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스 선수들이 계단을 오르며 훈련하는 장면(사진=원더스)



[1편 원더스의 기적은 왜 멈췄나]에 이어.


야구계에서 원더스는 ‘너무나 유명한 무명 구단’이었고, ‘모든 이가 원더스의 이름을 알지만, 아무도 원더스가 어떻게 탄생한 지 모르는 존재’였다. 이유가 있다.


기자는 2011년 9월 원더스가 창단할 때부터 2014년 9월 재계약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이 팀의 탄생과 기적 그리고 마지막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취재 과정 중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은 어째서 야구계가 원더스 탄생을 두 손 들어 환영했으면서도 시종일관 무관심과 비존중으로 일관했느냐는 것과 이 팀의 해체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먼저 전자의 의문을 풀어보자.


2011년 9월 원더스가 창단 깃발을 올릴 때만 해도 야구계는 환영 일색이었다. 기존 구단들은 “원더스 탄생이 야구실업자 해소와 실패 경험이 있는 선수들의 프로진출 재도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며 “가능한 한 많은 지원을 해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원더스가 창단하자 상황은 변했다.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던 기존 구단들은 “독립구단이면 독립리그에서 뛰어야 하지 않나”하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구단이 왜 퓨쳐스리그에서 뛰는지 모르겠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2013년 이후론 “경기수 확대에 동의해준 것만으로 원더스는 KBO와 구단들에 감사해야 한다”고  나왔다.


KBO도 상황은 비슷했다. 각종 문서와 자료엔 확실히 KBO가 원더스 창단을 이끌어낸 것으로 적시돼 있다. 거기다 KBO는 ‘한국야구위원회’ 명의로 원더스의 정식 퓨처스리그 합류를 약속하는 듯한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KBO는 2011년 9월 원더스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며 국내 최초 독립구단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약속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원더스 창단과 구단 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줬던 KBO는 원더스의 가장 가깝고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돼야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KBO는 원더스가 창단하자 약속의 이행보단 번복, 책임지는 자세보단 방관으로 일관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원더스는 KBO를 가리켜 ‘통곡의 벽’이라 불렀는데, 한마디로 ‘대화와 협조가 거의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대부분 모그룹이 대기업인 프로야구단과 9·10구단 창단으로 리그 확장에 성공한 KBO가 이토록 앞뒤가 다른 행동을 취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기존 야구단과 KBO는 입장을 바꾼 것일까.



원더스 탄생과 각종 약속은 전임 총재 측의 작품이자 책임?



KBO가 보낸 창단 제안서. 3페이지 하단에 퓨처스리그 경기수와 붉은 글씨로 '독립야구단 창단 후 2군경기 참여'란 글귀가 보인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KBO가 허민 원더스홀딩스 대표에 독립구단 창단을 제안한 건 2009년 12월이었다. 당시 KBO 수장이던 유영구 총재와 핵심 관계자들은 허 대표와 만나 독립구단 창단을 제안했다. 허 대표는 “프로에 준하는 구단을 만들어 한 번 야구에서 실패한 선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냐”는 유 총재 측의 말을 듣고, 흔쾌히 “야구를 통한 기부라면 언제든 환영”이란 의사를 나타냈다.


2010년 KBO 핵심 관계자들과 허 대표는 과거 현대 유니콘스가 2군 훈련장으로 쓰던 (구)하이닉스 원당구장을 임대해 그곳을 ‘프로에 준하는 구단’의 홈구장으로 쓰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창단을 일주일 앞두고 원당구장을 임대하기로 약속했던 모 은행(하이닉스 채권단)이 갑자기 ‘임대 불가’를 선언하며 ‘프로에 준하는 구단’ 탄생은 좌절됐다.


‘프로에 준하는 구단’ 창단이 다시 가시화된 건 2011년 8월이었다. KBO 핵심 관계자는 “야구 실업자 해소와 프로에서 방출됐거나 프로 문을 밟지 못한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려면 반드시 ‘프로에 준하는 구단’ 창단이 필요하다”며 직접 고양시와 접촉해 “프로에 준하는 구단이 창단할 시 홈구장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허 대표는 KBO 측이 고양시로부터 홈구장 사용권을 얻어냈다는 소릴 전해 듣자 구단 창단을 준비했다. KBO 측은 이 과정에서 허 대표 측에 <국내 최초 독립 프로야구단 유치 제안서>를 보내 ‘독립야구단 창단 시 한국 프로야구 2군리그에 참여시켜 주겠다’고 약속했고, 보다 구체적으로 ‘북부리그에 포함시켜 총 100경기를 편성해주겠다’며 원더스 참가를 전제로 만든 2012시즌 퓨처스리그 경기 일정까지 발송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KBO는 2011년 9월 15일 원더스·고양시와 MOU를 체결한 이후부터 입장을 바꿔 원더스 측에 ‘정식 퓨처스리그 가입 1년 유보’와 기존 100경기에서 번외 30경기로 경기수를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여기다 예치금 10억 원을 요구하며 “2012년 경기 일정표는 ‘이렇게 퓨처스리그가 진행된다는 걸 아시라’고 보낸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 밖에도 KBO는 처음 약속했던 내용은 대부분 생략한 채 3년을 끌었다.


