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4  김성근 감독 GQ 인터뷰

2002 시즌 최후의 승부에서 패했지만, 최고의 승부사로 불리는 김응룡 감독에게 '야구의 신'이라는 헌사를 받아낸 김성근 감독은 야구에 관한 한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GQ는 그 김성근 감독에게 요즘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엄정한 품평을 의뢰했다. 그가 단숨에 쏟아낸,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뼈아프지만 의미있는 충고들을 지면에 옮긴다.


한국 프로야구에 관한 특강

상처 뿐인 영광! 김성근 감독이 말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문제는 상처없는 영광을 누리려는 태도에 있다. 상처 뿐인 영광에 비하면 지나치게 무책임한 태도다.


GQ - 한국 프로야구가 점점 재미없다는 말들이 있다.

김성근 - 야구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비해 우리 야구는 선수층이 얇고, 우수한 선수가 부족하고, 관중 동원 면에서도 수준차가 너무 크다.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미국식 야구를 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GQ - 그것은 요즘의 한국 프로야구계가 미국식 야구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김성근 - 구단 프런트에서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프런트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장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대신 프런트가 조직관리 면에서 선수, 감독, 코칭 스태프를 모두 뽑되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형태여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구단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오너가 제너럴 매니저에게 모두 맡긴다. 그러면 제너럴 매니저는 감독, 선수, 코칭 스태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신바람 야구'를 하라고 위에서 지시하면 그만한 팀 전력을 갖춰놔야 한다. 그러고도 결과가 나쁘면 제너럴 매니저가 잘린다. 감독이 책임지는 게 아니다.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만약 호시노 감독이 어느 팀으로 간다면 호시노 식의 야구를 한다. 이른바 전권감독이다. 프런트는 나머지 일만 하면 된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 나라의 경우엔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형태가 좋다. 이유?

각 팀에 인재가 풍부하면 윗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만, 인재가 부족하면 윗사람눈치를 봐야하는 게 우리 구단의 현실이다. 당연히 인재가 부족한 팀 상황을 고려할 때 윗사람과 잘 지낼 궁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해바라기' 마인드로는 야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GQ - 그것은 LG 트윈스에서 명쾌한 이유없이 경질된 당신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성근 - 프런트가 명분을 가지려면, 팀 전력이 약할 때는 '팀컬러가 이러니까 그런 야구를 해라 져도 괜찮다'고 하면서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무조건 성적이 나쁘면 코칭 스태프부터 교체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선수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팀을 놓고 팀컬러를 내려고 했다. 이건 무리한 주문이다. 게다가 팀은 이겨야 한다. 아무리 화려하게 야구해봤자 지면 팬들이 열광하지 않는다.

GQ - 약체팀을 어느 수준에 올려놓긴 하지만 소위 '김성근식 야구'가 재미없다는 지적들이 많다. 물론 최근에는 '김성근식 야구 다시보기'라는 말도 들리긴 하지만.

김성근 -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런 비판하기 참 쉽다. 지난 시즌 맡았던 LG팀을 사례로 들자면, 실제로 LG팀을 맡기 전에는 좋은 선수도 많고, 굉장히 화려한 야구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일단 융통성이 없었다. 그냥 치고 박기만 하는 아주 재미없는 야구를 하고 있었다. 힘이 있을 때는 견디지만, 힘이 없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팀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예를 들어 한 점 리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혹은 한 점을 어떻게 더 빼내야 하는 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야구의 묘미는 홈런이다. 하지만 홈런타자가 없는 팀에게 자꾸 홈런 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난해 LG는 1천 원짜리 팀이었다. 삼성은 당연히 1만 원짜리니까 화려하게 야구할 수 있다. 1천 원짜리 야구는 이리 메우고 저리 메우는 짜깁기 야구다. 비유하자하면 '서민의 야구'다. LG에는 우선 선발 피처가 없었다. 중간도 없었다. 중심 4번 타자도 없었다.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거기서 한 점을 주지 말고, 한 점을 더 뺏고, 한 베이스 더 뺏고, 상대팀에게는 한 베이스 주지 않는 야구를 하자고 그랬다. 그리고 선수들 모두에게 '사람의 잠재력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LG선수들 대부분이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프로야구 선수다. LG의 스타다'라는 생각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건 가장 나쁜 버릇이니 고치자고 했다. 나도 바꾸겠다고 했다. 'LG야구가 재미있다,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속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야구의 재미 중 최고는 물론 홈런이다. 하지만 숨어있는 진짜 재미는 원 베이스가 투 베이스 되고, 투 베이스가 쓰리 베이스 되면서 상대에게 지지 않는 것이다. 이게 스릴 있는 야구다. 그런 아슬아슬한 야구를 보면서 팬들이 도취되는 거다. 쓸만한 선수가 없는 곳에서 야구를 하려면 그런 식으로 해야한다.

