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3.30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과 ‘한국야구, 일본야구, 미국야구의 차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은 지난 3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렸던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최종예선 때다.
일본은 당시 출전하지 않았는데, 전력 분석원 4명이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한국과 대만, 캐나다, 호주, 멕시코의 전력을 집중분석하고 있었고, 일본야구대표팀 감독 호시노 센이치씨가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탤런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열혈감독’ 호시노씨의 행차에 일본 야구기자들과 방송 인력 20여명이 대만에 동행해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지면과 화면으로 일본 야구팬들에게 라이브로 소개했다.
당시 네이버에 칼럼을 기고하는 기무라 고이치씨와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한국 야구에 해박하고 애정이 깊은 기무라씨와 나눈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은 4대3이란 스코어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였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에 4대3 한 점차로 패했다. 아쉬운 패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수준 차이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가 핵심이었고 궁금했다. 과연 이 4대3이란 스코어 차이가 어떤 깊이와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야구의 메카라 할 메이저리그를 보유한 미국야구의 벽을 과연 한국이나 일본이 넘을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지난해 코나미컵에 출전했던 한국시리즈 우승팀 SK는 일본 시리즈 우승팀과 1승1패를 나눴지만, 결국 결승에선 주니치에 한 점 차이로 졌다. 김성근 SK감독은 재일교포출신으로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 있던 시절엔 코치로 일본 프로야구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그는 현재 SK의 타격과 투수, 수비 코치 3명을 모두 일본 프로야구 출신으로 기용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국내 야구 뿐만 아니라 일본 야구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1일(금요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SK는 삼성과 시범경기를 했는데, 삼성이 8대6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김성근 감독에게 “일본야구와 미국야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내심 SK를 ‘한국 속의 일류(日流)’라고 보고,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을 영입한 롯데와 팀을 꾸려가는 방식과 훈련, 실제 경기에서 나타나는 다른 점을 묻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김 감독은 즉시 “아무 차이가 없죠”라고 대답해 다음 질문을 내놓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야구와 일본야구, 미국야구를 놓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고, 이번 주 다시 인천문학구장을 찾아갔다.
이날 취재의 일부는 본지 25일자에 ‘SK의 일본인 코치들이 본 韓·日야구 차이’, “일본 야구의 헝그리 정신이 더 강해”란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6장 분량으로 나갔지만, 정작 김성근 감독과 나누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소개하지는 못했다.
김성근 감독, 일본인 코치들과 나눈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가급적 있었던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분들의 생각이나 표현 자체에 취재하던 기자까지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인천 문학구장 SK 감독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지난 금요일에 드렸던 질문 다시 하겠습니다. 미국야구와 일본야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야구는 같은 거고, 체격 차이가 있어요. 야구를 파워와 기교로 나눠서 말하는데, 저는 파워보다는 체격이란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미국 선수들이 리치도 길고, 손가락 길이도 더 길죠. 바깥쪽 공을 던져도 메이저 선수들은 리치가 기니까 쉽게 맞추고, 힘이 좋으니까 가볍게 넘길 수도 있죠. 일본이나 한국 선수들과 근본적으로 체격이 다른 거죠. 투수도 마찬가지죠. 집게와 검지로 공을 잡아 변화구를 던지거나, 또 손 모양을 달리해서 체인지 업을 던지거나 다양한 구질을 훨씬 쉽게 구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손가락 길이와 관계가 있어요.”
-일반인에겐 미국 하면 자율야구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한국이나 일본과는 분위기부터 엄연히 다르고요.
“어디나 다 관리 속에 자율이 있는 겁니다. 미국야구는 사실 어마어마한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선 팀에서는 팀 훈련만 하지만, 개인 훈련은 개인들이 다 알아서 혼자 하지요. 그걸 자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메이저에서는 뛸 수 없으니까.”
김 감독은 여기서 약간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어려서부터 부모가 시키고 선생님이 시켜야 뭘 하잖아요. 학생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많이 다니지만 내가 필요해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아요. 남의 지시에 따라서 뭘 하는 버릇이 생기는 거죠. 야구도 어려서부터 이렇게 습관이 배어있으니까 프로가 돼서도 팀에서 개인훈련까지 챙기게 되는 거죠. 한국은 일본보다 이런 점이 더 심해요. 제가 일본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감독 선생님을 훈련 할 때는 본적이 거의 없어요. 경기 때만 볼 수 있었죠. 훈련은 대부분 자기들이 알아서 했고요.”
-일본 코치들을 타격과 투수, 수비 등 3명이나 쓰는 이유는 뭔가요. 아직도 일본 야구에 배울 점이 그렇게 많은 겁니까?
“우리보다 기술이 위니까, 노 하우를 갖고 있어요. 사실 저는 메이저리그나 미국 사람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제 경력이 일본에 지인이 많고 과거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많으니까. 언어적으로도 그렇고. 일본에 배울 점이라는 건 사실 시행착오를 한 경험이 우리 지도자들보다 많다는 거에요. 그 경험의 차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것, 좋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야구 하면 디테일이 강하다, 데이터에 강하다 이런 인식이 있습니다. 김성근 야구도 이런 일본야구의 영향을 받아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고요.
“그건 착각이에요. 사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세밀한 야구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국야구는 선수들과 경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서 경기와 훈련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야구가 그런 면에서 오히려 미국을 보고 배웠지요. 왜 타자나 투수의 쿠세(버릇이나 습관을 뜻하는 일본어)를 분석해서 상대에 대한 대응을 하는 야구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타자로 4할을 쳤던 테드 윌리엄스가 쓴 책에서 본격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에요. 윌리엄스는 ‘피처가 공을 던지기 전에 이미 어떤 공을 던질 지 결정돼 있다’고 했지요. 피처의 동작이나 습관에는 어떤 공을 던지겠다는 사인이 이미 담겨 있다는 겁니다. 일본 라쿠텐의 노무라 감독이 이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데이터 야구의 대표적인 노무라 감독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발전을 시킨 거지요.