흥미로운 건 원더스를 야구계에 끌어들인 KBO가 원더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약속 불이행은 물론이려니와  “우린 몰랐다”는 항변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한 야구인은 이를 “순진한 처녀를 꼬여 결혼식까지 올리고서 막상 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나 몰라라’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라고 비판했는데, 상식적으로 KBO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원더스의 뒤바뀐 운명



원더스 구단 버스에 짐을 넣고 있는 원더스 선수(사진=원더스)



원더스 핵심 관계자는 “창단 제안을 받고서 정식 창단을 할 때까지 우리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건 유 총재를 비롯한 핵심 KBO 간부였다”며 “창단 과정에서 KBO 사무국이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핵심 KBO 간부들은 ‘걱정하지 마라’며 기존 약속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왔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KBO가 기존 100경기에서 번외 30경기로 경기수를 줄이고,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를 2013년으로 연기했을 때도 KBO 핵심 간부로부터 ‘NC도 1년간 2군에서 뛰고, 다음 해 1군에 합류하지 않느냐. 1년만 참고 뛰라’는 전화와 함께 ‘1년 뒤 퓨처스리그 합류를 허락해주기로 했다’는 단장회의 결과를 이메일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여기까지 본다면 KBO가  ‘우린 몰랐다’는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KBO 관계자는 “원더스 창단은 유 총재를 비롯해 극소수 인사가 주도한 일이었다”며 “우리도 원더스와 KBO가 창단에 합의한 이후에야 구체적 내용을 알았다. 그전까진 정말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원더스 창단에 관여한 건 유 총재와 극소수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은 9·10구단 창단을 이끌어냈을 때처럼 여러 잡음을 우려해 원더스 창단을 수면 아래에서 진행했고, 유 총재 지휘 아래 원더스에 갖가지 약속을 해준 터였다. KBO 수장이 약속한 내용이니만큼 원더스가 이를 100% 신뢰한 건 당연했다.


그러나 유 총재가 2011년 5월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 야구인은 "독립구단 창단을 주도한 유 총재가 구속되며 일의 연계에 혼란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총재의 구속과 그가 총재직에서 물러난 건 원더스가 창단을 결심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원더스는 그해 8월이 돼서야 창단을 확정했다. 만약 KBO가 원더스를 ‘전임 총재의 작품’이라 항변하며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워 지고자 했다면 새 수장인 구본능 총재가 부임한 그해 8월, 원더스에 어떤 형태로든 달라진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KBO는 되레 원더스에 기존 약속을 지킬 것처럼 행동했다. 이와 관련해 전직 KBO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유 총재가 구속되고서 3개월간 KBO 총재직이 공석으로 남겨졌다. 유 총재를 도와 원더스 창단을 이끌던 이들은 유 총재 시절의 약속을 그대로 이어갔고, 8월 하순 구 총재가 신임 수장으로 왔을 땐 이미 원더스와 창단 관련 논의를 마무리한 뒤였다. 그리고 9월 15일 구 총재가 참가한 가운데 독립구단 MOU가 체결됐다. 한창 업무 파악을 하던 시점이라, 구 총재가 원더스 문제와 관련해 이전과 다른 의견을 내긴 힘든 시점이었다.”


구 총재는 원더스에 무척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KBO 구성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원더스 경기를 관전하며 허 대표를 만날 때마다 연방 고갤 숙여 “고맙다”는 말을 들려주던 이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총재가 돼서도 KBO는 별다른 수정안이나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KBO 핵심 관계자 가운데 한 이는 “원더스의 정식 퓨처스리그 가입, 100경기 보장 등 KBO가 원더스에 약속했다고 알려진 거의 모든 약속이 KBO 내부에서 공유된 바 없다”며 “당연히 공유된 바가 없다 보니 막상 원더스 측에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을 때 달리 할 말이 없었다”고 밝히고서 “특히나 구 총재를 비롯해 새 집행부로선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약속이 많은데, 이걸 어찌 해결해야 하나’하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종합하면 ‘원더스 창단과 각종 약속은 전임 총재 작품이고, 전임 총재 측이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진행하다 보니 내부에선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몰랐으며, 전임 총재가 구속된 이후 현 집행부가 원더스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인 것이다.