2001 시즌 LG팀의 스틸이 70∼80개 정도였다. 2002시즌에는 120개 넘긴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실패해도 좋으니까 감이 오면 뛰라고 주문했다. 시즌 결과는 기아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한다.

GQ - 번트를 자주 대는 야구에 대한 지적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성근 - 번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돼 있다. 번트 대는 것을 단순히 한 점 뺏는 야구로 생각한다. 번트의 의미는 한 점이 아닌, 상대팀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느냐 하는 데 있다. 큰 뜻에서 보면 전법이다. 러너가 퍼스트에 있는 것과 세컨드에 있는 것은 수비 쪽에서 느끼는 부담 면에서는 엄청 나게 차이가 크다. 번트로 게임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때가 있고 상대팀에게 데미지를 줘야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것이 1점 뺏으려다 3∼4점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 예를 들어 4점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8회쯤 번트를 대는 것은 오늘만 이기겠다는 게 아니고 다음 경기까지 염두에 둔 대비다. 오늘만 이기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번트가 아니다. 133게임을 치르는 페넌트 레이스를 토털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계산 속에서 야구를 해야지 , 그날 게임마다 토막 끊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코리안 시리즈나 포스트시즌은 하나하나 보고 가는 게임이다. 그건 천지차이다. 싸움의 양상 자체가 바뀐다.

LG를 예로 들면, 한점 두점 아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예전 쌍방울 시절과 비슷했다. 그 당시 쌍방울이 1점차로 패한 게임이 25게임 정도 됐다. 그걸 반만 이긴다고 생각해봐라. 우린 13승이 플러스되지만, 상대팀들에게선 13패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년 상위권이 되는 거다. 8회쯤 승부를 뒤집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1회부터 열심히 해서 1점씩 내면 된다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트가 필요했다. 번트는 50%의 성공확률을 가지고 있다. 안타는 30% 확률이다. 게다가 투수들은 모두 3할대 승률을 가지고 있었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확률 높은 야구를 해야한다.

번트 얘길 조금 더 할까. 이번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관중들이 번트 대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그 이유는 초구에 모두 성공했고 득점했기 때문이다.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실패가 많았다. 번트 하나만 가지고도 사인만 제대로 이행하면 80%이상 득점한다. 하지만 자꾸 실패하면 득점 확률이 30%이하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통계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재미없다고 말하는 거다. 번트 하나만 제대로 대는 것은 준비된 팀이라는 증거다. 이런 이면을 모르고 번트 자체에 대해 막연하게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다.

GQ - 좀더 노골적으로 묻자면, 어느 야구 해설위원은 , '프로는 관중이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서는 5회까지는 가급적 번트를 대지 말고, 투수교체도 하지 말고, 빠르고 화끈한 경기를 펼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재미없는 야구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당신과 김재박 감독을 꼽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맥락대로라면 억울한 감도 있겠다.

김성근 - 흥미로운 것은 김응룡감독도 번트를 댄다. 코리안 시리즈 때는 1회에도 번트 댔다. 김성한 감독도 막판에 많이 했다. 두산 김인식 감독은 피처를 자주 바꾼다. 하지만 내가 하면 비난하면서 그들이 하면 비난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건 평소에 어떻게 사교하는가에 달려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평가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야구를 보는 개념차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구 속에 흐르는 흐름의 묘미를 음미하지 않고 두드러진 한가지만 본다. 지난 시즌 코리안 시리즈 때에도 그런 지적들이 많았지만, 경기 끝나고 '왜 번트 댔어, 왜 투수 바꿨어. 왜, 왜, 왜'에 대한 것들을 설명해주니까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랬구나, 그렇게 깊은 의미가 있었구나 하면서.

