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11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면 SK 김성근 감독은 “나는 승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데카르트의 말을 증명하기는 난해한 반면, 김성근 감독의 말은 복잡한 철학적 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명쾌히 증명된다. 프로라면 승리를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하고, 나아가 승리는 존재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승리를 밥 먹듯 하는 김 감독은 누구보다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이 시대 최고의 프로페셔널이다. 


지난 4일 한화전에서 프로통산 1200승을 달성한 김성근 감독 (사진=연합뉴스)


김성근 감독(69)은 분명 다가서기 어려운 인물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일단 말수가 많지 않다. 할 말만 딱 끊어서 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야구 이외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간혹 사생활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야구’와 연관되어서 나온다. 하루 종일 야구만 생각하는 사람 같다. 그래서 재미가 없거나, 인간미가 없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야구에 관한 이 노송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뜻이 있다. 곱씹어볼수록 진해지는 향기를 음미하게 된다. 오랜 기간 이 바닥을 지키며 쌓은 내공이 절로 묻어난다. 식견은 둘째치더라도, 야구에 대한 애정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이렇게 야구만 생각하는 사람이 야구로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다행이다’라는 혹자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야구만 아는 외길 인생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야구에 비교한다. 여러모로 닮아 있다며 야구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야구를 인생에 비교하는 사람은 없다. 딱 한 명 있다면 그 인물이 김성근이다. 야구 자체가 인생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에게 “감독님께 야구는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 전부”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다. 이 말이 거짓이거나 입에 발린 말로 들리지 않았다. 김성근은 그런 사람이다.

김 감독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쭉 돌아보면 그의 야구사랑은 더 절실히 다가온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시련이 그를 괴롭혔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었다. 그래도 그는 “야구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길을 고집했다.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날 정도다.

재일동포 2세인 김 감독은 일본에서 자랄 때는 ‘조센징’,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쪽발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러나 오직 야구를 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버티고 버텼다. 또 학연도, 인맥도 없는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이 야구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야구로 성공해야 했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모든 것이 꼬였다. 어깨 부상은 그의 행복과 꿈을 산산조각냈다.

기업은행 소속이었기 때문에 은행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은행원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선망의 직군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야구계에 남는 것을 택했다. 어눌한 한국말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거기서 야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도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김 감독은 야구계 최고령 사령탑이다. 동시에 가장 많이 잘린 지도자기도 하다. 아마추어에서 여섯 번이나 잘렸고, 프로에 와서도 불명예는 계속됐다. 새 팀을 찾으면 얼마 가지 못해 잘리는 모습이 다섯 번이나 되풀이됐다. 이유는 대부분 ‘높으신 분’들과의 불화였다. 그 과정에서 더러운 꼴을 누구보다 많이 봤다.

질릴 만도 했다. 야구가 싫어질 법도 했다. 여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붙는 딱지들은 오명이 많아졌다. 누구는 고집불통이라고 했고, 누구는 절대 우승은 할 수 없는 감독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묵묵히 자기 길만 걸었다. 엄밀히 말하면 야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깜짝성적을 내고도 소속팀 LG에게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가 대표적이다.

환갑에 이른 나이를 감안하면 은퇴를 생각해야 할 시기였다. 그러나 김 감독은 2005년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지바 롯데의 코치제의를 받아들였다. 힘들 수도,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흔쾌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야구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해서였다.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2007년 SK 감독직을 통해 국내에 복귀한 뒤 보란 듯이 왕조를 건설했다. 


승리 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 (사진=연합뉴스)


포기는 없다

포기를 주문하는 세상의 유혹은 숱하게 있었다. 만약 어느 한 때라도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의 ‘야신’은 없었다. 다행히 김성근 감독은 필 때와 질 때가 뚜렷한 장미가 아니었다. 아무리 밟아도 살아남는 잡초처럼 버텼다. 누가 뭐래도 야구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라고 주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감독의 카리스마는 선수들의 생각을 바뀌게 만들었고, 이는 SK의 팀 성적이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약체였던 SK는 단번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기는 과정에서조차 비판이 존재했다. 야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다. 김성근의 야구는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는’ 독한 야구다. 그리고 철저히 데이터를 믿는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다. 게다가 상식도 파괴한다. 그는 “상식대로 해서는 결코 상식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한다. 김성근의 야구에서는 4번 타자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번트를 댈 수 있어야 한다. 투수가 잘 던지고 있다가도 다음 타자와의 상대전적에서 약하면 바로 교체한다.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러한 야구는 전통적인 스타일에 젖어 있던 팬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식 야구, 고등학교 야구라는 비판은 차라리 양반이다. 심지어 “승리를 위해서는 악마와도 거래할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야구 본연의 재미를 해친다는 고깝지 않은 시선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로라면 당연히 승리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야구가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도 확고하다.

김성근 야구에 대한 평가는 해를 거치며 재조명되고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김성근 야구는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혹독한 훈련은 프로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고, 벌떼야구는 혹사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김성근이 따라오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알아서 김성근의 야구를 따라가고 있다. 이제 많은 훈련양, 불펜의 강화는 전체 프로야구판의 트렌드가 됐다. 프로를 선도하는 진짜 프로. 그게 김성근이다. 


문학야구장에 있는 감독실에서 김성근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귀감으로 남다

호적상 김성근 감독은 올해로 칠순을 맞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감독의 자리를 고려하면 건강이 걱정되는 나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몸이 성하지 않다. 쌍방울 감독 시절이던 1998년 한쪽 신장을 떼어냈다. 암 때문이었다. 야구에 미쳐 살던 그는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에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푹 쉬라는 권고는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항상 예상보다 더 빨리 병상에서 벗어났다. 세상이 그에게 휴식을 강제한 적은 있어도, 직접 휴식을 선택한 경우는 없었다. 그를 일어나게 한 것은 오직 하나, 야구였다. 그리고 더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다. 야신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아직 더 배울 것이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평생 꿈인 완벽한 야구를 위해서다. 김 감독은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다.

후세가 ‘감독 김성근’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른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평가에든 “야구에 있어서는 정말 최선을 다했던 감독”이라는 코멘트가 삽입될 것이 확실하다. “승리를 할 줄 알았던 감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김 감독은 위대한 인물이자 위대한 프로다. 야구를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다. 김성근의 야구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그것이 인생”이라고 단언한다. 어쩌면 우리는, 김성근이라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목도하는 행운아들일지도 모른다.

<스포츠온=김태우 기자>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511n08354?mid=s1001&isq=4388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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