이 사실만 봐도 디테일에 강하고, 데이터에 강한 야구는 미국 야구가 그 뿌리입니다. 미국에서는 내일 어떤 팀과 경기를 한다고 하면 정찰기록원들이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함께 미팅을 합니다. 우리는 스코어러라고 하면 대개 코치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하지만, 미국은 달라요. 감독이 하든가, 커리어가 많은 사람들이 하지요. 미국은 3, 4번 미팅을 거쳐서 상대 팀을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실전에 나가는 거에요. 한국이나 일본은 한 번 미팅하면 끝이죠. 미국이 더 세밀하다는 겁니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는 1918년 샌디에고에서 태어나 2002년에 작고했다. 1939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메이저리거로 출발해 196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0.344, 홈런 521개, 타점 1839점을 기록했다. 그가 1941년 기록한 0.406의 타율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대 타율이다. 두 차례 메이저리그 MVP(1946, 1949년)에 선정됐고, 5차례 올해의 선수(1941, 1942, 1947,1949, 1957)에 선정됐다. 1966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다. 그는 두 차례나 해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가해 현역 생활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힌다. 한 야구 평론가는 “증권 투자가가 증시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을 했다”고 할 만큼 연구하고 공부하는 타자였으며, ‘히팅의 과학 The Science of Hitting’같은 야구에 관한 명저들을 펴내기도 했다.
-한국야구는 역시 일본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이런 얘기 하면 욕먹을 지 모르겠지만, 한국 야구는 3차례에 걸쳐 일본 야구의 큰 영향을 받았어요. 1960년대 재일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야구를 힘의 야구에서 세밀한 야구로 바꿔 놓았습니다. 김영덕, 신용균씨 등이 왔었지요. 당시 한국 투수들은 직구와 커브 만 던졌어요. 일본에서 성장한 김영덕 투수가 와서 국내에서 슬라이더를 던졌어요. 1982년 국내에 프로야구가 등장하면서는 장명부라든가 김일융 선수가 와서 일본프로야구에서 습득한 다양한 구질을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후배들에게 일본 야구의 세밀함을 전파했지요. 또 한 차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1991년 한일 수퍼게임이었어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당시 가장 큰 차이는 스피드였어요. 모든 스피드가 일본이 빨랐어요. 타자의 타격 스피드가 달랐고, 포수가 공을 잡았을 때 한국 주자가 2루로 도루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자세도 간결했고, 동작도 훨씬 빨랐지요. 치고, 달리고, 던지고 하는 야구의 기본 스피드가 일본이 훨씬 빨랐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한국 포수가 공을 잡으면 일본 선수들은 마음놓고 도루를 했어요. 유격수 앞 깊숙한 공을 잡으면 일본 선수들은 다 1루에서 살아 내야안타를 만들었어요. 공은 선동열 투수도 빨랐지만 말이에요. 이런 직접적인 체험이 한국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었지요. 얼마나 민첩하게 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거지요.”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대표팀이 일본을 두 차례 이겼지 않습니까.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예선에서는 한 점차로 졌고, 또 감독님이 이끈 SK가 코나미컵에서 주니치와 1승1패를 했습니다. 이제 한일간 격차는 많이 좁혀졌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대표팀 레벨에서 한국의 수준이 많이 향상된 건 틀림없어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20여 년 동안 어마어마한 성장을 했어요. 그건 틀림없고요. 대표팀 경기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여기서 이긴다고 실력이 더 좋다든가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분명해요. 야구에서 잘 모르는 투수인데, 실력이 뛰어난 투수가 나오면 그 경기를 이기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야구란 종목의 특성이 실력차이가 있어도 최하위 팀이 1위 팀을 이길 수 있어요. 특히 좋은 투수가 있는 팀은 이런 이변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프로리그처럼 오랫동안 경기를 하면 실력차이가 대개는 반영이 되지요. 그래서 한국이 대표팀에서 일본을 이긴다고 하는 것을 저는 아직 추월했다고 하기 보다는 많이 가까워졌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미국과 일본, 한국야구의 수준은 많이 좁혀졌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아까 이야기한 것과 전혀 다른 사실도 있어요. 1980년대에는 그 때의 수준차이가 있었어요. 1990년대에는 한국과 일본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야구와 또 차이가 있고, 2000년대에도 또 다른 힘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미국야구가 대표팀에서 한국과 일본에 진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차이는 엄연히 있어요. 미국은 간단히 말하면 선천적인 체격이 뛰어나면서도 일본 선수들의 기교보다 뛰어난 기교를 갖추고 있다고 보면 돼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차이는 야구 인구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쟁의 질이나 폭이 다른 거지요.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일본보다 뛰어난 면이 있어요. 그건 승부근성이에요. 하고자 하는 집념은 한국 선수들이 가장 강해요. 일본은 머리 속으로 계산해서 이건 기브 업(포기)해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 선수들은 절대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발전의 속도가 빠른 거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의 법칙이에요. 저변이 넓다고 하는 이야기는 경쟁이 강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한국 선수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스톱돼버려요. 왜죠. 이제 경쟁이 더 이상 치열하지 않게 된 거죠. 하지만 미국은 어때요. 메이저리그 밑에 마이너 리그 있고, 트리플, 더블, 싱글, 루키리그 등 수많은 선수들이 경쟁을 벌여요. 이제 나는 완전히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는 거에요. 일본은 미국보다는 떨어지고, 한국보다는 경쟁이 더 치열해요. 그게 미국과 일본, 한국야구가 갖는 차이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에요.”
(김성근 감독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며 질문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덧붙였다.)
“야구 선수는 대개 3단계가 있어요. 20대에는 몸(체력) 갖고 야구를 해요. 30대 초반에는 기술을 갖고 하지요. 그리고 30대 이상 후반이 되면 이제 몸은 안되니까 머리를 갖고 야구를 해요. 야구가 진짜 재미있어지는 게 바로 머리로 하는 야구를 할 때에요. 사람의 인생도 그렇지 않아요. 머리로 하는 것, 그게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모든 면이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게 아쉬워요. 커리어가 쌓이고 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중시 안해요. 그냥 잘라버리는 거죠. 야구를 이제 좀 알았다 싶으면 잘라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야구의 재미가 덜하지. 야구 인구는 모자라는 데 나이 먹었다고 활용을 안하고 버리니까? 야구뿐만 아니고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요.”