프로야구 기존 구단들이 원더스를 오해했던 이유



프로 재도전에 성공한 원더스 선수 5명이 허민 구단주로부터 받은 격려금 1천만 원 증서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사진=원더스)



KBO 측의 항변도 일리가 없진 않다.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은 야구규약과 관련한 사안이므로, KBO가 일방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현 KBO 집행부도 '약속 이행'을 위해 애를 썼지만, 역시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KBO 측의 항변에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원더스 창단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야구인은 “KBO의 ‘총재가 추진하는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주장은 ‘대통령의 결정은 개인 의사일 뿐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특히나 새 총재가 왔다고 전임 총재가 추진한 사업을 전면 부인으로 일관한다면 어떻게 정책의 연속성을 바랄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내친김에 “9·10구단이 극비리에 추진된 덕분에 보안이 지켜져 그나마 순조롭게 창단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 그때도 총재와 극소수 관계자는 창단 기업과 연고지 희망 지자체만 물어왔을 뿐 나머지 현안은 KBO 사무국에서 진행했다. 원더스 건도 창단 MOU까지 극소수 관계자가 끌고 왔다면 다음부턴 KBO 사무국에서 처리하는 게 기본 수순이었다”며 “9·10 창단 시엔 그렇게 일을 잘하던 KBO 사무국이 어째서 원더스 건은 한발 빠질려고만 했지, 추진력 있게 진행하지 못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원더스 관계자는 기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전임 총재와 핵심 관계자가 창단을 제안하고, 여러 약속을 들려줬다면, MOU 체결 이후엔 KBO 사무국이 우리와 상대했다”며 “‘퓨처스리그 가입 1년 보류’ 약속과 ‘1년 뒤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을 인정해주겠다’는 단장회의 결과 등을 전달해준 이들 역시 KBO 사무국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꾸 말을 바꾸는 통에 KBO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을 문서화해주실 수 있느냐’고 물으면 매번 구두 약속만 되풀이했다”며 “나중에 KBO 측에서 ‘우리가 언제 그런 소릴 했냐? 문서가 있냐?’고 말씀하시기에 너무 허탈해 헛웃음만 나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KBO는 기존 구단에 원더스 문제를 설명하는데도 적극적이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처음부터 명확한 한계가 있었으니 기존 구단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가 취재한 어느 프로야구 단장도 “KBO 단장회의에서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을 정식 상정해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A구단 단장은 “2011년 9월 KBO가 단장회의에서 ‘원더스라는 독립구단이 생겼는데, 현재 독립리그가 없어 마땅히 대전할 팀이 없다. 퓨처스리그 팀들과 번외 경기를 치르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와 몇몇 단장이 ‘독립구단은 독립리그에서 뛰어야지 회원사들만 참여하는 퓨처스리그에서 뛰는 건 무리가 있다’는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며 “결국 KBO 의견을 받아들여 야구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원더스와 퓨처스리그 교류전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몇몇 단장이 KBO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원더스가 갑자기 구단을 그만둔다고 할 수도 있으니 보호장치를 마련하라’고 주문해 원더스에 예치금을 받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중요한 건 당시나 그후로나 KBO가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에 대해 정식으로 말을 꺼낸 적도, 정식으로 말을 꺼낸 적이 없으니 단장회의나 이사회에서도 진지하게 논의한 바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따라서 기존 구단들이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방해했거나 가입해주기로 했는데 약속을 어겼다는 세간의 의혹 제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우리는 왜 원더스가 자꾸만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주장하는지 영문을 몰라 일부 단장은 원더스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혔다”며 “원더스가 바란 경기수 확대에 도움을 줬는데도 왜 기존 구단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단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단장은 “KBO와 원더스가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약속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며 “단장회의에서 KBO가 요청한 것도 원더스의 경기수 확대 정도였지, 다른 건 없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단장회의 시간에 틈틈이 메모를 해왔다. 기자는 당시 메모 내용을 찾아봐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전임 단장은 “원더스 경기수 확대 내용은 적혀 있지만, 역시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 관련 정식 논의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원더스의 운명을 바꾼 의문의 이메일



