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65)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은 SK 와이번스는 올시즌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SK는 “강하다. 그러나 어딘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성근 감독은 과연 SK의 모자란 퍼즐 한 조각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시즌이 끝난 뒤로 미뤄야 할 것이다. 그러나 SK 야구에는 과거에는 없던 특징이 있다. SK 야구에 대한 생각을 7월 24일 문학구장을 찾아 김성근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또 그와 함께한 현재와 예전 선수들도 만났다. 


김성근 감독은 어떤 감독보다도 기록 분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사진 김수홍)



SK 야구는 전원 야구다. 한 구단 관계자는 ‘토털 베이스볼(Total Baseball)’이라고 했다. 전반기에 10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가 14명, 10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는 13명이다.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는 네 명뿐이다. 이 가운데 두 명은 공격보다는 수비 비중이 큰 포수 박경완과 2루수 정경배다. 라인업도 날마다 바뀐다. 

전원 야구든 토털 베이스볼이든 SK는 2001년에도 이런 야구를 했다. 야수 쪽만 본다면 그렇다. 2001년 20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는 14명으로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았다. 그해 팀 득점 순위는 어디였을까. 최하위였다. 그러나 올해는 전반기를 팀 득점 1위로 마쳤다. 이게 가장 큰 차이다. 

많은 타자가 고르게 출전한다는 말은 뚜렷한 주전이 없다는 말과 통한다. 부상이나 기량 저하로 기존 주전들의 출전 횟수가 줄어들거나 불확실성이 큰 신진이나 플래툰 선수를 자주 기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팀들은 대개 득점력이 떨어진다. 이제까지 한 시즌에 2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가 13명이 넘은 팀은 모두 7개다. 이 가운데 5개 팀의 팀 득점 순위는 모두 5위 아래였다. 

반면 역대 팀 득점 공동 1위(777점)인 2000년 현대에서는 타자 9명이 300타석 이상을 기록했고 2002년 삼성에서는 무려 8명의 타자가 규정 타석을 채웠다. SK는 2000년 현대, 2002년 삼성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상대 투수들을 떨게 하고 있다. 

왜 전원 야구인가 

김성근 감독은 “팀 전력이 100이다. 이걸로 70이나 80을 거둘 것인가 아니면 110이나 120을 얻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지금의 팀 운영이 실력에 10~20%를 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하지 않으면 전력의 70~80%밖에 결과를 낼 수 없다’는 뜻도 깔려 있다. 

SK 타선의 면면은 화려하다. ‘출루 기계’인 김재현에 ‘30홈런 30도루의 사나이’ 박재홍, ‘국민 우익수’ 이진영, 돌아온 4번 타자 이호준, ‘포수 홈런왕’ 박경완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김재현은 지난해부터 허리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도 스윙이 퍼져 나온다는 지적을 받았다. 허리 회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박재홍은 여전히 중요할 때 한 방을 날리지만 전성기 기량과는 거리가 있다. 3할 타자 이진영은 3년 전 얘기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많은 찬사를 받았던 외야 수비는 다소 과대포장돼 있다. 박경완은 포수로는 많은 나이인 35살이다. 이호준은 지난해 병역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다. 지난 2월 전지훈련에서는 오른손 손등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중심 타선은 강할수록 좋다. 지난해 SK 3, 4, 5번 타순에서 나온 타점은 팀 전체의 40.8%였다. 리그 평균 40.7%와 비슷한 수치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도 퇴출된 캘빈 피커링과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올린 53타점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최대 약점인 선발진 보강을 위해 외국인선수 두 자리는 모두 투수로 채웠다. 한마디로 기둥이 튼튼하지 않은 팀이었다. 부실한 기둥을 믿고 갈 수는 없었다. 

김감독은 “나는 ‘안 되니까 안 된다’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대안을 찾았다. 모든 선수들을 뛰게 한 것이다. 시즌 시작 때부터가 아니다. 지난 겨울 SK 선수들은 지겹게 뛰었다. 