한가지 사례를 들면, 코리안 시리즈 2차전 대구경기 심성보 타석에서 대타로 이일의를 내보냈다. 나중에 모니터터 보니까 해설자가 마구 비난하고 있었다. 경기 진행이 늦다고, 김성근은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난 그 상황에서 김응룡 감독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야구는 수읽기다. 여기에 재미가 담겨있다. 해설자는 '쳤습니다, 잡았습니다, 잘했습니다' 수준에서 끝낼 게 아니라 이런 수읽기를 전달해야 한다. 감독끼리 수싸움을 하는 묘미까지 읽어야 한다. 내가 이일의를 낸 것은 상대투수를 노장진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김응룡 감독이 넘어오질 않았다.

그게 그날 게임 흐름의 하나다. 그리고 내가 이일의를 내면, 삼성에서는 김응룡 감독이 왼손투수 강영식을 낼 것인지도 유심히 봤다. 만약 바꾸면 곧장 다시 최동수를 내려고 준비시키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던진 수는 패착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한가지는 건졌다. 김응룡 감독이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투수 강영식을 중요하게 기용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스포츠 신문들이 다음 게임 선발을 강영식이라고 했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도 전병호가 나왔다. 만약, 김 감독이 강영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그 대목에서 썼을 것이다. 그때 안 썼으니까 '아,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절대 안 쓰겠구나'라고 생각한 거다.

이런 대목들이 야구에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런 대목들을 해설자들이 전해야 한다.

GQ - 직접 경험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수준에 대해 엄정하게 품평한다면?

김성근 - 프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알고 있다'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팀을 만들어 가야한다. 직접 경험한 LG의 유지현 선수를 예로 들자면, 그 선수는 아는 건 다 알고 있었지만 하지는 못했다. 꾀가 많고 두뇌 플레이한다고 했지만 아니었다.

만약 A라는 타자와 피처 A가 승부한다고 치자. 이 상황에서 수비수는 어떤 방향의 타구가 올 것인지 예상하고 어떻게 수비할 것인지에 대해 계산해야 되는데 그걸 안 하더라. 2002 시즌 LG의 팀방어율이 2위였는데, 전년 시즌에 비해 2점 정도가 낮아진 거다. 그건 그만큼 수비가 안정적이었다는 말이다. 다시 유지현으로 돌아가서, 타자가 브리또인 상황에서 커브를 치면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진다. 하지만 유지현은 똑바로 서있었다. 그런 계산도 안하고 야구하고 있는 거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파인 플레이도 손쉽게 잡는 거다. 그리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 타자는 7할을 실수해도 되지만 수비는 7할 이상을 성공해야 한다. 피처 컨디션과 상대 타자를 읽고, 피처가 초구를 뭘 던지는 지, 컨트롤은 좋은 지를 계산해서 수비위치를 계산해야 하는 게 수비수의 임무다. 그게 하이클래스 야구다.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은 아직 그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다.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나이 먹었으니까 됐다 이렇게 생각한다. 프로페셔널은 마지막까지 가야 하는 거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면 안 된다. 결핍을 아는 선수만이 성공한다.

예를 더 들자면 이병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만의 섬에서 사는 선수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 남이 안보는 데서 더 연습하고, 안타 못 치면 아쉬워해야 기술이 느는 거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은 껍데기만 프로다. 이건 LG만의 상황이 아니라 모든 구단선수들이 마찬가지다. 선수들은 우선 프로선수로서 기술업, 레벨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경기에 임했을 때도 하나하나의 결과에 대해 아쉬워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마인드가 우리선수들에겐 희박하다.

인기있고 연봉 많이 받으면 스타플레이어인 줄 안다. '노 굿'이다. 스타 플레이어라는 것은 하이 레벨의 기술을 겸비해야하고, 매일 운동장에 나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선수들 스스로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얼마나 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난 시즌 내가 가장 실망 한 것은 정수근 선수였다. 피처들이 빨라져서 스틸하기가 어렵다고 코멘트한 것을 보고 그랬다.

