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향해 어둠 속 스윙을 하던 원더스 선수(사진=원더스)
[2편 '원더스의 운명을 바꾼 의문의 이메일'에 이어]
원더스가 KBO(한국야구위원회)와 맺은 3년 계약을 종료하자 야구계엔 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야구계는 원더스가 KBO와 재계약해 다시 퓨처스리그에서 활약하길 바랐으나, 일부 야구인은 “설령 원더스가 다시 재계약을 선언해 야구판으로 돌아온 데도 결정적인 그 무언가가 바뀌지 않는 한, 기존 구단들이 원더스를 바라보는 시선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이 바로 ‘결정적인 그 무언가’이다. 원더스가 KBO와 MOU를 체결했던 2011년 9월 15일만 해도 기존 구단들은 국내 최초 독립구단 창단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조건 없이 육성 선수를 프로 구단에 보내주겠다”는 원더스의 다짐을 듣고 A 사장은 “젊은 사람들(허민 구단주 지칭)이 대단한 결심을 했다”며 “상황이 허락하는 한 원더스를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A 사장은 9구단 창단 문제로 KBO와 갈등을 빚었던 모 구단 소속이었기에 그의 ‘원더스를 돕겠다’는 약속은 국내 최초 독립구단의 순항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5일 원더스가 초대 감독을 선임하고서 상황은 돌변했다. 이전에도 원더스의 경기수와 관련해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던 기존 구단들은 그나마 당시만 해도 “원더스의 연착륙을 위해 협조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원더스가 초대 감독으로 김성근 전 SK 감독을 선임하자 서서히 태도가 바뀌었다.
원더스 감독 선임 이후 돌변한 기존 구단 분위기
한 야구인은 말했다. "상처받은 선수들에게 원더스는 실패의 반복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원더스에서 야구를 그만두면 최소한 더는 야구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것"이라며 "원더스는 패자부활전의 무대이자 오랜 연인인 야구에 헤어질 수 있는 최적의 이별의 장소"라고 말했다.(사진=원더스)
그즈음 미묘했던 단장회의 분위기를 B 단장은 이렇게 전했다.
“원더스가 김 감독을 선임한 뒤 다른 일 때문에 단장들끼리 모인 적이 있다. 대부분 단장은 별말이 없었지만, 몇몇 단장은 ‘설마’하던 김 감독 선임이 현실이 되자 ‘야인으로 잘 계신 양반을 왜 원더스가 다시 야구판으로 부른지 모르겠다. 이러면 야구판이 또 시끄러워지지 않겠느냐’며 원더스의 감독 선임에 다소 불만 섞인 감정을 드러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부터 원더스 이야기가 나오면 긍정적인 것보단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다른 단장은 김 감독의 연봉이 알려지면서 몇몇 구단의 반응이 더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귀띔했다.
“언론을 통해 김 감독 연봉이 2억 원이라는 게 알려졌다. 그걸 전해 들은 몇몇 단장이 ‘선수들 연봉은 죄다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사이일 텐데 무슨 독립야구단 감독 연봉이 2억 원씩이나 되느냐’며 ‘원더스가 앞으로 생길 독립구단의 롤모델이 된다 칠 때, 감독 연봉 2억 원은 많아도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특히나 김 감독에 매우 부정적이던 모 단장은 ‘김 감독이 정말 야구계 발전을 위해 원더스 감독직을 수락했다면 설령 구단이 연봉으로 2억 원을 제시했어도 감독 스스로 연봉을 낮춰 선수들에게 남은 몫이 돌아가도록 배려했어야 한다’며 ‘이렇게 원더스가 묻지마식 투자를 하는 건 그들이 독립구단으로 남기보단 언젠간 1군으로 들어오겠다는 소리’라고 목소릴 높였다. 다른 건 몰라도 김 감독 연봉이 너무 높다는 덴 대부분 단장이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김 감독이 원더스 사령탑에 선임된 2011년 12월은 미묘한 시점이었다. 김 감독은 그해 8월 SK 감독에서 전격 해임됐고, 그 후폭풍은 대단했다. 한국야구사에서 감독의 해임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김 감독을 지지하는 팬이 많았고, 해임 과정도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 감독이 4개월 만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건 소수 구단 입장에선 ‘원하지 않은 재회’였을지 모른다.
