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은 하루 종일 야구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야구 이외에는 다른 취미도 없단다. 야구를 향한 일편단심이 그보다 큰 사람은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2325번지에 자리잡은 고양원더스 연습장 감독실에서 그를 만났다. 야구국가대표 훈련장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기존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한 젊은 선수들이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타격 연습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독립구단인 고양원더스는 프로야구 2부 리그인 퓨처스리그에 합류해 게임을 하고 있지만 전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모든 게임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2부 리그라고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내로라하는 1군 선수들도 잠시 내려와 게임에 참여하기 때문에 실력이 만만치 않다. 이 틈바구니에서 고양원더스는 20일 현재 18승 5무 18패를 기록해 정확하게 5할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김 감독은 “우리 팀과의 대결은 공식기록에 들어가지도 않지만 상대팀이 무척 신경을 쓴다”고 했다. 왜냐하면 상대팀으로서는 프로에도 들어오지 못한 선수들과 대결해 이겨 봐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김 감독의 제자인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NC다이노스와의 창원 경기는 케이블에서도 직접 중계를 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한 번은 이기고 두 번은 졌다. 그래도 선수들의 사기는 높단다. 프로팀 입단이 목표인 원더스 선수들 가운에 이미 두 명이 LG에 입단했고 조만간 1명이 프로로 진출한다고 한다. 70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 독립리그를 이끌고 있는 김 감독의 만족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미 야구 인생에서 조그만 좌절을 맛본 고양원더스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입니까.

 

“과거에서 벗어나라는 점을 가장 강조했다. 이곳에서 새로운 각오를 하고 다시 출발하자고 말했다. 과거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생각이나 방법이 나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나 방법은 바꾸면 된다.” 이런 정신교육을 시킨 뒤 그는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창단 직후인 지난해 가진 일본 고치현 동계전지훈련에서 선수 모두 평균 10㎏ 정도 몸무게가 빠졌으며 18㎏ 빠진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오전 6시부터 훈련을 시작해 저녁 6시까지 일본식 우동 한 그릇만 먹였다고 했다.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겠습니다.

 

“어떤 애들은 머리가 핑핑 돌았을 것”이라며 “그래도 실력이 쑥쑥 자란 걸 느끼고는 누구하나 불평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들에게 김 감독은 구세주나 다름없다. 프로 팀을 이끌던 시절 꼴찌나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을 맡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거나 코리안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국내 최고 감독의 지도를 받는 것은 각자 야구인생의 최고 행운이기 때문일 것이다.

 

-훈련을 못 견뎌 몇 명이 중도에 포기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훈련을 못 버텨 나간 선수들은 없고 2명 정도가 다른 길을 찾아 나갔다”며 “어느 정도 훈련을 하다보면 선수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래도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느낀 바가 많아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김 감독의 훈련은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SK에서 감독이 된 첫 해에는 고참 스타 출신인 김재현 박경완 박재홍 선수를 거칠게 다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존심도 있는 선수들인데 너무 심하게 한 것 아닙니까.

 

“그들은 이미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중이었다”며 “경험을 바탕으로 더 도약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욕은 있는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자신들과 자꾸 타협하려고 해 엄하게 다뤘다는 말이다. 국민타자로 불리는 삼성의 이승엽이 롤모델로 삼고 타격 폼을 배웠다는 김재현은 타고난 천재였다. 자부심 강한 김재현을 8번 대타로 기용해 일부러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김재현은 프로였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그 해 제주도 횟집을 통째로 빌려 김 감독을 대접했다고 한다.

 

-후임인 SK 이만수 감독은 만납니까.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그의 후임이 된 이 감독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다만 “항상 중간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문제”라며 말을 살짝 돌렸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눈치 보기 문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국가나 기업이나 우리나라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윗사람과의 사교성이 좋아 출세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력을 존중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나쁜 단면”이라고 말했다. SK구단과 자신 사이에 누군가가 개입해 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삼성 류중일 감독처럼 부드럽게 팀을 이끄는 이른바 형님 리더십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십니까.