기아의 김종국, LG 박용택은 뛰는데, '왜 나는 안되나'를 고민하지 않고, 견제가 심하니까, 피처들이 빨라져서 안 된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그런 선수는 프로가 아니라고 본다. 한때 도루왕까지 했던 정수근은 스틸때문에 선수 자격이 있지 그게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선수다. 관중 입장에서도 매력이 없다. 선수들은 자기 트레이드마크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 스타플레이어로서의 책임감, 프로선수로서의 책임감, 기술에 대한 책임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그게 굉장히 모자라다. 그러니까 당연히 야구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지도자들도 그런 점들을 간절하게 긁어내야 하는데, 선수들에게 맡긴다고만 한다. 그건 올바른 것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근무태만이다. 지금 한국 프로야구가 그런 시기에 와있지 않나 싶다. 그런 점들을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돌파하지 않는 한 새로운 야구 붐은 오지 않을 거라고 본다.

지난 코리안시리즈에서 관중이 몰렸던 것은 두 팀 모두 전례없이 타이트하게 경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순을 넘기고도 '아, 야구를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느꼈는데, 생각할수록 야구는 깊고 어렵지 않나 싶은데, 거기서 자꾸 도망가지 말고 트라이하면서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야구를 보면서 팬들도 같이 즐겼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한국 프로야구는 중학생 수준정도라고 생각한다. 야구와 관련된 사상과 기법 면에서 그렇다.

GQ - 이병규와의 갈등설이 시즌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일부 팬들도 올 시즌 게임에 임하는 이병규의 자세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야구계의 톱스타다.

김성근 - 물론 이병규는 소질 있는 선수다. 문제는 마인드다. 이병규가 LG에 입단했을 때가 소위 '자율야구'로 불리던 훈련방식이 적용된 시기다. 이병규는 전력투구가 어떤 것인지를 못 배웠다. 베이스 러닝을 예로 들면 이병규는 안타 치는 순간 그 생각에서 멈추는 스타일이다. 박용택 같은 경우는 프레시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뛴다. 치는 순간 다음을 보고 틈만 생기면 달리려고 한다. 그러면 1루타가 2루타가 되는 거다. 그런 차이가 있다. 이병규에게도 자주 주문했다. 그런 태도가 생겨야 메이저리그도 가고 일본도 간다고.

GQ - 그런 문제는 이병규 뿐 아니라 요즘 젊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생활 태도와 관련된 무성한 뒷소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그들의 사생활 이지만 연예인들과 자주 어울리는 등 운동 외적인 부분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야구계 대선배로서 한마디한다면?

김성근 - 일본에서 생활하던 20세 때 들은 얘기다.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진다.' 그때는 나 역시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꽃을 길게 피우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들은 그런 걸 염두에 둬야한다. LG에 있을 때 박용택의 그런 부분을 우려했었다. 작년 봄 오키나와 캠프에서 박용택이 보인 타격 솜씨는 그 프라이드 강한 이병규나 김재현이 감탄할 정도였다.

내딴에는 크게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4월에 2군으로 내려보냈다. 너무 들뜨면 안될 것 같은 스타일이니까 고생하라는 의미에서. 한번은 손목을 다치고 집에 인사왔길래, 그냥 돌려보내 버렸다. 이유를 대긴 했지만 그건 분명 야구 외의 다른 생활을 하다가 몸관리를 잘못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라면 야구만 생각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내가 자꾸 얘기한다. 육상을 봐라, 골프를 봐라, 배구를 봐라, 골프 칠 때 손목 스냅을 봐라, 배구 서비스할 때 팔꿈치 각을 봐라. 복싱에서 펀치를 날릴 때 손의 각도를 봐라. 모든 것을 야구 속에 넣어두고 생각하라는 거다.

그러면서 눈이 생기고, 그것이 기술로 변하면서 성장하는 거다.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아직까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다. 하이클래스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거다. 얼마 전에 <야인시대>에서 가미소리가 대나무를 자르는 걸 봤나. 수평으로 잡으면 못 자른다. 옆에서 빗겨치면서 자른다. 야구로 말하면 다운스윙이다. 그건 순간의 기로 잘라야만 가능하다. 그걸 위해서 검도를 배우러 간다. 왕정치가 그랬다.