원더스에 대한 부담감과 ‘반(反) 김성근 정서’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을 바라보는 야구계의 시선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허 구단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김 감독의 장점에만 주목했다. 그리고 항상 김 감독의 편이 됐고, 김 감독을 '영원한 파트너'로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KBO와의 재계약 여부를 고민할 때도 마지막까지 김 감독과 상의하며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몇몇 이가 '김 감독이 잘렸다'고 표현하는 건 그래서 어폐가 있다(사진=원더스)
2012년 1월 15일부터 3월 4일까지 원더스가 국외 전지훈련을 떠나자 몇몇 구단 고위층과 일부 야구계 인사들은 “무슨 독립구단이 국외 전지훈련까지 가느냐”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원더스가 그해 4월 29일 SK 2군과의 경기에서 2대 1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을 때도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원더스의 데뷔 첫 승리를 ‘기적’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축하하는 이가 많았지만, 일부에선 “퓨처스리그는 승패가 아니라 육성을 위한 무대”라며 “SK도 외국인 투수를 썼으면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원더스 외국인 투수 고바야시가 5.1이닝 동안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된 걸 꼬집은 말이었다.
이들은 두고두고 원더스에 외국인 선수들이 뛰는 걸 문제 삼았는데, “어느 독립리그에 용병이 뛰느냐”는 게 불만의 첫번째 이유였고, “외국인 선수까지 써서 승리하려는 김 감독의 ‘승리 지상주의’는 육성을 목적으로 한 퓨처스리그와는 맞지 않는다”는 게 불만의 두번째 이유였다.
언론이 연일 원더스의 승리를 비중있게 다룬 것도 몇몇 구단엔 부담 아닌 부담으로 작용했다. 모 구단 관계자는 “야구는 지기도, 이기기도 하는 스포츠”라며 “그러나 원더스에 패하는 건 그 이상의 데미지가 있다”고 털어놨다.
“원더스가 기존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 당장 언론에서 ‘기적’ ‘반란’ ‘파란’이니 하는 단어를 썼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도 찬양 일색이었다. 하지만, 원더스에 패한 팀과 감독은 졸지에 ‘독립구단보다 못한 팀’ ‘3군보다 못한 독립구단에 패한 졸장’으로 몰리는 분위기였다. 구단 고위층은 그런 분위기를 몹시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2군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도 원더스와의 일전을 ‘지면 망신, 이겨도 본전’이란 생각으로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선지 모 구단은 ‘우린 앞으로 원더스와의 교류전에 3군 선수를 내보낼 거다. 그럼 져도 망신이란 소린 듣지 않을 것 아니냐’며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다.”
일부 구단은 “원더스와 경기를 치를 때마다 부상자가 속출한다”며 “솔직히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원더스와는 경기를 치르고 싶지 않다”고 격앙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쓴소리’ 역시 기존 구단들에겐 곱게 들리지 않았다. 어느 구단 윗분은 김 감독이 쓴소릴 할 때마다 “그런 본인은 지금까지 야구계로부터 수십 억 원 이상의 돈을 벌고도 언제 기부 한 번 한 적 있느냐. 누구 때문에 그 많은 선수의 현역 생명이 끝났느냐. 본인은 입만 열면 ‘선수들을 위한 야구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론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자기를 위한 야구만 하지 않았느냐”며 “자꾸 이런 식으로 기존 구단과 프런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면 태평양 시절 감춰진 비밀서부터 모든 걸 폭로해 야구계에서 사라지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고위층 인사는 “감춰진 비밀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회피했는데, 그 감춰진 비밀을 이야기할 사이도 없이 본인 먼저 야구계에서 사라졌다.
이렇듯 일부 구단과 야구인들 사이에선 ‘반(反) 김성근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개인적 감정으로 끝나면 모를 일이었지만, 문제는 원더스 운영에 이러한 사감(私感)이 개입된 증후가 보였다는 데 있다.
