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생각할 때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직까지 모자란 게 너무 많아요.
- 어떤 부분이요?
세상살이라는 건 순간순간의 대처 능력이 필요한데 그게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봐요. 어떤 변화에 본인 스스로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거요.
-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까지 현역 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뭘까요?
진실과 우직함. 그리고 득을 보려 하지 않은 것. 그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 야구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가장 크게 얻은 가르침은 뭐였나요?
야구라고 하는 건 속임수가 통하지 않아요. 자기가 갖고 있는 실력으로 승부가 갈려요. 인생이라는 것도 순간순간의 재치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직한 사람이 이겨요.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하면 돼요. 토끼는 재주 부리고, 요령 피우면서 자기 스스로가 변화를 갖잖아. 거북이는 아니거든. 인내를 갖고 그 상황을 대처하면서 뒷걸음 치지 않고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 나가요. 그게 인생이에요.
- 감독님은 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걸어오신 거 같으세요?
순간순간을 중요시해온 거지 쉽게 가겠다,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 거북이처럼 살아야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토끼처럼 사는 거 같아요. 빨리 안정되고 싶고, 빨리 뭔가를 이루고 싶고.
그렇게 살면 빨리 올라갈지는 몰라도, 올라가면 내려가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성과를 빨리 원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다급해져요. 결과보다 그 순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가가 중요해요. 그렇게 살다보면 나중에 바깥에서 평가를 해주겠지.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 곧은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나는 야구선수로서 소질이 없었던 거예요. 뭐랄까.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인생이라는 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냥 허술한 신념이 아니라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신념. 여유 속에 있는 신념은 도망가게 돼있고, 이유를 붙이게 돼있다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 다음을 생각했어요. 뭐뭐를 하겠다. 코치 생활을 할 때도 다음에는 뭐뭐를 하겠다. 이런 건 빨라요. 미련이 없어요. 딱 설정하면 그 설정을 달성하려고 해요. 나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하죠.
- 어떻게 미련이 없을 수 있지. 그런 부분은 타고나셨나 봐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서인지 몰라도 그 자리 그 자리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되 지나간 순간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어요. 예를 들어 우승을 했다. 우승하는 순간 이미 다음을 생각해요. 그 속에 도취 안 돼요. 이겼다 하는 건 그 순간으로 끝나는 거지 그 다음부터는 기록이고, 아무 가치도 없는 거예요.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으스대고 싶어 해요. 난 그런 건 없어요. 그날 경기에서 모자란 부분이 뭐였는지, 이걸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요.
<벼랑 끝에 서 봐라>
- 말을 아끼시는 편인 거 같은데 책을 두 권이나 내셨어요. 책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옆에서 하자하자 해서 했다 뿐인데, 한 가지 이야기를 하면 18살 재일교포 학생으로 대한민국에 처음 왔을 때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일본에서는 그런 식으로 의식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그렇더라고. 그거에 대한 반발이라고 그럴까. 공부를 한 사람만 유식한 게 아니에요. 공부를 안 하더라도, 학교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그 사람만의 특색이 있고 배울 점이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다 좋은 걸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반드시 학력이 있어야 되고, KS마크가 붙어야 돼요. 사람들을 위해, 특히 CEO들을 위해서 스포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는 이치를 알려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한테는 진실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게 내가 책을 낸 목적이라고 봐요.
- 혹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없으세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우직한 사람은 세상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모자란다, 어떻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돼있다고. 그런데 그걸 견디고 이겨내는 거 자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SK야구 자체도 사회에 어필을 하고 싶었던 야구니까. 어떤 경우라도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걸 SK야구에서 가르치고 싶었고, 사회에 호소하고 싶었다고.
- 고양 원더스를 통해 사회에 호소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절망은 없다. 어떤 생각으로, 무슨 방법으로, 어떤 식으로 자기가 여태껏 살아왔는지 뒤돌아보면 거기에 힌트가 있다고 반드시. 안 되니까 안 된다 그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고 생각이 바뀌면 반드시 방법이 있는 법이에요.