팩트에 대한 탐구가 게으를 때 우린 그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우려 한다. '야구계의 외면 탓에 원더스가 해체했다는 건 원더스의 실패 모델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게 대표적이다. 원더스는 재계약 포기를 결심하기 한 달 전까지 새 시즌을 준비했고, 2013시즌이 끝나고서부터는 퓨처스리그 편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말해 원더스는 야구계와 야구인에 실망한 것이고, '원하지 않는' 야구계 대신 다른 영역에 제2의 기부를 선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사진=원더스)


단장들의 이야기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KBO는 2011년 9월 ‘단장회의 결과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을 1년 늦춰 2013년부터 허락해주기로 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원더스 측에 보냈다. 원더스는 이 이메일을 읽고서 기존 구단들로부터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이 허락받은 것으로 알았고, 기존 구단들이 느끼는 ‘경기력 저하 우려’를 불식하고자 그때부터 해마다 40억 원 이상을 들여 팀 전력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정작 2012시즌을 끝내자 KBO는 원더스에 “사실상 정식 가입은 어렵다”는 단장회의 결과를 뒤엎는 발언을 들려줬다. 충격을 받은 원더스는 그렇다면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이 언제쯤 가능한지 물었다. 그럴 때면 KBO는 “단장회의나 이사회 반응이 좋지 않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현 KBO 집행부는 원더스의 경기수 확대와 관련해선 구단들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퓨처스리그 가입은 야구규약의 문제라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난 건 단장들은 “2011년 9월 6일 단장회의에서 원더스의 2013년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결정한 적도, 그런 회의를 한 적도 없다”고 부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단장회의나 이사회에서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과 관련해 정식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단장들이 지금 와 발뺌하는 것이라면 KBO는 본의 아니게 원더스에 잘못된 메시지를 계속 전달한 것이고, 원더스는 기존 구단들에 속절없이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단장들의 말이 사실이고, KBO가 없는 소릴 지어내 원더스에 들려줬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2012년 9월 18일 원더스는 ‘2012년 운영결과 및 2013년 퓨처스리그 참가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KBO에 보냈다. 공문엔 ‘2013년부터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가입을 결정했다’는 2011년 9월 6일 단장회의 결과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원더스 관계자는 “단장님들께 1년 전 회의결과를 상기시켜 드리고 싶어 공문에 그 내용을 포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BO는 한참 동안 회신이 없다가 “기존 구단에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공문에 1년 전 단장회의 결과 내용을 뺄 것을 요구했다. 원더스는 해당 문구를 삭제한 채 그해 10월 4일 동일한 공문을 재발송했다.


모 단장은 “그즈음 단장회의에서 KBO 측으로부터 ‘데뷔 시즌을 마친 원더스가 2013년부터 경기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이야기만 전달받았다”며 “대부분 단장이 ‘올해처럼 똑같이 48경기만 해줘도 되지 않느냐’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KBO 측에서 ‘원더스가 자꾸 퓨처스리그 가입을 요구하는데 고민’이라고 운을 띄우자 ‘그게 말이 되느냐. 독립구단은 독립리그에서 놀아야지,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고 따지는 단장이 많았다”며 “그때 처음 KBO로부터 ‘원더스가 퓨처스리그 정식 가입을 바란다’는 소릴 듣고서 단장들끼리 원더스 문제를 사담(私談)식으로 나눴다”고 회상했다. 



2011년 원더스가 창단을 결정하려 고민 중일 때 KBO가 원더스에 보낸 이메일. 당시 이 이메일엔 '2011년 9월 6일 프로야구 단장회의에서 원더스의 2013년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를 결정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원더스는 이 이메일을 믿고 창단을 결심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그렇다면 원더스의 운명을 바꾼 단장회의 결과 내용이 첨부된 KBO 이메일은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일까. 그리고 정말 단장회의에선 원더스의 2013년 퓨처스리그 가입을 허락해준 것일까.


KBO 관계자는 “시간이 흘러 그 이메일을 보낸 KBO 주체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당시 단장회의 속기록을 살펴본 결과 ‘원더스의 2013년 퓨처스리그 가입을 결정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와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원더스 측으로 전달된 이유에 대해선 “행정상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상의 착오로 전달된 이메일로 원더스는 해마다 40억 원을 쏟아부으며 자기 팀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보다 많은 경기에 뛸 날을 기다렸고, 기존 구단들은 같은 기간 동안 거짓말쟁이가 됐으며, 야구계는 답답한 심정으로 국내 최초 독립구단의 부침을 지켜봐야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모든 건. 


블랙 코미디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이다.


(마지막 3편<존중받지 못한 ‘선한 사마리아인’ 원더스>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438&issue_item_id=10550&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3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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