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특강]“개척과 도전, 모험이 있는 비상식의 삶은 미련이 없다”
그의 이름은 김성근. 거꾸로 하면 근성 킴. 프로야구 약체로 꼽히던 태평양, 쌍방울, SK 등을 연거푸 최고 순위의 팀으로 등극시키며 야신(野神)의 경지에 올라선 그는 지금 매우 독특한 도전을 하고 있다. 한국 야구의 스타플레이어 누구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2012년의 도전으로 선택한 것은 의외로 화려한 1군의 무대가 아니었다. 현재 그가 감독으로 부임한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는 프로 팀이되 KBO가 주관하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2군 밖에 없는’ 특이한 프로페셔널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귀를 울리는 관중들의 함성소리도 없다. 그런데도 왜 하필 원더스였을까.
3월 6일 홍익대학교에서 진행된 강연회 ‘一球二無,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는 그 선택의 이유가 야구에 대한 순진할 정도로 뜨거운 열정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유쾌한 기회였다. 일본에서 20대 초반까지 보낸 만큼 누가 들어도 명백한 일본 억양을 구사하는 김 감독은, 그 말투 때문인지 대단히 일본적인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유를 갖는 것은 가장 나쁜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내 야구가 무자비하고 지저분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야구란 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겁니다. 적당히 했다가 역전당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지 묻고 싶어요. 승부의 무서움을 알고서 하는 얘기일까요?”
야구는 7할의 실패를 쫒는 과정
그렇다고 해서 승리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념이 패배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강연의 상당 부분은 그의 ‘실패철학’으로 채워졌다.
“내가 몇 번이나 잘렸더라?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위치(지위)에 미련을 갖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요. 일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결국에는 실패로 나아가게 되지요. 퇴로가 있으면 사람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야구는 미스(실수)가 7할이나 되는 스포츠예요.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7할을 쫓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요.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는 과정이 한 시즌 내내 연결되면 10승 20승 차이가 간단하게 나 버립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객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실패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다. 김성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자비할 정도로 이어지는 엄청난 연습량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게 무리하다가 선수들이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에는 “모든 훈련의 목적은 부상을 막는 것이다.”는 논리 하나로 대응하곤 끝이다. 김성근 앞에 선 모든 선수는 갓 태어난 사자처럼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버티느냐 나가떨어지느냐, 선수들에게는 오직 그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는다.
어쩌면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는 선수보다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오직 야구에 대한 생각밖에 들어있지 않다보니까 미친 사람이라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야구를 더 오래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생각을 24시간 내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 싶어요.”
상식을 좇는 삶은 슬픈 인생이다
최근 발간된 그의 저서 『김성근이다』에는 자전거를 타고 생각에 잠겨 퇴근하다가 화단을 들이받은 어이없는(?) 해프닝이 소개돼 있기도 하다. 약삭빠르게 손해 보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토끼 같은 사람이 지혜로 간주되는 21세기. 속도의 시대에서 그는 어려운 상황에 몰렸을 때 손과 발을 움츠리고 생각에 잠기는 거북이 같은 삶을 택했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에서 그는 이상한 사람이거나 아무리 좋게 말해도 특이한 사람이고, 바로 그 특이함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매력이 되기도 한다.
“상식의 삶과 비상식의 삶이 있다고 할 때, 상식을 좇는 인생은 슬픈 결말로 치닫지 않나 싶어요. (반면) 개척과 도전, 모험이 있는 비상식의 삶은 상쾌하고 미련이 없습니다. 그 순간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모든 걸 다 바치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순간적인 판단력과 결단력은 벼랑 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유 속에서 편안하게 살면 출세도 성공도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그의 새로운 도전인 고양 원더스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3월 8일에는 국내 첫 연습경기에서 LG 트윈스의 2군을 5-4로 격파하며 세간의 화제를 낳았던 원더스였다. 김성근은 “기어 다니다 이제 갓 걷는 수준이다. 뛰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궁금해진 바이트는 경기장으로 직접 찾아가 보았다.
14일에 펼쳐진 연세대학교와의 연습경기 스코어는 6-1. 연세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안타 숫자도 14-4로 많은 차이가 났지만 실점 6점의 대부분은 수비 실책에서 비롯되었다. 몇몇 선수들은 심신이 피로한 듯 삼진을 당하면 불편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마도 김성근 특유의 잔인무도한 훈련방식이 그들의 야구인생과 맹렬하게 휘감겨 피로를 누적시키고 있을 터였다.
벼랑 끝에서 분출되는 힘을 느껴라
하지만 짜증을 내도 소용없다. 불펜으로 돌아가 그들이 대면해야 하는 상대의 이름은 김성근. 거꾸로 하면 근성 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등지고서 초봄의 바람도 매섭게 느껴지는 황량한 운동장에서 한국 야구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로 작정한 그의 마음에 드는 선수가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고갯길과 늪지대를 지나가야만 할 터. 이제 우리의 시야가 쉽게 닿지 않는 곳으로 가 있지만, 김성근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일을 할 때는 욕망은 잊어야 합니다. 야구의 목적은 승리이지만 그 욕망을 경기 중에 생각하면 몸이 굳어 버려요. 오히려 그 욕망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할 때 포기하지 않고 1%에 매달리는 순수함, 한 순간의 시간도 아쉽게 생각하는 열정이 나와요. 사람이 벼랑 끝에서 분출하는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출처 : http://www.i-bait.com/read.php?cataId=NLC014001&num=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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