원더스 선수들의 점심 식사 장면(사진=원더스)
원더스가 KBO에 ‘애초 창단 시 약속했던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 여부가 어떻게 될 지 알려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KBO는 해를 넘겨 공식 답변을 들려줬다. 답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KBO 관계자는 “우리도 최대한 원더스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단장회의 때마다 부정적 의견이 팽배해 그걸 설득하느라 시간이 지체돼 해를 넘겨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며 “원더스 경기수를 기존 48경기에서 올 시즌 90경기로 경기수를 확대할 때도 기존 구단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존 구단들, 그 가운데 몇몇 구단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있는 한 원더스에 필요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자세를 유지했다. 한 단장은 “만약 김 감독이 원더스 사령탑이 아니었어도 이토록 기존 구단들이 원더스에 비협조적일 수 있었을까요”하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구단들의 생각을 정확히 몰라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비협조’란 말까진 듣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체 몇몇 구단의 ‘반 김성근 정서’가 뚜렷해 ‘원더스가 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몇 번 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 단장은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라고 운을 떼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몇몇 구단은 김성근 감독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며 “그래서 만약 원더스가 퓨처스리그에 정식 가입하면 더 자주 언론에 나올 것이고, 그러면 본인들이 더 불편해질 것이라 생각해 원더스의 경기수를 2013년까지 48경기로 묶는데 온힘을 기울인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덧붙여 이 단장은 "사람 좋다고 소문난 우리 감독이 김 감독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분 말씀은 하고 싶지 않다'고 정색해 다소 놀란 적이 있다"며 "야구계의 많은 분을 만나면서 '김 감독도 대감독답게 조금만 상대를 배려하고, 후배 야구인들을 존중하는 언사를 하신다면 지금같은 과도한 오해와 비난은 받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만 없었어도····’ VS ‘김 감독이 있었기에···’
원더스는 구단 해체 이후 프로구단에 연락을 취해 "원더스를 더 이끌지 못해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하며 소속 선수, 직원들의 취업을 부탁하고 있다(사진=원더스)
몇몇 구단의 ‘반 김성근 정서’를 원더스라고 모를 리 없었다. 원더스 측도 여러 경로를 통해 “김 감독이 아니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하는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 그러나 원더스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 받을 때마다 귀가 솔깃하긴커녕 야구계에 대한 실망감만 커졌다. 다음은 원더스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KBO와 기존 구단들이 ‘원더스의 경기력 저하 우려’를 이유로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를 2012년 후로 미루겠다고 알려와 그때부터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전폭적인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 투자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고민한 게 사령탑 선임이었다. KBO 측에서 추천한 감독 후보군 가운데 김 감독님이 있었다. 야구계의 여론은 ‘선수 육성에서 김 감독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김 감독이 최고의 야구감독이긴 하나, 그간 프런트와 마찰을 빚어왔고, 현장 감독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사람’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때 허민 구단주께서 김 감독님을 직접 만났다. 만남을 마치고 돌아온 구단주는 김 감독의 장점에 주목했고, ‘우리 선수들이 프로에 재도전하려면 김 감독님처럼 유능한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김 감독님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그리고서 ‘앞으로 구단주인 내 눈치 보지 말고, 감독님이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들어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구단주의 희망대로 김 감독님은 실패와 좌절을 맛봤던 선수들을 잘 키웠고, 많은 선수가 프로에 가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셨다. 이렇듯 김 감독을 모시고 와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켰는데, 일부 야구계 인사들이 ‘김 감독을 버리라’고 한다고 우리가 그 요구를 따를 수 있었겠나. 되레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야구계에 더 크게 실망할 뿐이었다.“
