에 나선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타구에 맞으면 큰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힘을 빼고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우려를 덜어주는 것은 코치들의 몫이다. 이홍범 코치와 김경기 코치가 운동장 끝에서 타구를 확인하고 미리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특타에 익숙한 경기고 학생들은 알아서(?) 타구를 잘 피해 다녔다.
그런데 배팅볼 훈련이 끝날 줄을 모른다. 이날 SK는 잠실에서 두산과의 야간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보통 원정팀은 4시 반 정도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적어도 4시 15분 정도에는 특타가 끝나야 정상. 하지만 특타를 지켜보는 김성근 감독의 입에서는 좀처럼 “끝내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뭔가 더 살필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나주환은 “끝나는 시간은 모른다. 감독님이 정하기 나름이다”라며 다시 배팅 게이지로 향했다.
훈련이 끝나자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있는 김성근 감독
PM 04:40
기자가 예상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하염없이 선수들의 배팅볼 타구만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그러던 순간, 시계를 한 번 쳐다본 김성근 감독이 조용한 목소리로 “호텔 버스를 부르라”라고 말한다. 그래도 특타는 한참 더 계속된다. 4시 50분경, 김성근 감독은 면담으로 인해 훈련량이 적었던 박재상을 지목하며 “박재상까지만 쳐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5분 뒤에서야 김성근 감독의 입에서 “훈련 끝”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을 줍고 박스에 모으는 것도 선수들의 몫이다. 소수정예인 특타조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김성근 감독도 할 일이 더 있다. 바로 밀려드는 사인공세를 해결하는 일이다. 일반에게 공개된 장소라고 해도 훈련 중 사인요청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선수도, 감독도 엄청난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습이 끝난 이후의 사인요청은 대부분 받아준다. 김성근 감독은 이날 10명이 넘는 학생들의 사인요청에 일일이 응했다.
호텔에 들를 시간도 없이 바로 경기장 직행이다. 김성근 감독도 사방이 뻥 뚫린 운동장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간은 급한데, 아직 미니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김성근 감독을 위한 차량뿐이다. 그러자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차량에 선수들을 태워 먼저 보낼 것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본인은? “택시타고 가면 된다”라는 태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김성근 감독은 홀로 유유히 사라졌다.
훈련을 마친 뒤 버스가 도착하지 않자 김성근 감독의 차를 타고 먼저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선수들
PM 05:05
3시 5분에 도착했으니 정확히 2시간이 흘렀다.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이 내준 차량에 짐을 싣고 먼저 잠실구장으로 이동했다. 김경기 코치와 이홍범 코치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은 미니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2시간 만에 만끽하는 그늘. 코치들도, 보조요원들도 그때서야 모자를 벗고 땀을 닦기 시작했다. 경기 전임을 감안하면 고된 일정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불평은 없다. 특타의 효과가 쏠쏠함을 잘 아는 탓이다.
이홍범 코치는 “소수가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기 때문에 경기장보다는 덜 산만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몇 번째 특타인지 셀 수조차 없는 박재상도 “확실히 분위기와 기분이 다르다. 경기장보다 볼을 더 많이 칠 수도 있고, 감독님 말씀도 들을 수 있어서 효과가 있다”라며 동의한다. 김성근 감독은 “잘못된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특타 당위론을 역설한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전날 변화구에 헛스윙을 한 타자가 특타를 한다고 해서 오늘 헛스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상적인 특타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몸만 피곤해 진다는 선수들도 있다. 이렇게 특타 효과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바로 남몰래 흘린 땀은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절대명제가 있는 한, 앞으로도 특타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달려 있다.
[스포츠온=김태우 기자]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0723n0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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