GQ - 지금까지 언급한 맥락으로는, 프로선수는 스스로 알아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위 '자율야구'를 적용하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 아닌가? 일반에 알려진 당신의 '관리야구'와 '자율야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성근 - 관리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조직관리를 말한다. 미국야구에서 말하는 관리가 그렇다. 개인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내 야구를 관리야구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율야구를 하지만, 하지 말라는 게 산더미같이 많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에게 하지 말라고 정한 규정이 1백가지가 넘는다. 그걸 지켜가면서 운동한다.

어기면 추방이니까. 한국의 경우, 관리나 자율이라는 개념을 기자들이 자의적으로 갖다 붙이면서 개념이 이상해졌다. 선수들을 자유롭게 놔주는 것을 자율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은 그런 게 아니다. 야구는 단체경기지만 개인경기다. 한순간한순간 개인이 겪는 승부가 있다. 타석에서도 그렇고, 수비에서도 그렇다. 미국, 일본, 한국야구의 차이는 분명하다. 미국야구는 동계훈련을 하더라도 연습이 간단하다. 3∼4시간이면 끝난다. 팀 플레이 한두 시간 정도가 중요한 스케줄이다.

팀플레이는 수비포메이션을 연습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은 야수 전체가 있어야 가능하다. 조직적인 것만 모여서 하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연습하면 된다. 배팅 연습하는 것도 선수 당 몇 분이면 된다. 더 치고 싶으면 자기가 알아서 더 치면 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야구는 개인이 하는 것을 훈련시간에다 집어넣기 때문에 훈련시간이 길다. 그런 개념 차이가 있다. 한국야구의 경우 기술훈련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고 승부에 대한 개념이 미숙한 상태에서 개념이 잘못된 자율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GQ - 프런트와 코치 선임 건 때문에 마찰이 빚어졌다는 것은 무슨 얘긴가?

김성근 - 재작년 가을 캠프 때 피칭, 타격, 수비코치를 모두 일본에서 데려왔다. 난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코치들하고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야구는 한국보다 50년 앞서있다. 미국은 백년 앞서있다. 그 기간 동안 쌓아올린 프로세스를 상상이나 할 수 있나?

수비 포메이션 하나를 놓고도 그들은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야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야구니 일본야구니 하면서 껍데기만 가져다가 이용하고 있는 꼴이다. 구단 프런트에서는 그런 소리도 했다. '일본코치를 보유하는 건 대일감정 때문에 미묘한 문제다'라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한국야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말을 할 줄만 알지,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 때문이다. 귀중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자꾸 코칭 스태프들만 젊어진다. 그 사람이 가진 프로세스는 그 사람만의 것이다.

GQ - 당신은 경기가 끝난 뒤 꼼꼼한 복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리안 시리즈와 관련해 인상적인 몇 대목을 들려달라. 그것은 야구를 보면서 게임의 밑을 흐르는 흐름에 주목하라는 당신의 충고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성근 - 이승엽이 코리안 시리즈 6차전에서 동점홈런 친 것을 보자. 우선 그가 코리안시리즈 1차전 첫 타석에서부터 어떻게 쳐왔는지를 봐야한다. 홈런 치기 전까지는 이승엽은 고작 2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걸 LG배터리들이 어떻게 공략해왔는지 봐야한다. 그게 야구의 묘미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을 평론하고, 해설해야한다. 'LG배터리가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이승엽을 이렇게 공략했지만 시리즈 들어와서는 이렇게 공략했다.

1차전, 2루에 주자둔 상태에서 김민기가 초구로 싱커를 던졌다. 센터 앞 안타였다. 그 다음에 이 공을 가지고 LG배터리가 어떻게 움직였느냐' 이렇게 쓴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서울에서 4차전인가 5차전에서 9회 원 아웃 투 낫씽 상황에서 이승엽이 센터 앞 안타를 쳤다. 포수 조인성이 인코너로 미트를 댔는데 공이 약간 가운데로 몰렸다. 이승엽의 스윙 폼으로 볼 때 아웃코스 꽉찬 빠른 볼로 갔으면 분명 헛스윙을 했을 거다. 그 안타 하나로 이승엽의 기가 완전히 되살아난거다.