- 훈련하실 때 선수들한테 정신교육도 함께 시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세요?
자기 한계를 자기가 설정하지 말라고 하지.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의 1/3도 못 쓰고 살고 있다고. 그 능력을 개발해야지. 어떻게 개발하느냐. 벼랑 끝에 서 봐라. 거기에 서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법이 나올 거라고. 그게 자기 능력이라고.
- 생각만으로 벼랑 끝에 선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죠. 자기가 절박함을 올려야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여유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이에요. 자기를 몰아가야 돼. 이래서 되나, 이래서 되나 하는 사람하고 됐다, 됐다 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에요. 예를 들어서 이 책의 목표가 얼만지 모르겠지만 5만부라고 해요. 5만부 팔리면 사람들이 좋아서 축배를 들어요. 근데 나는 왜 5만부밖에 안 팔렸나 생각해요. 의식의 차이에요. 거기서 이 책의 앞으로가 갈려요.
-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타협이 빠르고 그게 통하는 세상이라지만 자기 인생은 자기 손아귀에 있지 남이 만들어주지 않아요. 일자리가 없다, 뭐가 없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결정이지 닥치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고.
<100원짜리 인생>
- 한국야구의 역사를 함께 해 오신 거잖아요.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거예요. 발전했는데, 선수 개개인이 ‘야구 그만두면 뭘 하고 살지?’라는 절박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내가 볼 때 지금 성공적으로 야구 컨텐츠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싶어. 왜 그러냐면 겉으로 보이는 수채(水彩)보다 수채의 농도가 얼마나 짙느냐 하는 거지. 타자가 3할을 쳤다고 하면 어떤 내용의 3할이었는지 그걸 따지고 살아오는 사람이 몇 있나 싶어.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3할 타자가 됐을 때 나머지 실패 7할에 대한 추궁, 3할 안의 내용, 3관왕이 됐다, 홈런왕이 됐을 때 나머지 못 치는 타석에 대한 취조, 이 속에 들어가는 게 부족하다고 봐요. 그러면 이길 수 있다고. 그걸 안 쫓아가니까 못 이기는 거지. 만족이라는 건 없어요. SK야구는 그런 식으로 가르쳐놨다고. 우승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원인을 따지고, 그걸 갖고 한 달을 고생하니까. 조직의 힘이라는 것도 가르치고, 조직에서 자기가 어떤 위치라는 것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선수들이 굉장히 고달팠을 거예요. 하지만 고달팠으니까 그만큼 성장했다고.
- 감독님은 스스로 만족하신 적 없으세요?
없어요. 항상 아쉽지. SK 우승했다. 이리 이겼으면, 저리 이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겨.
- 일정 수준의 만족은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나요?
아니. 만족하면 바로 후퇴에요. 안일해지는 거지. 항상 부족하고 불만스럽고 불안해야 돼.
- 불안하면 잘 할 것도 못 하지 않을까요?
불안함 속에 있으면 안 돼. 불안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내야지. 쉽게 얘기해서 나는 비관론자라고 보면 돼요. 부정적으로 본 다음 긍정적으로 바꿔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는 100원밖에 없어요. 비관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100원을 가지고 만원을 이겨내야 돼요. 100원밖에 없는데 만원하고 싸우려면 먹을 것도 안 먹어야겠고 먹어도 1/3, 1/5 먹어야겠고, 잠자는 것도 다를 테고, 모든 게 다를 텐데 세상의 비난, 팬들의 비난, 매스컴의 비난을 의식할 여유가 어디 있어요. 갈 길 가야지. 그게 나의 야구에요. 나의 인생이고. 100원짜리가 만원을 이겨버리면 얘네들이 나중에 만원짜리로 바뀐다고. 그게 SK지.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시작하면 실패해요. 최악의 선을 그려놓고 만들어가야지. 고양 원더스도 일본 가서 전패한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그건 안일한 거예요. 절박하지 않고 행동에 뭔가 여유가 있다고. 모든 일은 절박함 속에서 일어나요.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세요?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하다보면 선수들이 뒤에서 ‘아, 이 감독은 믿을 수 있구나’ 하겠지.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봐요. 모든 길은 지나간 다음에 있는 거지 길을 미리 만들지 않아요 절대. 담담하게 갈 길 가는 거예요.