-롯데가 메이저리그 출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또 시범경기를 통해 롯데 야구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어요.
“한국에도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 싸워본 사람은 없어요. 로이스터 감독은 미국야구에서 직접 싸워본 사람이잖아요. 그 속에서 느끼는 건 느끼고, 아닌 것은 아닌 거고 하는 게 있어요. 롯데가 돌풍을 일으킬 거냐고 물었나요. 아니 돌풍은 이미 시작됐어요. 롯데 선수들 모든 부분에서 적극성이 있어요. 한마디로 표정이 달라졌어. 고정관념이나 과거를 깨트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거지요. 옛날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메이저리그출신 감독이 오면서 선수들이 할 수 있다, 해보자 하는 기대를 갖게 된 거야. 내가 일본 코치 3명을 쓰니까 말도 있지만, 내 생각은 이 사람들이 능력이 있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싸우며 쌓은 노하우가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부른 거지.”
-아무래도 일본에서 오래 생활을 하셨고, 일본 코치들과도 친분이 있으셔서 편한 것 아닌가요?
“내가 그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들도 내가 누구라는 건 알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일본 코치들하고 한국 코치들하고 아무 차이 없이 대해요. 코치는 코치라는 생각으로 대할 뿐이에요. 내가 미국야구에 아는 친구들이 많고, 언어에 문제가 없다면 메이저리그 출신 코치들을 쓸 생각을 했을 거에요. 한국야구는 과도기라고 봐요. 외국인 감독이나 코치는 수혈과 같은 거지. 우리끼리만 있으면 변화가 없고 발전이 없지요. 만약에 내가 개인적으로 누굴 잘 알아서 코치를 시킨다고 합시다. 감독인 나하고 그 사람 둘은 좋겠지. 김성근이 있을 때는 좋지만, 선수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모시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마음이 있어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차이를 4대3이란 스코어로 풀어볼 수 있을까요? 1점 차이로 큰 차이가 없지만, 결국 승리는 일본이 차지한 그런 차이 말에요?
“야구의 베이스는 4개죠. 그 하나를 밟지 못하면 영원히 점수는 딸 수 없는 거죠. 지난해 주니치와 경기할 때 우리가 왜 졌나, 나도 분석을 많이 했을 거 아니오. 투수의 컨트롤 미스, 타격에서 부족한 점, 송구 문제 등 스코어 차이는 비록 크지 않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지요. 야구의 내용상 많이 근접한 것은 발전을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할 거야. 하지만 승부는 10점 차든 1점 차든 이긴 건 이긴 거고, 진 건 진 거에요.”
-대만에 있을 때 호시노 일본 감독이 현장에 온 것을 보면서, 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전력 분석원이 4명이나 와 있고, 녹화로도 볼 수 있는데, 너무 일본 국내 팬들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 말이죠?
“팬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일본 팬들이 많으니까. 호시노 감독이 인기가 있는 사람이고, 팬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은데. 일본 야구와 언론관계도 좋게 보이는 것도 있어요. 일본 야구를 보도하는 걸 보면 대개 감독을 띄워주고, 선수를 띄워주면서 영웅시 하잖아요. 그래야 팬들도 경기를 더 보고 싶어하니까. 오프 더 레코드라고 하면 안 쓰고 그러니까 신뢰가 쌓여서 더 많이 이야기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정보를 많이 공유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장점도 있지만, 지나친 측면도 있다고 말하자, 김 감독은 “글쎄요”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승엽 선수의 활약을 보고 싶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중계를 보는 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왠지 일본프로야구는 좀 더 세련돼 보이고 그런 느낌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다르고, 무대가 다른 거지.”
(김감독은 빙그레 웃더니 여기서 화제를 돌렸는데, 실은 한국 야구의 프로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문학구장 오는데 택시를 탔어요. 그런데 이 양반 낚시 갔다 왔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다 일어 선거야. 머리도 안 감고, 차 바닥은 흙투성이고, 출발하더니 이번엔 담배를 꺼내 무는 거야. 아이고, 어떻게 이러면서 영업을 하는 건가 싶데요.”
-지바 롯데에서 코치 생활은 김성근 야구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나요?
“지바 롯데에서는 내가 외국인이었잖아요. 나는 여기서 뭔가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됐어요. 그런데 나는 트라이(try)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 일본에 가서 김성근이는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여기(한국)에서는 승부만 보았지, 전체를 보지 못했구나, 한국만 보고 세계는 보지 못했구나. 늘 8개 팀이 벌이는 승부 속에서만 살았는데, 한국 야구의 미래라든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거기서 생각을 하다, 문득 한국에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나는 뭐했나 이런 후회도 들고. 마침 지바 롯데 감독이 미국인이었잖아요. 미국 감독과 선수들의 관계는 또 다른 면이 있더라고. 감독은 승부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프론트가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비즈니스적인 게 프로야구니까.”
-비즈니스적인 감독의 역할을 뭐라 생각하셨습니까?
“팬하고 가깝게 지내고, 야구를 재미있게, 아니 재미있게라는 표현은 어떨지 모르겠고, 전력투구하는 야구를 보여드려야 하는 거야.”
-올해 SK가 시범경기에서 고전했는데, 2연패할 만한 전력이라고 보십니까?
“초반엔 절대적으로 고전할 가능성이 있어요. 다른 팀들이 그만큼 좋아졌으니까. SK는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요. 지난해에는 SK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초반에 잘됐고, 그러다보니까 우승까지 이어진 거에요. 카드 게임으로 치면 올해 SK가 어떤 카드를 내놓을 지 다들 알고 있는 거야. KIA나 롯데는 새 카드가 있는 거고. 페넌트레이스를 잘 꾸려가야겠지. 일본 고지에서 훈련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아이들(선수들) 의식에서 우승을 없애는 거야. 정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이 돼야 하는 거지. 의식 수준을 하나 더 높이는 것이에요. 올해 캠프에서 내가 선수들을 엄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에요. 승자가 되는 순간 이미 패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거지요. 승자라는 교만이 드는 순간, 다시 승자가 되기는 힘드니까. 김응용 감독도 그런 경험이 많겠죠.”