이 관계자는 김 감독의 연봉과 원더스의 국외 전지훈련 논란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만약 원더스가 별도의 독립리그에 소속된 독립구단이었다면 감독님 연봉이 그렇게 높지 않았을 거다. 국외 전지훈련도 당연히 건너 뛰었을 거다. 그러나 애초 KBO가 우리에게 제안했던 독립구단은 미국, 일본식의 독립구단이 아니라 퓨처스리그에서 정식으로 뛰는 ‘프로에 준하는’ 구단이었다. KBO와 기존 구단들이 하도 경기력 저하를 우려하기에 빠른 시간 안에 ‘프로에 준하는 구단’이 되려면 최고의 사령탑을 모셔와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최고의 사령탑이 오셨을 땐 국외 전지훈련을 통해 하루빨리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몇몇 구단이 ‘너희가 감독 연봉을 불필요하게 많이 주고, 국외 전지훈련까지 갔다온 통에 다른 독립구단이 생기기 어렵게 됐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원더스가 ‘승리 지상주의’에 얽매여 외국인 선수를 쓰고, 경기 시 거친 플레이를 했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원더스 측은 가슴을 치며 “다들 왜 그렇게 삐딱하게 우릴 보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원더스 측은 “일본 독립구단만 봐도 각 팀에 외국인 선수 한 두명씩이 활동한다. 그 선수들의 꿈은 독립구단에서 열심히 뛰어 일본 프로팀으로 이적하는 것이다. 원더스에 뛰는 외국인 선수들도 ‘코리아 드림’의 희망을 품고 원더스에 입단한 것”이라며 “‘승리 지상주의’ 때문에 우리가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는 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원더스의 거친 플레이 때문에 상대 팀 부상자가 속출한다는 지적에도 원더스 측은 “그런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와 매경기 부상자 현황을 조사했다”며 “우리 투수들의 기량이 떨여져 몸에 맞는 공이 속출했을 순 있겠으나,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몸에 맞는 공 갯수와 경기 시 부상자를 따졌을 때 원더스는 다른 팀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원더스 관계자는 “만약 기존 구단이 ‘김성근 감독을 버리는 대신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허락해준다’고 나왔어도 구단주가 김성근 감독을 내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여러 사람이 감독님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할 때도 ‘우리 감독님’하면서 끝까지 김 감독을 챙긴 이가 바로 허 구단주”라고 전했다.
원더스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애초 원더스에 3년 계약을 제시했던 건 KBO와 기존 구단들이었다. 하지만, 3년 내내 원더스는 야구계의 관심과 존중을 받지 못했다. 3년 계약이 끝나기 전, 원더스가 재계약 여부를 고민할 때도 야구계는 원더스에 '남아달라' '도와주겠다' 같은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민 구단주에게 접근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청하려는 야구인들만 가득했다(사진=원더스)
원더스가 KBO와의 재계약을 포기했을 때 야구계엔 이를 두고 여러가지 말이 돌았다. 어디서 나온 소리(많은 야구인은 한 곳을 지목한다)인지 모르겠지만, 일부 야구인은 “원더스의 모그룹인 소셜커머스업체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가 어려워져 독립구단 운영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요즘처럼 전체적으로 불경기일 때 한 해 40억 원씩 독립구단에 투자하기가 어디 쉽겠느냐”고 반문했다.
선동열 KIA 감독 역시 “(원더스는) 쓰기만 했지 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느냐”고 말문을 연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게 돈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원더스의 누적 적자가 구단 해체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원더스 측은 “위메프가 어려워졌다는 소리는 근거없는 낭설”이라며 “위메프는 현재 소셜커머스 1위 업체로 승승장구하는 중”이라고 반박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경쟁업체에 밀려 업계 4위였던 위메프는 지난해 12월 3년만에 1위에 올랐다. 그리고 2월엔 소셜커머스 업계 최초로 PC·모바일 순 방문자수 1천300만 명을 돌파했다.
소셜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위메프가 어려우면 다른 회사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라고 말문을 열고서 “위메프의 경쟁 상대는 같은 소셜커머스가 아니라 이제 오프라인 대형 유통업체”라며 “그만큼 위메프는 이미 소셜커머스를 평정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유통 선도업체”라고 설명했다.
