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2

이렇듯 감독의 임무는 단순히 훈련을 지휘하고 경기에서 작전만 내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팬들이 볼 때 해박한 야구지식을 풀어놓는 야구해설가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을 맡으면 최고의 감독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뒤섞여 있다보니 생각들도 다르다. 한쪽에서는 감독을 신뢰하고 따르지만 한쪽에서는 불만이 새어나오게 마련이다. 어느 조직의 수장이든 이 문제를 원만하게 다루지 않고서는 조직을 목적한 곳으로 이끌어갈 수 없다. 그래서 야구감독을 ‘매니저(Manager)’라고 일컫는지도 모른다. 김성근으로서도 86년 선수단 이탈 파문을 겪으며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10월 11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가 열렸다. 상대는 전년도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삼성. 게다가 적장은 ‘애증의 라이벌’ 관계였던 김영덕이었다.

사상 처음 도입된 플레이오프. 김성근으로서는 개인적으로 첫 포스트시즌 무대였다. OB는 대구 1차전에 신인 박노준을 선발로 내세웠는데 1점으로 막아내는 완투를 펼쳤다. 모두들 에이스 최일언이 1차전 선발로 나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김성근은 시즌 5승에 그친 ‘박노준 카드’를 꺼내드는 승부수를 띄웠다. 기묘한 승부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삼성 선발인 김일융을 상대로 단 1점도 빼내지 못하며 0-1 완봉패를 당하고 말았다. 1회말 1사후 허규옥의 우전안타성 타구를 우익수 김형석이 무리하게 잡으려다 뒤로 빠뜨려 2루까지 내보낸 뒤 이만수에게 좌전적시타를 맞은 것이 뼈아팠다. 김성근 스스로 86년 시즌 최종전에서 “1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는데 바로 이 1점은 플레이오프 승부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2차전에서 5-3으로 이겼다. 김성근은 시즌 내내 대타 요원에 머물던 주장 이종도를 플레이오프에서 전격적으로 주전으로 기용하며서 “이종도가 큰 몫을 해낼 것이다”고 장담했다. 이종도는 5회 삼성의 격렬한 추격에 쐐기를 박는 2점홈런을 날렸다. 이는 올해 2군을 오락가락한 김재현을 한국시리즈에 기용한 것과 흡사했다.

여세를 몰아 잠실 3차전도 최일언의 완봉역투로 2-0으로 승리했다. 플레이오프 전적 2승1패로 역전. 그러나 4차전에서 다시 한번 김일융의 9이닝 1실점 역투에 막혀 1-2로 패했다. 1-1로 팽팽하게 진행될 때만 해도 초조한 쪽은 삼성이었다. OB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OB는 9회초 1사 1,3루 위기로 몰렸고. 대타 박승호에게 희생플라이를 맞고 또 1점차 패배를 당했다. 5차전에서 3-7로 완패. 김성근은 이렇게 명승부를 남겼지만 첫 가을잔치에서 김영덕이 보는 앞에서 보기 좋게 패배의 쓴잔부터 들이켰다. 84년 삼성 감독직을 가로챈 그 김영덕 앞에서 말이다.

그런데 87년에도 똑같이 플레이오프 2승1패로 앞선 상황에서 4?5차전을 내주면서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동기생인 해태 김응룡이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90102.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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