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1.27

 

<SK 신인선수인 모창민의 타격을 지켜보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뒷모습... 이건 제 얘기지만 전 사람 뒷모습 찍기를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삶이 묻어나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번 김성근 감독이 저에게 기록지를 던져주며 승부처를 찾아내라는 내용은 재미있으셨나요? ㅎㅎ 밑에 댓글에 '고수는 다르다'는 내용이 많더군요. 오늘은 그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야구 용어 중에서 '쿠세'라는 게 있습니다. 한자로는 '癖' 쓰고 히라가나로 'くせ'게 쓰는 일본어로 '버릇'이라는 혹은 '습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구에서는 이 쿠세가 선수의 특정 움직임을 뜻할 때 사용됩니다. 특히 투수의 경우 변화구를 던질 때와 직구를 던질때, 그리고 견제를 할 때 나타나는 동작들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프로야구계에서 이 쿠세를 가장 잘 찾아내는 사람이 바로 김성근 감독입니다.

 

투수들은 자신의 쿠세를 감추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반대로 타자들과 전력분석팀은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죠. 특히 2007시즌 SK는 초반부터 도루를 이용해 엄청나게 빠른 야구를 구사했습니다. 이 '도루'의 원동력에 '상대 투수 쿠세간파'가 있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죠.

 

이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습니다.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은 뒤 한국시리즈에 맞춰 SK가 수원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선수들은 주루 플레이를 훈련하고 있었죠. 1루 주자가 투수가 공을 던지는 타이밍을 알아채고 2루로 도루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당시 투수는 견제구를 던지기도 하고 바로 타자에게 공을 던지기도 하는 등 실제와 같은 환경이었죠. 포수와 2루수도 필사적으로 주자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1루 주자로 조동화가 나가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조동화가 투구 동작을 캐치하고 달리기 시작했고 무사히 2루에 안착 했습니다. 정말 빠르더군요. 근데 박수가 나와야 할 장면에 '쯧쯧'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습니다. 바로 훈련을 지켜보던 김성근 감독이었습니다.

 

김 감독이 물었습니다. "노기자. 지금 저 투수 쿠세 보여?" 저는 다시 한번 봤습니다만 투구하기 직전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을 알아챘을 뿐 특별한 버릇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김 감독이 저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왼쪽다리 옷 주름을 잘봐". 여전히 뚫어지게 봤지만 별 차이를 못 느꼈습니다. 그러자 김 감독이 껄껄 웃으며 비밀을 가르쳐줬습니다.

 

"저 투수 바지 왼쪽다리 부분에 주름이 하나면 타자한테 던지는 거고 주름이 두개면 견제가 들어와. 와인드업하기 전부터 그게 티가 나는데 조동화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네."라는 겁니다. --;; 결국 투구시작의 기점을 보는 기준이 달랐습니다. 김 감독은 짧은 순간에 그걸 파악해내고 뛰는 타이밍을 훨씬 앞으로 잡아놨는데 선수가 늦게 출발하니 마음에 안 든 거죠. 바지 주름 갯수라니요...ㅡ.,ㅡ

 

'준비동작'에 대한 개념은 저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무술인 절권도에서는 상대의 준비동작을 재빨리 파악해 먼저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개념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상대가 공격의지를 가지는 순간을 재빨리 파악하기 위해 항상 상대동작을 예의주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야구에선 아직 그 '눈'이 생기질 않았더군요. 허허허.. 바지주름이라니요..

 

한참 뒤 SK가 코나미컵 출전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전 SK 선수들한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매일매일 투수 버릇찾는 거 하다보니 여기 오니까 구질까지 알겠네요. 자 보세요.. 지금은 변화구... 또 변화구... 이번엔 직구..."하며 대만과 일본 투수들의 구질을 미리 파악을 다 할 정도였습니다. 옆에서 신기해하며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라고나 할까요?

 

올시즌에도 SK 타자들의 공격력을 막으려면 나머지 7개구단 투수들이 쿠세 없애기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이 꼽는 쿠세 없는 투수로는 일본 대표 좌완 나루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투수들도 쿠세없애면 더더욱 업그레이드되겠죠? 그런 날이 기다려집니다.

 

 

출처 : 스포츠조선 노경열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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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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