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원더스 홈페이지의 명예의 전당. 프로 입단 선수를 소개하고 있다.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입에 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날이었다. 해질 무렵, 그라운드에서 비명이 들렸다. 바로 고개를 돌렸더니 베이스러닝을 하다 누군가 넘어져 있었다. 최근 밤낮으로 공을 들이던 외야수 김진곤이었다.

 

김진곤은 원더스 출신으로 12번째 프로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조금 더 뛰겠다고 훈련 욕심을 내다가 그만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발목이 부러졌다. 부상 정도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선수는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냈다. 그 울림은 김 감독의 가슴을 후벼팠다.

 

술 잔을 몇 차례 채웠다. 좋은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원더스 1기 선수로 지난해 8월 프로야구 넥센에 합류한 안태영이 대구 삼성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러 미친 듯이 날고 있다는 얘기였다. 안태영은 그날 홈런 1개를 포함, 4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지난 27일 밤이었다. 김 감독은 술자리를 떠났지만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태영을 붙잡고 가르치던 2012년 1월 캠프가 떠올랐다. 김 감독은 안태영을 ‘리어카꾼’이라고 불렀다.

 

“다리 올리고 뛰는 게 꼭 리어카를 끄는 것 같더라고. 뛰어도 그냥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싶었어.”

 

삼성 입단 이듬해인 2005년 어깨를 다쳐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을 하고도 방출됐던 만큼 송구가 형편없었다.

 

그러던 중 김 감독 입에서 “요 녀석 봐라”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안태영이 방망이를 들고 있을 때였다. 분명 타격에 소질이 있었다.

 

당시 김 감독은 캠프에서 훗날 프로야구 두산에 입단하는 홍재용을 가르치다 철망을 맞고 튀어나온 볼에 오른쪽 허벅지를 맞고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타자 안태영을 만드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탈이 났다. 허벅지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만 힘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김 감독은 그날을 “정말 좋은 일 한 가지와 정말 나쁜 일 한 가지 있던 날”로 기억했다. 그러고는 원더스 감독으로 2시즌째를 보내는 얘기를 했다. 다시 다친 김진곤 얘기를 했다.

 

“여기 아이들은 인생을 걸고 있어. 그게 서글퍼. 인생 길 열어주고 싶은데, 그런 일 터지면 눈물이 나와. 순간 ‘아하’ 싶어.”

 

김진곤은 타율 3할 이상을 치고 있었다. 발이 빨라 2루 도루를 해도 좀체 잡히지 않았다. 그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넥센 안태영이 30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에서 2회 첫타석에서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출루하고 있다. 목동|이석우 기자

 

 

“아이들을 보면 선수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명이다 싶어. 그래서 그런 일 생기면 너무 불쌍하고 가엾어. 프로 1군 선수가 다치면 다시 기회가 있고, 또다시 만들면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 그것 하나가 운명이 돼 버릴 수 있거든.”

 

김 감독은 안태영을 얘기하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것일 수 있다. 사회에 어필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재능 없던 선수 하나가 타격으로 지도자 눈에 들었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선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절망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독립리그 출신 수위 타자도 나왔다. 시코쿠 아일랜드리그 출신인 가쿠나가 가쓰야는 2006년 지바 롯데에 입단해 지난해 타율 3할1푼2리로 리딩히터가 됐다. 김 감독은 언젠가는 원더스 출신 타격왕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모두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호프집 아르바이트부터 불펜포수까지 경력도 다양한 원더스 선수들이 한두 명씩 프로 1군에 진입해 이름을 알리면서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바랐다.

 

고양 원더스 홈페이지에는 ‘명예의 전당’이라는 코너가 있다. 클릭하면 원더스 창단 뒤 프로에 입단한 11명의 얼굴이 나온다.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정말 아름답다. 빛이 난다. 원더스 명예의 전당은 ‘인생 명예의 전당’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립구단 원더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안승호 기자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10816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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