- 꿈이 있으세요?
10살, 20살 정도 젊었으면 메이저리그나 일본 가서 감독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야구인에 대한 길잡이에요. 나는 그게 많아요. 길잡이를 하니까 비난을 많이 받아요. 새로운 건 모든 게 부닥치게 돼있거든. 누구나 시작은 몸을 바쳐야 되니까 그 역할을 내가 할라고.
<야구를 하기 위해>
- 프로야구 감독직이 들어오면 수락하실 건가요?
파운드에서 프로야구 구단 만들면 내가 갈게.
- 진짜 만들고 싶은데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한 명이라도 프로에 보내주고 싶고, 이 팀의 존재 가치관이랄까 아까 얘기한 절망은 없다는 걸 세상 사람한테 알려야겠고. 또 내 코트에 있는 투수를 젊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제일 중요하지.
- 잘하고 있어서 걱정은 안 되는데요.
잘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얘네들 자체는 잘하고 있는지 몰라도 세상하고 비교할 때 잘하는 건 아니에요. 이 정도 같으면 어림도 없어요. 대학교 팀은 완벽하게 이길 정도는 돼야지 2군하고 시합하고 쩔쩔매고. 이래서는 다음이 없다고 봐.
- 감독님이 해야 할 일이 많으시겠어요.
이래갖고 되겠냐 할 때도 많고,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나,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이 없나 찾지. 누가 봐도 이 팀이 이렇게 변한 거는 잘했다고 봐요. 어디까지나 제3자 입장에서. 내가 보는 건 아니에요. 세상 말에 ‘어차피’가 있고, ‘혹시’가 있고, ‘반드시’가 있어요. 어차피는 이미 포기한 거고, 혹시는 희망 혹은 의문을 가지는 거고, 반드시는 결사적인 거예요. 나는 ‘반드시’에요. 이게(녹음기) 있어요. ‘어차피 기계가 나쁘니까’, ‘혹시 이 기계가 변할까?’, ‘반드시 제대로 하게 만들어야지’ 생각의 차이에요.
-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독님 인생에는 야구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길이 있다는 게 사람한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요. 팔방미인은 써먹지 못 해요. 내가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외길을 가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에요. 얼마 전에 만화가 이현세씨를 만났는데 그 사람도 그렇더라고. 외롭게 고생하고 싸우면서 만화가들이 가는 길을 만들어놨잖아.
- 감독님도 야구인들이 가는 길을 만들어놓으셨잖아요. 이 정도로 살아왔는데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기특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뭘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 야구 다 관두시고 나도 그런 생각 안 드실까요? (웃음)
야구를 하기 위해 나의 인생이 있는 거지, 살기 위해서 야구가 있는 게 아니에요. 야구를 하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그의 얼굴>
인터뷰가 끝이 났다.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인터뷰는 1시간을 넘어섰다. 인터뷰 내내 그는 처음 마주했던 그 얼굴 그대로를 유지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단순히 굳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 얼굴 위에는 4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도전과 인내, 투지와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자랑스럽고 든든하게 느껴졌고, 참답게 보였다.
살면서 종종 누구나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생각의 윤곽이 부서지려할 때,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여질 때, 팍팍한 삶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나약함 속에 허덕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그때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곱씹어보려 한다.
<김성근이라는 사전>
김성근이라는 사전이 있다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채울 단어는 오로지 야구뿐이다. 그 안에 인생이라는 단어가 있고, 희로애락이라는 단어가 있다. SK와 고양 원더스, 신념과 사명감, 순수함과 우직함, 자책과 압박, 지도자와 리더, 거북이와 길잡이, 비관론자와 긍정론, 절박함과 고달픔이 있고, ‘반드시’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 안에 타협과 절망, 미련은 없다.
출처 : http://foundmag.co.kr/Interview/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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