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사진=고양원더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한국 유일의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투수 김용성, 포수 이승재, 외야수 윤병호, 이원재가 NC 다이노스로, 외야수 송주호가 한화 이글스행이 결정됐다. 이들은 오는 29~30일 경찰청과 교류경기를 마친 뒤 각자의 새로운 소속팀으로 떠날 예정이다.
그 중 이승재의 프로 재입성 소식은 가장 눈에 띄는 이야기였다. 아무 수식어 없이 그냥 궤적만 따라가 봐도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승재는 아마추어 시절 꽤 주목 받는 포수였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할 때 포수로 전향했지만 빠른 적응을 통해 금새 수준급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롯데로부터 2차 5번에 지명받았을 만큼 성공적 포지션 변경이었다.
포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승재는 프로가 아닌 대학을 택했고, 1학년 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금씩 결실을 맺어갔다. 그에겐 ‘국가대표 포수’라는 훈장도 주어졌다.
대학을 졸업하자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롯데가 그를 불렀다. 2006시즌, 대부분을 1군에서 보냈다. 38경기 출장(타율 .176)에 불과했지만 백업 포수로서 그는 팀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다음 시즌 개막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었다. 이런 선수들에겐 ‘전도 유망’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하지만 2007년 동료의 차를 타고 이동 중 일어난 교통사고로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오른 어깨와 등을 크게 다쳤다. 수술을 마친 뒤에도 항상 부상이 따라다녔다. 인대가 끊어지는 현상이 왔다. 2008년을 재활로 보내고 공익 근무 요원으로 복무하며 시간이 흘렀지만 공을 던질 때 마다 끊어질 듯 통증이 생겼다.
오랜 재활의 끝엔 방출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비형 포수였던 그가 공도 제대로 던지지 못했으니 롯데로서도 더 이상 기다리기는 어려웠다. 2011년 11월, 이승재는 그렇게 야구와 이별하게 된다.
이승재는 야구를 하지 않으려 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김유희씨)는 흔들리던 그에게 한번 더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미련이 남으면 안되잖아. 되던 안 되던 응원할게.”
이승재 전지훈련을 마친 뒤 마중나온 딸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고양원더스
기적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국가대표에 프로 출신이라는 자존심은 모두 버리고 훈련에만 매진했던 그.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고양 원더스가 어떤 훈련을 하는지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특히 포수 수비를 중시하는 김 감독 스타일 상, 다른 선수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함부로 기적을 말하는 건 그의 어깨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 없이 받고 던지는 시간의 연속. 끝이 난 줄 알았던 이승재의 어깨는 그 오랜 시간을 끄떡 없이 버텨냈다. 부상 악령이 절실함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고양 원더스에서도 좌절의 시간은 있었다. 원더스는 지난해 투수 이희성을 시작으로 5명의 프로 선수를 만들어냈지만 이승재는 부름을 받지 못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 시간이 길게 기다려주지 않고 있다는 조바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자신을 도드라지게 보여 줄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참아내며 묵묵히 투수들의 공을 받아줬다. 김성근 감독의 신뢰도 점차 쌓여갔다. 김 감독은 프로 구단들이 포수 부재로 힘겨워 한다는 말이 나올 때 마다 “우리 애들 데려다 쓰지. 2루 던지는 건 훨씬 나을 걸”이라며 늘 이승재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승재의 NC행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기대를 품게 한다. 이승재는 고양 원더스의 주전 포수다. 김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투수라 부르기도 어려운 선수들’이 던지는 공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받으며 함께 성장해왔다는 뜻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지난해 5할에 근접한 승률을 이끌어 낸 포수가 바로 이승재였다.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투수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 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포수라는 의미다. 게다가 그의 고향은 NC의 홈 구장이 있는 마산이다.
김성근 감독은 “승재가 정말 많이 애썼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 마지막 기회를 잘 살렸다”며 “앞으로도 프로로 갈 선수들이 좀 더 있다. 다 좋은데, 우리 경기 하기가 많이 힘들어졌다”며 웃어보였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18&aid=000278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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