-미국에선 우승하고 나면 몸값 비싼 선수들도 팔고, 유망주들을 데려와서 팀을 새로 만드는 경우도 많던데요.
“한국적인 게 있잖아요. 우승하고 나서 멤버를 바꾸겠다, 트레이드를 하겠다고 나서면 아마 나부터 트레이드 해버릴 거에요. 아시겠지만 예전에 다른 팀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아요. 준우승하고는 좀 바꿔야겠다 그러니까, 일본 코치는 데려와서 뭐 하느냐고 결국 내가 그만두게 됐잖아요.”
-한국과 일본야구의 요즘 변화가운데 하나가, 일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건데요. 한국은 박찬호 이후 점점 줄어드는 추세고요. 일본 선수들의 자질이 한국 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는 걸까요?
“사실 선수들의 정신자세만 놓고 보면 한국이 더 나아요. 야구를 대하는 순수한 태도라든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보다 좋다고 봐요. 일본은 훈련 반도 안 하죠, 개인적으로 알아서 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일본 아이들은 자기 머리 속으로 따져서 안되겠다 싶으면 기브 업(give up)하니까. 일본 아이들이 미국 가서 성공하는 것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아이들이 가기 때문이에요. 이치로나 마쓰이, 마쓰자카 다 일본에서 성공하고 같잖아요. 이 친구들의 야구 인생을 경기로 따지면 7, 8회 정도에 미국으로 가니까 성공 확률이 높은거지. 우리는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고 미국으로 가요. 그러니까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확률이 떨어지는 거지. 10명 가면 하나 건질까 하는 확률이고, 미국 스카우트들도 그런 생각으로 데려가는거야. 그러니까 박찬호가 대단하다는 거에요. 우리도 선동열이나 최동원이 전성기에 메이저로 갔다면 일본 선수 이상으로 성공했을 거에요. 김재박의 수비도 미국에서 충분히 통했을 거고.”
-일본 야구도 시작하는데, 한국 팬들은 역시 이승엽에 대한 기대가 크죠. 일본 야구 전문가들과 이야기 해보면 결국 약점으로 꼽히는 인코너 승부를 올해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만. 직접 지도도 하셨으니까,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수준 높은 투수들을 상대로 몸쪽 승부를 할 수 있어야 돼요. 몸 쪽 공을 홈런이나 안타로 쳐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 공을 어떻게 처리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으로 승부를 거느냐는건데. 야구가 묘해서 이 느낌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네요?. 대만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모습만 보면 나는 이승엽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홈런 포함해서 3타수 3안타 친 날 있잖아. 그걸 보면서 몸이 너무 빨리 열린다는 느낌을 받았어. 안타로 만든 공 가운데 아주 분명한 볼도 있었어. 그리고 그 때 상대했던 투수들 수준이 또 있으니까 안타가 된 거지. 그걸 보고 결과가 좋으니까 좋다하는 것은 안되는 거지. 내용이 좋아야 결국 결과도 좋아지는 거에요. 어떤 선수가 히트를 쳤는데 내용은 엉망이었다, 이러면 언젠가는 무너져요. 부실기업이 그런 거잖아요. 이승엽이 지바 롯데 있을 때 몸쪽 공을 잘 치는 선수에게 어떻게 하면 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이승엽은 끊임 없이 연습을 하고 있을 거야. 올 시즌 얼마나 빨리 일본 야구와 투수에 적응하느냐가 중요해요.”
-함께 일하시는 일본 코치 3명에 대해 평을 한번 해주시죠. 아무래도 일본어도 잘 통하시고 하니까 잘 ‘보살펴’ 주시겠군요.
“저에게는 철칙이 있어요. 감독은 감독이고, 코치는 코치, 선수는 선수라는 거지요.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뿐, 특별하게 구별하는 일은 없어요. 그래야 공정하고 프로의 관계로 서로를 대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 코치들이 과거에 쌓아온 노하우는 존경해요. 타격 코치인 이세 코치는 분석능력이 뛰어나요. 경기 중에 일어난 일, 투수와의 심리전이 어땠는지를 선수들에게 잘 전달하지요. 이세 코치는 지난해까지는 일본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을 지도했지요. 가토 투수 코치는 어드바이스의 양은 적어요. 답답할 정도로 기다리는 거야. 선수위주로 기다리다 꼭 필요하다 싶으면 선수에게 맞는 조언을 하지요. 조언을 자주 하면 선수 망가뜨리는 거야. 왜 학부형들은 이런 저런 코치를 많이 하는 가정교사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게 오히려 해로운 거야. 오늘은 이렇게 하라고 했다가, 내일은 저렇게 하라고 하면 애가 어떻게 되겠냐고요. 후쿠하라 수비 코치는 아주 열정적이에요. 선수들에게 그 열정이 전달이 되니까 좋아.”
김성근 감독은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상식의 허를 효과적으로 찌를 줄 알았고, 깊숙한 이야기를 아주 알아 듣기 쉽게 했다. 생생한 일화가 곁들여져 듣는 이를 빨아들일 만큼 흥미진진했다. 해박한 야구 지식과 야구 밖에 모르는 소탈한 일상생활이 겹쳐져 진정한 ‘야구 마니아’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새로운 변화를 늘 추구하고, 일흔이 다된 지금도 야구를 소년의 마음으로 정말 좋아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조금만 각색하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는 그저 시간의 흐름대로 서로 주고 받은 날 것 그대로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가급적 한국과 일본, 미국야구의 차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처음에 만나서 이야기를 했을 땐 조금 괴로웠다. 일본어 억양과 발음이 섞여 있고, 중요한 단어들을 간혹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익숙해지니 자꾸만 더 이야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었다. 지난해 인하대에서 특강을 했는데, 학생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연사로 뽑아 최근 다시 강연을 했다고 홍보 팀에서 알려줬다. 그럴 법하다고 수긍하게 됐다.
민학수 기자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301.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302.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303.html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과 ‘한국야구, 일본야구, 미국야구의 차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은 지난 3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렸던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최종예선 때다.
