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6.16  이충섭 기자

사람 좋으면 꼴찌다 (Nice guys finish last) - 리오 듀로셔 (다저스 감독, 1948년)

프로의 세계에서는 목적달성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특별한 해법이나 정석이라는 것이 없다. 승리하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고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의 선수 운용에 대해 '아량이 없다', '관용이 없다'라고 힐난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SK가 2군 투수 엄정욱을 1군 등록시키면서 4번 타자 이호준을 2군에 보낸 것을 가지고, 무릎이 안 좋긴 해도 경기를 아주 못 뛸 정도는 아닐 텐데 중심타자를 2군에 보내는 건 너무 승부에만 집착하는 악착스런 모습이라 비난한다면, 사람 좋기로 소문난 국민감독 김인식 감독의 한화가 꼴찌를 달리고 있는 건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김성근 야구라 하면 '벌떼 야구', '관리 야구', '지옥훈련' 등으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김성근 야구의 특장점은 '공정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등 빈약한 선수층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꼴찌팀을 상위권으로 만들었던 원동력은, 무명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식 외엔 대안도 없었다.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신인 최다승(19승) 박정현, 유일한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 정명원, 중간계투로 20승 신화의 김현욱, 100% 승률의 오봉옥 등의 기록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얘기한다.

"89년 돌핀스, 96년 레이더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야, 사람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무한한 것이구나. 아무리 무명이고 볼품없는 선수들이라도 이들이 가진 잠재력이라는 게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하지만, 김성근 야구는 그 동안 철저히 평가절하되어 왔다. 그 정점은 최하위권 LG를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올려놓고도 해고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실은 2007년 SK의 우승으로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 원동력 또한 공정한 기회부여를 통한 것이었다. 12승으로 팀내 최다승을 했던 용병 레이번일지라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2군으로 보내고 이를 갈고 연습하고 있었던 후보선수를 1군에 올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2군 가고 야구 그만둔다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 없이도 야구하는 데 지장 없어. 하지만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기회는 줘야 하잖아. 그래서 똑같이 기회를 줘. 신인이든 스타플레이어든, 똑같이 기회 주고 똑같이 벌칙을 주는 것이 맞아."

김성근의 공정함은 그저 스타플레이어에겐 야멸차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부상재발용 각서를 요구하며 버림받았던 김재현, 두산에서 나이든 퇴물로 은퇴를 종용 받았던 안경현의 실력을 믿고 살려준 것도 그였다.

1996년 쌍방울을 정규레이스 2위를 만들어 놓고도, 2002년 LG를 한국시리즈 2위를 만들어 놓았을 때도 우승 경험이 없다며 평가절하되었던 그가 이제는 2연패를 하고서도 승자의 아량이 없다며 비난 받는 모습을 보면서, 재일교포 출신으로 학연이나 지연 없이 한국에서 이만한 성취를 이루기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선수에게 잘못이 있을 때 불러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야단칠 수 있는 자세야. 그걸 못하고, 그냥 뒤에서 이야기하고, 중간에 누구 통해서 하고, 야단을 쳐야 하는데 못하고, 그렇게 되면 끝이야." 

훈련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독종이지만, LG 감독에서 짤린 후에 선수들이 십시일반해서 환갑잔치를 열어주었던 김성근 감독이다. 성적을 떠나 한국야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야구 마스터의 깐깐한 장인정신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7943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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