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야신' 김성근(고양 원더스) 감독은 SK 사령탑 시절 최고의 이슈메이커였다. 뛰어난 팀 성적만큼이나 확고한 야구철학과 거침없는 소신발언으로 일거수일투족이 이슈의 중심에 서곤 했다.
'리더는 결과로서 말한다', '야구는 감독이 한다'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야구철학은 너무나 강렬한 개성과 뚜렷한 소신으로 인하여 종종 거센 찬반양론에 부딪히곤 했다. 김성근 감독의 SK가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에는 SK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한 '반 SK 전선'이 형성되는가 하면, 김성근식 야구철학과 프로스포츠의 존재 가치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속에서 김성근 감독은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았건 경쟁팀들 입장에서 넘어야 할 '끝판왕' 혹은 '악역'의 역할을 맡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토록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던 경쟁 구단들조차도 이후 하나같이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을 닮아갔다는 점이다. 엄청난 훈련량, 불펜 중심의 마운드 운용, 철저한 데이터 야구 등으로 대표되는 '김성근 스타일'은 이제 김성근 감독만이 아니라 한국프로야구의 보편적인 현상이 된지 오래다. 그만큼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이 한국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바꾸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2012시즌 프로야구는 6년 만에 '야신' 없는 시즌을 맞이한다. 지난해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은 이제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수장을 맡아 퓨처스리그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프로 1군 시절 누구보다 '이기는 법'에 능했던 김성근 감독은 이제 무명선수들로 채워진 독립야구단의 수장을 맡아 미완의 대기를 찾아내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 받았다. 어쩌면 김성근 감독이기에 더욱 잘 어울리는 역할인지도 모른다.
호불호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김성근 감독의 존재로 인하여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고, 다양한 이슈와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형성하는데 기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내 야구가 싫다면, 나를 뛰어넘어라"며 일갈하는 노감독의 자신감과 승부욕이 경쟁팀 팬들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지 모르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악역'도 필요한 법이다.
또한 감독은 승부의 세계를 벗어난 경기장 밖에서는 야구계 원로로서 한국야구의 현안에 대하여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큰 어른'이기도 했다. 설사 김성근 감독의 의견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적어도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당당히 현역에서 젊은 후배 감독들과 겨룰 수 있으며, 경력이 아닌 실력으로 1인자임을 인정받은 카리스마야말로 김성근 감독의 말에 무게를 더해준다.
김성근 감독이 프로 1군 무대에서 물러난 지금, 과연 누가 그의 존재감을 대신할 수 있을까. 사실 김성근 감독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성근식 야구는 오직 김성근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SK 시절, 다른 경쟁팀들이 SK를 따라잡기 위하여 오히려 스타일이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시큰둥하게 반응한바 있다. "우리가 훈련량이 많다고 해서 똑같이 흉내를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속에 담긴 이유를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왜 그렇게 지독하게 훈련을 해야 하는지, 왜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지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능 있는 젊은 지도자들은 많지만, 김성근 감독만큼 자신만의 확고한 야구철학을 바탕으로 때로는 민감한 직언도 마다하지 않는 소신파 감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젊음과 새로움을 강박적으로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김성근 감독처럼 산전수전 다 겪으며 현역에서 장수하고 있는 인물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과연 김성근 감독만큼 시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야구철학과 소신을 고집하며 장수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앞으로 국내에 또 나올 수 있을까. 김성근 감독이 지난해 SK에서 물러나며 이제 프로야구계에서 60대 이상의 노장 감독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독립야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성근 감독과 달리, 그와 동시대에 활약하던 다른 지도자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하여 여생을 즐기며 야구계 원로로만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알고 보면 김성근 감독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단련된 인물이다. 2007년 SK를 맡기 전까지 김성근 감독은 주로 약체팀을 맡아 꾸준한 성적을 내왔지만, 정작 우승과는 인연이 없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경질과 패배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커리어 자체를 회복하기 힘든 요즘 젊은 지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야구인생이었다.
김성근 감독을 응원하는 팬들은 김성근 특유의 완벽주의적인 야구가 세간의 편견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재미를 만끽했고, 그를 싫어하는 팬들은 김성근 야구를 넘어서는 과정을 통하여 즐거움을 누렸다. 야신, 끝판왕, 독설가, 트러블메이커 등, 그를 지칭하는 수많은 이미지 중 무엇으로 기억되던지 간에, 적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김성근 감독이 없는 올해 프로야구는 약간 심심해 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사진=고양 원더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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