일본은 당시 출전하지 않았는데, 전력 분석원 4명이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한국과 대만, 캐나다, 호주, 멕시코의 전력을 집중분석하고 있었고, 일본야구대표팀 감독 호시노 센이치씨가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탤런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열혈감독’ 호시노씨의 행차에 일본 야구기자들과 방송 인력 20여명이 대만에 동행해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지면과 화면으로 일본 야구팬들에게 라이브로 소개했다.
당시 네이버에 칼럼을 기고하는 기무라 고이치씨와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한국 야구에 해박하고 애정이 깊은 기무라씨와 나눈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은 4대3이란 스코어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였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에 4대3 한 점차로 패했다. 아쉬운 패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수준 차이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가 핵심이었고 궁금했다. 과연 이 4대3이란 스코어 차이가 어떤 깊이와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야구의 메카라 할 메이저리그를 보유한 미국야구의 벽을 과연 한국이나 일본이 넘을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지난해 코나미컵에 출전했던 한국시리즈 우승팀 SK는 일본 시리즈 우승팀과 1승1패를 나눴지만, 결국 결승에선 주니치에 한 점 차이로 졌다. 김성근 SK감독은 재일교포출신으로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 있던 시절엔 코치로 일본 프로야구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그는 현재 SK의 타격과 투수, 수비 코치 3명을 모두 일본 프로야구 출신으로 기용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국내 야구 뿐만 아니라 일본 야구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1일(금요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SK는 삼성과 시범경기를 했는데, 삼성이 8대6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김성근 감독에게 “일본야구와 미국야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내심 SK를 ‘한국 속의 일류(日流)’라고 보고,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을 영입한 롯데와 팀을 꾸려가는 방식과 훈련, 실제 경기에서 나타나는 다른 점을 묻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김 감독은 즉시 “아무 차이가 없죠”라고 대답해 다음 질문을 내놓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야구와 일본야구, 미국야구를 놓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고, 이번 주 다시 인천문학구장을 찾아갔다.
이날 취재의 일부는 본지 25일자에 ‘SK의 일본인 코치들이 본 韓·日야구 차이’, “일본 야구의 헝그리 정신이 더 강해”란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6장 분량으로 나갔지만, 정작 김성근 감독과 나누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소개하지는 못했다.
김성근 감독, 일본인 코치들과 나눈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가급적 있었던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분들의 생각이나 표현 자체에 취재하던 기자까지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인천 문학구장 SK 감독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지난 금요일에 드렸던 질문 다시 하겠습니다. 미국야구와 일본야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야구는 같은 거고, 체격 차이가 있어요. 야구를 파워와 기교로 나눠서 말하는데, 저는 파워보다는 체격이란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미국 선수들이 리치도 길고, 손가락 길이도 더 길죠. 바깥쪽 공을 던져도 메이저 선수들은 리치가 기니까 쉽게 맞추고, 힘이 좋으니까 가볍게 넘길 수도 있죠. 일본이나 한국 선수들과 근본적으로 체격이 다른 거죠. 투수도 마찬가지죠. 집게와 검지로 공을 잡아 변화구를 던지거나, 또 손 모양을 달리해서 체인지 업을 던지거나 다양한 구질을 훨씬 쉽게 구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손가락 길이와 관계가 있어요.”
-일반인에겐 미국 하면 자율야구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한국이나 일본과는 분위기부터 엄연히 다르고요.
“어디나 다 관리 속에 자율이 있는 겁니다. 미국야구는 사실 어마어마한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선 팀에서는 팀 훈련만 하지만, 개인 훈련은 개인들이 다 알아서 혼자 하지요. 그걸 자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메이저에서는 뛸 수 없으니까.”
김 감독은 여기서 약간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어려서부터 부모가 시키고 선생님이 시켜야 뭘 하잖아요. 학생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많이 다니지만 내가 필요해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아요. 남의 지시에 따라서 뭘 하는 버릇이 생기는 거죠. 야구도 어려서부터 이렇게 습관이 배어있으니까 프로가 돼서도 팀에서 개인훈련까지 챙기게 되는 거죠. 한국은 일본보다 이런 점이 더 심해요. 제가 일본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감독 선생님을 훈련 할 때는 본적이 거의 없어요. 경기 때만 볼 수 있었죠. 훈련은 대부분 자기들이 알아서 했고요.”
-일본 코치들을 타격과 투수, 수비 등 3명이나 쓰는 이유는 뭔가요. 아직도 일본 야구에 배울 점이 그렇게 많은 겁니까?
“우리보다 기술이 위니까, 노 하우를 갖고 있어요. 사실 저는 메이저리그나 미국 사람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제 경력이 일본에 지인이 많고 과거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많으니까. 언어적으로도 그렇고. 일본에 배울 점이라는 건 사실 시행착오를 한 경험이 우리 지도자들보다 많다는 거에요. 그 경험의 차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것, 좋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야구 하면 디테일이 강하다, 데이터에 강하다 이런 인식이 있습니다. 김성근 야구도 이런 일본야구의 영향을 받아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고요.
“그건 착각이에요. 사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세밀한 야구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국야구는 선수들과 경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서 경기와 훈련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야구가 그런 면에서 오히려 미국을 보고 배웠지요. 왜 타자나 투수의 쿠세(버릇이나 습관을 뜻하는 일본어)를 분석해서 상대에 대한 대응을 하는 야구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타자로 4할을 쳤던 테드 윌리엄스가 쓴 책에서 본격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에요. 윌리엄스는 ‘피처가 공을 던지기 전에 이미 어떤 공을 던질 지 결정돼 있다’고 했지요. 피처의 동작이나 습관에는 어떤 공을 던지겠다는 사인이 이미 담겨 있다는 겁니다. 일본 라쿠텐의 노무라 감독이 이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데이터 야구의 대표적인 노무라 감독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발전을 시킨 거지요.
