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25
프로야구 42일간 1위 ‘SK 돌풍’ 김성근 감독
조선일보 대구=고석태 기자
▲ 대구 그랜드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65세의 김성근 감독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5년 전 LG 감독 시절과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그대로였다.
‘춘추전국시대’라는 2007 프로야구. 그 소용돌이 속에서 SK 와이번스는 4월 13일 이후 42일 동안 1위를 지키고 있다. SK돌풍은 ‘관리야구’의 대명사 김성근(65) 감독의 힘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랑이 학생주임’에서 ‘부드러운 교장선생님’으로 변신했다는 얘기를 듣는 김 감독을 지난 23일 대구 원정 숙소에서 만났다.
―요즘 판정에 대한 항의도 없고 사람이 변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변하려고 애를 쓴다. 내가 편하니까. 예전엔 승부 속에서 살았고, 그것만 쫓아다녔다. 지금도 승부는 하지만 객관적인 위치에서 보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우리나라 야구 발전이지 않겠나. 항의를 자제하는 건 심판들에 대한 무언의 경고다. 내가 믿고 있으니까 당신들도 잘하라는 얘기다.”
―‘미국파’인 이만수 수석코치와는 워낙 스타일이 다르지 않나? 처음 계약했을 때 호흡이 안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호흡이 맞고 안 맞고가 어디 있나? 나는 감독이고 거기는 수석코치다. 자기 직분에 맞게 일하면 된다. 사실 선수 시절의 이만수는 안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이만수는 중간 관리자다. 그 신분에 맞게 행동하라고 말해준다. 좀 튀는 행동을 하지만 보고도 못 본 체한다.”
―구단에서 이만수 코치를 후계자로 키운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후계자라고? 그건 만드는 게 아니다. 물론 이 코치에게 좋은 기회이긴 한데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물이 없으면 배가 뜨지 못한다. 관리자다운 행동을 해야 주위의 시선이 달라진다.”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메모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일본 롯데 마린스에서 코치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다. 일본 생활을 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밑바닥 생활을 알게 됐다.”
―지바 마린스에 가게 된 계기는?
“보비 발렌타인 감독이 먼저 제의를 했다. 우연한 기회에 식사를 같이 했는데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승엽이 개인 코치로 가게 됐다는 건 잘못 알려진 거다.”
―감독은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성근 야구’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난 언제나 뭔가 부족한 팀을 맡았다. 그리고 우승이란 실력만 갖고는 이룰 수 없다. 운, 특히 판정 운이 따라야 한다.”
―‘벌떼 마운드’로 일컬어지는 많은 투수 기용이 선수들의 혹사를 불러와 정작 포스트시즌에선 힘을 못 쓴다는 지적도 있다.
“에이스가 없기 때문이다. 에이스의 존재는 정규시즌에도 중요하지만 포스트시즌 때는 절대적이다. 상대 에이스와 붙었을 때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한다. SK는 현재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 지금 갖고 있는 투수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 벌떼 마운드다. 에이스는 불펜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요즘 국내리그에선 한화 류현진, 문동환 정도가 에이스답다.”
―올 시즌 SK는 39경기 중 36차례의 다른 선발 라인업을 짰다. 이건 지바 롯데 보비 발렌타인 감독에게 배운 것인가?
“보비와는 관계 없다. SK의 전력이 그만큼 불안하기 때문이다. SK가 현재 1위는 지키고 있지만 우승할 만한 전력은 아니다. 내 목표도 우승이 아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70승을 목표로 삼고 있다.”
'벌떼 마운드' 투수기용? SK엔 에이스 없으니… 항상 부족한 팀 맡잖아
―70승이면 정규리그 1위가 될 텐데?
“그런가?(웃음) 아무튼 우승은 전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김인식 감독과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는데.
“사실 라이벌이 아니라 적이다. 김인식 감독 말고 어느 팀 감독과도 라이벌이 될 수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화젯거리를 만드는 건 오케이다. 사실 김 감독과는 ‘우리가 야구를 살리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김인식 감독은 예전에 상문고 감독을 할 때부터 훌륭한 감독이 될 줄 알았다. 그때부터 경기 중에 열심히 메모를 했다.”
―삼성 김응용 사장이 2002년 한국시리즈를 하면서 김 감독을 ‘야구의 신’이라고 표현했는데 김 사장과 친한가?
“거긴 양지에서 살아온 사람이고 난 음지에서만 놀았다. 그때 한국시리즈 1차전 하려고 대구구장에 왔는데 건너편에 당시 삼성 감독이던 김 사장이 그렇게 불쌍해 보이더라. 이기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 같았다. 야구든 인생이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봐야 한다.”
"승엽아 넌 너무 남에게 의지한다. 도망가는 걸 먼저 생각하지 마라"
이승엽의 스승 김성근
김성근 감독은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존경하는 스승 중 한 명이다. 한때 일본 롯데에서 고전하던 이승엽이 부활하게 된 데는 김 감독의 도움이 컸다. 22일 이승엽의 부친 이춘광씨는 대구구장을 방문, 김 감독에게 인삼절편을 선물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김 감독은 “이승엽과의 관계는 일본에 가기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2003년 5월초 이승엽이 슬럼프 기미를 보였는데 언론을 통해 몇 가지 지적을 했더니 바로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줬는데, 곧바로 사흘 동안 홈런 4개를 치더군요.” 그해 이승엽은 56호 홈런으로 아시아 기록을 세웠다.
2005년 이승엽에게 김 감독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지바 롯데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복귀설도 흘러나오던 때였다. 당시 롯데 코치였던 김 감독은 “승엽이를 한 시간 반 동안 붙잡아 놓고 혼냈다”고 회상한다. “’시행착오가 많은 사람이 성공한다. 넌 남의 시행착오 속에 살고 있다. 너무 남에게 의지한다. 한국 복귀는 도망가는 거다. 도망가는 걸 먼저 생각해서야 성공하겠느냐. 넌 승부 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은 변명하기 마련이다. 절벽에 서 봐라. 해명이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 일본 투수들의 공이 좋다, 볼 끝이 한국과 다르다, 그런 말들은 변명이다’라고 다그쳤죠. 그 당시 승엽이는 무척 괴로워했는데 내가 그걸 극복하는 계기를 준 것 같아요.”
김 감독은 “승엽이에게 난 정신과 의사지 정형외과 의사가 아니다”고 했다. 기술적인 조언보다 그의 정신력을 강화하는 데 더욱 노력했다는 얘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25/20070525002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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