원더스 관계자는 “허민 구단주는 처음부터 흑자는 고사하고, 구단을 통해 10원도 벌 생각이 없던 분”이라며 “2011년 10월부터 2014년까지 9월까지 150억 원 이상을 쓸 때도 적자 때문에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이다. 2009년 KBO 핵심 관계자가 허 구단주를 접촉해 독립구단 창단을 제안했을 때 허 구단주는 대학에 장학금 100억 원을 기부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허 구단주는 KBO 핵심 관계자로부터 “프로 진출에 실패한 아마추어 선수들의 취업난이 심각하고, 프로에서 방출되고서 재도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서 “대학에 100억 원을 기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독립구단을 창단해 한 번 실패했던 야구선수들의 재도전을 도와주는 것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클 것 같다”며 흔쾌히 독립구단 창단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너클볼러로 활약 중인 허민 원더스 구단주. 야구인들은 입만 열면 "허 구단주가 독립구단 생리를 잘 몰라서, 비야구인 출신이라서"하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연발했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이들 가운데 독립구단의 생리를 잘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미국, 일본 독립구단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반면 허 구단주는 2년째 미국 독립구단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현역 너클볼러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원더스 해체 이후, 많은 야구인은 “비야구인 출신의 허 구단주가 야구를 잘 몰라 원더스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했다. 처음부터 야구인들이 허 구단주에게 조언을 들려줬다면 해체까진 가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허 구단주를 ‘비야구인’으로 칭하는 덴 다소 어폐가 있다. 오히려 허 구단주가 야구인이고, 누구보다 독립구단의 현실을 잘 알았기에 원더스에 한해 4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이었다.
잘 알려졌지만, 허 구단주는 지난해부터 미국 독립구단 락랜드 볼더스에서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올 시즌엔 데뷔 첫 승을 거두기도 했다. 초·중·고·대학 시절을 엘리트 야구선수로 보낸 건 아니지만, 그는 성인이 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너클볼러’가 됐고, 미국 독립리그 가운데 ‘수준급’으로 불리는 캔암리그에서 2년째 선발투수로 활약 중이다.
허 구단주는 직접 독립리그 선수로 뛰며 독립리그 선수가 어떻게 해야 프로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지 직접 체험했다. 지난해 뉴욕에서 만난 허 구단주는 자신의 체험담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독립리그엔 뛰어난 선수가 정말 많다. 하지만, 보다 좋은 선수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불태우는 지도자는 거의 없다. 철저히 선수 스스로 커야하는 구조다. 환경도 그렇다. 미국 독립리그 선수들은 숙식을 전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에 야구에만 올인하기 어렵다. 특히나 미국 독립리그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많은 경기 경험이 기량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독립리그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기량도 향상되지만, 마이너·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받을 기회도 많아진다. 내가 원더스의 경기수 확대를 바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 번 실패했던 선수들이 프로 문을 통과하려면 어떻게든 더 많은 경기에 나가 경험을 쌓고, 프로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허 구단주는 구단 해체를 결정하기 한 달 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생각 같아선 계속 운영을 하고 싶었으나, 주변의 만류가 심했다. 허 구단주에게 KBO와의 재계약을 만류했던 그룹 관계자는 “야구계의 원더스 존중 부족이 정도를 넘어설 만큼 심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해마다 되풀이 된 김 감독 거취와 관련한 갖가지 소문이었다.
이 관계자는 “해마다 시즌 종료 후면, 김성근 감독의 거취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과 기사가 홍수를 이뤘다. 올 시즌엔 시기가 빨라져 채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김 감독이 어느 어느 구단으로 간다더라’하는 루머가 퍼졌다. 그와 관련한 기사도 줄을 이었다. 그때마다 구단 내부에선 ‘엄연히 우리 구단 감독님이시고, 아직 계약기간도 남아 있는 분인데 어떻게 해마다 시즌 중에 거취 관련 소문과 기사나 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우리 구단이 프로구단이었어도 과연 그런 소문과 기사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차라리 이렇게 우릴 존중하기보다 무시하는 분위기라면 KBO와 재계약하지 않는 게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고 귀띔했다.
원더스 해체가 발표된 다음날. 고양구장엔 해체 소식을 듣고 몰려온 야구인들과 기자들로 하루 종일 붐볐다. 이를 지켜본 한 원더스 직원은 “막상 해체가 결정되자 야구계가 이제야 원더스의 소중함을 알아주시는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창단 이후 처음으로 존중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선한 사마리아인’ 원더스의 해체. 야구가 야구를 버렸다.