이 사실만 봐도 디테일에 강하고, 데이터에 강한 야구는 미국 야구가 그 뿌리입니다. 미국에서는 내일 어떤 팀과 경기를 한다고 하면 정찰기록원들이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함께 미팅을 합니다. 우리는 스코어러라고 하면 대개 코치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하지만, 미국은 달라요. 감독이 하든가, 커리어가 많은 사람들이 하지요. 미국은 3, 4번 미팅을 거쳐서 상대 팀을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실전에 나가는 거에요. 한국이나 일본은 한 번 미팅하면 끝이죠. 미국이 더 세밀하다는 겁니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는 1918년 샌디에고에서 태어나 2002년에 작고했다. 1939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메이저리거로 출발해 196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0.344, 홈런 521개, 타점 1839점을 기록했다. 그가 1941년 기록한 0.406의 타율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대 타율이다. 두 차례 메이저리그 MVP(1946, 1949년)에 선정됐고, 5차례 올해의 선수(1941, 1942, 1947,1949, 1957)에 선정됐다. 1966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다. 그는 두 차례나 해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가해 현역 생활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힌다. 한 야구 평론가는 “증권 투자가가 증시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을 했다”고 할 만큼 연구하고 공부하는 타자였으며, ‘히팅의 과학 The Science of Hitting’같은 야구에 관한 명저들을 펴내기도 했다.
-한국야구는 역시 일본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이런 얘기 하면 욕먹을 지 모르겠지만, 한국 야구는 3차례에 걸쳐 일본 야구의 큰 영향을 받았어요. 1960년대 재일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야구를 힘의 야구에서 세밀한 야구로 바꿔 놓았습니다. 김영덕, 신용균씨 등이 왔었지요. 당시 한국 투수들은 직구와 커브 만 던졌어요. 일본에서 성장한 김영덕 투수가 와서 국내에서 슬라이더를 던졌어요. 1982년 국내에 프로야구가 등장하면서는 장명부라든가 김일융 선수가 와서 일본프로야구에서 습득한 다양한 구질을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후배들에게 일본 야구의 세밀함을 전파했지요. 또 한 차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1991년 한일 수퍼게임이었어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당시 가장 큰 차이는 스피드였어요. 모든 스피드가 일본이 빨랐어요. 타자의 타격 스피드가 달랐고, 포수가 공을 잡았을 때 한국 주자가 2루로 도루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자세도 간결했고, 동작도 훨씬 빨랐지요. 치고, 달리고, 던지고 하는 야구의 기본 스피드가 일본이 훨씬 빨랐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한국 포수가 공을 잡으면 일본 선수들은 마음놓고 도루를 했어요. 유격수 앞 깊숙한 공을 잡으면 일본 선수들은 다 1루에서 살아 내야안타를 만들었어요. 공은 선동열 투수도 빨랐지만 말이에요. 이런 직접적인 체험이 한국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었지요. 얼마나 민첩하게 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거지요.”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대표팀이 일본을 두 차례 이겼지 않습니까.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예선에서는 한 점차로 졌고, 또 감독님이 이끈 SK가 코나미컵에서 주니치와 1승1패를 했습니다. 이제 한일간 격차는 많이 좁혀졌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대표팀 레벨에서 한국의 수준이 많이 향상된 건 틀림없어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20여 년 동안 어마어마한 성장을 했어요. 그건 틀림없고요. 대표팀 경기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여기서 이긴다고 실력이 더 좋다든가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분명해요. 야구에서 잘 모르는 투수인데, 실력이 뛰어난 투수가 나오면 그 경기를 이기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야구란 종목의 특성이 실력차이가 있어도 최하위 팀이 1위 팀을 이길 수 있어요. 특히 좋은 투수가 있는 팀은 이런 이변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프로리그처럼 오랫동안 경기를 하면 실력차이가 대개는 반영이 되지요. 그래서 한국이 대표팀에서 일본을 이긴다고 하는 것을 저는 아직 추월했다고 하기 보다는 많이 가까워졌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미국과 일본, 한국야구의 수준은 많이 좁혀졌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아까 이야기한 것과 전혀 다른 사실도 있어요. 1980년대에는 그 때의 수준차이가 있었어요. 1990년대에는 한국과 일본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야구와 또 차이가 있고, 2000년대에도 또 다른 힘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미국야구가 대표팀에서 한국과 일본에 진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차이는 엄연히 있어요. 미국은 간단히 말하면 선천적인 체격이 뛰어나면서도 일본 선수들의 기교보다 뛰어난 기교를 갖추고 있다고 보면 돼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차이는 야구 인구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쟁의 질이나 폭이 다른 거지요.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일본보다 뛰어난 면이 있어요. 그건 승부근성이에요. 하고자 하는 집념은 한국 선수들이 가장 강해요. 일본은 머리 속으로 계산해서 이건 기브 업(포기)해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 선수들은 절대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발전의 속도가 빠른 거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의 법칙이에요. 저변이 넓다고 하는 이야기는 경쟁이 강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한국 선수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스톱돼버려요. 왜죠. 이제 경쟁이 더 이상 치열하지 않게 된 거죠. 하지만 미국은 어때요. 메이저리그 밑에 마이너 리그 있고, 트리플, 더블, 싱글, 루키리그 등 수많은 선수들이 경쟁을 벌여요. 이제 나는 완전히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는 거에요. 일본은 미국보다는 떨어지고, 한국보다는 경쟁이 더 치열해요. 그게 미국과 일본, 한국야구가 갖는 차이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에요.”
(김성근 감독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며 질문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덧붙였다.)
“야구 선수는 대개 3단계가 있어요. 20대에는 몸(체력) 갖고 야구를 해요. 30대 초반에는 기술을 갖고 하지요. 그리고 30대 이상 후반이 되면 이제 몸은 안되니까 머리를 갖고 야구를 해요. 야구가 진짜 재미있어지는 게 바로 머리로 하는 야구를 할 때에요. 사람의 인생도 그렇지 않아요. 머리로 하는 것, 그게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모든 면이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게 아쉬워요. 커리어가 쌓이고 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중시 안해요. 그냥 잘라버리는 거죠. 야구를 이제 좀 알았다 싶으면 잘라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야구의 재미가 덜하지. 야구 인구는 모자라는 데 나이 먹었다고 활용을 안하고 버리니까? 야구뿐만 아니고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요.”
-롯데가 메이저리그 출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또 시범경기를 통해 롯데 야구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어요.