전원 야구의 강점

SK식 전원 야구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야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4월에서 5월까지 SK는 기동력을 앞세우는 야구를 했다. 4월에는 스피드 야구를 했다. 8개 구단에서 가장 많은 42회 도루를 시도해 32회 성공했다. 1루 주자는 단타 때 27.1%의 확률(리그 평균 20.6%)로 3루를 노렸다. 5월에도 여전히 달렸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5월의 팀 타율은 2할4푼5리로 전체 7위로 떨어졌다. 승률도 11승12패2무로 5할 아래로 떨어졌다. 

6월 들어 SK는 더 이상 빠른 야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배팅 파워가 살아났다. 6월의 팀 타율은 2할8푼5리로 뛰었다. 홈런은 30개였다. 두 부문 모두 전체 1위였다. 부상에서 회복한 이호준은 전반기 최고의 클러치 히터로 떠올랐다. 최정은 말 그대로 하위타선의 4번 타자 구실을 했다. 

SK 라인업은 상대 팀과 투수에 따라 바뀐다. 포수의 도루 저지율이 떨어지는 두산이나 현대를 만나면 발 빠른 선수들이 들어간다. 힘으로 부딪쳐야 할 때에는 그에 맞는 라인업을 짤 수 있다. SK를 만날 때 상대 구단은 더 많은 대비를 해야 한다. 위기에 빠졌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도 더 커졌다. 

기본은 수비다. SK는 올해 전력을 짜며 센터 라인 강화를 목표로 했다. 센터 라인은 투수, 포수, 2루수, 유격수, 중견수다. 케니 레이번과 마이크 로마노는 1, 2번 선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불펜은 질과 양을 모두 고려하면 전체 구단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SK 불펜에는 ‘승리 계투조’‘패전 계투조’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 

유격수 정근우 카드는 실패했다. 그러나 두산에서 데려온 나주환이 안정된 수비를 하며 2루수 정경배와 짝을 이뤘다. 7월 25일 현재 타율 2할2푼1리의 정경배가 팀에서 네 번째로 많은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김감독이 수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타율은 2할4푼1리에 그치지만 중견수 수비가 뛰어난 김강민은 팀 내 최다인 84경기에 출전했다. 외야 수비가 중요해 질 때에는 조동화와 박재상이 투입된다. 

다양한 야구를 하려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확보해야 한다. 선수 개개인도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 김감독은 “SK 선수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 칭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록으로 볼 때 딱히 부인하기도 어렵다. 구원투수들의 홀드(55개)도 가장 많지만 승계주자실점률(21.2%)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낮다. 득점권 타율은 무려 2할9푼9리다. 

클러치

리그 전체로 볼 때 득점권 타율은 팀 타율과 비슷한 값을 갖는다. 올해 전반기에 8개 구단 전체 타율은 2할6푼1리, 득점권 타율은 2할6푼3리였다. 2005년과 지난해에도 이와 비슷했다. 물론 각 팀마다 편차가 있다. 2005년에는 팀별 득점권 타율과 시즌 타율의 차이는 +0.016~-0.020, 2006년에는 +0.018~-0.014 사이였다. 

올해 전반기 SK는 팀 타율 2할6푼1리, 득점권 타율 2할9푼9리였다. 득점권 타율이 시즌 기록보다 3푼8리나 높다. 어느 정도는 통계적 우연이 포함돼 있다. 타자는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경기수와 타수가 늘어나면 결국 성적은 평균 쪽으로 움직인다는 게 야구의 진리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SK 전력분석팀의 김정준 과장은 “기록을 검토해 보면 타자들이 몸쪽 공과 변화구 대처 능력이 늘었다는 게 나타난다. 특히 몸쪽 공 공략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야구 통계는 ‘한 타수는 한 타수일 뿐’이라고 가정 하지만 실제 야구에서는 좀 다르다. 주자가 누상에 있을 때와 없을 때 투구 패턴이 달라지는 투수들이 있다. 