원더스의 1호 프로 진출 선수 이희성이 1군 무대를 밟는 장면(사진=원더스)
원더스의 3년간의 기적은 막을 내렸다. 일부에선 원더스의 퇴장을 가리켜 ‘용두사미로 허무하게 막을 내리면서 자금을 앞세운 벤쳐기업에 KBO와 국내 야구계가 끌려다니지는 않았는지 적지않은 교훈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팩트 탐구에 대한 게으름으로 생긴 공백엔 상상력과 ‘내 주장’이 파고들게 마련이다. 2011년 9월부터 2014년 9월 KBO와의 계약이 종료할 때까지 원더스를 취재하며 확인한 건 원더스는 자금을 앞세워 야구단 창단을 KBO와 야구계에 요구한 적이 없으며, KBO와 국내 야구계가 원더스에 끌려다닌 적도 없다는 것이다. 되레 반대였다.
원더스 창단을 요구한 건 KBO와 야구계였고, 원더스를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닌 것 역시 야구계였다. 원더스는 2013시즌 종료 후, KBO로부터 “미안하다.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은 어렵게 됐다”는 입장을 전해 듣고 더는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 후론, 선수들이 최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안정적 경기수 확보를 요청했고, 그 안정적 경기수가 또다시 몇몇 구단의 힘의 논리와 편견에 휘둘려 ‘번복’되지 않게끔 안전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원더스의 요청은 돌아오지 않는 울림이 됐다. 원더스가 재계약 포기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KBO로부터 답변은 없었다. 사실 KBO를 탓할 일만도 아니다. 지금 KBO의 역학 구조를 고려할 때 KBO가 아무리 희망찬 청사진을 제시해도 ‘힘 있는’ 구단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원더스 관계자는 “재계약 포기가 결정되고 구단주께서 ‘KBO와 기존 구단 등 야구계와 얼굴 붉히지 말고, 한분 한분 찾아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라. 처음부터 기부 활동으로 시작한 만큼 어느 한분 마음 상하지 않도록 사려 깊게 마무리해달라’고 부탁하셨다”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건 구단주가 ‘마지막까지 야구계를 존중하자’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 진출 선수가 나올 때마다 원더스와 팬들은 격려금과 케이크를 준비해 자기 일보다 더 기뻐했다. 기존 구단들은 원더스로부터 무상으로 선수를 데려가면서도 그리 고마워하지 않았다. 되레 선수를 내주는 원더스가 고개 숙여 감사해했다. 더 놀라운 건 기존 구단들이 겉으론 '반 김성근 전선'을 구축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선 김 감독을 영입하려 분주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원더스가 실망한 건 이런 야구계의 이중성과 그 이중성을 즐기던 이들이었다(사진=원더스)
실패와 좌절을 맛봤던 야구선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고, 야구인들의 재취업의 장이 되길 바랐던 원더스는 패자부활을 꿈꾸던 많은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총 22명의 선수가 프로 무대를 밟으며 원더스는 22번의 기적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은 ‘선한 기부’라 생각했고, ‘사회 환원’이라 믿었다.
원더스는 죽어가던 이를 일으켜 세우고 천에 기름과 포도주를 적셔 상처를 보듬어준 ‘선한 사마리아인’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좌절과 실패로 고통스러워하던 야구선수들을 그냥 지나치게 마련이던 야구계는 ‘선한 사마리아’가 되려던 원더스마저 존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더스의 기적이 끝났다고 볼 순 없다. 허 구단주와 원더스는 야구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기적을 이어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원더스에 ‘통큰 기부’를 할 때도 허 구단주는 “지금은 야구를 통해 기부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영역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재도전을 돕고 싶다”는 뜻을 나타낸 바 있다.
소금과 아버지는 그것이 사라지고서야 고마움을 아는 법이다. 먼훗날 야구사는 2014년 9월 11일을 야구가 야구를 버린 날로 기억할 것이다(끝).
'긁어오기 > 스포츠춘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동희의 야구탐사] 원더스의 운명을 바꾼 의문의 이메일(2편) (0) | 2014.09.22 |
---|---|
[박동희의 야구탐사] 원더스의 기적은 왜 멈췄나(1편) (0) | 2014.09.22 |
[박동희의 야구인] 지도자는 선수 신뢰로 사는 존재 (0) | 2013.07.10 |
[인물탐구] SK 취임부터 경질까지 김성근 SK 와이번스 전 감독 (0) | 2012.03.19 |
[박동희의 입장] SK 김성근 감독 “김광현과 재계약은…” (0) | 2011.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