“한국에도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 싸워본 사람은 없어요. 로이스터 감독은 미국야구에서 직접 싸워본 사람이잖아요. 그 속에서 느끼는 건 느끼고, 아닌 것은 아닌 거고 하는 게 있어요. 롯데가 돌풍을 일으킬 거냐고 물었나요. 아니 돌풍은 이미 시작됐어요. 롯데 선수들 모든 부분에서 적극성이 있어요. 한마디로 표정이 달라졌어. 고정관념이나 과거를 깨트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거지요. 옛날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메이저리그출신 감독이 오면서 선수들이 할 수 있다, 해보자 하는 기대를 갖게 된 거야. 내가 일본 코치 3명을 쓰니까 말도 있지만, 내 생각은 이 사람들이 능력이 있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싸우며 쌓은 노하우가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부른 거지.”
-아무래도 일본에서 오래 생활을 하셨고, 일본 코치들과도 친분이 있으셔서 편한 것 아닌가요?
“내가 그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들도 내가 누구라는 건 알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일본 코치들하고 한국 코치들하고 아무 차이 없이 대해요. 코치는 코치라는 생각으로 대할 뿐이에요. 내가 미국야구에 아는 친구들이 많고, 언어에 문제가 없다면 메이저리그 출신 코치들을 쓸 생각을 했을 거에요. 한국야구는 과도기라고 봐요. 외국인 감독이나 코치는 수혈과 같은 거지. 우리끼리만 있으면 변화가 없고 발전이 없지요. 만약에 내가 개인적으로 누굴 잘 알아서 코치를 시킨다고 합시다. 감독인 나하고 그 사람 둘은 좋겠지. 김성근이 있을 때는 좋지만, 선수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모시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마음이 있어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차이를 4대3이란 스코어로 풀어볼 수 있을까요? 1점 차이로 큰 차이가 없지만, 결국 승리는 일본이 차지한 그런 차이 말에요?
“야구의 베이스는 4개죠. 그 하나를 밟지 못하면 영원히 점수는 딸 수 없는 거죠. 지난해 주니치와 경기할 때 우리가 왜 졌나, 나도 분석을 많이 했을 거 아니오. 투수의 컨트롤 미스, 타격에서 부족한 점, 송구 문제 등 스코어 차이는 비록 크지 않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지요. 야구의 내용상 많이 근접한 것은 발전을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할 거야. 하지만 승부는 10점 차든 1점 차든 이긴 건 이긴 거고, 진 건 진 거에요.”
-대만에 있을 때 호시노 일본 감독이 현장에 온 것을 보면서, 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전력 분석원이 4명이나 와 있고, 녹화로도 볼 수 있는데, 너무 일본 국내 팬들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 말이죠?
“팬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일본 팬들이 많으니까. 호시노 감독이 인기가 있는 사람이고, 팬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은데. 일본 야구와 언론관계도 좋게 보이는 것도 있어요. 일본 야구를 보도하는 걸 보면 대개 감독을 띄워주고, 선수를 띄워주면서 영웅시 하잖아요. 그래야 팬들도 경기를 더 보고 싶어하니까. 오프 더 레코드라고 하면 안 쓰고 그러니까 신뢰가 쌓여서 더 많이 이야기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정보를 많이 공유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장점도 있지만, 지나친 측면도 있다고 말하자, 김 감독은 “글쎄요”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승엽 선수의 활약을 보고 싶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중계를 보는 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왠지 일본프로야구는 좀 더 세련돼 보이고 그런 느낌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다르고, 무대가 다른 거지.”
(김감독은 빙그레 웃더니 여기서 화제를 돌렸는데, 실은 한국 야구의 프로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문학구장 오는데 택시를 탔어요. 그런데 이 양반 낚시 갔다 왔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다 일어 선거야. 머리도 안 감고, 차 바닥은 흙투성이고, 출발하더니 이번엔 담배를 꺼내 무는 거야. 아이고, 어떻게 이러면서 영업을 하는 건가 싶데요.”
-지바 롯데에서 코치 생활은 김성근 야구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나요?
“지바 롯데에서는 내가 외국인이었잖아요. 나는 여기서 뭔가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됐어요. 그런데 나는 트라이(try)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 일본에 가서 김성근이는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여기(한국)에서는 승부만 보았지, 전체를 보지 못했구나, 한국만 보고 세계는 보지 못했구나. 늘 8개 팀이 벌이는 승부 속에서만 살았는데, 한국 야구의 미래라든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거기서 생각을 하다, 문득 한국에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나는 뭐했나 이런 후회도 들고. 마침 지바 롯데 감독이 미국인이었잖아요. 미국 감독과 선수들의 관계는 또 다른 면이 있더라고. 감독은 승부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프론트가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비즈니스적인 게 프로야구니까.”
-비즈니스적인 감독의 역할을 뭐라 생각하셨습니까?
“팬하고 가깝게 지내고, 야구를 재미있게, 아니 재미있게라는 표현은 어떨지 모르겠고, 전력투구하는 야구를 보여드려야 하는 거야.”
-올해 SK가 시범경기에서 고전했는데, 2연패할 만한 전력이라고 보십니까?
“초반엔 절대적으로 고전할 가능성이 있어요. 다른 팀들이 그만큼 좋아졌으니까. SK는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요. 지난해에는 SK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초반에 잘됐고, 그러다보니까 우승까지 이어진 거에요. 카드 게임으로 치면 올해 SK가 어떤 카드를 내놓을 지 다들 알고 있는 거야. KIA나 롯데는 새 카드가 있는 거고. 페넌트레이스를 잘 꾸려가야겠지. 일본 고지에서 훈련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아이들(선수들) 의식에서 우승을 없애는 거야. 정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이 돼야 하는 거지. 의식 수준을 하나 더 높이는 것이에요. 올해 캠프에서 내가 선수들을 엄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에요. 승자가 되는 순간 이미 패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거지요. 승자라는 교만이 드는 순간, 다시 승자가 되기는 힘드니까. 김응용 감독도 그런 경험이 많겠죠.”
-미국에선 우승하고 나면 몸값 비싼 선수들도 팔고, 유망주들을 데려와서 팀을 새로 만드는 경우도 많던데요.