김과장은 “이 상황에서는 이런 공을 쳐야 한다고 분석 결과를 준다. 하지만 선수의 실행 능력이 떨어지면 의미 없다. 결국 경험 많은 주전들에게 의존하게 돼 젊은 선수들이 크기 어렵다. 올해는 젊은 선수들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원 야구’의 SK는 또 다른 이점을 누렸다. 최정, 김강민, 박정권 등은 아직 상대에게 완전히 분석되지 않은 선수들이다. 김과장은 “새로운 얼굴들이 많아서 상대 팀이 우리와 싸우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에는 ‘이진영을 잡으면 박재홍과 쉽게 상대할 수 있다’는 게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 베이스 더

득점권 타율 못지않게 눈여겨봐야 할 기록이 있다. SK의 전반기 팀 타율(0.261)과 팀 출루율(0.339)은 리그 평균과 같았다. 출루 횟수가 적었다는 얘기다. 상식적으로 출루가 적으면 득점권에 주자가 갈 확률도 낮아진다. 그러나 SK의 득점권 타수는 733회로 리그 평균(694회)보다 훨씬 많았다. 133회 시도에서 85개를 성공한 도루가 큰 이유다. 하지만 도루 때문만은 아니다. 도루 주자가 단타로 3루에 간 확률은 24.4%로 리그 평균(24.0%)보다 높다. 주자가 득점권에 자주 나가고 득점권에서 잘 치니 득점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성근 감독의 지론은 ‘한 베이스를 더 가고 한 베이스를 아끼는 야구’다. 이 생각은 아직까지는 팀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단타 때 홈으로 뛰는 2루 주자’는 SK 야구의 가장 큰 특징이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2루에서 홈으로 들어온 주자가 적었던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올해 이 확률은 76.0%로 전체 1위다. 리그 평균(60.1%)은 물론 2위 현대(64.1%)나 3위 LG(63.4%)보다 훨씬 높다. 팀 도루 1위인 두산은 50.5%로 의외의 최하위였다. 빠른 선수가 타선에 고루 포진한 SK와 그렇지 않은 두산의 차이다. 

주자를 득점권으로 보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출루한 뒤 후속 타자의 볼넷이나 안타 등 적극적인 공격으로 진루할 수 있다. 둘째, 2루타나 3루타로 바로 득점권으로 갈 수 있다. 셋째, 1루에 출루한 뒤 도루나 희생번트, 진루타 등 이른바 ‘생산적인 아웃(Positive Out)’으로 진루할 수 있다. 물론 첫째 방법의 확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세 번째 방법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른바 ‘잔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생산적인 아웃’으로 진루한 확률은 20%나 된다. 

‘한 베이스 더’는 수비에도 적용된다. 안교훈 더그아웃 기록원은 “기록에 잡히지는 않지만 2루타를 단타로, 안타를 아웃으로 만드는 수비가 많았다”고 말했다. 

전원 야구는 진화할까

김성근 감독은 어떤 감독보다도 기록 분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마술사는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도박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의 카지노 팀이 뛰어든 적이 있었다. 이들은 ‘통계적으로 정확한 선택을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돈을 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돈을 잃을 때가 있다.

야구에서 한 시즌은 통계적으로 단기일까 장기일까. 가령 SK가 ‘전원 야구’를 하는 이유는 감독이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을 결과로 만들기 위해 지난 겨울 많은 준비를 했다. 아직까지는 성공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김성근 감독은 “고정된 라인업으로 야구를 하면 나도 편하다”라고 말했다. SK의 주력 타자인 박재홍은 34살, 김재현은 32살, 이호준은 30살, 이진영은 27살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올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지금은 라인업의 50%가 고정돼 있지만 내년, 내후년이 되면 70, 80%로 올라갈지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김감독은 지난날 이런 야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감독이 누가 봐도 강한 팀을 맡은 적도 없다. 지난 4년 동안 승률 5할1푼4리(257승243패)로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SK는 김감독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나은, 어쩌면 가장 궁합이 맞는 팀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김감독의 이름 이니셜도 SK다. 

인천=최민규 기자

[출처] SPORTS2.0 제 62호(발행일 2007년 07월 30일)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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