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김성근 SK 감독이 사퇴를 발표한 뒤 몇통의 메일과 쪽지가 기자에게 도착했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잃은 탓에 갈 곳 잃은 SK 팬들은 아마도 이곳 저곳 하소연할 곳을 찾아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들의 글을 읽어내려가다 오래 묵은 숙제 하나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2007년 한 포털 사이트에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을 연재했을때 제목을 정해놓고도 이유를 찾지 못해 끝내 쓰지 못했던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기자에게 도착한 글의 대부분은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방황했지만 김성근 감독의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며 다시 살아야 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는 한 아들의 이야기, 파티쉐를 꿈꾸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다 관절염이라는 벽에 막혀 포기해야했던 한 여성은 SK야구를 보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었다고 전해왔다. 한 테니스 선수는 운동이 너무 싫어 도망쳐 나왔지만 SK 야구와 김성근 감독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테니스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됐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들의 감사엔 진한 눈물이 담겨져 있었다.

늘 그랬다. 김성근 감독이 떠난 자리엔 항상 눈물이 남았다. '불사조' 박철순의 표현을 빌자면 '아름다울 정도로 냉정한' 것이 김성근 감독의 야구다. 그러나 김 감독의 냉정이 지나간 자리엔 그의 말처럼 아름다운 눈물이 떨궈져 있었다.

지난 2002년 LG에서 물러난 김 감독을 위해 제자들이 환갑 잔치를 마련해준 일화는 매우 유명한 스토리다. 흥미로운 건 그 중 대다수가 LG 선수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지독하게 반복됐던 훈련, 좀처럼 웃어주지 않았던 감독을 위해 정말 많은 LG 선수들이 잔치에 함께했다. 쌍방울 시절은 더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가진 것 없던 시절이었다. 김 감독은 그래서 그들을 더욱 매정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게다가 감독 자리에서도 물러나) 이제는 자신들의 인생에 별반 힘 써줄 수 없는 스승의 생일을 주도적으로 챙겼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붐벼도 정승이 죽으면 상가집이 썰렁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지나간 자리는 늘 감사와 진심의 눈물이 함께했다.

김 감독의 철학은 매우 단순하다. 그는 늘 '한계를 먼저 인정하지 마라. 안되면 될때까지 하라. 포기하지 마라. 인생은 결국 생각한대로 흘러가게 돼 있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그의 철학은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말은 닿기 힘든 목표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언제나 자신의 철학을 제자들을 통해 실현해 보였다. 진정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단순히 많이 이겨서가 아니다. 리더 김성근은 선수들의 진심어린 노력을 언제나 공정하게 평가하고 활용했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일방적인 노력을 강요한다.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게 그어져 있는 진짜 현실은 모른척하기 일쑤다. 누구의 아들 딸 인지, 내(혹은 부모의)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외모는 어떤지에 따라 모두 다르게 출발선을 그어 놓는다. 그러고는 빨리 들어온 자에게만 박수를 보내준다. 패배자들에겐 '그러니까 노력하라'는 핀잔만 돌아올 뿐이다. 여기에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값싼 위로가 더해지면 절망감은 더욱 커진다.

김성근 감독을 경험한 한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 "같이 있을 땐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감독님이 떠나고 나니 그때가 왜 좋았는지 알 것 같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누구보다 잘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진심으로 열심히만 하면 됐다.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알 것 같다."

김성근 야구에서 어느 학교 출신인지 얼마나 계약금을 받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할 수 있고 빨리 들어오면 승자가 된다. 야구는 재능이 중요한 스포츠다. 하지만 김성근 야구에서 재능은 좀 더 빨리 뛸 수 있는 능력일 뿐, 먼저 출발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의 화두는 공정이다. 바꿔말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공정치 못하다. 아니 이미 앞서가 있는 사람들이 계속 앞서나가는...매우 불합리한 구조다. 김성근 감독의 퇴장에 눈물이 나는 건 이 시대의 가치를 지켜온 몇 안되는 리더의 마지막에 대한 애절한 절박함때문 아닐까.

출처 :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28&newsid=20110818122054198&p=m_daum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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