“한국적인 게 있잖아요. 우승하고 나서 멤버를 바꾸겠다, 트레이드를 하겠다고 나서면 아마 나부터 트레이드 해버릴 거에요. 아시겠지만 예전에 다른 팀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아요. 준우승하고는 좀 바꿔야겠다 그러니까, 일본 코치는 데려와서 뭐 하느냐고 결국 내가 그만두게 됐잖아요.”
-한국과 일본야구의 요즘 변화가운데 하나가, 일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건데요. 한국은 박찬호 이후 점점 줄어드는 추세고요. 일본 선수들의 자질이 한국 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는 걸까요?
“사실 선수들의 정신자세만 놓고 보면 한국이 더 나아요. 야구를 대하는 순수한 태도라든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보다 좋다고 봐요. 일본은 훈련 반도 안 하죠, 개인적으로 알아서 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일본 아이들은 자기 머리 속으로 따져서 안되겠다 싶으면 기브 업(give up)하니까. 일본 아이들이 미국 가서 성공하는 것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아이들이 가기 때문이에요. 이치로나 마쓰이, 마쓰자카 다 일본에서 성공하고 같잖아요. 이 친구들의 야구 인생을 경기로 따지면 7, 8회 정도에 미국으로 가니까 성공 확률이 높은거지. 우리는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고 미국으로 가요. 그러니까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확률이 떨어지는 거지. 10명 가면 하나 건질까 하는 확률이고, 미국 스카우트들도 그런 생각으로 데려가는거야. 그러니까 박찬호가 대단하다는 거에요. 우리도 선동열이나 최동원이 전성기에 메이저로 갔다면 일본 선수 이상으로 성공했을 거에요. 김재박의 수비도 미국에서 충분히 통했을 거고.”
-일본 야구도 시작하는데, 한국 팬들은 역시 이승엽에 대한 기대가 크죠. 일본 야구 전문가들과 이야기 해보면 결국 약점으로 꼽히는 인코너 승부를 올해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만. 직접 지도도 하셨으니까,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수준 높은 투수들을 상대로 몸쪽 승부를 할 수 있어야 돼요. 몸 쪽 공을 홈런이나 안타로 쳐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 공을 어떻게 처리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으로 승부를 거느냐는건데. 야구가 묘해서 이 느낌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네요?. 대만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모습만 보면 나는 이승엽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홈런 포함해서 3타수 3안타 친 날 있잖아. 그걸 보면서 몸이 너무 빨리 열린다는 느낌을 받았어. 안타로 만든 공 가운데 아주 분명한 볼도 있었어. 그리고 그 때 상대했던 투수들 수준이 또 있으니까 안타가 된 거지. 그걸 보고 결과가 좋으니까 좋다하는 것은 안되는 거지. 내용이 좋아야 결국 결과도 좋아지는 거에요. 어떤 선수가 히트를 쳤는데 내용은 엉망이었다, 이러면 언젠가는 무너져요. 부실기업이 그런 거잖아요. 이승엽이 지바 롯데 있을 때 몸쪽 공을 잘 치는 선수에게 어떻게 하면 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이승엽은 끊임 없이 연습을 하고 있을 거야. 올 시즌 얼마나 빨리 일본 야구와 투수에 적응하느냐가 중요해요.”
-함께 일하시는 일본 코치 3명에 대해 평을 한번 해주시죠. 아무래도 일본어도 잘 통하시고 하니까 잘 ‘보살펴’ 주시겠군요.
“저에게는 철칙이 있어요. 감독은 감독이고, 코치는 코치, 선수는 선수라는 거지요.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뿐, 특별하게 구별하는 일은 없어요. 그래야 공정하고 프로의 관계로 서로를 대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 코치들이 과거에 쌓아온 노하우는 존경해요. 타격 코치인 이세 코치는 분석능력이 뛰어나요. 경기 중에 일어난 일, 투수와의 심리전이 어땠는지를 선수들에게 잘 전달하지요. 이세 코치는 지난해까지는 일본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을 지도했지요. 가토 투수 코치는 어드바이스의 양은 적어요. 답답할 정도로 기다리는 거야. 선수위주로 기다리다 꼭 필요하다 싶으면 선수에게 맞는 조언을 하지요. 조언을 자주 하면 선수 망가뜨리는 거야. 왜 학부형들은 이런 저런 코치를 많이 하는 가정교사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게 오히려 해로운 거야. 오늘은 이렇게 하라고 했다가, 내일은 저렇게 하라고 하면 애가 어떻게 되겠냐고요. 후쿠하라 수비 코치는 아주 열정적이에요. 선수들에게 그 열정이 전달이 되니까 좋아.”
김성근 감독은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상식의 허를 효과적으로 찌를 줄 알았고, 깊숙한 이야기를 아주 알아 듣기 쉽게 했다. 생생한 일화가 곁들여져 듣는 이를 빨아들일 만큼 흥미진진했다. 해박한 야구 지식과 야구 밖에 모르는 소탈한 일상생활이 겹쳐져 진정한 ‘야구 마니아’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새로운 변화를 늘 추구하고, 일흔이 다된 지금도 야구를 소년의 마음으로 정말 좋아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조금만 각색하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는 그저 시간의 흐름대로 서로 주고 받은 날 것 그대로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가급적 한국과 일본, 미국야구의 차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처음에 만나서 이야기를 했을 땐 조금 괴로웠다. 일본어 억양과 발음이 섞여 있고, 중요한 단어들을 간혹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익숙해지니 자꾸만 더 이야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었다. 지난해 인하대에서 특강을 했는데, 학생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연사로 뽑아 최근 다시 강연을 했다고 홍보 팀에서 알려줬다. 그럴 법하다고 수긍하게 됐다.
민학수 기자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301.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302.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303.html
'긁어오기 >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단 첫 우승 SK 김성근 감독 “김성근식 야구? ‘쥐구멍 볕들 날’야구야!” (0) | 2011.05.26 |
---|---|
“난 음지에서만 놀았는데 양지서 산 김응용 사장이 그렇게 불쌍해 보이더라” (0) | 2011.05.26 |
[인물연구]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제패한 김성근 SK 감독 (0) | 2011.05.24 |
김성근, "이기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0) | 2011.05.24 |
김성근 전 LG감독에게 물었다 (0) | 2011.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