 

“나라고 왜 선수들과 농담하며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선수들과 가까이 지내봤자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독을 오히려 욕하는 것이 선수들의 습성이다. 역사는 그 순간이 아니라 지나 간 다음에 생긴다. 다시 말해 길은 지나간 다음에 생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일종의 신념처럼 느껴졌다. 단호했다. 그는 선수와는 식사도 같이 하지 않고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치들과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켜도 그 해 결과가 좋아 연봉이 오르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으면 내 뜻을 다 이해한다”며 자신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옹호했다. 그리고 자신도 알고 보면 마음 약한 사람이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며 최정 선수 예를 들었다.

 

-최정 선수가 원래 실력이 형편없었나요. 지금은 SK 간판스타인데요.

 

‘소년 장사’로 불리는 SK 강타자 최정은 김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프로선수로서 전혀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의욕은 있는데 도대체 공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하루에 펑고볼을 1000개씩이나 받고 마지막에는 체력이 다해 기다시피 하면서 맹훈련을 쌓은 결과 지금 프로야구 최고 인기선수로 성장했다. 그때는 나도 고된 훈련을 참아내는 최정이 안쓰러워 혼자 맥주를 마시며 많이 울었다.”

 

-상대 포수의 팔 근육을 보고 사인을 알아 맞혔다는데.

 

“실제 야구 게임에서는 1㎝가 중요하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포수의 근육움직임을 보고 사인이 무엇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 OB 코치 시절 포수였던 삼성의 이만수 팔 근육을 보고 사인을 알아 맞혔다. 이만수가 조범현으로부터 사인을 받는 것을 알고 이를 역이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아직도 놀랄 만한 시력을 갖고 있다. “야구 시합 때 국민의례를 하면서 처음에는 관중을 보고 다음 백보드(점수판)를 본 뒤 태극기를 보며 바람의 세기를 짐작하면서 제일 마지막엔 국기 게양대 위의 무궁화 봉을 보며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집중하면 무엇이든 다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창 때는 상대 투수가 잡은 공의 실밥을 보고 구질도 알아 맞힐 정도였다고 한다.

 

-감독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3대 7이나 4대 7에서도 역전이 가능한 종목이 야구다. 축구는 1대 0만 돼도 역전시키기 어렵지만 야구는 다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란 말이다. 대개의 팀은 실력이 비슷비슷하고 대개의 선수는 90%까지는 비슷한 능력을 타고났다고 믿는다. 감독의 능력은 ‘보이지 않은 힘’에서 나온다. 선수들의 힘의 합인 전력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감독이 자기의 지식, 경험을 다 동원해 승리로 이끌어내야 한다.” 그는 또 “감독은 패배를 절대로 선수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며 “게임에 진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라며 감독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그는 감독 시절 코리안 시리즈 우승을 위한 계획을 동계훈련 중에 미리 짜놓고 거기에 맞춰 선수들을 운용했다고 한다. 한 달,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세워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가 아직도 갖고 있는 SK 감독 시절 수첩은 깨알 같은 글씨로 선수들의 특징, 상대투수의 구질, 상대 타자의 특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기업을 상대로 강의를 많이 나가고 있다면서요.

 

“대기업 경영주 등에게 운동선수들이 책과 담쌓은 돌대가리가 아니라 자기만의 노하우와 노력이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감독을 한 다음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는 후배들을 위해 현실을 개척하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야구 선수 지망생이나 그들의 부모들을 위해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천직은 자기가 만들어 나간다. 모든 것은 즐거움이 있어야 하며 야구도 마찬가지다. 야구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잊지 말고 끝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야구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에 대한 사랑과 집념, 이것이 오늘의 김성근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만난 사람=박병권 논설위원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5&aid=0000523100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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