그게 6차전까지 연결됐고 동점홈런까지 간 거다. 중심타자가 시리즈 시작하고 단 2안타만 쳤고 심적인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는데, 그 안타 하나로 완전히 살아난 상황. 거기에 코리안시리즈의 복선이 깔려있던 거다. 홈런을 쳤던 타석에서는 이승엽이 완전히 볼을 읽었다. 그 전에는 읽지 못했다. LG배터리인 이상훈과 조인성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보낸 이승엽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했다. 그 다음 2구로 커브를 던지더라도 볼로 빼고, 타자의 자세와 표정을 본 다음, 3구를 던져야 했다. 그런데도 자기네 계산대로 더블 플레이 잡으려고 슬라이드를 던졌고 , 그걸 노린 이승엽이 받아친거다. 그게 홈런이 됐다. 홈런 맞은 볼을 이상훈의 실투라고 하는데, 아니다 계산이 틀린 거다.

그 전 타석에서 강동우를 잡은 이상훈이 게임을 빨리 끝내려다 말려든 거다. 야구가 그런 거다. 원 베이스 보냈을 때 '왜 보냈을까?' 고민하는 것. 그게 야구에서 얘기하는 초구의 중요성이다. 타자가 초구를 그냥 보냈을 때 '자세가 어땠지, 가만히 서있었나? 뭘 노리고 있을까'하면서 승부가 움직이는 거다. 이런 코멘트들이 점점 많아져야 야구의 묘미가 살아난다. 볼 하나에 얼마나 많은 미묘한 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가를 말하는 것.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경기를 전달하는 방법에 따라서 재미있다, 없다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머리 속에서 굴리고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독이라면 당연한 거다.


한 게임에 주고받는 3백여개의 공을 하나하나 계산 속에 두고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또 하나 더 할까. 코리안시리즈 6차전 8회. 4점 리드한 상황에서 이병규가 어깨가 아프다고 교체를 요구했다. 난 안된다고 했지만 코칭 스태프 3명이 요구해서 바꿨다. 마르티네스가 라이트에서 센터로 가고, 라이트에 최만호를 넣었다. 수비위치가 완전히 바뀌면서 두 군데 구멍이 생겼다. 그게 코리안시리즈 최고의 허점이었다. 4점 리드하니까 선수단 전체가 마음에 허점이 생겨버린 거다. 이병규 교체 후 양준혁이 라이트 넘기는 히트를 쳤고, 김재걸이 센터 다이렉트를 날렸는데, 만약 이병규가 계속 수비했으면 잡았을 거다.

GQ - 당신의 정밀한 데이터와 시선으로 볼 때 각 방송사의 해설과 스포츠 신문 경기 리뷰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지만, 굳이 고른다면 누가 가장 정확한 해설을 한다고 생각하나?

김성근 - 역시 현장에서 뛰었던 사람들이 감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정삼흠이 괜찮았다. 경기 상황에서 투수들의 심리에 대해 매우 정확한 편이었다. 전문가라면 원 포인트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GQ - 이제 당분간 한국 프로야구계에서 당신을 볼 수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야구팬들에게 한마디한다면?

김성근 - 팬들 입장에서 야구 보는 각도를 이기고 지는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오늘 어느 선수가 뭘 했다는 것을 보는 관점으로 바꿀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야구팬들이 '야, 어제 선동렬이 슬라이더가 잘 꺾이더라, 오늘 슬라이더는 코스가 조금 어정쩡하더라, 릴리스 포인트가 이렇게 됐다 저렇게 됐다, 공 실려가는 게 낮았다, 공 맞는 포인트가 약간 아래로 들어온다, 그 선수는 투구할 때 이러저러한 버릇이 있더라'라는 대화를 하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그런 시기가 오면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분발할 거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매체들이 야구의 속깊은 얘기들을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GQ 에디터 문일환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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